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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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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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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122,627

작성
24.05.1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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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화. 개정!

DUMMY

우리들은 분주하게 재판 준비를 시작했다.


거대한 군용 천막이 펼쳐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들어오고도 남았다.


테오는 양손을 구속하는 오랏줄에서 풀려났지만, 여전히 경비들의 삼엄한 감시를 받았다.


천막에 수많은 의자들이 들어오고, 화로와 책상이 구비되었다. 의자와 책상을 두는 일을 내가 도왔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익숙한 배치가 되어버렸다.


판사석

변호인석 검사석


[ 방청석 ]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검사와 변호사가 없을 시기라 변호석은 피고인인 테오 씨가 앉게 되었고, 검사석에는 테오를 체포한 조슈아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슈아가 검사석에 앉아서 경비병들이 주는 양피지들을 읽어보고 있었다. 느낌이 이상하다.


원래 이 소설은 주인공인 조슈아가 억울한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스토리였다. 쉽게 말하자면 조슈아가 탐정과 변호사의 역할을 일부 나눠 가진 셈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조슈아가 변호사석에 있어야만 하는데 검사석에 앉아있다.


트로이안이 살아있다는 이유로 완전히 역할이 반대가 되어버린 거다.


이거,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형. 준비 됐어?”


내 시선을 느꼈는지 조슈아가 자신이 읽고 있던 양피지들을 가지고 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아하하, 어어, 준비 됐어.”


“그럼, 개정할까?”


“그럴까...? 아! 잠깐만, 망치가 없어.”


“망치?”


“응. 개정할 때 책상 위를 탕탕 하고 쳐야지.”


내 말에 조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여기서는 판사봉을 안 쓰나?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갈 즈음, 행동력이 빠른 주인공은 어느새 경비병에게 조그마한 망치를 가져와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경비병이 재빨리 나가는 탓에 ‘망치는 괜찮아요.’ 라고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형, 이거 읽어봐. 보고서야. 첫 장에는 피고인의 신상정보가, 그 다음엔 사건의 개요가, 그 다음 장에는 시신의 정확한 사인이 담겨 있어. 그리고 다음 장에는 피고인이 범인이란 증거들의 목록이 적혀 있지. 그 다음엔 각 증거마다 상세한 정보들이 담겨 있어.”


“아아, 그렇구나.”


조슈아가 빠르게 양피지들을 한 장씩 책상에 내려놓으며 설명했기에, 자세한 내용은 읽지 못하고 그의 손을 따라가기에만 급급했다.


“그 다음엔... 증인을 부를 수도 있어. 필요하다면. 이건 미리 섭외해둔 증인들의 신상정보들이야.”


“아아, 증인이 있구나?”


“하지만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는 아무도 없어. 관문 외부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관문은 닫혀 있었고, 증인들은 모두 관문 안쪽에 있었으니까. 최초 목격자는 여행자 테오고, 그 다음 발견자는 나지.”


“그렇구나. 알겠어. 재판은 어떻게 진행돼?”


“보통은 피고인들의 죄를 먼저 이야기를 해. 그리고 죄의 형벌이 기록된 법 조항을 읽고, 유죄를 선고하지. 한... 3분이면 끝날 걸.”


컵라면도 아니고 재판이 3분 만에 끝났다고...?


“그, 그걸로 재판이 끝이야?”


“응.”


“피고인이 억울함을 주장할 땐?”


나도 모르게 테오를 힐끗 쳐다보았다.


“피고인의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말했잖아. 재판장의 판결이 절대적이지. 형이 유죄라고 하면, 유죄인거야. 그 후엔 죄에 합당하는 형벌을 집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렇구나······.”


어쩐지 어깨가 무거워진다.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을 즈음, 테오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입술만 움직여서 ‘나를 믿어줘’ 라고 말하고 있었다.


더더욱 부담스럽다.


“아, 그리고 보니 판결에 불복해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재심은 어떻게 하는 거야?”


혹시나 내가 잘못된 판결을 내리게 된다면, 테오 씨에게 재심을 받을 것을 권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한 질문이었다.


“아아... 고등법원의 재판을 말하는 거지??”


“응.”


“탈주해야지.”


“응? 왜?”


“우리 영지에는 고등법원이 없어.”


“그럼 어디에 있는데?”


“도시에.”


“도시?”


“그래. 억울하면 대도시로 탈주해야 해.”


“도시로 ‘가야 해’도 아니고, ‘이송해야 돼’도 아니고, ‘탈주’를 해야 한다고?”


“당연하지. 말했지? 일반적으로는 영주가 곧 재판장이야. 그런데 재판에 불복했다는 건 곧 영주를 거역하겠다는 말과 같아. 유죄를 받았으면서도 억울함을 주장하는 순간부터 영주에게 하극상을 일으킨 것이 되는 거지. 즉, 역모죄야.”


“여, 역모라고...?”


“그래. 그래서 재심을 원한다면 영지에서 탈주해야 돼. 고등법원이 존재하는 도시로 말이지. 그러면 영주는 가만히 있겠어? 농노에게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어. 판결에 불복하고 탈주까지 했으니 영주는 추노 꾼을 고용하고 그에게 집행권한을 위임하지. 도시에서 추노꾼에게 붙잡히게 되면 즉결처형 당하는 거야. 그리고, 고등법원에서 재심을 신청하려면 ‘도시민’이어야만 하거든? 도망친 농노가 ‘도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도시의 공기를 30일간 맡고 재심 신청서를 제출해야 해. 그게 수리되면 재심준비가 시작되는 거지.”


“30일 전에 추노꾼에 붙잡히면, 죽는 거고?”


“응. 그래서 고등법원에서 재심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 대부분은 추노 꾼에게 붙잡혀서 죽임을 당하거나, 도시에서 30일 동안 땡전 한 푼 없이 부랑자로 지내다가 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아사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지. 만약 30일을 어떻게 버틴다고 해도 ‘재심 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해.”


“왜?”


“귀족이 아닌 이상, ‘글’을 쓸 줄 아는 자가 없으니까. 그리고 글을 아는 귀족들은 도망친 농노의 편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아. 괜히 그거 때문에 가문끼리 분쟁이라도 생겨 봐. 꽤 골치 아프다고.”


!


충격적인 이야기라 나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테오 씨를 바라보게 되자, 어느새 테오 씨는 손에서 조그마한 주사위를 두 개 가지고 던졌다가 허공에서 붙잡으며 놀고 있었다.


달그락-!


내 시선을 느낀 탓인지 모르겠지만, 주사위를 던지고 잘 잡아채던 테오 씨가 갑자기 주사위를 놓쳤다.


책상 위에 주사위 2개가 굴러가다가 멈췄다.


“오! 둘 다 6이 나왔네!”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신! 인생이 끝날 위기에 처해있다고! 당신이 억울해도 재심을 못한대!


“음? 재판장, 이제 개정하는 건가?”


“자, 잠깐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래? 알겠어. 믿을게, 재판장.”


테오는 웃으면서 내게 부담을 얹어준 뒤, 손을 움직여 조그마한 주사위들이 서로 부딪히게 만들어 잘그락 하는 소음을 계속 만들어냈다.


그의 손버릇이 생겨난 원인은 주사위였나보다. 마치, 도박사처럼 보였다.


“법전에서는 고등법원과 왕의 법정까지 갈 수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현실적으로는 재심도 어렵구나.”


“응.”


그럼 이 재판의 중요성이 매우 커지게 된다. 영지에서 열리는 최초의 재판이 사실상 마지막 재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세상이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테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그가 정말 살인범이라면 어떡하지? 주인공인 조슈아가 범인을 잡아 사망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이라면?


하지만, 테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가 그가 정말 무고한 사람이라면 어떡해? 사형이라는데...! 단순히 각성하기 전 주인공의 레이더 능력에 걸려버린 억울한 사람이었다면? 그러면 내가 책임질 수 있어? 게임 속 세상도 아니라 부활석을 사용해 살려줄 수도 없다.


“으으...!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어차피 당장 시신도 있고, 검시도 했다고 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과 유죄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니 진술을 잘 대조하기만 해도 시시비비가 명확하게 가려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판결까지 내가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니...


“왜 그렇게 고민해? 형은 결정권자야. 무죄를 내리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돼.”


“하지만, 잘못된 판결을 내리면 반드시 피해자가 생기잖아. 테오 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진범이 영지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며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 거고, 만약 범인이었는데 내가 놓아주게 된다면 유족들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해야 돼? 또 다른 피해자들이 받을 고통은?”


“...”


조슈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처럼 미간을 좁혔다.


“괜한 걱정을 하네.”


“괜한 걱정이라고?”


“진범이 활개를 치고 다니면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다시 그를 잡아들이면 돼. 유족들이 형에게 분노한다고? 감히? 간이 배밖에 나온 자가 아니면 어떻게 차기 영주에게 분노를 내비친단 말이야?”


“아하하하하! 저기, 형제 대화에 끼어들어서 정말 미안한데 한 마디는 꼭 해야겠어. 이봐, 병아리. 계속 그렇게 살다간 고독하게 저세상으로 갈 수 있으니 조심해.”


테오의 말에 조슈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뭐라고?”


“신분을 내세우며 위협하고 다니지 말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면서 살라는 말이야. 그렇게 ‘감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간,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제거 당하고 말 걸?”


“뭐라고?!”


“테오님! 말을 가려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재판장님. 방금 제 발언이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 불리하게 적용되지는 않겠죠?”


“경고 드리겠습니다.”


“어이쿠...! 동생을 많이 아끼는 군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기왕 경고를 받은 김에 조금 더 덧붙이겠습니다. 재판장님은 제왕학을 배우셨을 겁니다. 동생을 아낀다면 교육도 제대로 시키는 것이 형의 의무가 아닐까요?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은 '인정(人情)'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네가 뭔데 감히 형을 가르치려고 들어?!”


“그만! 그 건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테오 씨. 조슈아, 너도 자리에 앉아.”


테오는 나에게 고개를 숙여 무례한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저 사람, 나도 모르는 '제왕학'까지 아는 것처럼 말하다니 정체가 뭔지 점점 알 수가 없어진다. 여행자가 되기 전에는 전직 교사였나? 아니면, 누군가의 스승도 겸하고 있는 기사인 걸까? 아니면 지배층과 교류하며 관련 지식을 쌓게 된 도박사인가?


조슈아는 테오를 꿰뚫어버릴 것 같은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내 앞에 둔 양피지를 들고는 쌩 하고 몸을 돌리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앗...! 나에게 준 거 아니었어?! 아직 못 읽었는데?!


나만 당황한 건 아닌지, 경비대장도 당황스러워 하다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빳빳한 양피지 뭉치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보고서는 더 있었구나. 다행이다...!


테오와 조슈아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는 것 같았다.


“어째, 천막 안이 습하네.”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 큰 공감을 해버렸다. 화로가 크고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건조했어야 하는데, 두 사람이 내뿜는 냉기가 더운 공기와 닿으면서 천막 내부를 습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저 두 사람의 싸움을 가운데에서 말려야 하는 내가 흘리는 식은 땀 때문에 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자님, 망치를 가지고 왔습니다.”


경비병이 어느새 돌아와 나에게 망치를 건네주었다. 쇠망치였다.


“이게 제일 작은 망치인가요?”


“네. ...대장간에 더 작은 망치를 만들라고 의뢰할까요?”


“아뇨. 일단 이거라도 쓰죠.”


내가 그렇게 망치를 넘겨받았다. 작은 망치를 가져오라고 해지만, 그저 일반적인 망치와 똑같다. 휘두르는 순간 흉기가 되어버리는 망치 말이다. 재판에서 쓰는 건 나무망치인데...


“재판장님께서 친히 고문하실 건가봐.”

“무섭구만...”

“무서울 게 뭐 있나? 신부님의 말씀을 잘 듣고, 영주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전혀 고문 당할 일이 없어.”

“그건 그래. 아휴, 나는 정직하게 살아야지.”


방청석에 앉아있는 영지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루를 짧게 쥐고 자리에 앉아서 천막 내부를 바라보았다. 조슈아와 테오는 여전히 눈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방청객들은 자리에 앉아서 삼삼오오 떠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소란을 잠식시켜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망치를 책상에 내리쳤다.


살살 내리치면 되겠-


쾅-!


엄청난 소리가 책상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난 살살 치려고 했는데, 망치의 머리 부분이 쇠로 되어 무거워서 확 쏠린 거다. 조금은 민망했지만, 일부러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모두, 정숙하십시오.”


그러자 소란이 줄어들었다.


“큼...! 지금부터, 왕의 법률 아래, 하일 폰 라인베르크 백작님의 대리인으로서, 저, 트로이안 폰 라인베르크의 이름으로 '테오‘ 씨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민망함을 무릎 쓰고 말했었는데, 여전히 천막 내부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조용한 정적 속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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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평화로운 하루 24.05.31 4 1 13쪽
20 20화. 돌아가자 24.05.30 6 0 13쪽
19 19화. 폐정 24.05.29 6 0 13쪽
18 18화. 조각상 24.05.28 8 0 13쪽
17 17화. 원점? +1 24.05.27 8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6 0 12쪽
» 11화. 개정! 24.05.17 7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5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0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1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5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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