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60
『
갑자기 번쩍인 시야.
"으, 으음···."
한순간에 번쩍인 세상에 눈을 껌벅인다. 하얗게 점멸한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눈 앞의 시야가 바뀌었다.
낮아진 시야. 태평하게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보이지 않고...
이제는 읽을 줄 모르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엉덩이에서 그리운 의자의 감촉이 느껴진다. 손을 움직여보면... 움직여지는 손에 책 페이지가 닿는다.
아무 위화감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사건.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해주는 감각.
그 모든 것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태평히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되었다.
"...그래서 그 놈이 그렇게 난리를 친 거구나."
실루엣이 그토록 난리를 친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자칭 꿈의 소체라고 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간단히 만지기만 하면. 계속해서 저항하는 나보다 기억이 없는 멍청한 '내'가 다루기 쉬운 건 너무나도 눈에 선했다.
···의자에 몸을 맡긴다. 두리뭉실한 감각보다 선명하게 몸이 늘여지는, 의자에 등이 찔리는 감각이 온다.
평범하게 아픈 감각. 아픔따위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평범.
거기에서 안심을 느꼈다. 절대적인 안심.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실감을.
"···후우."
이제 곧 이 꿈도 끝이 나겠지. 이제는 내 꿈이 되었으니까.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계속한다면 어떻게든 끝이 날 거라고.
·······································근데.
―뭐가 불안한 거지?
안심에 몸을 맡겼다. 의자에 기대 눈을 편히 감고 있었다. 이제 끝날 꿈의 마지막이 어둠 속에서도 선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불안했다. 무언가 빠지고 놓치고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잊어선 안될 사실을―
그 때였다.
"라인~ 간식 먹으렴."
밑에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 맞아. 이 때는 분명···'
―기억을.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난다.
"?!!!"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흐읍!!! 뭐?!"
힘을 줘봐도, 몸부림을 쳐도, 몸의 방향까지는 바꿀 수가 없다. 움직일 수는 있는데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눈알을, 팔을, 머리를 움직일 수 있는데··· 발가락을 꼼지락할 수 있는데 다리가 멋대로 움직인다.
몸이 의자에서 일어난다.
"뭐가―!"
뒤로 돌아 걸어간다.
"―어떻게 된거야?!"
방문 앞에 선다.
방문에 도착하자마자 팔이 의지에서 벗어난다.
"크윽!"
감각은 있는데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손을 움직이면 그것은 마치 허상처럼 실제와 다르다.
철컥.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괜스레 크게 들려온다. 허나 착각이 아니다. 분명하게 소리는 컸다.
문이 열린 그 순간. 문을 열고 나간 그 순간.
불안의 정체를 깨닫는다.
처음부터 존재했던 그것, 싸움에 정신 팔렸을 때도 느꼈던 그것.
그것은 기억이었다.
이 어긋나있는 꿈의 세상의 모든 것이 기억 속에 있었다.
―'꿈'이 '기억'으로 되어있었다.
이 세상은 '꿈'. 모든 건 '허상'.
하지만 '기억'. 모든 게 '진실'.
그렇다면.
실루엣한테 망가진 이 '꿈(현실)'은?
'·························································――――――'
『―――――····························································.』
'꿈(현실)'은 점점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의지(허상)'따위는 놓아두고.
그 끝을(현실을) 알고 있는 난···.
『안돼.』
중얼거린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소리를 쳐도.
허상따위는 현실을 막아설 수 없었다.
』
지금은 알 수 있다.
모든 게 현실대로 흘러간, 모든 게 파멸로 이어진, 모든 게 최악으로 끝이 난.
가슴에 타오를 것만 같은 붉은 고통을.
『···그래.』
나지막이 내뱉은 말은 각오. 하지만 위태로우며 섬뜩한 말.
『전부 되돌려야되. 이대로 끝나면 안되.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놔야되.』
현실은 달렸고.
허상은 본다.
맑디맑은 밤공기가 차분히 흐르고 말끔하게 정돈된 잔디밭이 퍼져있는 이곳(허상), 안개가 자욱 낀 우거진 숲 속(현실).
훈련-치이익-소(허상).
검은 탑(현실).
모든 걸 되찾기 위해.
가서는 안되는 길을 간다.
―끝과 시작, 한끝 차이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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