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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고양이의 안방입니다.

괴수는 그림자 속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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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안방고양이
작품등록일 :
2020.04.18 19:28
최근연재일 :
2020.12.11 20:47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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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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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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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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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국의 부름 (4)

DUMMY

로렌스가 눈을 뜬 곳은 호화로운 병실이었다.

실력 있는 의사들과 최신식의 장비. 충분한 인력이 갖춰진, 황족도 이용하는 대형 병원이라고.


로런스는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옆에 엎드려 잠든 여동생을 발견했다.


“힐라, 다친 곳은?”

“오빠···.”


휠라가 일어나며 급히 눈을 닦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붉게 물든 눈물 자국이 선명했지만, 로렌스는 애써 모른 체했다.


“괜찮아. 난 이미 다 나았으니까. 내 회복력 알잖아.”

“내가 며칠이나 기절해 있었지?”

“삼일. 삼일 동안 잠들어 있었어.”


그렇구나.

로렌스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왕은 어떻게 됐어?”

“···모르겠어. 바깥소식을 들을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힐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 또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눈 뜨고서는 계속 로렌스의 옆에 붙어있었다고.


“그래···.”


그녀도 마음고생이 심했겠지.

로렌스는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마왕의 행보에 관해 생각했다.


지금쯤 그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까.

복수귀가 날뛰며 피바다로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돌아가야 해.”


로렌스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복도가 시끄러워졌다.

무슨 일일까.

로렌스와 힐라가 시선을 돌렸다. 곧 의사들의 만류를 뚫고 병실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니.


금빛의 망토를 두른 남자. 호쾌하며 시원한, 그러면서도 눈동자에는 깊은 인자함이 들어찬 사람이었다.


환자들이 고개 숙이며 의사들이 부복했다.


“황자님!”

“황자님을 뵙습니다.”


‘황자?’


이 사람이 제국의 황자라고?


당황하는 로렌스를 향해 황자가 다가왔다. 그의 옆에는 용 발톱기사단의 테일즈도 함께하고 있었다.


로렌스가 예의를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육체가 다시금 그를 자리에 앉혔다.


“으윽···.”

“환자는 앉아있게.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황자는 그리 말하며 침대 한편에 자리해 로렌스의 상태를 살폈다.


제국의 황자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과할 정도로 털털한 모습.

그러나 주변 이들은 익숙한 것인지 별로 당황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품위가 상한다 말리지도 않으며, 그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쉴 뿐.


그런데도 그들이 보이는 눈빛에 존경이 가득했으니. 로렌스 또한 그를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황자님. 그는 아직 안정이 필요합니다.”


테일즈가 걱정스럽게 알렸다. 황자는 알고 있다며 손을 저었다.


“용사와 마왕의 연은 익히 들었네. 거기다 공화국의 소식을 듣지 못해 마음을 졸일 테지. 그러다 속앓이라도 하면 어쩌겠나.”


그 말에 테일즈가 더는 말리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황자가 로렌스를 보며 시원하게 미소를 지었다.


“로렌스라 하였지. 마왕이 어찌 되었는지 알고 싶나?”

“예, 염치 불고하고 묻고 싶습니다. 지금 마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네.”

“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 로렌스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황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말이 잘못되었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야. 그는 자신이 법황임을 자처하며 높다란 탑을 세웠네.”

“탑이라뇨?”


로렌스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기보다, 법국에 자리 잡았다는 말이 더욱 의심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궁금해하는 로렌스의 상태를 아는 듯 왕자는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말대로일세. 법국의 영토 안에서, 하늘까지 닿을 법한 탑이 나타났네. 갑자기 말이야.”


그 탑이 너무 높아 근접한 국가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과연 얼마나 높을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마왕은 그 탑의 꼭대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네.”

“법국의 시민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아무것도. 어떤 반발도, 문제도 없이 그저 받아들였어. 꼭 귀신에 씐 것 같이 말일세.”


오히려 온 시민이 법황의 등장을 반겼으니.

사람들은 그 모습이 인형과 같이 설명했다.



“문제는 다른 쪽일세. 탑이 높게 솟아, 그곳에 찾아온 추종자들에게 힘을 나눠주고 있지. 바로 괴물이 되는 힘 말일세.”

“복수귀···.”


황자가 긍정했다.


“그래. 마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정작 복수귀들이 날뛰는 상황이지. 전 세계적으로 말이야.”


로렌스가 고개를 떨구었다.


‘악인 말살.’


설마설마했지만 정말로 시작되었다.

과거에 일어났던 잔혹한 학살극. 그것이 또 한 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화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호자들이 노력하고 있다는군. 무얼, 마왕이 직접 나선 것도 아니고, 때때로 복수귀가 날뛸 뿐이니.”

“알, 겠습니다.”


그제야 로렌스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뱉다가 숨이 턱 막혔지만.


“환자를 너무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군. 이만 쉬도록 하게. 붙인 팔에 감각도 없지 않나.”

“아···.”


로렌스는 그때서야 자신의 팔이 붙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깁스로 고정된 팔. 신경이 회복되지 않은 것인지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의사의 말에 의하면 점차 회복된다고 한다.


“흉터는 남겠지만 붙어있는 거로 용하지. 아주 톱질을 해놨더군.”

“감사합니다.”


황자가 로렌스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힐라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깜짝 놀라 시선을 내렸다.


“그대가 붉은 폭군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공화국의 수호자, 붉은 폭군 힐라 라고 합니다.”

“음, 소문대로 굳세고 강인해 보이는 여인이로군!”


황자는 그저 얼굴을 본 것으로 만족했는지 곧 자리를 떠났다.


테일즈가 자리에 남아 한숨을 내쉬었다.


“바람과 같은 분일세. 이해해주겠나.”

“그래도 신뢰받는 분이시군요.”

“알아봐 주는군.”


테일즈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황자에 대해 덧붙였다. 백성을 위하며 사랑받는 분이시지만, 너무 격이 없어 남을 당혹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휴식을 취하게. 공화국에도 전한 사항이니, 황제께 알현할 때까지 제집이라 생각하며 푹 쉬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무얼. 당연한 일인 것을.”


로렌스와 힐라가 고개를 숙였다.

테일즈가 떠나며 다른 의사들도 안정을 취하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오빠···.”

“괜찮아. 너도 쉬어야지.”


로렌스가 어서 방으로 돌아가 보라며 재촉했다.

분명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을 느끼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다.

그것을 애써 감추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기에, 힐라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


그렇게 아무도 남지 않게 된 병실.

로렌스는 밤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동시에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았다.


“난, 대체 뭐 했던 거지.”


마왕이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 그런데 이런 꼴이냐.

- 계속 지켜보았다. 과연 네가 얼마나 할지, 어떤 변화를 보일지.


그런데도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막을 수 있을까.”


아니, 막을 자격이 있을까.

그 긴 시간을 허비했으니. 차라리 그의 의도대로 굴러가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럼 적어도 억울한 사람이 없어질 테니까.


‘그럼 모두 행복하게···.’


로렌스가 고뇌에 빠져 있을 무렵.

드르륵, 문이 열리며 누군가 병실로 들어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기척 둘.

이 밤중에 찾아올 손님이 누가 있을까. 혹여 마왕이 보낸 암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완벽히 처리하기 위해 찾아왔을지도.


로렌스가 슬쩍 눈을 돌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암살자로 보이는 모습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국의 사람도 아니었다.


“저승사자가 아니라 아쉽게 되었군.”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백발의 여인.

말로 잘 표현이 되지 않는 신비한 분위기의 여성이다.

분명 눈앞에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듯한 신기루와 같은 여인.


두 번째로 들어온 것은 큰 덩치의 사내였다.

알파 선배보다도 큰 덩치.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 실력이 범상치 않음은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저 여인의 경호가 아닐까.


“누구십니까.”


분명 나이는 어려 보였지만,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에 로렌스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존대했다.


그녀는 어디선가 의자를 끌고 오더니, 자연스럽게 로렌스의 정면에 앉았다.


“임마누엘. 전지자. 미래를 보는 능력자. 좋을 대로 부르도록. 어차피 마지막이라 더 이상 나타날 일은 없을 테니까.”


마지막이라니 무슨 소리일까.

로렌스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그저 이야기 좀 들려주려는거지. 명색의 미래를 보는 능력자인데, 한 번쯤은 예언을 해줘야 하지 않겠나. 어차피 잠도 오지 않을 테지?”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면, 마왕과의 전쟁을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 이후. 좀 더 먼 미래.”


전쟁이야 당연히 일어날 일이고.

임마누엘은 마치 동화를 들려주는 어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사는 마왕과의 결전에서 망설이지. 단 한 순간. 역전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며, 마왕의 승리로 끝날 거야.”


확신에 찬 목소리. 그녀는 이대로 있으면 절대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며 장담했다.


“제가 죽는군요.”

“그래. 용사가 없는 세계에서, 마왕은 목줄 없는 개처럼 날뛰지. 그리고 그의 목적인 악인 말살은 오래지 않아 멈추게 돼.”


일말의 자비도 없는 학살.

악이었던 자들은 죽어 사라지고, 모두가 두려워 죄를 짓지 않는다.

곧 억울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때가 바로 마왕의 활동이 멈추는 때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세상이 될 거야. 아주 잠시 동안만 말이지.”


10년. 길어야 15년.

마왕에 의해 평화로운 세상은, 아주 사소한 일로 붕괴했다.


“억압된 폭력은 인류를 미숙하게 만들었지. 그야 어떤 가해도 용서되지 않았으니까. 결국 아주 재미없는 사회가 돼.”


그런 사람들은 약간의 일로도 짜증을 냈으며, 복수를 부르짖었다.


“곧 세계는 다시금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차게 되지. 이성이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고.”


그렇게 다시 피워진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이들을 불태울 때까지.


마왕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야기가 끝난 듯 임마누엘은 로렌스와 시선을 마주치고 말했다.


“그러니 용사여. 다가올 싸움에서 주저하지 말라. 그저 모든 걸 쏟아부어. 그래야 마지막 갈림길을 넘어설테니.”

“하지만 전···.”

“내 볼일은 여기까지. 그대의 고민은 알고 있다만, 내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임마누엘.

그녀는 정말로 더 볼 일이 없는 것인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병실을 떠나버렸다.


“임마누엘···.”


저 말들이 다 무슨 소리일까.

미래를 본다는 전지자의 설명은, 한낱 초인인 로렌스가 알아듣기에는 힘들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했다.


곧 다가올 싸움에서 로렌스 본인, 혹은 마왕 중 한쪽은 죽게 된다는 것.

그리고 로렌스가 포기하는 건, 결코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


“···.”


밤이 깊어지는 시간. 로렌스는 불편하고 찝찝한 휴식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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