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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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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09.13 03:11
최근연재일 :
2012.09.13 03:11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881,094
추천수 :
8,829
글자수 :
702,367

작성
12.07.29 20:59
조회
3,941
추천
64
글자
20쪽

-69화: 문을 열어주세요.

DUMMY

“브런트.”


“네?”


“내가 저번에 줬던 볼트 가지고 있나?”


“아. 그거 장전했습니다.”


브런트는 예전 테르지오가 주었던 대(對) 언데드용 볼트를 장전한 상태였다. 테르지오는 주변을 경계하며 말을 이어갔다.


“잘했군. 흡혈귀들에겐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거든.”


“맞아요. 지하무덤에서 바르쿠스라는 흡혈귀에게 볼트를 쏘았는데 그냥 통과될 뿐이더군요.”


“그 녀석들은 주물질계와 음의차원계 양쪽에 존재하고 있지. 그래서 타격을 주려면 조금이라도 마법이 걸린 무기로만 가능해.”


“다행이샴. 이 망치 ‘월 피켈(Wall Pickel)’에는 마법이 걸려있단 말이샴.”


에톤라크는 그의 노움식 갈고리망치를 솜씨좋게 회전시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검엔 마법이 걸려있는지 모르겠군. 내가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데…….”


펠페트는 허리춤의 장검을 뽑아내며 중얼거렸다. 이 장검은 전의 경비대원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 후르시아가 그에게 말했다.


“그 검에선 어떠한 마법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리 줘 보세요.”


후르시아는 허리춤의 가방에서 석회가루와 흑연가루를 꺼내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며 두 가루를 혼합하였다. 그녀의 손에서 은은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며 기름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그녀는 계속 주문을 외우며 기름을 장검에 문질렀다. 그러자 평범한 장검에서 웅웅 하는 소리가 나오는게 아닌가?


“제 실력으론 세 시간이 한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평범한 장검으로 돌아가는 점 잊지 마세요.”


마법이 걸린 장검을 받아든 펠페트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장검은 훨씬 가볍고 날카로워진 것 같았던 것이다.


“오, 대단한 기술이구먼……. 근데 엘프아가씨 정도 되는 사람이 어째서 모험을 따라나선 것이지? 나 같으면 마법책이나 쓰면서 돈을 벌겠는데 말이지.”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에요. 현재상황에 집중하세요.”


하지만 펠페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혹시……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나선게 아닌가?”


후르시아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잠시 후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답할 의무는 없네요.”


“흐…… 부끄러워하긴…… 난 당당히 말할 수 있어. 난 에이나 아가씨를 사랑하거든.”


듣고있던 브런트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접는 걸 추천하지. 상대는 지체높은 영주의 딸이야. 관두라고.”


“관두긴 뭘 관둬? 사랑은 하는거지 느끼는게 아냐. 설령 그녀가 날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게 뭐가 잘못되었다고…….”


“네가 가슴아플까봐 하는 말이니 오해는 마.”


펠페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들이 방의 끝부분까지 도착했을 때 즈음, 펠페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였어…… 내가 열 살때였나? 동네에서 뛰어노는데 하필 그때가 영주나리 가족이 행차하던 때였다고. 내가 뛰는 바람에 진흙탕이 그녀의 드레스에 튀었지. 호위병이 날 집어들고 주먹으로 내 이빨을 털고 있었는데, 그걸 말린게 바로 그녀야……. 놀랍지 않아? 귀족여인네들은 자기 치장하는데에만 관심을 둔다고. 그런데 나 같은게 얻어터지는 것을 그냥 두지 않더란 말이야. 그날 이후로 난 맹세했지. 그녀를 위해선 뭐든지 하겠다고 말야.”


그때, 테르지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래층부터는 흡혈귀들이 있네. 지금부턴 조금 집중하게.”


어둠속에서 펠페트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후르시아의 목소리가 뒤따라왔다.


“제가 사악탐지(Detect Evil)마법으로 흡혈귀들의 숫자를 가늠해볼게요.”


후르시아는 양손을 아래쪽으로 내뻗으며 두 눈을 감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네 마리…… 정도?”


“뭐샴? 그럼 이백구십여섯마리는 지금 밖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는 말이샴? 그런데도 시민들은 아무 말도 없었단 말이샴?”


테르지오는 계단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고리를 잡았다.


“모두 붙어있게. 등 뒤를 조심하고…… 놈들은 증기형태로 몸을 바꿔서 기습할 수도 있거든.”


백단목으로 만들어진 문은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긴 복도 끝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또 다른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좌 우에는 수 많은 관들이 선반에 놓여 진열되어 있었다.


-쉬익!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펠페트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지? 이 지하에도 바람이 분단 말이야?”


흡혈귀 바르쿠스와 싸웠던 경험이 있는 브런트가 대답했다.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야. 녀석들이 우리 주변을 돌고 있어.”


-쉬익!


또 한 차례 바람이 불어왔다. 브런트는 바람과 함께 움직이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놈들이야.”


펠페트는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뭐, 뭣!? 어디?”


“캬아아아아아아!!”


펠페트의 바로 옆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으아아앗!”


펠페트는 흡혈귀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핏기없는 피부와 붉은 눈…… 그리고 크게 벌린 입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 하지만 흡혈귀는 경련을 일으키며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흡혈귀의 가슴에는 브런트가 쏜 볼트가 박혀있던 것이었다. 흡혈귀는 땅에 쓰러지더니 어쩔 줄 몰라하며 계속 몸부림을 쳤다.


-휘이이이잉!


바람과 함께 그림자가 스쳐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빠아아아악!


브런트가 쏜 두 번째 볼트가 또 다른 흡혈귀에 명중한 것이었다. 펠페트는 놀라 중얼거렸다.


“너, 넌…… 저게 보이는거냐!?”


“씨깽이! 얼른 죽이샴!”


에톤라크는 마법망치인 월 피켈의 갈고리 부분으로 쓰러진 흡혈귀를 찍었다. 수차례 찍힌 흡혈귀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펠페트 또한 마법이 걸린 장검으로 다른 흡혈귀를 마구 찍어댔다. 그러자 그 흡혈귀도 재가 되어 사라졌다. 펠페트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휴…… 이 자식들…… 별거 아니로구만…….”


그때 후르시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게 뭐죠!?”


일행은 건물 맨 끝에서 어둠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시커먼 어둠이 연기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다만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찌익! 찌이이이! 찍!


“박쥐떼다!”


어둠은 박쥐떼들이었다. 일행은 팔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낮추었다. 테르지오는 그의 철퇴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퍼어어어엉!


불꽃이 일어났다. 사람의 형태를 한 불꽃이 뒤로 날아가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테르지오의 철퇴를 맞은 흡혈귀가 그대로 즉사한 것이었다.


“박쥐떼 뒤에 숨어있었어.”


-휘이이잉!


박쥐떼는 위로 올라가버렸지만 또 한차례 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펠페트는 검은 그림자가 재빨리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잡았어!”


펠페트는 그림자를 향하여 마법이 걸린 장검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의 장검을 가볍게 피하였다. 그리고 그림자는 흡혈귀의 모습으로 바뀌며 펠페트에게 달려들었다.


-쩌어억!


에톤라크가 흡혈귀의 허벅지를 월 피켈로 찍은 것이었다. 하지만 흡혈귀는 갈고리에 찍힌 채로도 펠페트에게 달려들었다. 펠페트는 뒤로 몸을 젖히며 흡혈귀의 손톱을 피하였다. 본래는 손톱에 할퀴어져야 했으나 에톤라크가 공격을 성공시키는 바람에 공격이 살짝 못 미쳤던 것이었다.


흡혈귀는 이번엔 에톤라크를 향하여 손톱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재빠른 에톤라크는 몸을 돌려 손톱을 피하였다. 그와 동시에 갈고리의 반대편인 망치로 흡혈귀의 종아리를 후려쳤다. 흡혈귀는 공중에서 팽그르르 돌더니 땅에 쓰러졌다. 에톤라크가 다시 갈고리로 찍으려 했지만 땅에 쓰러진 흡혈귀는 증기의 형태로 변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엥!? 어디갔샴?”


“뒤요!”


후르시아의 목소리, 그리고 에톤라크는 본능적으로 몸을 굴렸다. 몸을 굴리는 그에게 증기가 통과하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 증기는 펠페트 앞에서 흡혈귀로 변하였다. 깜짝 놀란 펠페트는 황급히 몸을 낮추었다. 흡혈귀가 휘두른 손톱은 펠페트가 입고 있던 경비대 망토를 찢어버렸다.


-퍼어어어어엉!


테르지오가 휘두른 망치가 흡혈귀에게 적중했던 것이었다. 물론 테르지오의 철퇴에서는 신성한 힘이 발휘되어 흡혈귀를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땅에 엎드린 펠페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일어섰다.


“하악…… 하악……. 그래도…… 별것 아니군요. 정신만 바짝 차리면…….”


“느립니다…….”


브런트의 말에 펠페트가 놀라 물었다.


“뭐? 느리다고? 내가?”


브런트는 펠페트의 질문을 무시한 채, 테르지오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지하 무덤에서 싸웠던, 흡혈귀 바르쿠스는 이것보다도 훨씬 빨랐어요.”


테르지오가 대답했다.


“당연하네. 이들은 새끼 흡혈귀(Vampire Spawn)에 불과하거든. 진짜 흡혈귀는 더 빠르고 강하지. 그러니 얼른 에이나양을 구출하고 영주님께 합류해야 하네;”


복도 끝쪽으로 뛰어가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펠페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 이것보다 더 빠르고…… 강하다구? 말도안돼…….”


“어서 따라오세요. 이제 흡혈귀는 더 이상 없답니다.”


일행은 아래층으로 더 내려갔다. 후르시아의 말대로 더 이상 흡혈귀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층 아래로 더 내려가서야 에이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에이나는 반지의 영상에 나타난 형상 그대로 관 위에 누워 있었다. 펠페트는 에이나를 발견하고는 뛰어갔다.


“아, 아가씨!”


펠페트는 에이나의 가슴에 귀를 대려다가, 몸을 움찔하였다. 대신 그녀의 코 아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숨을 쉬고 있어! 아가씨는 살아계시다고!”


브런트는 에이나를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화려하고 복잡했으나 귀족들의 잠옷임에 분명하였다.


“잠이 든 채로 납치당한 것 같아요.”


후르시아는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며 말을 이어갔다.


“마법적인 잠에 빠졌으므로, 깨우는 것도 마법적인 조치가 있어야 해요. 대신 여기서 하는 것 보다는 안전한 곳에서 하는게 좋겠군요.”


브런트는 에이나를 들쳐 업으려 했다. 그때 펠페트가 소리쳤다.


“이놈! 뭐하는 거야!? 당장 내려놓지 못해?”


“뭐? 그럼 네가 옮길려고?”


펠페트는 잠시 안절부절 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펠페트가 그녀를 대신 들쳐업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사히 묘지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리 아래로 다시 내려가 기절해있는 경비병들 주변에 망토와 의복을 풀어놓았다. 한편, 후르시아는 그녀를 깨울 마법을 부지런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수면마법은 시간이 흐르면 풀리고, 사실 심하게 흔들기만 해도 깨어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영구적인 장치가 걸려있어요. 아마도 고대의 기술이 걸려있을 거에요.”


브런트는 ‘고대의 기술’이라는 말을 듣고는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스와이번? 아니야. 그는 지하무덤에서 떨어져 죽었다구.’


후르시아의 말은 계속되었다.


“사실 이런 마법을 푸는 방법은 모릅니다. 대신 강한 영구주문해제(Dispell Magic, Persistence)를 사용하여 마법을 해제해 보겠습니다. 여기엔 귀한 재료가 사용되죠.”


그녀는 허리춤에서 식물의 뿌리를 꺼내었다. 그 뿌리는 마치 사람의 다리와 같은 모양이었다.


“동방에서 가져온 인삼(人蔘,Ginseng)입니다. 이 귀한 것을 여기서 쓰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녀는 허리춤에서 백금조각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백금조각을 에이나의 이마 위에 올려놓더니 인삼을 손에 쥐고 주문을 외웠다. 한 손으로는 복잡한 문양을 허공에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의 주문은 상당히 복잡했는지, 그녀는 한참동안 주문을 외워야만 했다. 그러자 에이나의 이마위에 올려진 백금조각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인삼을 쥔 그녀의 손아귀에서는 황색 진액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노란색 진액은 백금조각의 연기와 닿으며 노란 연기로 바뀌었다. 그 연기가 에이나의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 작업만이 남았어요.”


“잠깐! 당신 뭐하는거야!?”


후르시아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자 펠페트가 놀란 것이었다. 후르시아는 단검으로 에이나의 팔에 상처를 냈다. 그러자 백옥같은 그녀의 피부에서 검은색 피가 흘러나오는게 아닌가? 당연히 펠페트는 검은색 피를 보고 놀라게 되었다.


“검, 검은피…… 죽은거 아냐?”


“그동안 신진대사가 정지했을 뿐이에요. 일시적으로 검은 피로 보이는 것 뿐이니 걱정마세요.”


“아앗!”


에이나는 짧은 비명을 지르더니 팔뚝의 상처를 움켜쥐었다. 움켜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흐르던 피가 어느새 선홍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마법적인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당연히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게 비명을 질러댔다.


“여기, 여기가 어디죠!? 그리고 당신들은 누구에요!?”


“어디긴 어디샴? 다리 아래샴. 그리고 조용히 안하샴?”


에톤라크의 대답은 그녀를 더욱 놀라게 하였다.


“난장이! 그대가 절 납치한 건가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는 그녀의 모습에는 귀여움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섞여있었다. 펠페트가 어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가씨…… 사실은 우리가 아가씨를 구했습죠.”


“펠페트? 당신은 왜 여기에 있는거죠?”


테르지오는 투구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에이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매커드가의 삼남 테르지오가 에이나양을 뵙습니다. 부디 안심하시길…….”


테르지오의 인사법은 전통적인 프란치아격식에 따른 방식이었다. 에이나는 테르지오의 인사를 보고는 그제서야 안심하게 되었다.


“프란치아의 기사님이시로군요.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왜 저는 다리 아래에 잠옷, 아니 격식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지요? 그리고 저기 경비병들은 왜 벗은채 누워있는지요?”


테르지오는 에이나의 손등에 입맞춤을 하였다. 에이나는 테르지오의 손이 닿자 팔뚝에 흐르는 피가 멎었음을 알게 되었다. 테르지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가씨는 흡혈귀들에게 납치당하셨었습니다.”


“네에!? 흡혈귀요?”


“일단 아가씨를 영주님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가면서 말씀드리죠.”


에이나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샤인스트림은 상당히 큰 도시였기에, 공동묘지로부터 저택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길었다. 어두운 밤거리를 걸으며 에이나는 펠페트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었다.


“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그대는 끝까지 입을 닫고 있었군요. 고마워요.”


펠페트는 에이나가 괴한들에게 끌려갔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녀의 순결이 의심받을까봐 지금껏 진술을 거부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에이나를 끌고갔던 남자들이 흡혈귀들이었을 줄이야…….


“그날 밤은 왠지 잠이 오질 않았어요. 새로 들어온 하인이 자는 법을 이야기해 준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의 눈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잠에 빠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깨어나보니 다리 아래에 잠옷을 입고 누워있지 않겠어요?”


“아마도 그 하인이 흡혈귀였을 것입니다.”


테르지오의 대답에 에이나는 한차례 몸서리를 쳤다.


“그럼 지금도 저택 내부에 흡혈귀가 돌아다니고 있단 말인가요?”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위험해요. 그분은 괜찮으실까요? 네?”


펠페트가 대답하였다.


“괜찮으시죠. 그분은 오늘 낮에 절 처형하시려 했었거든요.”


샤인스트림 영주 블랑소와가 펠페트를 핍박했다는 걸 알자 에이나는 대신 사과를 했다.


“미, 미안해요. 우리 아버지는 조금 꽉 막힌 부분이 있으셔서…….”


그때, 먼 발치에서 한 사내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갑옷을 입은 사내였다.


“매커드경이오? 어째서 이리로 오는 것이오? 그대는 오늘 에이나양을 구하기로…….”


사내가 다가오면서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칼리암의 성기사인 헥투스였다. 헥투스는 에이나가 멀쩡히 살아있는 것을 보면서 발걸음을 늦추게 되었다. 한편, 테르지오는 에이나를 소개했다.


“걱정마시오. 에이나 양은 안전하오.”


하지만 헥투스는 기뻐하기는커녕 신경질을 냈다.


“흥! 그럼 본관만 헛고생 한 거였구료! 괜히 주민들에게 거울을 준비하라고 했구만.”


“아니오. 이제 흡혈귀들과 전면전을 해야 하니 경의 수고는 매우 값진 것이오.”


한편, 헥투스는 에이나양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테르지오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요?”


“보면 모르시오? 에이나양을 영주님께로 모시고 가고 있소.”


“그럼 본관과 함께 가시오! 공을 그대만 가질 순 없소!”




어두컴컴한 공동묘지의 지하…… 최하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두 다리가 내려왔다. 그 다리는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스웨이드 재질의 다갈색 장화에는 온갖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지체높은 귀족이 신는 장화였다. 장화의 길이는 무척이나 길었으며, 그것은 이 장화의 주인이 상당히 장신임을 알게 해 주었다.


장화의 위쪽으로는 베이지색 바지가 남자의 근육을 적당히 드러내보이고 있었으며, 벨트에는 각종 보석이 박혀있었다. 상의에는 진홍색 코트를 입었으며 코트 안에는 고급스러운 레이스가 달린 백색의 와이셔츠가 있었다. 아래로 길게 내리워진 검은 망토 위에는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의 피부는 창백하기 그지 없었으며 눈 또한 붉은 색이었다. 그는 흡혈귀군주인 바르쿠스(Barques)였던 것이었다.


바르쿠스는 엉망진창이 된 지하무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에이나가 누워있어야 할 관을 바라보았다.


“바르쿠스님…….”


바르쿠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는 수백마리의 새끼흡혈귀들이 있었다. 그들은 축 늘어진 인간의 시신들을 안고 있었는데, 오늘의 수확물(?)인 듯 하였다. 새끼 흡혈귀 중 하나가 바르쿠스에게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바르쿠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곳은 습격당했다.”


다른 새끼 흡혈귀가 물었다.


“누구의 소행일까요?”


“모른다.”


그때 맨 뒤에서 한 새끼흡혈귀가 내려오며 말했다.


“이걸 발견했습니다.”


바르쿠스는 새끼흡혈귀가 들고있는 천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찢겨진 도시경비대의 망토였다. 바르쿠스는 망토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샤인스트림의 영주가 우릴 배신했다.”


새끼 흡혈귀들은 아무 말 없이 바르쿠스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르쿠스는 억양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이 죄값을 물어야 한다. 모두 나를 따르라.”


바르쿠스는 순식간에 증기의 형태로 변하였다. 새끼 흡혈귀들도 모두 증기의 형태로 변하여 그를 따라나가기 시작했다.


“에, 에이나!?”


저택 밖으로 나온 샤인스트림의 영주, 블랑소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저택의 창살문 밖에 있었던 에이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용감한 기사님들께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정말이지……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소녀는 어찌 되었을지…….”


에이나는 문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문을 열어주세요. 이분들에게 음식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아, 안된다!”


에이나는 블랑소와의 거절에 두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안된다니요?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저는…….”


“너, 너는…… 여기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리고 얼른 이 문부터 열어주세요.”


하지만 블랑소와는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에이나는 다시 소리쳤다.


“뭐하세요? 얼른 문을…….”


“넌 여기에 있어선 안된다고!”


블랑소와의 호통에 에이나는 말문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 한 사내의 목소리가 지붕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블랑소와 샤인스트림……. 그대가 날 배반할 줄은 몰랐도다.”


브런트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지붕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춰진 그림자는 긴 머리카락과 망토를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브런트는 모골이 송연해져 옴을 느꼈다.


“바르쿠스!!”


-계속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레그다르입니다. 프로방스엔 잘 다녀왔답니다. 이젠 예전보다도 훨씬 아름다워졌더라고요. 대신 입장료를 받는 곳이 있으니 그점 주의하시길…….

아! 제가 이야기했던 BG는 발더스게이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 이번에도 AD&D라고요? AD&D도 좋지만 저는 왠지 3.5룰이 가장 좋더라고요. 4판은 완전 컴퓨터 게임 같아서요(예를 들자면 단검 던지기가 무조건 무한이라던가 하는게 좀 어색하더라고요.) 대신 동료가 세명 추가되었다니 기대되네요. 대신 다이나헤어같은 캐릭은 어차피 2가면 죽으니 선택 안할 것 같은 생각이…….

그리고 여기 나오는 에이나는 소서리스의 여주인공 에이나와 다른 사람입니다. 동명이인이에요.^^; 이름만 같은거죠.

부족한 작품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용기가 솟아나네요.^^


이제 아래에는 소서리스때부터 해오던 서비스인 아이템 설명입니다.^^;

======================

*월 피켈(Wall Pickel)

형태: 노움식 갈고리망치(Gnome Hooked Hammer)
데미지: 1d6(부수기)/1d4(찌르기)+1 (x3/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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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82화: 속죄의 방 +24 12.08.28 3,607 67 17쪽
81 -81화: 달빛에 비친 그녀 +28 12.08.26 3,639 59 18쪽
80 -80화: 국화와 물매화 +16 12.08.22 3,417 62 17쪽
79 -79화: 내가 조준당하고 있다 +19 12.08.20 3,492 60 16쪽
78 -78화: 불타는 노웃그래스(Knotegrass) +22 12.08.17 3,544 58 16쪽
77 -77화: 시간싸움 +14 12.08.15 3,630 65 19쪽
76 -76화: 성녀의 정체 +17 12.08.13 3,607 67 17쪽
75 -75화: 리터너(Returner) +29 12.08.11 3,751 59 20쪽
74 -74화: 예언의 석판 +27 12.08.09 3,832 65 17쪽
73 -73화: 바라탄으로 +19 12.08.06 3,829 64 15쪽
72 -72화: 전설의 무기 +20 12.08.04 4,263 73 21쪽
71 -71화: 역설(逆說)의 갑옷 +16 12.08.03 3,967 64 20쪽
70 -70화: 남은건 너 하나 뿐이다. +21 12.07.31 3,831 60 29쪽
» -69화: 문을 열어주세요. +16 12.07.29 3,942 64 20쪽
68 -68화: 흡혈귀(Vampires) +19 12.07.27 4,089 69 20쪽
67 -67화: 도시의 비밀 +17 12.07.25 3,881 67 15쪽
66 -66화: 샤인스트림(Shinestream) +17 12.07.23 4,146 69 20쪽
65 -65화: 천공(天空)의 기사 +31 12.07.21 4,751 71 22쪽
64 -64화: 플라투스의 성녀(聖女) +52 12.04.22 6,088 96 18쪽
63 -63화: 진실문답 +46 12.04.18 5,902 101 23쪽
62 -62화: 대지의 신전 +30 12.04.12 6,353 98 25쪽
61 -61화: 바텐호스(Bartenhose) +34 12.04.02 6,798 108 21쪽
60 -60화: 가장 맞추기 힘든 표적 +31 12.03.28 6,678 104 23쪽
59 -59화: 사막의 폭풍우 +25 12.03.25 7,130 108 23쪽
58 -58화: 세레네의 성직자 +33 12.03.21 7,487 113 25쪽
57 -57화: 황제의 침공 +28 12.03.19 8,804 109 26쪽
56 -56화: 골드 드래곤의 거처 +35 12.03.15 9,071 129 26쪽
55 -55화: 의식을 막아라 +47 12.03.12 8,894 132 30쪽
54 -54화: 반지의 정체 +42 12.03.09 9,442 119 23쪽
53 -53화: 엘프들의 산 +58 12.03.06 9,889 128 24쪽
52 -52화: 텐 세컨즈(Ten Seconds) +52 12.03.03 9,772 146 23쪽
51 -51화: 사랑, 가시 그리고 갑옷(Love, Thorn, Mail) +35 12.02.29 9,845 110 24쪽
50 -50화: 우연한 재회 +46 12.02.26 10,221 117 22쪽
49 -49화: 밴시(Banshee) +33 12.02.23 10,749 125 23쪽
48 -48화: 버려진 자 +44 12.02.21 10,654 120 28쪽
47 -47화: 아발레스트(Arbalest) +39 12.02.18 10,873 121 21쪽
46 -46화: 무기를 손에 넣다 +32 12.02.15 10,512 109 21쪽
45 -45화: 마검(魔劍) 이퀄리브리온(Equalibrion) +20 12.02.13 10,598 99 23쪽
44 -44화: 구덩이 +29 12.02.10 10,003 108 20쪽
43 -43화: 황제의 무덤 입구 +25 12.02.07 10,351 105 21쪽
42 -42화: 문 미러(Moon Mirror) +26 12.02.04 10,157 102 16쪽
41 -41화: 스와이번 일행 +22 12.01.31 10,051 106 14쪽
40 -40화: 제분소를 나서다 +30 12.01.29 10,332 100 14쪽
39 -39화: 에뎁세스의 반지 +27 12.01.26 10,665 10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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