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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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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09.13 03:11
최근연재일 :
2012.09.13 03:11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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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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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2,367

작성
12.09.1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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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85화: 발리스타(Ballista)

DUMMY

“수녀님은 당신과 말할 정도로 시간이 많으신 분이 아닙니다.”

체구가 큰 호법사제가 브런트와 디오라 사이를 가로막았다. 디오라는 호법사제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훌리우스(Hulious)님. 이 분은 우리를 도와주실 분입니다.”

호법사제의 이름은 훌리우스였다. 수염은 말끔히 깎여있었으나, 턱은 상당히 크고 근골이 튼실해 보였다. 훌리우스는 디오라를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수녀님. 우리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중이고 매사에 신중해야 합니다. 이분께서 로벤슈타인을 해치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요. 우리가 신뢰해야 할 사람은 이분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입니다.”

그때 리터너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허! 웃기는군.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할 성직자가 사람을 믿지 못하다니 말이야. 세상이 말세야 말세라고. 아니, 말세라는 말은 고대에도 있었지. 그렇다면 세상 역사는 언제나 말세인 걸까? 킬킬.”

훌리우스는 브런트의 허리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디오라는 리터너에 관한 이야기를 이미 들었던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리터너라는 볼트인가요? 눈앞에서 보니 정말로 신기하군요.”

브런트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훌리우스가 끼어들었다.

“흥! 우리가 가진 믿음은 플라투스님을 향한 것 뿐입니다. 아무거나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훌리우스는 디오라의 손을 잡아끌더니 사제무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때는 저녁식사 시간이었으므로 사제들은 각자의 음식을 꺼내 먹고 있었다.

한편 브런트는 리터너에게 주의를 주었다.

“리터너. 나를 도와줘서 고맙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제들이야. 말을 조심해 줬으면 좋겠어.”

“아이구.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말을 거룩히 합지요. 괜찮으시다면 저 훌리우스라는 사제의 후장을 뚫을 기회를 베푸시지 않겠습니까? 됐어. 엿이나 먹으라고 그래. 뭔 사제가 저렇게 재수가 없지? 제길!”

그때 베르니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보면 모르겠어? 저 훌리우스란 사람. 디오라 수녀님을 좋아하고 있잖아?”

브런트는 훌리우스와 디오라를 바라보았다. 훌리우스는 아까의 험상궂은 얼굴을 풀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는 표정으로 디오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말린 빵이 들려있었으나 그는 먹는 것을 잊어버린 듯 하였다.

“와아! 이 술 참으로 맛있샴!”

에톤라크는 수통에 담긴 술을 모두 마셨는지, 입맛을 다시며 수통의 구멍을 아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카노트가 에톤라크를 나무랐다.

“이봐! 뭐하는 거야? 우리는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라고. 벌써부터 술이나 처마시다니. 너 제정신이야? 게다가 술은 또 어디서 났대?”

“아, 이건 사제가 준 술이샴. 이거이거 처음 마시는 건데 아주 끝내주샴. 향긋한 포도향과 함께 톡쏘는 맛을 가지고 있샴.”

에톤라크는 술을 준 사제에게 물었다.

“더 가진 거 없샴?”

사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술은 그게 전부입니다.”

“엥? 왜 이리 쪼잔하게 술을 가지고 다니는거샴?”

“우리는 술에 취하는 것을 죄악으로 알고 있답니다. 술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추울 때를 대비한 것일 뿐, 즐기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에톤라크는 입맛을 다시며 수통을 바라보았다.

“쩝! 그럼…… 이 술 이름 알려줄 수 있샴? 나중에 바라탄에 갈 일이 있으면 사마시도록 하겠샴.”

사제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물론 알려드릴 수 있지요. 바라탄의 뜨거운 태양아래 자란 포도로 만들어진, 샴페인이라는 술입니다.”

에톤라크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오! ‘샴’! 역시 술 이름에도 ‘샴’이 들어가니까 훨씬 맛있샴!”


사제단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 남방 바라탄을 향하여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긴 행렬이었기에 그들의 행진은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기간 동안 브런트일행은 마차 속의 소녀 얼굴을 보지도 못하였다. 사제들은 소녀의 정체가 드러나길 두려워하는 듯, 식사 뿐만이 아니라 용변까지도 마차 안에서 해결토록 하였다.


× × × × ×


3일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은 바라탄의 경계인 히손강(Hison River)에 도착할 수 있었다. 히손강을 건너니 드넓은 평원이 드러났다. 수녀 디오라가 말하였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하룻밤만 더 이동하면 아프로칼리스(Aprocallis)에 도착합니다. 그곳에 가면 본신전의 사제들과 호위병력들이 우리를 맞이해 줄 거에요.”

그들은 걸음을 더욱 재촉하였다. 그리고 노을이 깔릴 무렵이 되자 그들 앞에 숲이 나타났다. 에톤라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엉? 이상하샴?”

카노트가 에톤라크에게 물었다.

“뭐가 이상하다는거야? 네 머리는 언제나 이상했고…….”

에톤라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샴! 저길 보샴!”

그들의 시선은 숲길 사이로 난 오솔길로 향했다. 카노트가 말했다.

“오솔길이잖아. 저게 뭐가 이상해?”

“아니샴. 아니샴. 오솔길이 너무 넓샴. 게다가…… 오솔길은 자연스레 만들어져있어야 하는데, 급히 만든 것 같단 말이샴. 이건 적의 매복일 수도 있으샴.”

수녀 디오라가 에톤라크에게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잠시만 기다려주샴. 내가 금새 정찰하고 오겠샴.”

유격대원(ranger)인 에톤라크는 활을 등에 짊어지고는 몸을 낮추어 갈대밭 사이로 들어갔다. 이내 금새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바람결에 갈대가 흔들렸으나, 과연 바람때문인지 에톤라크의 움직임 때문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숲속에서 에톤라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돌아왔샴! 기쁜소식 먼저 듣고싶샴? 아님 나쁜소식 먼저 듣고싶샴?”

일행은 갑작스런 에톤라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숲 바깥으로 달려나오는 에톤라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에톤라크는 계속 입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그럼 기쁜소식 먼저 알려주겠샴! 내 예상대로 적들의 매복을 발견하였샴! 그리고 나쁜 소식은…….”

그리고 숲속에서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우워어어어어어어!!”

그리고 에톤라크의 말이 계속되었다.

“…… 내가 발각되었다는 것이샴!”

에톤라크의 뒤에서 수 많은 오크들의 무리가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수녀 디오라는 사제단에게 명령하였다.

“전투준비하세요! 플라투스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겁니다!”

브런트는 텐 세컨즈를 장전하며 리터너에게 말하였다.

“오크의 피맛 본 적 있어?”

“아니! 하지만 언젠간 한번 맛보고 싶었지!”

-쓔우우우우우우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황금색의 빛줄기가 쏘아져 날아갔다. 그리고 에톤라크를 뒤쫓던 오크의 머리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 브런트는 옆으로 내달리며 돌아온 리터너에게 물었다.

“어땠어?!”

“흠! 좀 발효된 피맛이라고나 할까!?”

오크들의 족장으로 보이는 자가 손을 치켜들자, 숲 속에서 수 많은 화살들이 쏘아져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붉은 노을하늘 위로 솟구친 화살은 이내 방향을 바꾸더니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브런트는 황급히 몸을 돌려, 등의 배낭으로 몸을 가렸다. 배낭에 화살들이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플라투스시여! 우리에게 신성한 바람을 내려주소서!”

사제들의 기도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에 미세한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오크들의 화살은 사제들의 몸을 살짝살짝 비켜나갔다. 하지만 바람의 위력은 그리 세지 않았던고로, 몇몇 사제들은 오크의 화살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 한편 브런트는 후르시아가 화살비 사이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마차 뒤로 피하세요!”

하지만 후르시아는 움직이지도 않은 채, 로브 속에서 말린 완두콩들을 꺼내며 말했다.

“로벤슈타인이 가진 두루마리에는 배울 것이 많더군요. 이건 그 중 하나입니다.”

후르시아가 말린 완두콩을 손으로 부스르며 주문을 외우자, 그녀의 손에 바람의 파장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손을 위로 뻗어올리자

-퍼엉!

강렬한 공기의 폭발음이 허공에 생기더니 강렬한 바람에 반대쪽으로 불어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화살의 힘은 강렬했으나 바람의 방해는 오크들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게 하였다. 오크들은 화살공격을 포기하고는 각자의 무기를 꼬나들고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성녀를 잡아라!!”

브런트는 텐세컨즈를 장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크들도 성녀를 노리고 있었구나!’

브런트는 달려오는 오크들을 향해 리터너를 발사하였다. 브런트의 솜씨에 오크들은 쓰러졌으나 그들의 숫자는 많았기에 사제단에게 접근하는데에 성공하였다. 디오라는 그녀의 육도곤을 휘둘러 다가오는 오크를 후려쳤다. 다른 오크들이 그녀를 공격하였으나 훌리우스가 오크들을 가로막자, 오크들과 훌리우스가 대신 대결하게 되었다.

“우오오오오옷!!”

훌리우스의 힘은 상당했다. 거대육도곤(War Mace)을 양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훌리우스의 공격에는 플라투스의 축복도 임한 상태였기에, 오크들은 방패와 함께 날아가기 일쑤였다.

한편, 마차를 몰던 사제는 마차를 안전한 곳으로 몰기 위하여 뒤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검게 변하였다. 벌써 밤이 된 것일까? 브런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드리워졌다. 검은 하늘은 이 생명체의 그림자였던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지축이 울리며 거대한 생명체가 땅에서 내려왔다. 붉은비늘로 전신을 감싼, 거대하고도 사악한 존재……. 레드드래곤 기가비어턴이었다. 브런트는 기가비어턴의 숨결이 무엇이든 태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텐세컨즈를 장전하며 옆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기가비어턴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크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하하하. 성녀는 이몸이 가져가야겠느니라!”

기가비어턴이 한번 날갯짓을 하자, 엄청난 광풍이 몰아쳐 나갔다. 이 강력한 바람은 사제들 뿐만 아니라 오크들까지 뒤로 굴러가게 하였다. 브런트 또한 균형을 잃고 뒤로 굴러갈 뿐이었다. 오로지 화이트 휠윈드만이 무릎을 꿇은 채, 부러진 카타나를 땅에 꽂아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광풍이 사그라들자 기가비어턴을 향하여 달려들기 시작했다. 기가비어턴은 화이트 휠윈드를 보고는 흥미로웠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호오~ 너는 좀 특별한 것 같군.”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지축이 다시 한번 울리며 기가비어턴의 거대한 꼬리가 지면을 훑고 지나갔다. 흙먼지가 일어나며 화이트 휠윈드가 공중에 떠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지면에 구르듯이 떨어지더니 기가비어턴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황제폐하의 원수!!”

화이트 휠윈드의 부러진 마법카타나 스톰 프린세스가 기가비어턴의 발목을 그었다. 하지만 기가비어턴의 비늘에는 스톰 프린세스가 통하지 않았다. 기가비어턴은 그의 앞손을 화이트 휠윈드에게 내리쳤다. 화이트 휠윈드는 몸을 회전시키며 그의 공격을 피하였다. 기가비어턴의 양 손은 계속 화이트 휠윈드를 공격했으나, 화이트 휠윈드는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흐흐흐흐. 그럼 이것도 피해보거라!”

기가비어턴은 다시 날개를 펄럭였다. 화이트 휠윈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뒤로 다시 굴러가게 되었다. 뒤로 굴러가던 화이트 휠윈드는 카타나를 땅에 꽂아 다시 몸을 가누었다.

-콰앙! 콰앙!

몸을 세운 화이트 휠윈드 위로 기가비어턴의 거대한 양손이 찍혀져 내려왔다. 흙먼지가 올라왔고, 그 틈새로 화이트 휠윈드가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기가비어턴은 그의 움직임을 예상했다는 듯이, 그의 거대한 입을 벌려 화이트 휠윈드에게 달려들었다. 화이트 휠윈드는 이 공격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감았다.

-콰지지지지지직!!

피가 튀며 기가비어턴의 입이 하늘로 들어올려졌다. 화이트 휠윈드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는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기가비어턴의 입에서는 붉은 마차의 잔해가 떨어져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기가비어턴의 이빨 사이로 피가 흘러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텐세컨즈의 장전을 마친 브런트는 경악하고 말았다.

“안돼에에에에!!”

브런트는 텐세컨즈를 올려 기가비어턴을 향해 발사하였다. 리터너는 기가비어턴의 가슴에 정확히 명중하였으며, 리터너는 기가비어턴의 비늘을 뚫고 그 내부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기가비어턴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가슴에 상처를 입고도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결국 이몸이 승리했느니라! 으하하하하하하하하!!!”

기가비어턴이 날아오르자 오크들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은 기가비어턴의 부하들이었으며, 기가비어턴의 계획은 마차가 홀로 떨어지기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브런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마차의 잔해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귓청에는 기가비어턴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사제들은 이번 전투에 희생당한 사제들의 묘를 만들어주고 간단히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들의 묘 가운데에는 기가비어턴에게 잡아먹힌 소녀의 것도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소녀의 시신은 그 안에 없었지만 말이다.

수녀 디오라는 소녀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은 그녀의 눈물이었다. 브런트는 그녀에게 다가가 사과의 말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성녀님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젠 모든게 끝이로군요.”

디오라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더니 브런트를 바라보았다.

“그대 허리에 달린 것은 훗산 오뚝이인가요?”

브런트는 그제서야 자신의 허리에 달린 훗산 오뚝이를 바라볼 수 있었다. 브런트는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린 시절 저의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죠.”

디오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브런트에게 물었다.

“그 오뚝이를 주시면서 아버지께선 다른 말씀이 없으셨는지요? 그 오뚝이는 의미가 있는 물건입니다.”

브런트는 오뚝이를 매만지며 대답하였다.

“알고 있어요. 이 오뚝이를 주면서 아버지께선…… 언제나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게 끝이에요. 성녀는 이미 기가비어턴에게 먹혀버렸고…….”

“아닙니다. 성녀는 살아있어요.”

브런트는 화들짝 놀라며 디오라에게 물었다.

“살아있다니요? 대체 어디에?”

훌리우스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신 대답하였다.

“수녀 디오라님…… 저분이 두 번째 성녀이십니다.”

브런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디오라를 바라보았다.

“그, 그럼…….”

디오라는 얼굴을 굳히며 대답하였다.

“이 소녀는 저를 위해 순교하였습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기가비어턴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신전으로 가야 합니다.”

방금 전, 디오라가 흘린 눈물은 자신을 위해 대신 희생한 소녀를 위한 눈물이었던 것이었다.


× × × × ×


사제단은 잠도 자지 아니하고 계속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피곤이 그들을 덮쳤으나,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기가비어턴의 무서움을 한번 겪었던 그들이었기에, 그가 다시 찾아오기 전에 아프로칼리스에 도착해야 했던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 계속된 행군으로 졸린 눈을 비비던 베르니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브런트에게 말했다.

“브런트! 저길 봐!!”

먼 발치에는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진 위로는 수 많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각양각색의 깃발들은 바라탄의 귀족들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깃발들 사이에 우뚝솟은 단 하나의 깃발이 눈에 띄었다. 깃발안에 그려진 삼각형안의 손바닥, 바로 플라투스의 성표였다. 디오라는 눈물을 흘리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해냈어요! 우리는 아프로칼리스에 도착했습니다!!”

진에서 말탄 사제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브런트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는 대사제인 솔페른이었다. 솔페른은 브런트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건네었다.

“브런트형제님이시구려. 먼 거리를 여행해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브런트일행과 사제단은 본신전의 사제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본신전의 사제들은 성녀인 디오라에게 순백의 예복을 입혔으며 그녀의 고충을 칭송하였다. 솔페른은 여행에 지친 일행에게 편히 쉴 것을 권하였으며, 브런트일행은 사제들이 만든 천막에서 지내게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브런트는 솔페른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브런트가 질문을 하였다.

“천막이 무척이나 많군요. 이들은 누구의 군대입니까?”

“바라탄의 왕, 아비누스(Avinous)께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셨소. 기가비어턴이 성녀를 노리고 있음을 아셨기에 군대를 파견하셔서 돕도록 하신 것이오.”

브런트는 천막사이로 지나가는 수 많은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가 에뎁세스의 무덤에서 보았던 인형과 비슷한 장비를 입은 병사들이 창과 방패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브런트는 고개를 돌려 솔페른에게 물었다.

“대사제님께선 기가비어턴이 다시 올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솔페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그 사악한 짐승은 우리들보다도 훨씬 영리하오. 자신이 엉뚱한 소녀를 잡아먹었다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면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요.”

솔페른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있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오. 성녀는 최대한 빨리 예식을 위해 마테로스(Materos)의 경전을 모두 외워야만 하오. 그걸 다 외운 후, 버려진 신전으로 가서 성화를 옮겨와야 하는데 그 버려진 신전 또한 이곳 근처에 있다오.”

브런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에? 성녀가 신전으로 가면 끝나는게 아니었습니까?”

솔페른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성화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새 불이 필요하지 않겠소? 그 새 불은 버려진 신전으로 가서 가져오는 것이오. 플라투스께서 승천하셨던 신전아래에는 불길이 치솟고 있는데 그곳의 불을 가져와야 하오.”

브런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걱정이로군요. 만약 그 전에 기가비어턴이 공격해오면…… 이런 병사들의 칼과 창은 아무런 효용이 없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기가비어턴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걱정마시오. 아비누스폐하께서는 기가비어턴을 해치우기 위해 저걸 보내셨으니까 말이오.”

브런트는 솔페른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뭐, 뭡니까? 저게.”

브런트의 시선은 거대한 십자궁을 향하게 되었다. 그 십자궁은 너무나 거대했는데, 사람이 들고 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마차에 실린 채로도 십자궁의 프로드는 바깥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거대했다. 솔페른이 대답하였다.

“발리스타(Ballista)라는 것이오. 본래는 높은 성벽을 공격하기 위한 것인데, 벽도 뚫어버릴 정도로 강렬하다오.”


-계속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레그다르입니다.

이제 아발리스트는 종착역에 거의 다 다다랐네요. 이제 최후의 전투를 남겨둔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저 결혼 작년에 했습니다.^^; 작년 3월 12일이요.. 그때 신혼의 단꿈에 젖어 무려 4개월간 연중한 적이 있었지요.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편에 화이트 휠윈드가 제비가르기라는 기술을 계속 못 쓰는데... 브런트에게 볼트를 어깨에 맞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카타나가 부러져서 못 쓰는 상황입니다. 자세히 적지 못한 것 같아서 좀 아쉽네요.

다음편이 최종화가 될 것 같네요. 오늘도 모두들 행복한 하루 되시길 빌며... 전 글쓰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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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79화: 내가 조준당하고 있다 +19 12.08.20 3,489 60 16쪽
78 -78화: 불타는 노웃그래스(Knotegrass) +22 12.08.17 3,541 58 16쪽
77 -77화: 시간싸움 +14 12.08.15 3,627 65 19쪽
76 -76화: 성녀의 정체 +17 12.08.13 3,605 67 17쪽
75 -75화: 리터너(Returner) +29 12.08.11 3,748 59 20쪽
74 -74화: 예언의 석판 +27 12.08.09 3,829 65 17쪽
73 -73화: 바라탄으로 +19 12.08.06 3,826 64 15쪽
72 -72화: 전설의 무기 +20 12.08.04 4,259 73 21쪽
71 -71화: 역설(逆說)의 갑옷 +16 12.08.03 3,964 64 20쪽
70 -70화: 남은건 너 하나 뿐이다. +21 12.07.31 3,827 60 29쪽
69 -69화: 문을 열어주세요. +16 12.07.29 3,939 6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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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도시의 비밀 +17 12.07.25 3,878 67 15쪽
66 -66화: 샤인스트림(Shinestream) +17 12.07.23 4,144 69 20쪽
65 -65화: 천공(天空)의 기사 +31 12.07.21 4,747 71 22쪽
64 -64화: 플라투스의 성녀(聖女) +52 12.04.22 6,086 96 18쪽
63 -63화: 진실문답 +46 12.04.18 5,897 101 23쪽
62 -62화: 대지의 신전 +30 12.04.12 6,350 98 25쪽
61 -61화: 바텐호스(Bartenhose) +34 12.04.02 6,793 108 21쪽
60 -60화: 가장 맞추기 힘든 표적 +31 12.03.28 6,675 104 23쪽
59 -59화: 사막의 폭풍우 +25 12.03.25 7,128 108 23쪽
58 -58화: 세레네의 성직자 +33 12.03.21 7,484 113 25쪽
57 -57화: 황제의 침공 +28 12.03.19 8,801 109 26쪽
56 -56화: 골드 드래곤의 거처 +35 12.03.15 9,067 129 26쪽
55 -55화: 의식을 막아라 +47 12.03.12 8,891 132 30쪽
54 -54화: 반지의 정체 +42 12.03.09 9,439 119 23쪽
53 -53화: 엘프들의 산 +58 12.03.06 9,885 128 24쪽
52 -52화: 텐 세컨즈(Ten Seconds) +52 12.03.03 9,768 146 23쪽
51 -51화: 사랑, 가시 그리고 갑옷(Love, Thorn, Mail) +35 12.02.29 9,842 110 24쪽
50 -50화: 우연한 재회 +46 12.02.26 10,218 117 22쪽
49 -49화: 밴시(Banshee) +33 12.02.23 10,746 125 23쪽
48 -48화: 버려진 자 +44 12.02.21 10,652 120 28쪽
47 -47화: 아발레스트(Arbalest) +39 12.02.18 10,870 121 21쪽
46 -46화: 무기를 손에 넣다 +32 12.02.15 10,510 109 21쪽
45 -45화: 마검(魔劍) 이퀄리브리온(Equalibrion) +20 12.02.13 10,595 99 23쪽
44 -44화: 구덩이 +29 12.02.10 9,996 108 20쪽
43 -43화: 황제의 무덤 입구 +25 12.02.07 10,348 105 21쪽
42 -42화: 문 미러(Moon Mirror) +26 12.02.04 10,154 102 16쪽
41 -41화: 스와이번 일행 +22 12.01.31 10,046 106 14쪽
40 -40화: 제분소를 나서다 +30 12.01.29 10,329 100 14쪽
39 -39화: 에뎁세스의 반지 +27 12.01.26 10,662 10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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