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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고양이의 안방입니다.

괴수는 그림자 속에 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안방고양이
작품등록일 :
2020.04.18 19:28
최근연재일 :
2020.12.11 20:47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69,664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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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0,904

작성
20.09.2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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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혼란의 계승식 (2)

DUMMY

빛이 검신에 일렁였다. 곧 검 끝으로 모여들며 응어리지는 빛 알맹이.

위험을 감지한 세 사람이 급히 몸을 피했다.

피융!

그 순간 섬광이 직선을 그리며, 그들이 있던 자리에 진한 그을음을 만들었다.


“빛으로 맞아본 적 있니?”


로렌스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연사로 쏘아지며 정신없이 쏟아지는 빛무리.


프렌스는 얼음벽을 세워 광선을 막았다.

얇고 구불구불한 벽면이 빛의 공격을 훌륭히 튕겨낸다.

반면 그램은 두 팔로 얼굴만 가린 체, 천천히 로렌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갑옷이 검게 그을리긴 했지만, 유의미한 상처로 보기는 어려운 느낌.


“자, 너는 어떻게 할 거니?”


로렌스는 제 일 아니라는 듯 한발 물러나 있던 드레븐에게 검을 겨눴다.

그는 자신에게 시선이 오자 잽싸게 연막탄을 떨어뜨렸다.

펑!

짙은 연기가 그의 몸을 가린다. 인식 저해의 마법이라도 섞인 것인지, 연기 속 그의 위치를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거 같은데.”


로렌스는 어깨를 으쓱이고 연기 속으로 광선을 연사했다.

그때 가까이 다가온 그램이 정면에서부터 주먹을 휘둘러왔다.

무식하리만치 위협적이지만, 동시에 정직한 공격들.

로렌스는 상대가 싸울 마음이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 같은 공격만 하는 거 아니야? 괴수를 상대하는 거랑은 다르다고. 아니면 자신 있다는 건가?”

“제 갑옷은 지금껏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습니다!”

“그만한 놈을 상대한 적이 없겠지.”


로렌스의 말에, 그램은 어디 마음껏 쳐보라며 방어를 포기한 채 공격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한 자신감은 독이 되는 법.

로렌스는 검자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검에서 탁한 검기가 피어난다. 그에 그치지 않고 로렌스는 자신의 힘을 따로 주입했다.


“이것도 괜찮은지 볼까?”


뜨거운 빛이 탁한 검기를 잠식한다. 검푸른색을 띄던 검기는, 점차 선명한 청색으로 바뀌며 정순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


그램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위험하다.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몸을 빼려는 때에는, 이미 로렌스의 검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컥!”

“다음부터는 피하는 것에도 집중하렴.”


자신하던 것과 달리 맥없이 쓰러지는 그램.

로렌스는 곧장 또 다른 도전자가 있는 쪽으로 달려나갔다.


“칫, 새끼 나댈 때부터 알아봤지.”


프렌스는 혀를 한번 차주고 얼음 검을 만들어 근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고작 얼음. 강철보다 단단한 미스릴 앞에서 뚝 하고 부러져 버렸다.


“근접전은 네가 불리할 거야. 그래서 다가온 거고.”

“그건 알고 있습니다!”


부러지면 만들고 녹으면 다시 얼린다.

프렌스는 멈추지 않고 2번째, 3번째의 무기를 조각해 로렌스를 상대했다.


“꼭 로벨리아를 따라 하는 거 같네.”

“배웠다고 해주시죠!”


격해지는 전투의 중반. 갑자기 프렌스가 로렌스의 뒤편으로 시선을 두었다.

허공에서 생성된 얼음 원뿔이 로렌스의 뒤통수를 노렸다.


“시선이 정직해.”


그에 로렌스는, 프렌스의 검을 상대하는 동시에 왼손을 등 뒤로 뻗었다. 빛이 손가락 지휘에 맞춰 움직이며 얼음 공격을 떨쳐냈다.


“눈이 뒤에도 달렸습니까?”

“배움과 경험의 차이지.”


혼자서는 도저히 상대되지 않는다. 프렌스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드레븐이 있는 쪽을 보았다.

때마침 안개가 걷히고 나타난 드레븐이 곧바로 기권을 외쳤다.

아까 쏟아진 연사 광선에 다친 것이다.


‘저 도움 안 되는 놈!’


두 사람만이 남은 경기장.

프렌스가 더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는 마지막 사력을 다해 냉기를 흩뿌렸다.

곧 바닥과 허공에 찬 기운이 머금기 시작하며, 경기장 전체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로렌스는 자신의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는 것을 알보고 탄성을 흘렸다.

분명 열기를 두르고 있었지만, 그것을 뚫고 들어오는 냉기라니.

이것이 공연인 것을 알기에 그는 잠시 프렌스의 행동을 기다려 주기로 했다.

소복이 쌓이는 눈 위로 홀로선 프렌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고귀해 보였다.


“그야말로 얼음의 왕자군.”


어느새 수북이 눈 깔린 경기장.

프렌스가 손을 뻗었다. 눈 내리는 허공에 잡는 순간, 그의 손 위로 투명하게 빛나는 검이 뽑혀 나왔다.


프렌스는 검을 들고 로렌스와 마주했다.


“여기서 정면 대결이야? 하긴, 다른 방법도 없을 테니까.”


원거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까.


프렌스가 검을 휘둘렀다. 로렌스가 가볍게 막는다.

쩌적―.

그가 들고 있던 투명한 검은, 놀랍게도 곧바로 녹거나 부러지지 않았다.

금이 조금 갔지만, 냉기를 흡수하며 곧바로 복구되었다.


“멋진 기술이야. 하지만 체력 소모가 힘들어 보이네. 벌써 숨을 헐떡이잖아.”


몇 차례의 합이 지나며 점차 힘이 빠진 프렌스가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검을 중심으로 힘을 모은다.


‘마지막인가.’


로렌스는 이제 퇴장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보여주는 건 이제 충분하겠지.

화려한 빛으로 관중들의 시선을 가린 뒤 대충 누워있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럼 기관장도 별말 안 할거고.


“덤벼라 프렌스. 끝내줄 테니까.”

“대충 질 생각 마시고 진심으로 오십시오.”


그런 로렌스의 의도를 알아챈 것일까. 프렌스는 오히려 도전적으로 말했다.


“저 위에서 그녀가 보고 있습니다. 추하게 이겨봤자 자랑하지도 못합니다.”


로렌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벨리아 정도의 실력자라면 모를 리가 없지.


“그럼 최선을 다해라. 지더라도 원망하지 말고.”


검에 주입하던 힘을 배로 높였다.

빛이 두 배로 밝게 비추며, 뜨거운 열기가 주변에 내리던 눈도 녹여 증발시켰다.


프렌스 또한 자신의 검에 힘을 쏟아부었다.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던 검을 중심으로 작은 서리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가 휘두른 궤적을 따라 공기가 차갑게 얼며 로렌스를 향했다.

마찬가지로 로렌스가 검을 내질렀다. 폭력적이며 파괴적인 빛이 시야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두 힘이 격돌하며 그 여파가 결계 너머의 관객석까지 들썩이게 했다.


잠시 후, 잠잠해진 경기장 위로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지막까지 서 있던 것은···, 로렌스.


“···.”


야유는 없었다. 격렬하며 초월적인 전투 앞에 관객들은 로렌스에 대한 반감마저 잊은 듯했다.



“후우···.”


로렌스는 쓰러진 프렌스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린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피곤하다. 그들이 보기에는 여유로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곧 회복계 초인들이 들어오며 두 사람의 몸을 치료했다. 그리고 들리는 사회자의 목소리.


- 용맹한 도전은 아쉽게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관객 여러분!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아직 비장의 무기가 남았습니다. 네? 무슨 무기냐고요? 검이면 검, 창이면 창! 맡겨만 주시라. 수호대의 빛나는 수석! 무기장인 로벨리아입니다!


그 소리에,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경기장 한편에 마련된 거대한 철문이 열리며, 로벨리아가 걸어오는 게 아닌가.


“로벨리아?”

“수고했어 프렌스. 마지막에 멋지더라.”


로벨리아는 생긋 웃으며 그를 지나쳤다.


로렌스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병실에서 한 말이 거짓말도 아닐 테고, 왜 그녀가 여기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기관장이 그러지 못할 미끼를 흔들더라고요. 선배야말로 싸울 수 있겠어요? 적당히 맞추면서 춤춰드릴까요?”

“힘 빠지고 들어와서 그렇게 말하기야?”

“불만은 기관장한테 해주세요.”


미끼가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다. 대신, 로렌스는 다시 자신의 검을 집어 들고 자세를 취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그램을 상대할 때 너무 허무한 감이 있었다.

로벨리아를 염두에 뒀던 거겠지.


준비 시간이 갖춰지며 다시금 심판이 대결의 시작을 알렸다.

네 명이 만들어낸 빵빵 터지던 화려함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기교와 기술은, 싸움에 무지한 사람조차 손에 땀을 쥐게 하기 충분했다.


로벨리아가 검을 내지른다. 로렌스가 자신의 검으로 막아내니, 분명 휘두른 건 그녀였지만 잘려나가는 것도 그녀의 검이었다.

로벨리아는 깔끔하게 잘린 자신의 검과, 로렌스의 은빛 검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기가 너무 사기 아니에요?”

“부럽지?”


유치할 정도의 자랑에 로벨리아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새로운 검이 들려있었다.

다시 로벨리아가 공격한다. 로렌스는 아까와 같이 막아내려 했고, 순간 그녀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탁한 검기에 깜짝 놀라 힘을 주어 튕겨냈다.


키기기긱!


검기를 씐 검과 은빛 검날이 교차하며 격한 소음이 발생했다.

본질은 아니나 검기조차 막아낸 은빛의 검.

로벨리아는 자신의 기습이 막히자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와, 이거까지 막아내는 건 좀 너무한데요.”


놀란 반응을 보이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로렌스.

역시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대라는 걸 자각했다.


‘까딱하면 한순간에 당한다.’


아무런 사전행동 없이 이루어진 검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계속 그대로 있으면 제가 먼저 갑니다?”


경계하는 로렌스 대신 로벨리아가 먼저 움직였다.

양손에 한 자루씩. 두 자루의 검에서 피어나는 탁한 검기는, 사뭇 날개와 같은 모습으로 보일 지경이다.


로렌스 또한 검기를 피워 반격했다.

서걱서걱 질적으로 다른 검과 검기가 그녀의 검을 거침없이 잘라 버렸다.

하지만 로벨리아는 부서진 검을 버리며 곧바로 새로운 날붙이로 대응해 왔다.

검기가 나오는 건 당연했고.


“괴옥을 몇 개나 준비한 거야. 지치지도 않아?”

“그러는 선배도 방금까지 세 명이나 상대한 거 맞아요? 너무 쌩쌩한데.”


그녀의 변칙적이며 날렵한 움직임은 로렌스의 빈틈을 날카롭게 노렸다.

그에 점차 밀리기 시작하는 로렌스. 어쩔 수 없다 여긴 그는 빛을 빠르게 점멸시키며, 잠깐의 틈을 노리고 반격했다.

순간적인 찌르기. 로벨리아의 어깨가 스치며 핏물이 터져 나왔다.

로벨리아가 미소지으며 피에 적힌 팔을 털어냈다.


‘위험하다!’


로렌스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직후 붉은 핏방울들이 작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가 있던 장소에 후두두 꽂히는 게 아닌가.


뒤로 빠지는 로렌스를 로벨리아가 무섭게 쫓았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고, 그 반동에 튄 핏방울이 한발 늦게 날아든다.

그저 바닥을 붉게 적시는가 하면, 단단한 유리 조각처럼 타닥타닥 소리 내며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저 붉은 선혈 속 무엇이 위험한지 알 수 없는 상황.

당연히 로렌스의 움직임이 회피와 방어에 치중될 수밖에 없었다.


“선배 그거 아세요? 마법사의 피에 마나 농도가 짙은 것처럼, 초인의 피에도 능력이 녹아있는 거.”

“연구소장이 했던 소리였지. 그게 왜?”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일까.

그 의미를 깨달은 건, 떨어진 핏자국에서부터 긴 송곳이 쑥하고 솟아났을 때였다.


“함정?!”




오탈자와 설정 오류, 피드백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쑤욱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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