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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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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09.13 03:11
최근연재일 :
2012.09.13 03:1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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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1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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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63화: 진실문답

DUMMY

대지의 신전 곳곳에는 대지여신 아반다나의 상징물이 세워져 있었다. 우거진 나무가 원 안에 있는 도형이라던지, 나무와 풍만한 여성이 결합된 모습등이 돌로 조각되어 있었다. 하지만 웅장한 신전의 규모와는 달리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신전 앞에는 갈색 로브를 입은 파수꾼만이 서 있던 것이었다. 파수꾼은 테르지오를 알아보았는지, 양 손을 모으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었다.


“오랜만입니다. 산토니오(Santonio)가 대지의 용사님을 뵙습니다. 여신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테르지오 또한 양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네더니 산토니오에게 물었다.


“사제님을 다시 뵌 것이 은혜입니다. 코멜료(Cormelio) 대사제님은 계십니까?”


산토니오는 사람좋아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랫만에 오셔서 잊으신 것 같군요. 지금은 오후집회 시간입니다. 물론 코멜료 대사제님께서는 집회를 인도하고 계시고요, 잠시 기도실에서 기도하시다가 집회가 끝나면 뵙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르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금 도착한 것도 늦은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없어 보이는군요.”


테르지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전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급하니 지금 들어가야겠습니다.”


산토니오는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끼고는 테르지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네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집회때에는 정숙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후집회라 성도들은 없지만 주요사제들 모두가 집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일행은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갈색의 테피스트리에는 아반다나의 성표가 그려져 있었으며, 바닥은 오렌지빛 돌을 거울처럼 깎아 깔아놓았다. 한편, 넓은 통로에는 남자의 설교소리가 메아리치며 울리고 있었다. 테르지오는 일행을 대예배당으로 데리고 갔다. 테르지오는 대예배당의 문을 붙잡더니 중얼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열기는 처음이구만.”


테르지오가 문의 손잡이를 밀자, 거대한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러자 대예배당에서 들려오던 설교소리는 멎었으며, 대예배당에 앉아있던 갈색로브의 사내들이 일제히 문을 바라보았다. 브런트는 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자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렇지 않은 것은 에톤라크 뿐이었다.


“뭘 보샴?”


곧바로 사방에서 웅성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웅성거림도 잠시, 대예배당의 홀 중앙에서 엄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회를 방해하는 불청객들이 들어온 줄 알았는데, 테르지오 자네였군. 자네가 데리고 온 분들은 다 누구신가?”


브런트는 대예배당의 구조가 층계형식으로 내려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예배당의 중앙은 가장 깊게 파여져 있었는데, 나무로 된 강대상 앞에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머리는 훤하게 벗겨져 있었고, 수염또한 깔끔하게 깎여져 있었으며 차가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테르지오는 이 노인을 향해 예를 갖추며 인사를 건네었다.


“코멜료 대사장님. 사도 테르지오가 그 협조자들과 함께 인사드립니다. 대지여신님의 은혜가 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코멜료는 주름으로 가득한 눈가를 잠시 움직여 브런트 일행을 훑어보았다. 움푹 패인 그의 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네에게도 여신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빌겠네. 그런데 자네가 이곳을 떠날 때, 집회때에는 결코 문을 열어선 안된다는 것을 교육받지 못했는가?”


코멜료의 말투는 그의 로브 위에 올려져있는 금빛 테피스트리처럼 고압적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신전과 형제들에게 큰 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테르지오의 말은 수 많은 사제들을 다시 웅성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코멜료는 좌중을 향하여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문제를 직시하기 전에 그것으로 인해 우왕좌왕한다면 어찌 여신님의 사제라 할 수 있겠소? 모두 조용하시오.”


코멜료의 말이 들리자 사제들은 자신의 입을 닫았다. 코멜료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테르지오에게 말했다.


“우리는 오후에 여신님께 예배를 드리기로 되어 있네. 신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 자네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게. 예배를 마치고 그대를 만나겠네.”


“오후예배는 여신님께서 반드시 요구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우리들이 결정한 것, 지금은 그것보다 더욱 중대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사악한 레드드래곤이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이 신전에 잠입해왔습니다.”


테르지오의 말은 파란을 몰고왔다. 다시 좌중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코멜료는 사제들이 동요하는 모습이 그리 좋지 않은 듯 하였다. 그는 주변의 사제들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자 갈색 로브를 입은 사제들이 테르지오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사도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나가시죠.”


테르지오는 자신을 붙잡은 사제들을 힘으로 뿌리치며 강단으로 걸어왔다.


“대사제님. 지금 사안이 시급합니다. 레드드래곤은 사서의 모습으로 변하여 이 곳에 숨어 있단 말입니다.”


코멜료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히 드리워졌다. 그는 가까스로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테르지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세상을 헤메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네. 사제들을 완력으로 뿌리치다니……. 그런데, 사서 시토레(Sittore)가 레드드래곤이란 말인가?”


테르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코멜료는 경전을 덮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휴……. 자네가 소년시절에…… 그러니까 여기서 수련을 쌓을 때, 자네의 숙제를 도와주던 그 시토레가 레드드래곤이란 말인가?”


테르지오는 대답대신 브런트를 바라보았다. 브런트는 테르지오의 의중을 깨닫고는 코멜료에게 말하였다.


“저는 레드드래곤 기가비어턴에게 속아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당시의 그는 뚱보 드워프로 변신한 상태였습니다. 겁쟁이 뚱보 드워프요…….”


“아니 지금 저게 무슨 소리야!?”


사제들 가운데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드워프사제가 브런트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발끈한 모양이었다.


“그말 취소 못하겠소!?”


드워프 사제는 브런트가 자기 동족을 모욕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주변의 사제들이 황급히 그를 만류하였다. 브런트는 말을 이어갔다.


“드워프들이 뚱보에 겁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레드드래곤 기가비어턴은 마치 다른 인격의 존재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포악한 성질을 가진 그가, 겁많은 뚱뚱보 드워프 사제의 흉내를…….”


아까의 드워프사제는 더욱 광분하는 듯 하였다. 공교롭게도 기가비어턴이 모습을 바꾸었던 모습이 바로 드워프 사제였던 것이었다. 코멜료는 브런트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대는…… 레드드래곤이 아반다나님을 모시는 뚱보 드워프의 모습으로 변했단 말이오?”


“아닙니다. 레드드래곤이 변했던 사제는 판페론이라는 신을 믿었다고 말했지요.”


브런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 많은 사제들이 더욱 시끄럽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브런트는 사제들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테르지오에게 물었다.


“제 말이 이상합니까? 왜 저들이 놀라고 있죠?”


놀랍게도 테르지오 또한 브런트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판페론…… 그런 신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판페로이트(Fanferoit)라는 프란치아의 사투리는 알고 있지. ‘엉터리’라는 뜻이라네.”


그제서야 브런트는 밀리비어턴이 처음부터 인간들을 가지고 놀았음을 깨달았다. 밀리비어턴으로 변한 기가비어턴은 처음부터 자신의 신이 ‘엉터리’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브런트는 모골이 송연해져옴을 느꼈다. 어디선가…… 사악한 지혜를 가진 드래곤이 인간들을 비웃고있을것이 분명했다. 브런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테르지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히려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됩니다. 사서로 모습을 바꾼 드래곤은 도서관에 있고, 우리는 그를 잡을 작전을 세울 수 있습니다.”


코멜료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돼네. 우리의 오랜 친구인 시토레가 드래곤이란 말인가? 증거는 있는가?”


“물론입니다. 그의 행동이 최근 이상해지지 않았습니까? 그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돌이켜보신다면 그가 진짜 시토레가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코멜료는 체구가 큰 사제를 불렀다. 이 사제는 애꾸눈이었으며, 로브 아래에서는 사슬갑옷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테르지오를 보자마자 인사를 건넸다.


“사도님. 탈타로스(Taltaros)가 인사드립니다.”


테르지오 또한 탈타로스를 알고있는지, 인사를 받았다.


“호법사제(護法司祭)로군. 오랜만이네. 무예연습은 잘 되가는가?”


탈타로스는 머리를 수그리며 대답했다.


“사도님만 하겠습니까?”


코멜료가 호법사제 탈타로스에게 물었다.


“자네또한 테르지오군과 함께 어린시절부터 이곳에서 수행을 해왔었지. 자네가 보기에 어떤가? 최근 시토레의 행동에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는가?”


탈타로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전과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저번에는 제 동생의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책까지 챙겨 주었습니다.”


테르지오가 다시 물었다.


“잘 생각해보게. 뭔가 특이한 차이점이 있었을텐데?”


탈타로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코멜료는 그의 차가운 얼굴표정을 더욱 굳히며 테르지오에게 말하였다.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이래도 할 말이 있나?”


“대사제님. 시토레에게 마법해제주문(Dispel Magic)을 사용하십시오. 그리하면 그가 본래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콰앙!


갑자기 코멜료가 강대상을 내리치자 모두가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코멜료는 소리쳤다.


“자네! 대체 왜이러나!? 성스러운 예식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의 오랜 친구를 드래곤으로 몰아 그에게 마법까지 사용하라니! 자네의 이 말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몰라서 그러는건가!? 자네는 우리 형제를 의심하고 있어!”


어린시절부터 코멜료에게 양육을 받아온 테르지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간곡히 코멜료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가 드래곤일 경우 우리에게 얼마나 큰 피해가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됐네! 이야기는 끝일세! 내가 예배를 방해한 자네에게 처벌을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그리고…… 나에겐 신실한 우리의 친구에게 마법을 사용할 이유 따윈 없네! 어서 돌아가게!”


테르지오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드리워졌다. 그때, 노움 유격대원인 에톤라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샴. 당신은 우리를 도와야 하샴.”


코멜료의 눈이 커졌다.


“이…… 이건 웬 놈(Gnome)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숲을 지켜주시는 사이반님의 유격대원인 에톤라크라고 할 수 있샴. 어쨌든 그대는 시토레란 자에게 마법해제주문을 써야 할 의무가 있샴.”


코멜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테르지오…… 아무래도 자네는 참회의 방에 들어가 며칠간 근신해야 하겠구만. 나에게 괴상한 자들을 데려와 성스러운 예배를 망치다니.”


에톤라크는 코멜료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근신해야 할 사람은 대사제이샴. 이교도로서 이곳 일에는 참견하지 않으려 했지만 참견을 좀 해야 겠샴. 코멜료 당신은 나의 도움을 받고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내게 말했었샴. 그리고 오늘, 나에게 보답할 때가 온거샴. 그런데 내가 바라는 것은 시토레에게 마법해제주문을 쓰는 것이샴. 그러니 대사제는 내 말을 따라야 하샴.”


“닥치시오! 그대는 대체 누구길래 내가 그대에게 빚이 있다고 하는 것이오. 게다가 왜 자꾸만 ‘샴’ ‘샴’거리는 것이오!?”


브런트는 에톤라크를 말리기 위하여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에톤라크는 어깨를 살짝 비틀어 브런트의 손길을 너무도 쉽게 벗어났다.


“내가 말 끝에 샴을 붙이는 것은 전사로서 당연한 의무이샴.”


“뭣이? 대체 어떤 전사가 그런 의무를…….”


“됐샴. 그런 사소한 내용으로 말꼬리 돌리지 마샴. 중요한 것은 그대ㄱ=가 화장실에서 어쩔 줄 몰라할 때, 내가 담쟁이 잎을 따서 위기에 빠진 그대에게…….”


“잠까아아아아아안!!”


코멜료의 얼굴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에톤라크에게 말하였다.


“아! 그, 그대였소? 그때 내가 한 말은 어쩔 수 없이 한 말이니 효력이…….”


“나는 사이반님을 믿는 이교도지만 아반다나의 교리는 어느정도 알고 있샴. 아반다나의 가르침중에 ‘먼지처럼 가벼운 말이라도 산처럼 무겁게’ 지키라는거 있지 않샴? 그만큼 아반다나의 제자들은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알고 있샴. 그런데, 그대는 다리가 저려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했던 말을 잊어버린거샴? 난 그대가 썼던 담쟁이 잎까지 치워줬…….”


“그마아아아안!!!”


코멜료의 외침에 에톤라크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동안의 정적이 끝나자마자 사제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코멜료는 여전히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며 말을 하였다.


“어흠! 어흠! 형제들이여! 생각해보니, 우리 교단에 위협이 있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시토레를 불러 그가 과연 드래곤인지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코멜료는 수 많은 사제들의 궁금증을 묵살한 채, 사서인 시토레를 불렀다. 테르지오는 에톤라크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도와줘서 고맙네.”


“고마워할 거 없샴. 나에겐 그대의 일이 더 소중하샴.”


에톤라크의 대답에 테르지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예배당의 한쪽 문이 열리며 등이 굽은 대머리 노인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노인을 본 테르지오의 몸이 떨리는 것이 아닌가? 브런트가 테르지오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테르지오는 떨리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이럴수가?”


테르지오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시토레의 굽어있는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시토레의 고질병이자 그의 오랜 습관이었던 것이다.


‘설마…… 드래곤이 아니란 말인가?’


시토레는 천천히 걸어오다가, 테르지오를 발견하더니 얼굴에 화색을 돋우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테르지오니? 언제 돌아왔느냐? 왔으면 이 늙은이에게 인사를 먼저 했으면 좋았을 것을…….”


시토레는 너무도 기뻐한 나머지, 눈가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시토레는 거듭 입을 열었다.


“자네가 성스러운 고행을 위해 이곳을 떠날때가 생각난단다. 그때는 비가 몹시 내리고 있었지, 하지만 자네가 돌아온 지금은 하늘이 맑구나. 마치, 멋모르던 풋내기가 이렇게 의젓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야.”


테르지오는 할 말을 잃은 듯 하였다. 테르지오는 혹여, 자신이 생사람을 잡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신을 갖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시토레에게 물었다.


“정말…… 시토레님이 맞으신가요?”


시토레는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럼 내가 죽을줄 알았더냐? 하긴, 자네가 나의 장수를 위해 만들어준 부적은 이렇게 잘 가지고 있단다.”


시토레는 로브속에서 나무로 조각된 작은 부적을 꺼내어보였다. 그것은 테르지오가 어린시절 시토레에게 만들어준 것으로, 조악한 모습이었지만 나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네가 만들어준 대추나무 부적이란다. 네가 그랬었지? 대추나무는 열매를 맺기 전까지 꽃이지지 않는다고……. 그것처럼 뜻을 이루기 전까지 죽지 말라고 내게 말했었어. 그 말이 계속 가슴에 걸려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지.”


테르지오는 시토레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감지하였다. 하지만 시토레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때 코멜료의 말이 들려왔다.


“시토레. 미안하지만 자네에게 마법해제주문을 써야하겠네.”


시토레는 잠시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코멜료에게 물었다.


“마법해제주문이요? 제게 저주가 걸려있는 것입니까? 왜 그걸 제게 사용하려 하십니까?”


“한 남자가 자네에게 그걸 쓰기를 바라고 있어.”


“그, 그게 누굽니까?”


“테르지오군이네.”


테르지오와 시토레는 동시에 움찔하였다. 시토레는 테르지오를 바라보며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테, 테르지오군이…… 왜 그걸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잘 알겠습니다.”


코멜료는 자신의 목걸이를 집어들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그의 목걸이는 아반다나의 성표로도 사용될수 있는 물건이었다. 코멜료는 대지여신 아반다나에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기도가 끝나자 화사한 기운이 대지로부터 올라오더니 엄청난 기세로 시토레에게 쏘아져들어갔다. 신성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마법해제주문이 시토레에게 작렬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토레의 몸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코멜료는 테르지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가? 이제 되었는가?”


테르지오는 말이 없었다. 코멜료는 에톤라크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테르지오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성스러운 예배를 망쳤으나 이번만은 용서하도록 하겠네. 하지만,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다면 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네.”


코멜료는 시토레에게 돌아가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시토레가 인사를 건네고 다시 되돌아가는 사이, 브런트는 동료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테르지오는 생사람을 잡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것 같았으며, 마법사인 후르시아 또한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브런트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왜 반지는 기가비어턴으로 저 노인을 지목한 것일까?’


브런트는 이곳에서 다시 한번 반지를 사용하려 하였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저 노인이 진짜 기가비어턴이라면, 브런트가 반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선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브런트는 시토레가 점점 예배당 문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노인은 기가비어턴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그는 대체 어디에 있지?’


그때, 브런트는 골드드래곤 로메리온이 자신의 반지에 지혜의 마법을 걸어주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브런트는 몰래 마법의 시동어를 외웠다. 그러자 반지에 갇혀있던 마법이 해방되며 브런트의 몸 속에 스며들었다. 순간, 브런트는 자신의 머리가 시원하게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여태껏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코멜료대사제님! 시토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브런트의 말에, 좌중은 모두 브런트를 쳐다보았다. 코멜료가 물었다.


“뭘 부탁하고 싶은 것이오? 예배가 다시 속행될 터이니 그것이 끝난 다음에 물어보시오.”


“안됩니다. 지금 물어야 하겠습니다. 그가 드래곤이라는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제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테르지오가 브런트를 붙잡으며 다급히 귓속말을 했다.


“왜 그러는가? 저 분은 이곳의 사서인 시토레님이 맞다네.”


브런트는 테르지오의 귀에 속삭였다.


“드래곤의 기억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몇십년전의 사소한 일도 기억할 수 있죠. 그가 시토레의 흉내를 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마법해제주문에도 반응이 없었어. 그리고,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네.”


“마법해제주문으로부터 보호하는 마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탐지당하지 않는 마법또한 있을 것입니다. 고대의 지식을 가진 드래곤이니 그런 기술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테르지오의 두 눈이 커졌다. 브런트의 말을 듣고 그도 자신의 마음에 짚히는 것이 있었던 것이었다.


“자네말도 일리가 있군. 그런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두고 보십시오.”


코멜료는 사제들을 진정시키느라 다시 진땀을 빼야 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극히 예민해져 있는 것 같았다.


“테르지오군! 자네의 동료가 다시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네! 대체 어디까지 내가 참아야 하겠는가!?”


“대사제님. 그에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화가난 코멜료는 이를 갈며 대답했다.


“흥! 맘대로 하게! 모두 다 맘대로 해버리라고! 단, 이번에도 그의 결백이 증명된다면 자네는 큰 처벌을 받게 될 걸세! 참회의 방에서 계속 수감될 것이야! 그래도 괜찮은가!?”


테르지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는 브런트의 눈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브런트의 눈빛은 예전과 달라보였다. 칼처럼 날카로운 지혜의 기운이 솟아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테르지오는 마음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후르시아가 화들짝 놀라 앞으로 나섰다.


“잠깐만요! 일단 여기선 물러나요. 괜히 그대까지 이럴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코멜료의 화는 머리 끝까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는 예배당을 나가려던 시토레를 다시 불렀다. 시토레는 다시 돌아와 코멜료에게 물었다.


“또 이 불쌍한 늙은이에게 확인하실 것이 있는지요? 오늘은 빨리 돌아가 기도를 좀 하고 싶습니다. 오늘따라 우울하군요.”


“그대의 마음은 잘 이해하겠네. 하지만 이것만 하고 자네의 결백을 밝히게. 여기 이 분이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는군.”


브런트가 시토레에게 말하였다.


“여러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내가 하는 세 마디만 따라하면 됩니다.”


시토레는 눈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당신은 이 늙은이를 모욕하는 말을 따라하라고 할 계획이로군요. 물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반다나여신님의 가르침과 정의에 어긋나는 말은 따라하지 않겠습니다.”


브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코 당신을 모욕하는 말을 시키진 않을 것입니다. 그럼 첫 번째 말을 따라해 보십시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절대로 진실이다.’”


시토레는 순순히 브런트의 말을 따라 하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절대로 진실이다.”


“이번엔 두 번째 말입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됐습니까? 이제 마지막 말이 남았습니다.”


좌중은 쥐죽은 듯이 브런트와 시토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브런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네. 이제 마지막입니다. 잘 따라하십시오. ‘레드드래곤 기가비어턴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멍청이이며, 그의 계획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시토레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브런트가 재촉하였다.


“세번째 말을 따라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서 하십시오. 이것을 하신다면 당신이 정말로 드래곤이 아니라고 믿겠습니다.”


“왜, 왜 이런 말을 따라하도록 시키시는 겁니까?”


브런트는 시토레에게 다시 물었다.


“왜 안됩니까? 제가 시키는 말 중에 정의에 어긋나거나 아반다나의 가르침에 벗어나는 것이 있습니까? 레드드래곤 기가비어턴은 무수한 악행을 저질렀기에 그를 규탄하는 것일 뿐입니다.”


시토레의 몸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극도로 당황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보다못한 코멜료가 시토레를 재촉했다.


“자네…… 왜 이러는가? 어서 마지막 말을 따라하고 이 일을 마무리 짓게나.”


-계속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레그다르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요새 바쁘네요.

소서리스에서는 브런트가 안나오는데, 아발리스트에서 브런트가 죽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 저는 언제나 해피엔딩을 추구한답니다.

그럼 다음편에 뵈어요~ 모두 건강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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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리스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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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에필로그(Epilogue) +87 12.09.13 4,576 92 14쪽
87 -87화: 붕괴되는 신전 +11 12.09.13 3,397 50 22쪽
86 -86화: 용사의 귀환 +11 12.09.13 3,190 53 25쪽
85 -85화: 발리스타(Ballista) +25 12.09.10 3,663 62 19쪽
84 -84화: 마차 속의 소녀 +21 12.09.06 3,478 64 17쪽
83 -83화: 용사, 일어나다. +30 12.08.31 3,546 68 16쪽
82 -82화: 속죄의 방 +24 12.08.28 3,605 67 17쪽
81 -81화: 달빛에 비친 그녀 +28 12.08.26 3,637 59 18쪽
80 -80화: 국화와 물매화 +16 12.08.22 3,415 62 17쪽
79 -79화: 내가 조준당하고 있다 +19 12.08.20 3,489 60 16쪽
78 -78화: 불타는 노웃그래스(Knotegrass) +22 12.08.17 3,541 58 16쪽
77 -77화: 시간싸움 +14 12.08.15 3,627 65 19쪽
76 -76화: 성녀의 정체 +17 12.08.13 3,605 67 17쪽
75 -75화: 리터너(Returner) +29 12.08.11 3,748 59 20쪽
74 -74화: 예언의 석판 +27 12.08.09 3,829 65 17쪽
73 -73화: 바라탄으로 +19 12.08.06 3,826 64 15쪽
72 -72화: 전설의 무기 +20 12.08.04 4,259 73 21쪽
71 -71화: 역설(逆說)의 갑옷 +16 12.08.03 3,964 64 20쪽
70 -70화: 남은건 너 하나 뿐이다. +21 12.07.31 3,827 60 29쪽
69 -69화: 문을 열어주세요. +16 12.07.29 3,939 64 20쪽
68 -68화: 흡혈귀(Vampires) +19 12.07.27 4,086 69 20쪽
67 -67화: 도시의 비밀 +17 12.07.25 3,878 67 15쪽
66 -66화: 샤인스트림(Shinestream) +17 12.07.23 4,144 69 20쪽
65 -65화: 천공(天空)의 기사 +31 12.07.21 4,747 71 22쪽
64 -64화: 플라투스의 성녀(聖女) +52 12.04.22 6,086 96 18쪽
» -63화: 진실문답 +46 12.04.18 5,898 101 23쪽
62 -62화: 대지의 신전 +30 12.04.12 6,350 98 25쪽
61 -61화: 바텐호스(Bartenhose) +34 12.04.02 6,793 108 21쪽
60 -60화: 가장 맞추기 힘든 표적 +31 12.03.28 6,675 104 23쪽
59 -59화: 사막의 폭풍우 +25 12.03.25 7,128 108 23쪽
58 -58화: 세레네의 성직자 +33 12.03.21 7,484 113 25쪽
57 -57화: 황제의 침공 +28 12.03.19 8,801 109 26쪽
56 -56화: 골드 드래곤의 거처 +35 12.03.15 9,067 129 26쪽
55 -55화: 의식을 막아라 +47 12.03.12 8,891 132 30쪽
54 -54화: 반지의 정체 +42 12.03.09 9,439 119 23쪽
53 -53화: 엘프들의 산 +58 12.03.06 9,885 128 24쪽
52 -52화: 텐 세컨즈(Ten Seconds) +52 12.03.03 9,768 146 23쪽
51 -51화: 사랑, 가시 그리고 갑옷(Love, Thorn, Mail) +35 12.02.29 9,842 110 24쪽
50 -50화: 우연한 재회 +46 12.02.26 10,218 117 22쪽
49 -49화: 밴시(Banshee) +33 12.02.23 10,746 125 23쪽
48 -48화: 버려진 자 +44 12.02.21 10,652 120 28쪽
47 -47화: 아발레스트(Arbalest) +39 12.02.18 10,870 121 21쪽
46 -46화: 무기를 손에 넣다 +32 12.02.15 10,510 109 21쪽
45 -45화: 마검(魔劍) 이퀄리브리온(Equalibrion) +20 12.02.13 10,595 99 23쪽
44 -44화: 구덩이 +29 12.02.10 9,996 108 20쪽
43 -43화: 황제의 무덤 입구 +25 12.02.07 10,348 105 21쪽
42 -42화: 문 미러(Moon Mirror) +26 12.02.04 10,154 102 16쪽
41 -41화: 스와이번 일행 +22 12.01.31 10,046 106 14쪽
40 -40화: 제분소를 나서다 +30 12.01.29 10,329 100 14쪽
39 -39화: 에뎁세스의 반지 +27 12.01.26 10,662 10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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