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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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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09.13 03:11
최근연재일 :
2012.09.13 03:1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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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0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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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52화: 텐 세컨즈(Ten Seconds)

DUMMY

× × × × ×


한편, 밴시를 물리친 브런트와 테르지오는 룬바스크마을로 내려와 마을주민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마을의 촌장은 감사의 표시로 황금을 건네려 하였으나 브런트와 테르지오는 그것을 거절하였다. 대신 아침식사만 촌장에게 대접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떠날 때 즈음, 마을사람들은 각기 식량들을 들고나와 브런트와 테르지오의 배낭에 가득채워주었다.


마을에 평화를 돌려준 브런트는 테르지오와 함께 마을을 나섰다. 마을을 나서면서 브런트는 테르지오에게 물었다.


“이젠 어디로 갈 예정이신지요?”


테르지오가 대답했다.


“일단 노웃그래스로 가세. 오랜만에 카노트도 잘 있나 보고, 그리고…… 자네도 여자친구를 만나서 먼 여행을 떠난다고 통보해줘야 하지 않겠나?”


테르지오는 더 이상 에트린에 관해 껄끄러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브런트가 오히려 무엇인가 껄끄러워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노웃그래스로 꼭 가야 합니까? 사실은 베르니타 몰래 여행을 나온 거거든요. 베르니타는 나를 만나면 다시는 여행을 못가게 붙들려 할 겁니다.”


테르지오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걱정말게! 그건 내가 잘 설명할테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네가 가지고 있는 반지의 사용법에 대해 잘 알고있는 마법사가 제스파니아에 있기 때문에 노웃그래스로 가야 하네. 제스파니아는 육로로 가도 되지만, 험한 산을 넘어야 하니 노웃그래스에서 배를 타고 가는게 빠르거든.”


결국 브런트는 테르지오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틀을 더 여행하여 항구도시인 노웃그래스에 도착하게 되었다. 정오의 노웃그래스는 여전히 바빠보였다. 화물을 싣기위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일꾼들과 가득 짐을 실은 수레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테르지오는 브런트에게 물었다.


“자네는 카노트의 조수로 생활했다고 했었지? 그 제분소는 어디 쯤인가?”


“저를 따라오세요.”


제분소는 노웃그래스의 수산물시장 너머에 있었다. 항구도시인 노웃그래스에는 수산물 또한 많았는데, 그로 인해 수산물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바닥에는 고기쪼가리들이 부패되어 내뿜는 썩은내가 진동하였으며, 생선을 건조하느라 걸어놓은 줄에는 벌레들이 날아다녔다. 생선냄새와 발효되는 고기냄새들은 테르지오를 불쾌하게 만들었으나, 그 무엇보다도 테르지오를 힘들게 했던 것은 수 많은 인파들이었다. 전국에서 생선을 싸게 사기 위해 몰렬온 상인들은 각자 힘차게 경매가를 부르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에는 생선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기술이 없었다. 때문에 생선은 최대한 빨리 구입해서 이동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선을 구하려는 인파들의 경쟁은 무척이나 치열했다. 각종 냄새와 인파들로 인해 얼굴을 찌푸리던 테르지오는 결국 그 특유의 깡통형 투구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이럴 때 일수록 내 고향 프란치아가 생각난다네. 그곳 주민들은 음식을 향기롭게 조리할 줄 알지……. 그런데, 제분소는 아직 멀었나?”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여긴 번잡하니 절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하지만 브런트와 테르지오 사이에는 결국 인파가 들이치게 되었다. 테르지오는 브런트의 키가 큰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파들 사이에 불쑥 솟은 그의 머리를 보며 그를 따라갈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브런트는 테르지오가 자신을 잘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인파를 헤치며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의 한쪽 팔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베르니타인가?’


브런트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하지만 후드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자신의 오른팔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또 다른 남자가 브런트의 왼쪽 팔마저 끌어안았다.


‘이, 이놈들 뭐야!?’


브런트가 당황하는 사이, 브런트 앞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품안에서 검을 빼내는 것이 보였다. 그 검은 사슬갑옷을 뚫기 위해 만들어진 송곳 칼(Estoc)이었다. 송곳칼은 끝이 굉장히 좁고 뒤가 묵직한 검이었는데, 이 남자가 꺼내들은 송곳칼은 품안에 넣을 정도로 짧은 검이었다. 하지만 이것에 급소를 찔리면 치명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객이로구나!!’


송곳칼을 든 남자는 그것을 양손으로 잡고는 옆구리에 끼운 뒤 브런트에게 달려들었다. 브런트는 양 팔을 풀려 했지만 인파가 워낙 많아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브런트는 소리쳤다.


“매커드경!!”


한편, 브런트에게 달려들던 자객은 브런트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브런트는 양 팔을 움직이기 힘들어했으나 그의 힘이 원래 무지막지했기에 그는 가까스로 몸을 틀 수가 있었다. 하지만 브런트가 빠져나오기 전에 자객의 송곳칼이 브런트에게 박혔다.


“으아아아아아악!”


수 많은 남자들의 비명이 동시에 울려퍼졌다. 물론 그중에는 브런트의 비명도 섞여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루루 브런트의 주변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투성이가 된 남자들 사이에 두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서 있던 한사람은 브런트에게 송곳칼을 찌른 자객이었고 쓰러진 사람들은 방금 브런트의 양 팔을 붙들던 남자들과 지나가던 행인들이었다. 그들의 전신에는 피가 가득했으며, 그 핏자국은 몸 전체에 있었다. 사람들은 기겁하여 소리쳤다.


“싸움이다!”


“저…… 갑옷 좀 봐!”


사람들은 브런트의 갑옷에 가시들이 튀어나온 것을 보고 기겁하였다. 브런트의 마법갑옷 러브쏜메일은 송곳칼이 들어오자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내뻗은 것이었다. 때문에 브런트와 가장 가까이 붙어있던 자객들은 가시들에 찔려 죽고 말았으며, 지나가던 행인들은 큰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한편, 브런트를 찔렀던 자객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브런트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트는 바람에 심장에 칼을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송곳칼은 브런트의 복부에 박히게 되었다. 브런트는 배를 움켜쥐며 무릎을 꿇었다. 브런트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웬…… 웬놈들이냐?”


“으랴아아아아아!!”


갑자기 인파들 사이에서, 철퇴를 치켜든 남자가 뛰쳐나오더니 브런트를 향해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이 남자도 자객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브런트는 급한대로 아발레스트를 치켜올려 철퇴를 막아냈다.


-콰지지직!


아발레스트는 굉장한 양품이었지만, 묵직한 철퇴에 부서지고 말았다. 철퇴를 든 남자는 브런트의 아발레스트가 부서지자 다시금 철퇴를 치켜올렸다. 순간 그의 정강이에 도끼가 박혔다. 브런트가 허리에서 손도끼를 꺼내 철퇴를 든 남자의 정강이에 박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한편 철퇴를 든 남자는 갑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정강이가 접혀버리고 말았으며, 그는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송곳칼을 든 사내는 브런트 몸에 돋아난 가시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다시 송곳칼을 치켜올렸다. 이번에 그가 노리는 곳은 브런트의 목이었다.


“죽어라! 브런트!!”


순간 브런트는 이 남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브런트는 배를 움켜쥔 채로 도끼를 집어들고는 몸을 일으켰다. 한편, 송곳칼을 치켜든 남자는 브런트에게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얼굴에서 피와 침이 튀어나왔다. 테르지오의 쇠장갑이 송곳칼을 든 남자의 얼굴에 적중한 것이다. 남자의 이는 모조리 부서져 나갔으며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공중으로 쳐올라간 송곳칼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며 남자의 목에 박혀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으며, 남자의 피는 바닥에 깔린 생선의 피와 섞이기 시작했다. 테르지오는 이 사내가 죽었어도 당황치 아니하고 정강이가 접힌 사내에게 다가갔다. 정강이가 접힌 남자는 여전히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테르지오가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그때, 테르지오는 브런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기가비어턴…….”


브런트는 스와이번일행과 처음 만났을 때, 마을어귀에서 아이리엘과 활솜씨를 대결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아이리엘에게 베르니타의 이름을 이야기했던 것까지 기억해낸 것이었다. 밀리비어턴으로 변장했던 기가비어턴은 베르니타의 이름을 들었을 것이 분명했던 것이었다. 브런트는 부들거리는 입술로 다시 입을 열었다.


“베르니타…… 베르니타가 위험해요!”


브런트는 제분소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피가 흐르는 남자가 도끼를 들고 뛰어오자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물러났다. 테르지오는 브런트의 뒤를 따라 달리며 말하였다.


“잠깐! 좀 이해가 안되는게 있는데…….”


하지만 브런트는 여전히 내달릴 뿐이었다. 테르지오는 계속된 금식기도로 인해 체력이 떨어져 있었을뿐더러,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은 브런트의 갑옷보다 훨씬 무거웠기 때문에 테르지오는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브런트를 쫓아 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브런트는 시장으로부터 다소 떨어진 제분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달리던 브런트는 인부들 사이에서 뭔가를 적고 있는 베르니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베르니타!”


한편, 베르니타는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산들바람과 함께 그녀의 금발이 고운 볼에 붙었다. 그녀는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브런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브런트는 자신이 고대의 투구를 쓰고 있음을 깨닫고는 투구를 벗었다. 황금색의 투구가 벗어지자 고동색 머리칼을 가진 브런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제서야 베르니타는 필기구를 내던지고는 브런트에게 달려오기 시작하였다.


“브런트!”


베르니타와 브런트는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브런트는 베르니타와 감격의 포옹을 하


-따악!


베르니타가 브런트의 정강이를 발로 찬 것이다. 브런트는 가죽장화를 신었기 때문에 그녀의 공격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브런트는 정강이를 붙잡고 콩콩 뛰었다.


“아악! 왜 그래!?”


브런트는 당황한 표정으로 베르니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혀있는 것이 아닌가?


“브런트! 이 멍청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베르니타는 브런트에게 달려들며 마구 때렸다. 그리고 뒤이어 따라온 테르지오는 투구를 벗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역시 북방의 아가씨들은 활기찬 면이 있구만.”


하지만 브런트는 죽을 맛이었다. 배에 상처를 입은 상태인데도 그녀가 계속 때렸기 때문이었다.


“왜 네가 한마디도 상의없이 멋대로 여행을 떠난거야아!”


결국 베르니타는 울음을 터트리며 브런트의 품에 안겼다. 베르니타에게 한참 얻어맞은 브런트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후 짧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될까봐 그랬지…….”


한편, 테르지오는 저편에서 카노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 매커드경! 오셨습니까요!?”


테르지오는 제분소 마당에서 달려오고 있는 카노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먼 발치에 서 있는 에트린 또한 발견하게 되었다. 에트린은 테르지오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오…… 용감한 기사님! 돌아오셨군요!”


라고 말하며 스커트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테르지오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에트린을 맞이하였다.


“더욱 더 아름다워지셨군요. 레이디.”


에트린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잠시후 그녀는 뭔가가 생각난 듯, 테르지오에게 황갑히 물었다.


“아! 저번에 헤어질 때……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테르지오는 예전, 배 위에서 에트린에게 사랑고백을 하려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테르지오는 잠시 말이 없다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레이디를 모신 것은 영광이었노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더 말하려 했을 때에 바깥분이 오셨었죠.”


테르지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그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덧붙이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것을 대답 하면 오히려 에트린의 결혼생활에 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한편, 에트린은 테르지오의 말에 감격하면서 매우 기뻐하였다.


“용감한 기사님께 제가 진 빚이 많습니다. 오늘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은데 거절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귀부인의 부탁을 거절할 만큼 용감한 기사는 프란치아에 없습니다. 기꺼이 참석하죠.”


황홀해하는 에트린의 뒤에, 헤바가 서 있었다. 테르지오는 헤바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아…… 헤바. 더욱 건강해보이는 구나…… 특히 혈색이 좋아졌는걸? 잘 지내고 있지?”


붉은 머리칼의 헤바는 얼굴도 붉어져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페이건의 성에서 자신을 구해낸 테르지오에게 더듬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네, 네……. 마님께서 잘해주셔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테르지오는 헤바의 얼굴이 원래 하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헤바가 이곳에서 잘 지냈기 때문에 얼굴에 붉은 혈색이 드러났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꺄악! 브런트!”


베르니타의 비명이 들려왔다. 브런트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었다. 브런트의 배에선 피가 흥건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송곳칼에 당했던 상처에서 출혈이 계속되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테르지오 또한 브런트가 복부에 상처를 입은 사실을 몰랐었는데, 지금까지 브런트의 뒤에서만 쫓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브런트에게 다가가서 그 상처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테르지오는 여신의 신성력을 이용하여 안수치료를 한 것이었다. 안수치료의 효과는 극히 빨라서, 브런트의 출혈은 이내 멎게 되었으며 그는 고통마저 잊게 되었다. 그래도 테르지오는 그가 걱정되었는지 그에게 주의사항을 말하였다.


“괜찮은가? 여신님의 권능으로 인해 내장의 상처는 더 커지진 않을걸세. 하지만 몸이 완전히 회복될려면 며칠 쉬어야 할게야.”


브런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한편, 베르니타는 브런트에게 물었다.


“브런트…… 그런데 이 상처는 어떻게 된거야?”


하지만 브런트는 오히려 베르니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응…… 혹시 최근에 이상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베르니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최근에 한사람도 본 적이 없는데?”


카노트가 말했다.


“최근에 본 이상한 사람이라면 브런트군이지. 갑자기 배에 피를 흘리며 여기 왔으니까 말야.”


브런트는 카노트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베르니타에게 물었다.


“혹시…… 밀리비어턴이라는 드워프 본 적 있어?”


“아니. 드워프와 무슨 원수 졌어?”


그때 테르지오가 브런트에게 말을 하였다.


“브런트…… 내 생각엔 기가비어턴이 보낸 자객이 아닐 것 같네. 자네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기가비어턴은 자네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어. 그렇다면 괜히 베르니타양을 잡아 인질로 삼거나 할 이유가 없잖은가?”


‘인질’이라는 말에 베르니타가 기겁하며 입을 열었다.


“브, 브런트! 혹시 여행하면서 사고쳤니?”


브런트는 테르지오의 말을 듣고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테르지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대체 누구일까요?”


테르지오가 대답하였다.


“내 생각에 자객을 보낸 사람은 아마 카일런일 거야.”


그때 한 사내의 목소리가 먼발치에서 들려왔다.


“역시! 남방사람들은 머리가 좋군! 프란치아 녀석이 뭔가를 제대로 알고 있으니 말야!”


그리고 에트린은 소리의 근원지를 보며 경악했다.


“당, 당신은 카일런!?”


그렇다. 먼 발치에서 귀족의 복장을 입고 서 있는 사내는 카일런이었던 것이었다. 그의 타이즈는 각각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염색되어 있었으며 상체의 옷에는 파란 바탕에 하얀 십자무늬가 있었다. 이것은 윈드손가문의 문장이었다. 카일런은 에트린에게 손가락을 겨누며 소리쳤다.


“에트린! 넌 나의 사업에 타격을 입혔지! 브라이튼에서는 여왕님의 눈 때문에 가만히 있었지만 여기선 다르다! 그리고 너!”


카일런의 손가락은 브런트에게 향해있었다.


“네놈은 나의 형님을 죽였어! 그걸 잊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나의 항문…… 아니 나의 몸에 극심한 상처를 주었다! 그 결과, 나는 의자에 조심스레 앉을 때마다 네놈을 떠올리며 이 치욕을 갚을 날을 기다렸지! 그리고 오늘이 온 것이다!”


그리고 카일런의 손짓과 함께 수 많은 사내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무장은 가벼웠는데, 그냥 평민 복장 위에 천갑옷을 입은 형태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등 뒤에서 장궁(Longbow)이 꺼내지자 브런트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카일런의 말은 계속되었다.


“예전엔 장궁수를 데리고 오지 않는 실수를 했지만 오늘은 아니다!”


테르지오는 허리춤에서 하얀 뭉치를 꺼내더니 카일런에게 물었다.


“자네, 이게 뭔지 아나?”


“뭐야!? 그걸 내가 알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


“모르니 다행이군.”


테르지오는 하얀 뭉치를 앞으로 던졌다. 그러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사방에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테르지오는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모두 서쪽으로 가시오! 일단 장궁수들에게서 달아나야 하오!”


카일런은 웃었다.


“우하하! 멍청아! 나의 숙련된 장궁수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장궁수! 사격하라!”


카일런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궁수들의 화살이 비처럼 날아갔다. 장궁은 십자궁처럼 장전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았으므로, 장궁수들이 쏘는 화살의 속도는 실로 엄청났다. 화살은 연기속을 뚫고 세차게 꽂혀 들어갔다. 잠시 후, 안개가 걷히자 카일런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전쟁신 자일님을 찬양할 지어다! 형님의 원수를 오늘에야 갚는구나!”


하지만 연기가 걷힌 곳에는 시체하나도 없었다. 단지 어지러히 바닥에 박힌 화살들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카일런은 제분소 안으로 도망치는 브런트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일런은 대노하여 소리쳤다.


“이 교활한 프란치아놈! 나를 속이다니!”


테르지오는 연막을 터뜨린 후, 자신이 손짓한 곳과 반대의 방향으로 일행을 이끌었던 것이었다. 때문에 카일런의 병사들은 엉뚱한 곳을 향해서만 화살을 발사한 꼴이 되었다.


“장궁수! 다시 사격!”


장궁수들은 다시 어지러이 화살을 발사했다. 하지만 그들의 화살은 이미 닫혀진 제분소의 문에만 박힐 뿐이었다. 카일런은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흥! 그렇다고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듯 싶으냐!? 불화살을 준비해라!”


장궁수들은 불화살을 꺼내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노쓰웨이의 병사들이 오기 전에 빨리 처치해야 한다! 제분소와 함께 태워죽이고 이곳을 뜨자!”


한편, 제분소 안으로 도망친 브런트는 분이 났는지 바닥을 세차게 밟으며 소리쳤다.


“제길! 저놈은 내 십자궁이 부서진 것을 알고 있어! 십자궁만 있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텐데!”


그때 카노트가 브런트에게 말하였다.


“브런트…… 사실은 브런트군의 십자궁을 이미 완성했어.”


브런트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 제 십자궁이라뇨?”


“내가 브런트군의 아버지가 물려준 십자궁을 부쉈었잖아? 브런트군이 여행을 떠나버리자 자꾸만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만들어봤는데…….”


“빨리! 그걸 주세요!”


어느덧, 장궁수들이 쏜 불화살이 제분소에 옮겨붙기 시작하였다. 브런트는 카노트를 재촉하였으며, 카노트는 황급히 일행들을 이끌고 작업실로 데리고 갔다.


“이…… 이거야…… 아직 실험은 못해봤는데…… 잘 작동할지 모르겠네.”


브런트는 톱밥과 쇳조각이 어지러이 널려진 작업실 중앙에 놓여진 십자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소 놀라고 말았는데, 십자궁의 앞부분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던 것과 똑같이 생겼지만, 뒷부분은 그 생김새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뒷부분에는 권양기(cranequin)가 달려있었는데, 아발레스트의 권양기와는 달리 손잡이가 맷돌처럼 위에서 돌리는 방식이었다.


“이…… 이건 아발레스트처럼 돌려서 장전하는 건가요?”


“오. 아발레스트를 알고 있는 걸 보니 대화가 빠르겠군. 하지만 아발레스트처럼 옆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방식이 아냐. 위에서 돌리는 방식이지.”


“그건 장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더 빠른 것이 없나요?”


“아. 저건 손으로 잡아당겨 장전해도 돼. 한번 해보겠어?”


카노트의 말에 브런트는 공성십자궁을 내려놓고는 손으로 시위를 당겼다. 브런트는 예전의 공성십자궁보다도 훨씬 시위가 빨리 당겨지는 것을 느끼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카노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활대 양 끝에 도르래를 달았어. 그게 더 장전을 쉽게 해줄거야.”


브런트는 공성십자궁의 활대 양 쪽 끝에 작은 도르래가 달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공성십자궁을 들고는 발사대가 비뚤어져있는지 확인하였다. 이름난 장인인 카노트가 만들었기에 발사대는 조금도 비뚤어져있지 않았다. 브런트는 허리춤에서 볼트를 꺼낸 후, 공성십자궁에 장전하려 했다. 그걸 본 카노트가 소리쳤다.


“아…… 안돼! 잠깐! 잠깐!”


“왜요?”


“이제 권양기를 돌려봐.”


카노트의 말에 브런트는 뭔가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는 카노트의 말대로 권양기를 감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성십자궁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공성십자궁의 뒤쪽에서는 톱니가 달린 레일(Rail)이 밀려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브런트가 잡아당겼던 화살의 시위가 더욱 당겨지게 되었다. 브런트는 이 획기적인 방법에 놀라고 말았다.


‘이, 이런 방법이라니!?’


카노트는 이 십자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많이 고민했었어. 권양기를 쓰면 더욱 강하게 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그렇다고 손으로 당기는 방식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단 말이지. 그래서 만들어낸 방식이야. 급할 땐 손으로 당겨서 장전하고, 더 강한 힘이 필요할 때에는 권양기를 돌리면 돼. 처음부터 권양기를 돌리는 방식이 아니니까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고. 물론…… 브런트군처럼 힘이 장사인 사람이 써야 한다는 조건하에서 말이지…….”


브런트는 계속 권양기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십자궁의 몸통이 확장될수록 장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카노트는 가까이 오더니 권양기의 손잡이를 접었다. 권양기의 손잡이가 권양기에 겹쳐지자 확장되던 레일이 고정되게 되었다.


“이렇게 접혀지면 레일은 고정되고 십자궁은 발사할 준비를 마치게 되지. 권양기 손잡이가 없어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구.”


브런트는 다시 공성십자궁을 집어들었다. 무게는 아발레스트보다도 가벼우면서도 상황에 맞추어 권양기를 돌리거나 손으로만 장전이 가능한 방식이었다. 권양기를 잔뜩 감은 지금의 공성십자궁에는 어마어마한 장력이 담겨 있었다. 브런트가 느끼기엔, 이 위력은 아발레스트를 뛰어넘을 것이 확실해보였다. 카노트의 말은 계속되었다.


“사실 이건 브런트군만을 위한 십자궁이야. 그러니 이름을 붙여주었으면 하는데…….”


브런트는 이 공성십자궁에 볼트를 끼우며 짧게 중얼거렸다.


“텐 세컨즈(Ten Seconds)……."


카노트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십, 십초? 뭔 이름이 그래?”


장전을 마친 브런트는 작업실을 나서며 대답했다.


“십초가 지나기 전에…… 한 사람은 반드시 죽을 테니까요.”


-계속


작가의말

휴우~ 오늘은 삼겹살데이라 와이프랑 삽겹살 집에 갔습죠. 그래서 못 올릴 줄 알았는데 급히 올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오늘 드디어 주인공 전용의 십자궁이 등장했군요. 크레인 퀸을 돌려 레일을 확장시키는 방식입니다. 앵커처럼 짧게 쏠 수도, 아발레스트처럼 길게 쏠 수도 있는 방식입죠. 여러분들 마음에 드시면 좋겠네요. 이 공성십자궁의 이름은 텐 세컨즈입니다. 10초 안에 반드시 한명이 죽는다는 의미죠.

아! 그리고 아발리스트가 베스트에 올랐었네요!? 이걸 보고 얼마나 기쁘던지! 비호님께서 댓글달아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전부터 베스트에 글 올리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그게 제가 되었네요. 이게 다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입니다. 정말 다시금 감사드려요.^^

연재한담에 자랑하고 싶었으나, 남을 초라하게 만들면 안된다는 좌우명 때문에 그저 여러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럼 다음편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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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에필로그(Epilogue) +87 12.09.13 4,576 92 14쪽
87 -87화: 붕괴되는 신전 +11 12.09.13 3,396 50 22쪽
86 -86화: 용사의 귀환 +11 12.09.13 3,190 53 25쪽
85 -85화: 발리스타(Ballista) +25 12.09.10 3,662 62 19쪽
84 -84화: 마차 속의 소녀 +21 12.09.06 3,478 64 17쪽
83 -83화: 용사, 일어나다. +30 12.08.31 3,546 68 16쪽
82 -82화: 속죄의 방 +24 12.08.28 3,605 67 17쪽
81 -81화: 달빛에 비친 그녀 +28 12.08.26 3,637 59 18쪽
80 -80화: 국화와 물매화 +16 12.08.22 3,415 62 17쪽
79 -79화: 내가 조준당하고 있다 +19 12.08.20 3,489 60 16쪽
78 -78화: 불타는 노웃그래스(Knotegrass) +22 12.08.17 3,541 58 16쪽
77 -77화: 시간싸움 +14 12.08.15 3,627 65 19쪽
76 -76화: 성녀의 정체 +17 12.08.13 3,605 67 17쪽
75 -75화: 리터너(Returner) +29 12.08.11 3,748 59 20쪽
74 -74화: 예언의 석판 +27 12.08.09 3,829 65 17쪽
73 -73화: 바라탄으로 +19 12.08.06 3,826 64 15쪽
72 -72화: 전설의 무기 +20 12.08.04 4,259 73 21쪽
71 -71화: 역설(逆說)의 갑옷 +16 12.08.03 3,964 64 20쪽
70 -70화: 남은건 너 하나 뿐이다. +21 12.07.31 3,827 60 29쪽
69 -69화: 문을 열어주세요. +16 12.07.29 3,939 64 20쪽
68 -68화: 흡혈귀(Vampires) +19 12.07.27 4,086 69 20쪽
67 -67화: 도시의 비밀 +17 12.07.25 3,878 67 15쪽
66 -66화: 샤인스트림(Shinestream) +17 12.07.23 4,144 69 20쪽
65 -65화: 천공(天空)의 기사 +31 12.07.21 4,747 71 22쪽
64 -64화: 플라투스의 성녀(聖女) +52 12.04.22 6,086 96 18쪽
63 -63화: 진실문답 +46 12.04.18 5,897 101 23쪽
62 -62화: 대지의 신전 +30 12.04.12 6,350 98 25쪽
61 -61화: 바텐호스(Bartenhose) +34 12.04.02 6,793 108 21쪽
60 -60화: 가장 맞추기 힘든 표적 +31 12.03.28 6,675 104 23쪽
59 -59화: 사막의 폭풍우 +25 12.03.25 7,128 108 23쪽
58 -58화: 세레네의 성직자 +33 12.03.21 7,484 113 25쪽
57 -57화: 황제의 침공 +28 12.03.19 8,801 109 26쪽
56 -56화: 골드 드래곤의 거처 +35 12.03.15 9,067 129 26쪽
55 -55화: 의식을 막아라 +47 12.03.12 8,891 132 30쪽
54 -54화: 반지의 정체 +42 12.03.09 9,439 119 23쪽
53 -53화: 엘프들의 산 +58 12.03.06 9,885 128 24쪽
» -52화: 텐 세컨즈(Ten Seconds) +52 12.03.03 9,768 146 23쪽
51 -51화: 사랑, 가시 그리고 갑옷(Love, Thorn, Mail) +35 12.02.29 9,842 110 24쪽
50 -50화: 우연한 재회 +46 12.02.26 10,218 117 22쪽
49 -49화: 밴시(Banshee) +33 12.02.23 10,746 125 23쪽
48 -48화: 버려진 자 +44 12.02.21 10,652 120 28쪽
47 -47화: 아발레스트(Arbalest) +39 12.02.18 10,870 121 21쪽
46 -46화: 무기를 손에 넣다 +32 12.02.15 10,510 109 21쪽
45 -45화: 마검(魔劍) 이퀄리브리온(Equalibrion) +20 12.02.13 10,595 99 23쪽
44 -44화: 구덩이 +29 12.02.10 9,996 108 20쪽
43 -43화: 황제의 무덤 입구 +25 12.02.07 10,348 105 21쪽
42 -42화: 문 미러(Moon Mirror) +26 12.02.04 10,154 102 16쪽
41 -41화: 스와이번 일행 +22 12.01.31 10,046 106 14쪽
40 -40화: 제분소를 나서다 +30 12.01.29 10,329 100 14쪽
39 -39화: 에뎁세스의 반지 +27 12.01.26 10,662 10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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