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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고양이의 안방입니다.

괴수는 그림자 속에 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안방고양이
작품등록일 :
2020.04.18 19:28
최근연재일 :
2020.12.11 20:47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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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0,904

작성
20.11.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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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결전 (5)

DUMMY

로렌스가 마왕을 향해 다가갔다.

검을 내지르면 닿을 거리.


‘만신창이.’


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서 알 수 있었다.

지쳤다.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의 몸 또한 성한 곳이 없었다.

궁니르에 소실된 육체가 그대로였으니까.


그렇게 로렌스가 가만있으니, 마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넌 아직도 날 동정하고 있군. 내가 항복하기를 바라고 있어.”


마왕이 허공에 손을 뻗어 작은 주사기를 꺼냈다.

안에는 붉은 액체가 찰랑였다.


“불사자의 피다. 어떤 초인이라도 과용하면 예외 없이 죽게 되지.”


그리 말하며 그는 주저 없이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액체가 주입되며 피를 토했지만, 반대로 빈자리에 팔과 다리가 자라나는 신기를 보였다.


“성능 확실하지?”

“그렇게까지 버티는 이유가 뭡니까. 이미 저 괴수도 물리쳤지 않습니까.”


그저 사람들이 죽길 원했다면, 그냥 저것이 나오도록 두면 되었다.

궁니르의 목표가 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이, 입만 다물고 있어도 되는 것이다.


“이유라···.”


마왕이 잠시 고개를 내려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용사의 말대로, 괴수의 왕은 궁니르에 밀려 균열 속으로 사라졌다.

억지로 벌리던 이물질이 없으니 균열도 점차 크기가 줄어들었고, 얼마 안 있어 완전히 닫힐 것이다.


“저 빌어먹을 것들은 아직도 있군.”


마왕은 하늘에 유지된 마광탄을 보며 중얼거렸다.

다시 시선을 로렌스에게 향했다.


“쫑알쫑알 말이 많아. 난 마왕이고, 내 손으로 복수를 이루고 싶었다. 그럼 충분하지 않나?”


마왕이 마왕 했을 뿐.

그러나 로렌스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꼭 어떡하면 이 싸움을 그만둘 수 있을까 하는 표정.


흐흐흐. 마왕의 입에서 음울한 웃음소리가 나왔다.


“그래도 망설이고 있는가. 그럼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홀로그램과 같은 창이 여럿 떠올랐다.

그곳에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이, 이게 어떻게···.”


복수귀가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숨어 있던 사람이나, 도망치는 사람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믿을 수 없다는 그 표정에 마왕이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오랜 시간, 추종자들을 심었다. 그리고 기다렸지.”


지금처럼 복수귀가 마음껏 날뛸 수 있을 때를 위하여.

전쟁이나, 혹은 괴수의 공격으로 방어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까지.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다.


“제국 덕분에 움직이기가 쉬웠어. 한꺼번에 모아주었으니까.”

전 세계적인 무력이 모였다.

용맹한 초인들은 전쟁에 나섰으며, 남은 건 도망치거나 힘없는 자들 뿐.

빈집을 터는 건 무엇보다 간단했다.


“저들은 내가 죽기 전까지 움직일 거다. 지금 철수해봤자 늦을 테고. 그러니 로렌스.”


마왕이 말했다.


“날 죽여라. 그래야 이 전쟁이 끝날 테니까.”

“또 그 소리입니까.”


로렌스가 눈을 찌푸렸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혼자 자살하면 되지 않습니까.”


로렌스는 자신이 지쳤다는 걸 알았다.

특히 심적으로.


도대체 저 말을 들은 게 몇 번째던가.

차라리 죽이려 덤비면 모를까. 뭔가를 감춘 것처럼 죽여달라는 듯 굴고 있으니, 그로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로렌스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을 죽일 충분한 기회임에도 마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체 뭘 원하는 겁니까. 절 괴롭히는 거?”

“맞아. 사실 난 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걸 즐기고 있지. 너의 정의감을 이용하면서, 괴롭히고 있는 거야.”


누가 보더라도 거짓말이었다.

그럼 어떠랴. 애매하기 그지없는 대답은, 어떤 도발보다 확실했으니까.


로렌스의 이가 갈렸다.

몸이 지친 탓인지 이제 뭐가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이 앞섰다.


“저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평화롭게!”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마왕이 날뛰며, 어쩌다 보니 용사가 되었다.

친구가 죽고 누님이 살해당했다.

쓰러질 법도 했지만, 그는 사람들의 기대를 짊어지고 있었다.


로렌스가 악에 받쳐 외쳤다.


“얼마나 더 하라는 겁니까!”

“그렇게 힘든 소리를 할거라면 처음부터 하던가.”


침묵은 긍정이니.

로렌스는 용사로 불린 이후, 늘 침묵했다.


마왕이 그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괜히 입 다물고 호구처럼 일하다 지금 와서 징징거리면, 누가 알아줄 거 같았나? 천만에.”


세상은 이기적이다.

사람은 자신보다 약자를 괴롭히며, 가진 것을 빼앗는다.

강자가 나타나면 숨고, 만만한 사람을 찾아 화풀이했다.


약육강식.

마왕이 복수를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 징징거리고 나를 죽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죄 있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용사가 되어라.

오직 그 한마디에 로렌스는 침묵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


검을 뽑았다.

은빛의 검날이 스르륵 저항감 없이 뽑혀 나왔다.


“그놈의 용사, 용사! 예, 좋습니다. 그렇게 원하면 죽여드리죠!”

“마음을 정했나. 그래, 나를 죽여 사람들을 구해라!”

“이제 사람들 따위 상관없습니다! 다 뒤져버리라지!”


마비된 이성과 함께 검 위로 선명한 검기가 피어올랐다.

괴옥의 힘을 빌리지 않는 순수한 검기.


자신을 향하는 명백한 살의에 마왕이 웃었다.

로렌스의 분노를 더욱 부추겼다.


“그거야! 그게 내가 원하던 모습이지!”

“닥쳐! 넌 아놀드를 죽였고, 누님을 죽였어! 이제는 내가 널 죽일 차례야!”


로렌스가 접근하며 검을 휘둘렀다.

마왕이 피하지 못하고 한쪽 팔이 떨어졌다.

그는 급히 새로운 주사기를 꺼내 주입하려 했다.


“어딜!”


로렌스가 거리를 좁히고 그것을 방해했다.

주사기와 함께 손이 떨어졌다.


주변의 잔해가 움직였다.

마왕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용사를 압사시키기 위해 양옆에서 덮쳐왔다.

하지만 선명한 검기는 바위 따위는 아주 쉽게 베어버렸다.


전투는 금방 끝났다.

두 사람 모두 지친 상태였고, 마왕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로렌스는 달랐다.

마나가 끝없이 샘솟는 용의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까.


마왕은 어느 순간부터 공격보다 회피에 집중했다.

당연히 뒷걸음이 많아졌고, 곧 구석으로 몰렸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뒤가 막힌 것이다.


푹.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렌스가 검을 찔러 넣었다.

살과 뼈를 꿰뚫는 감촉이 벽에 닿을 때까지 이어졌다.


‘모든 걸 쏟아 넣어라.’


전지자의 말을 기억하는 로렌스가 한 톨의 힘도 남기지 않을 것처럼 쏟아부었다.


“하압!”


로렌스의 빛이, 그림자를 밀어내며 불순물을 정화하던 힘이 마왕을 태웠다.


‘어?’


자신의 힘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쯤.

로렌스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전지자의 예언은 틀렸다.

마왕은 이미 반격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안되지. 임마누엘이, 망설이지 말라고 알려주지 않았나.”


마왕은 자신의 손을 붙잡고 검이 더욱 파고들도록 잡아당겼다.


그 모습에 로렌스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다른 의미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명이 머리에 울린 것이다.


-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동시에 마왕의 그림자에서부터 무언가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도망쳐 시야에서 사라진다. 뭔지 궁금했지만,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딜 보는지 모를 힘 풀린 눈이며, 벌어진 입.

마왕이 죽어가고 있었다.


“마왕?”


목소리에 반응하듯 그의 눈동자에 힘이 돌아왔다.

자신을 보는 모습에 순간 경계했지만, 그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마왕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동생아. 알고 있어.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거.”


자신과 동생과 겹쳐본 것일까.

로렌스가 묻기도 전에, 마왕은 남은 힘을 짜내듯 소리쳤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뇌리에 꽂아 넣는 목소리.

귀를 막아도 들리며, 숨어 있어도 알게 되는, 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일방적인 통보.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마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원망과 분노의 장작이 쌓였을 때, 재앙의 불꽃이 되어 피어오를 것이다.”


그것은 경고였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위협.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아넣은 공포.


말을 끝낸 마왕이 용사를 보았다.

그는 아까처럼 동생이 아닌, 이번에는 로렌스를 보고 있었다.


“기억해라 로렌스. 나는 그림자 속에서 지켜볼 것이다. 네가 다시 방자하게 침묵하는지 말이야.”

“당신은···.”


그 말을 끝으로.

마왕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잡은 손이 축 늘어졌다.


“···끝났어?”


숨을 쉬지 않는다.

검을 통한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재가 되어 사라지지도 않았다.


“끝난 거야?”


로렌스는 검을 놓고는,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 끝났어.”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 끝났다고.”


로렌스가 마왕의 시체를 보며 말했다.

그의 뒤로는,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전쟁 선포 7일 차.

전쟁에서 승리했다.




오탈자와 설정 오류, 피드백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완결!

다음은 에필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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