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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고양이의 안방입니다.

괴수는 그림자 속에 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안방고양이
작품등록일 :
2020.04.18 19:28
최근연재일 :
2020.12.11 20:47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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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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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0,904

작성
20.09.2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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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0쪽

만개하는 선동 (3)

DUMMY

“용사를 제명하라!”


로렌스에 관한 부정적인 말이 끊이지 않았다.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주 소수일 뿐.

한번 불이 붙은 소문이 크게 타오르듯, 용사를 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차 덩치를 키웠다.


로벨리아는 병실 한켠에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요. 용사가 무슨 직책도 아니고.”


그녀의 말처럼, 용사는 그저 별명에 불과하다.

제명하고 말 것 없는 사람들이 붙여낸 호칭.

하지만 불만을 토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닌 듯했다.


“선배가 왜 용사로 불려왔는데요. 마왕이랑 싸웠기 때문이잖아요.”

“차라리 잘 됐어. 지금껏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녀의 한탄에도 로렌스는 고개를 저었다.

별명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계속되는 사건과 의혹 제기에 그는 심적으로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이렇게 문제 삼을 줄은 몰랐지만, 이참에 그만둬버리지 뭐.”

“오빠는 그걸로 됐어도 진짜 문제는 기관장 그년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거잖아.”


힐라가 선물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와그작.

주먹만한 사과가 입속으로 통째로 씹혀 들어갔다.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며칠 전과는 다른 모습. 왕성한 식욕과 빠른 회복세를 보아 복귀하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회견 때도 그렇고. 이 일은 또 어떻게 굴리려는지.”


그녀는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 삐리릿!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로렌스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기관에서 보내온 긴급 연락에 여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마침 기관장한테서 왔네.”


로렌스는 긴급 호출이 찍혀있는 자신의 휴대폰을 그녀들에게 보였다.


“저 새끼는 급하지도 않으면서 맨날 긴급만 띄우더라.”

“자기 딴에는 급하다고 저러는 거겠죠. 혼자서 있는 소란, 없는 소란 다 끌고 오잖아요?”


로벨리아와 힐라가 킬킬킬 웃었다.

그녀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로렌스는 병실을 떠나 관리기관으로 움직였다.



* * * * *



탁.

로렌스는 자신의 앞에 떨어진 서류 뭉치를 보았다.


“이건 뭡니까?”

“용사 로렌스를 제명하자는 것에 동의하는 서명서에요. 워낙 많은 사람이 서명해서 무시할 수가 없더군요.”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굳이 제 동의를 받으려 부른 것도 아닐 테고.”


어차피 제 하고 싶은 데로 하던 사람이 아닌가.


오즈는 어깨를 으쓱이며 들어보라는 듯 말했다.


“용사의 호칭에 미련은 없나요? 그렇다면 다른 방법도 있죠.”


서명서 한 장을 들어, 그의 눈앞에 살랑살랑 흔들었다.


“지금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 이유가 뭐겠어요. 저와 용사의 의견 싸움으로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 탓이 아니겠어요?”

“사실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며 그들에게 해명한다고 해도 납득하지 않겠죠.”


글쎄. 로렌스는 누구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는지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어디 한 번 말해보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보여주자는 거예요. 기관장과 용사가, 사실 그렇게 문제 되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친한 모습을 연기하자는 겁니까?”

“그저 서로가 돈독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거죠.”


로렌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설마 같이 외출이라도 하자는 건 아닐 테고.”

“당신이 제 일정에 따라 일일 매니저가 되어주는 거예요. 요새 우월주의의 활동도 흉흉해 지고 있으니, 호위라는 명목으로 따라붙는 거죠.”


가끔 가방도 들어주면서 말이다.

그녀는 입술에 침도 묻히지 않고 그리 말했다.


‘호위는 무슨. 노예겠지.’


당당한 발걸음으로 나서는 그녀와, 입구에서 가방을 들어주는 용사의 모습이라니.

호위가 아니라 충견이 더 알맞은 말이 아닐까.


“어떠신가요.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겠죠. 만일 수락한다면,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오해도 제가 풀어드리도록 하죠.”

“차라리 개처럼 기어서 마중 나오라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럼 제가 용사를 개처럼 부려먹는다는 소문이 돌겠죠. ‘기관장이 이상한 취미!’, ‘현시대의 노예란?’ 절대 안 될 소리예요.”


로렌스의 노골적으로 비꼬는 말에도 그녀는 표정 하나 끄덕하지 않았다.

자신도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고 있다는 거겠지.


로렌스가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그러자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두 번째 안건을 보여주었다.


[용사 계승식을 위한 기획서.]


“이건 또 뭡니까.”

“보는 것과 같아요. 용사를 제명하라고 그대로 없애버리면, 당신이야 어찌 됐든 관리기관의 이미지도 함께 실추될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 용사의 호칭을 지우는 대신, 그대로 유지하여 사람만 바꾸자는 것.

이를 위해 대대적인 기획을 세웠다고.


“요즘같이 흉흉할 때, 사람들의 숨도 돌리고 딱 좋지 않나요?”


최강자를 가리던 이전 대회와 다른, 관리기관에서 주체하는 두 번째 대회.

용사 계승식.


“잘만 된다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겠죠? 기관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당연하고요.”

“마음대로 하시죠.”

“그럴 거예요. 후보자를 선출해야 하는데, 우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1기 수료생들 위주로 모집할 거랍니다.”


많은 수호대 출신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

가장 유력한 후보가 수석인 로벨리아라고.


“2기 생을 모집하는 중이니 홍보 효과도 확실하겠죠.”


기관장은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패배하는 로렌스의 모습을 그리는 듯싶었다.

그렇게 그의 자존심도 떨어뜨리려는 거 같은데, 정작 로렌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지.’


“제가 대회를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추하고 더러운 사람으로 손가락질받게 되겠죠. 그런 야비한 놈을 수호자로 남길 수도 없을 테고요.”


그야말로 다 빼앗겠다는 소리.


다른 방법이 없다. 로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으면 이제부터 당신과는 별개의 일이에요. 대회전까지 푹 쉬고 계세요.”


일방적인 축객령에 로렌스는 쫓겨났다.


긴 한숨이 나왔다.

문밖에서는 비서인 리시트와 함께 로벨리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보니 계승식을 준비하며 기관장이 미리 불러들였다고.

자신이 충견이 되지 않을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호출받아서 왔긴 했는데 무슨 일인가요?”

“기관장이 대회를 연다고 해.”

“그런데 저를 불렀다고요? 아무튼, 알겠어요.”


쯧. 로벨리아는 싫은 티를 내면서도 기관장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녀를 뒤로하고 로렌스가 돌아가려는 찰나, 리시트가 불러세웠다.


“로렌스 씨. 무기계발부에서 검의 수리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게 있었죠. 감사합니다.”


로렌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지하의 무기 관리소로 이동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걸까. 자신의 검을 맡았던 장인이 마중 나왔다.

그는 로렌스를 안쪽의 자신 공방으로 안내했다.


“자자, 마침 검과 검집이 모두 완성된 참이네. 어서 들어보게나!”

“감사합니다. 해머 씨.”


무기 장인 해머는 천에 둘러싸인 막대를 로렌스에게 건넸다.


처음 느낀 것은, 가볍다.

지금까지 휘둘러왔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로렌스는 천천히 검을 감싸던 천을 풀어헤쳤다.

곧 투박하며 익숙한 손잡이와, 은은한 은빛을 품은 검날이 그를 반겼다.


단순한 금속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법으로 가공한 철로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이건 뭐죠?”

“미스릴. 드워프 유적 깊은 곳에 소량으로만 남아있던 금속이다. 기관장도 모르고 있지.”

“듣기만 해도 귀해 보이는데, 제가 이걸 받아도 될까요?”

“안될 거 뭐 있나! 유산을 본래 용사님의 것이 아니던가! 저 양아치 년이 무슨 말을 하든, 우리 장인들은 용사님의 편인 걸 잊지 말도록 하게!”


하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로렌스의 등을 짝! 소리 나게 후려쳤다.


“좋은 장비 앞에 두고 말이 길어졌군. 자! 어서 능력을 써보게.”


그의 재촉에 로렌스가 검을 쥐었다.

손에 익은 손잡이와 광택으로 번들거리는 괴옥.


“후읍.”


천천히 빛을 주입한다. 그러자 어떤 저항감도 없이, 검신에서 세찬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곧바로 발휘되는 빠른 반응속도와, 태양을 모방한 듯한 밝기.


해머가 폭소했다.


“으하하핫! 이제 어떤 녀석이 나와도 끄떡 없을 테지! 유색 괴수든 마왕이든 얼마든지 덤비라 해!”

“이렇게 좋은 걸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말로는 괜찮다 하지만 이 귀한 광석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로렌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그와 구경나온 장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 우리는 원래 월급이나 축내는 놈들이었거든.”


해머는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본래 수호자들이 쓰는 무기는 대량생산한 냉병기이다.

당연히 전문 기술도, 인원도 그리 필요하지 않았기에 자신들의 입지는 매우 애매했다고.

하지만 드워프의 무기가 발굴됨에 따라 상황이 역전되었다.

무기에 전문지식을 갖춘 장인들이 두드러진 탓이다.


해머가 로렌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요즘 세상이 시끄러운 거 같은데, 자네는 우리의 용사인 걸 잊지 말게나.”

“네, 정말 감사합니다.”


로렌스는 다시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찬란한 빛깔의 검이라면 다시금 마왕과 싸우더라도 지지 않을 거라고.




오탈자와 설정 오류, 피드백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호칭을 계승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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