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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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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09.13 03:11
최근연재일 :
2012.09.13 03:11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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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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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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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77화: 시간싸움

DUMMY

“으흠! 흠!”

솔페른의 기침소리에, 에트린을 쳐다보던 테르지오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아…….”

“다행이오. 그대들이 성녀를 알고 있을 줄이야……. 다시 부탁드리오만 성녀를 찾는데 도움을 주실 수 있겠소?”

테르지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물론입니다. 사악한 드래곤의 야망을 막기 위해서 우리도 움직일 것입니다.”

“정말로 감사드리오. 우리 교단은 그대들에게 큰 빚을 졌소이다. 이걸로는 작겠지만 받아 주셨으면 하오…….”

솔페른이 복사들에게 눈짓을 하자, 한 복사는 석판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다른 복사 한명이 허리춤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걸 본 테르지오는 손바닥을 내밀며 거절하였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깐만요!”

후르시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후르시아의 시야는 벽에 걸린 거울에 향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거울은 석판이 맨 처음 발견될 당시, 그 위에 걸려있었던 타원형 거울이었다. 테르지오가 후르시아에게 물었다.

“뭔가 특이한 것이 있소?”

후르시아는 거울을 뚫어지게 응시한 채로 대답하였다.

“마법의 기운이 석판에게서 나오는 건줄 알았는데…… 사실은 저 거울에서 나오는 것이었어요. 상당히 강한 기운입니다.”

그녀는 석판을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의 기운이 계속 흘러나오자, 거울을 의심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거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로벤슈타인의 키가 작아서인지, 거울 또한 다소 낮은 곳에 달려있었다. 타원형의 거울에는 지하의 어두운 기운과, 붉게 타오르는 네 개의 화로가 반사되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해요…….”

에톤라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이상하샴? 사람 사는 곳에 거울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샴?”

하지만 테르지오는 후르시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니. 대개 밝은 곳에 거울을 설치하지 않나? 자기 얼굴을 보려고 하는 것인데…….”

브런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남자가, 그것도 외모에 신경쓰는 것 같지 않은 늙은이가…… 거울을 쓸 필요가 있었던 걸까요?”

후르시아는 거울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거울에는 금발을 가진 엘프 처녀의 얼굴이 비춰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얼굴 뒤로 거대한 눈동자가 드러나는게 아닌가? 동공이 세로로 찢어진 파충류의 눈동자였다.

“꺄아아아아!”

후르시아는 뒤로 넘어졌다. 테르지오가 깜짝 놀라 그녀를 부축하였다.

“괜찮소?”

“기, 기가비어턴이에요…….”

후르시아의 말에 모두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후르시아는 떨리는 입술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악한 존재가…… 우릴 지켜보고 있었어요.”


한편, 기가비어턴은 백라이트 다이아몬드에서 머리를 들어올렸다. 다이아몬드에는 놀라해하는 브런트 일행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테르지오의 철퇴가 날아들었고, 영상은 부숴졌다. 하지만 기가비어턴은 웃고 있었다.

“흐흐흐……. 에트린 라이틀로라고 했겠다?”

기가비어턴은 그의 거대한 몸을 돌리더니, 보물창고의 입구로 걸어갔다. 창고 주변에는 작은 괴물들이 헐겁게 채워진 사슬갑옷을 입고 있었다. 버그베어와 모습은 비슷했지만, 키는 훨씬 작았으며 체형은 가냘펐다. 이 괴물은 기가비어턴을 보자, 얼굴에 비해 큰 귀와 눈을 떨기 시작했다.

“주인님, 나가십니까요?”

기가비어턴은 자신을 보며 떨고 있는 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고블린들은 기가비어턴의 입에서 불길이라도 나올세라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기가비어턴은 고블린들에게 명령하였다.

“바텐호스를 부르거라.”

고블린들 중 체격이 그나마 큰 녀석이 대장인 것 같았다. 그는 부하들에게 손짓을 하며 바텐호스를 데려오라 명령하였다. 고블린들이 바텐호스를 데려오자, 바텐호스는 기가비어턴에게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하였다.

“부르셨습니까? 나의 주인님.”

“노웃그래스로 서둘러 가도록 하여라.”

바텐호스는 잠시 움찔하더니 기가비어턴에게 물었다.

“혹시…… 포틀랜드의 항구도시 아닙니까?”

“그렇느니라. 그대가 계략을 써서 약탈당하도록 한, 웨스트쇼어의 남쪽에 있는 도시로다.”

웨스트쇼어라는 말을 듣자 바텐호스는 고개를 떨구었다. 웨스트쇼어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 마라얀과 아들 브런트와 함께 가정을 꾸리던 곳이었다.

“웨스트쇼어……. 그곳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버렸지요.”

기가비어턴은 바텐호스의 말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불붙은 콧김을 뿜어냈다.

“크흐흐흐. 그대가 브라이튼의 귀족 둘을 이용해서 그곳을 침략토록 했기 때문에, 자하투가 궁에서 무덤의 지도를 훔쳐나올 수 있었도다. 하지만 이번엔 그대가 직접 가야 하느니라.”

바텐호스는 기가비어턴이 자신을 직접 보낸다는 말을 하자, 그 이유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성녀가 발견된 것입니까?”

“그렇느니라. 성녀의 이름은 에트린 라이틀로라고 하지. 그러나 지금은 마로프 자작부인으로 불리우니 그점 유의하며 붙잡아오도록. 대신 그녀의 몸에 조금의 상처도 입어선 안되느니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쭙고 싶은게 있습니다.”

기가비어턴은 그의 머리를 낮추어 바텐호스를 바라보았다. 고블린들은 기가비어턴의 머리가 내려오자 저만치 달아났다. 바텐호스는 기가비어턴의 불같은 숨결이 주변을 휘감고 있음을 느꼈다. 공포가 바텐호스의 몸을 떨게 하였으나, 바텐호스는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왜 짐이 가지 않는지 물어보려 한 것이냐?”

바로 코 앞에서 거대한 괴물의 머리가 질문한 것이다. 바텐호스는 침을 한번 삼키고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체스판의 나이트(Knight)는 왕의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느니라. 짐은 준비할 것이 따로 있으니 그대가 처리하라.”

“알겠습니다.”

기가비어턴은 몸을 다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노웃그래스까지는 한달은 걸릴 것이니라. 서두르도록 하라.”

바텐호스는 기가비어턴이 그의 놀라운 마법으로 자신을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궁금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받들어야 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병력을 수배하겠습니다.”

바텐호스가 몸을 돌려 나가자 기가비어턴은 고블린들을 불렀다.

“여봐라. 짐은 잠시 생각할 것이 있으니 문을 닫도록 하라.”

“네, 넷! 문을 닫아라! 닫아!”

기가비어턴이 그의 보물창고로 들어가자 고블린들은 철문을 붙잡고 힘껏 밀기 시작했다. 3층건물높이의 쇠철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고 말았다.

“로벤슈타인이 쓰러졌다니…….”

기가비어턴은 금화더미에 또아리를 틀고는 로벤슈타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강력한 동맹 하나가 사라진 것이었다. 기가비어턴은 머릿속으로 브런트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계획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녀만 가지고는 부족해……. 방해자들을 확실히 없애는 방법을 강구해야 해…….”

천년의 지혜를 가진 이 사악한 생명체는 그의 기민한 두뇌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기가비어턴은 뭔가가 떠오른 듯

“잠깐! 브런트의 여자친구 이름이…….”


× × × × ×


“베르니타!”

브런트는 땀범벅이 된 채로 침낭에서 몸을 일으켰다.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 떠 있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자, 플라투스의 사제들과 테르지오가 잠자는 모습이 들어왔다.

“아웅…… 샴을 무시하지 마샴…….”

에톤라크의 잠꼬대도 들려왔다. 브런트는 목덜미에 붙은 모래가 까끌거리는 것을 느꼈다. 사막의 노숙은 모래와의 사투였다. 모래는 브런트의 축축한 목덜미와 머리카락, 침낭에 가득 끼어 있었다. 브런트는 모래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불길한 꿈이군…….”

브런트는 잠이 오질 않았다. 그는 침낭에서 일어서더니 캠프 주변가로 걸어갔다. 베르니타가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베르니타가 누구죠?”

브런트는 화들짝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 브런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휴우…… 누군가 했더니 후르시아님이시로군요.”

인간인 브런트와는 달리, 후르시아는 어둠속에서 브런트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브런트에게 다시 물었다.

“베르니타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가요?”

브런트는 얼굴을 붉히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아…… 네…… 저기…… 북쪽에 있는 처녀의 이름이에요.”

“그녀를 사랑하나 보군요.”

브런트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뇨! 아뇨! 사랑하는 건 아니고요!”

브런트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수줍음 많은 이 북방청년은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걸 부끄러워하고 있던 것이었다. 말문이 막힌 브런트는 후르시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그런데…… 후르시아님은 왜 안자고 계시는지요?”

“모르셨나요? 엘프족은 잠자지 않아요.”

“아!”

늘 잠을 자던 브런트는 후르시아가 잠자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었다. 사실, 엘프족은 잠을 자지 않고 긴 명상을 통해 기운을 회복한다. 사실 지금까지 일행이 잠들었을 때 늘 그들을 지켜주고 있던 것은 후르시아였던 것이었다.

“…….”

두 사람은 아무말 없이 하늘의 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후르시아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베르니타에게 사랑한다고 잠꼬대를 하더군요.”

브런트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흠! 흠! 제…… 제가 그랬었나요?”

“그래서 말인데 궁금한게 있어요.”

“네? 제게 궁금한게 있다구요? 그래봤자 좋은 답변 얻기 힘드실거에요. 아무리 봐도 저보단 마법사인 후르시아님께서 아는게 더 많으…….”

“사랑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묻고싶은거에요.”

브런트는 후르시아를 쳐다보았다. 어둠속이라 그녀의 얼굴은 정확히 바라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빛나는 눈은 브런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후르시아가 질문을 던졌다.

“인간과 이종족(異種族)간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브런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이제껏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던 것이다. 브런트는 별을 잠시 응시하더니, 후르시아에게 대답하였다.

“전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죠?”

후르시아의 미세하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 작았기에 브런트는 그녀의 감정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에 스와이번이라는 사악한 마법사의 꾐에 빠져서 죽을뻔한 적이 있더랬죠. 황제의 무덤에서 이퀄리브리온이라는 검을 찾기 위함이었어요. 나중에 알아낸 건데, 스와이번의 연인인 아이리엘은 하프엘프라 수명이 길었어요. 둘은 젊었을 때 사랑을 나누었지만, 스와이번은 칠십이 넘은 노인이 되어있었고 아이리엘은 여전히 젊었지요. 그게…… 별로 좋아 보이질 않더군요. 어쨌든 스와이번은 젊음을 찾기 위해…….”

“알겠어요.”

후르시아가 브런트의 말을 끊자, 당황한 브런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린 듯,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는 없어지고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다.

“어서 자도록 해요. 내일도 긴 여행을 떠나야 할테니까요.”

브런트는 후르시아에게 인사를 건넨 후, 다시 침낭에 들어갔다. 그는 다시 잠을 청하면서 후르시아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인간들의 생각이란…….”


다음날 아침, 사제단과 브런트일행은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솔페른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그대들 덕택에 석판도 찾았고 성녀의 위치도 쉽게 찾을 수 있었소. 다시금 감사의 말을 건네드리오. 그대들이 돈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알기에 이것을 가져가시오. 전리품은 상관없지 않겠소?”

솔페른은 로벤슈타인의 거처에서 찾아낸 물건들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마법사의 거처에서 찾아낸 물건들은 대개가 마법두루마리였다. 브런트 일행은 이것마저 거절할 수가 없었기에, 기쁘게 전리품을 받았다. 솔페른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노웃그래스로 갈 예정이시오? 전서구를 보내 폴라리스(Polaris)의 사제들에게 연락은 하겠소만…….”

에톤라크가 말했다.

“여기서 노웃그래스까진 너무나 머샴. 게다가 기가비어턴이 성녀의 위치를 안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샴. 때문에 우린 로메리온에게 가야 하샴. 로메리온의 마법이면 노웃그래스로 쉽게 갈 수 있을거샴.”

하지만 테르지오는 고개를 저었다.

“로메리온님께선 마법을 쓰실 수 없을 것이네.”

“왜샴?”

“대지의 신전 내부에서 마법을 쓰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어. 브런트가 로메리온님의 마법을 사용했으니 로메리온님께 그 저주가 임했을거야. 때문에 우린 여기서 더 남하하여 배를 타야하네. 뱃길로 포틀랜드로 가면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지.”

테르지오의 말에 에톤라크가 놀라 소리쳤다.

“그럼 큰일이샴! 기가비어턴이 더 빠르게 성녀에게 갈 것이 분명하샴!”

“아니. 기가비어턴도 신전에서 마법을 썼으니 마법을 쓰지 못해. 그러니 지금부터 시간 싸움이 될 것이네.”

브런트가 테르지오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아반다나여신님의 신전으로부터는 도움을 얻지 못하는 건지요? 그 무지막지한 녀석을 상대하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 우리는 전서구도 없고…….”

“제가 로메리온님께 가도록 하겠어요.”

후르시아의 말에 일행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테르지오가 손바닥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것 묘안이요! 에톤라크와 후르시아양은 로메리온님께 가도록 하시오. 에톤라크가 길을 잘 알테니 최대한 빠르게 갈 수 있을 것이오.”

테르지오는 웃었으나 후르시아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한편 브런트는 깜짝 놀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잠깐만요! 후르시아님이 없으면 우리는 위기에 빠질 것 같아요. 전 반대입니다.”

“아뇨. 제가 따로 가는게 더 좋아요. 로벤슈타인의 마법두루마리를 보았는데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아요. 로메리온님께가서 마법을 지도받을 수 있다면 그대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해요.”

테르지오는 후르시아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었다.

“고맙소! 그리고 가는길에 반드시 대지모신님의 신전에 들려 경과를 말씀드려주시오!”

후르시아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브런트일행은 둘로 나뉘게 되었다. 테르지오와 브런트(와 리터너)는 뱃길을 통해 노웃그래스로 가게 되었으며, 에톤라크와 후르시아는 로메리온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한편 후르시아는 테르지오가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투스텝에 탄 테르지오가 손을 흔들었으나 후르시아는 마주 손을 흔들지 않았다. 그리고 에톤라크는 그녀가 혼잣말을 하는 걸 얼핏 듣게 되었다.

“인간과 하프엘프의 사랑이라…….”

에톤라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샴? 인간과 하프엘프가 사랑하는 거샴? 그럼 뭐가 태어나는 거샴? 하프하프엘프(Half-Half-Elf)샴?”


× × × × ×


한달 후, 나뭇잎에는 갈색 빛이 물들고 있었다. 북방의 가을은 다른 곳보다도 일찍 찾아왔던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 아래의 저택…… 저택 옆에는 제분소 건물이 크게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카노트와 베르니타는 기계를 수리하고 있었다. 한편, 에트린은 제분소 한편에서 팔짱을 끼고는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제 곧 수확기가 다가오는데 기계가 말썽이라뇨? 예전엔 이런 일이 없었잖아요?”

카노트가 멎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나으리. 나무가 건조되면서 뒤틀리기 때문입니다요. 카일런 무리들이 제분소를 태워먹는 바람에 우리가 급하게 다시 만들었지 않습니까? 완전히 건조된 지금, 다시 수리를 마치면 앞으론 이런 일은 없을 것입죠. 네.”

에트린은 시선을 올려 베르니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톱니 위에 올라가 카노트를 돕고 있었으며 작업하기 편하게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바지 위로 그녀의 육감적인 뒷태가 드러나고 있었다. 에트린은 베르니타를 불렀다.

“베르니타양.”

“네. 주인님.”

베르니타가 고개를 돌리며 에트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작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긴 머리를 틀어올린 상태였다. 하지만 몇 가닥 길게 내려온 금발은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목덜미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베르니타는 홍조를 띄우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것을 본 에트린은 그녀의 젊음이 부러움을 넘어 시샘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에트린은 표정을 감추며 질문을 던졌다.

“브런트군으로부터 소식은 없나요?”

베르니타는 그녀의 긴 목을 기우뚱 거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 그러게요…… 아직 없네요.”

“매일 기도하도록 해야 할 것이에요. 남자들은 항시 여러 여자들을 눈여겨보는 법이니 말이죠. 여인의 젊음은 한 순간이니 늘 긴장해야 해요.”

순간 베르니타의 표정이 굳었다. 카노트는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으리. 이곳은 먼지가 많이 날리니 댁에 들어가 쉬셔야지요.”

“흥. 됐어요. 바깥양반은 노쓰웨이의 귀족들과 회동을 하러 갔죠. 그이는 제분소사업이 어떻게 되는지 관심도 없어요. 결국 돈을 지키는 건 여자들 일이니 내가 게으름 피우게 생겼어요?”

그때 제분소의 문이 부서지듯이 열리는게 아닌가? 그리고 백색 로브를 입은 사제들이 들이닥쳤다. 에트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제들에게 말했다.

“플라투스의 형제님들이시군요. 평안을 기원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쳐도 되는 건가요? 저는 카르타스를 신봉하지만 때때로 플라투스교단에 헌금도 내고 있어요.”

붉은색 콧수염의 사제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에트린 라이틀로님이시죠!?”

“아, 그건 제 처녀때 이름이고 지금의 저는 마로프자작부인…….”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피하십시오!”

에트린은 노란드레스의 허리부분에 손을 올리며 되물었다.

“이보세요. 여긴 포틀랜드고 제가 피할 이유는 없어요. 오히려 제게 빚진 사람들이 저를 피해야 할 텐데?”

그때,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먼 발치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베르니타는 이 비명소리가 웨스트쇼어의 새벽에 울렸던 소리와 무척이나 비슷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에트린에게 소리쳤다.

“적국의 침략인가봐요!!”

플라투스의 사제는 고개를 세차게 젓더니 에트린에게 말하였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얼른 피하셔야 합니다! 기가비어턴의 부하들이 당신을 잡으러 왔습니다!”

“기가비어턴? 그건 어디 조직이죠? 그리고 그들이 저를 왜 잡으려 하나고요?”

사제들은 난처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편 베르니타는 제분기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럴 때는 빨리 피하는게 상책이에요! 얼른 나가자구요!”

한편,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계속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레그다르입니다.

제 설명이 부족할수도 있는데요, 바텐호스가 왜 페이건을 부추켜서 브런트의 고향을 침략하게 했냐면……. 노쓰웨이의 왕이 군세를 이끌고 그리로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왕궁의 경비가 허술해지고, 자하투가 에뎁세스의 지도를 꺼내올 수가 있었으니까요. 자하투 기억나시는지요? 흑인 몽크요^^;
기가비어턴은 그의 계획을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한 모양인 것 같습니다. 다만, 바텐호스는 브런트와 마라얀이 있는 걸 알면서도 어째서 웨스트쇼어를 공격하게 했을까요? 그건 차후에 밝혀집니다.
그리고 기가비어턴은 지금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텐호스를 순간이동으로 보내지 못한 것이지요.
D&D룰북에 의하면 엘프족은 잠을 안자고 명상을 취한다고 하더군요. 긴 시간이지만 3~4시간정도면 체력을 모두 회복한다고 하네요.

오늘 비가 무진장 많이 왔지요?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오늘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느라 하늘에서 눈물을 흘려주셨나봅니다. 그 눈물이 우리나라를 풍요롭게 적셔주길 기원하며…… 이만 물러갑니다.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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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전설의 무기 +20 12.08.04 4,263 73 21쪽
71 -71화: 역설(逆說)의 갑옷 +16 12.08.03 3,966 64 20쪽
70 -70화: 남은건 너 하나 뿐이다. +21 12.07.31 3,831 60 29쪽
69 -69화: 문을 열어주세요. +16 12.07.29 3,941 64 20쪽
68 -68화: 흡혈귀(Vampires) +19 12.07.27 4,089 69 20쪽
67 -67화: 도시의 비밀 +17 12.07.25 3,881 67 15쪽
66 -66화: 샤인스트림(Shinestream) +17 12.07.23 4,146 69 20쪽
65 -65화: 천공(天空)의 기사 +31 12.07.21 4,751 71 22쪽
64 -64화: 플라투스의 성녀(聖女) +52 12.04.22 6,088 96 18쪽
63 -63화: 진실문답 +46 12.04.18 5,902 101 23쪽
62 -62화: 대지의 신전 +30 12.04.12 6,353 98 25쪽
61 -61화: 바텐호스(Bartenhose) +34 12.04.02 6,798 108 21쪽
60 -60화: 가장 맞추기 힘든 표적 +31 12.03.28 6,678 104 23쪽
59 -59화: 사막의 폭풍우 +25 12.03.25 7,130 108 23쪽
58 -58화: 세레네의 성직자 +33 12.03.21 7,487 113 25쪽
57 -57화: 황제의 침공 +28 12.03.19 8,804 109 26쪽
56 -56화: 골드 드래곤의 거처 +35 12.03.15 9,071 129 26쪽
55 -55화: 의식을 막아라 +47 12.03.12 8,893 132 30쪽
54 -54화: 반지의 정체 +42 12.03.09 9,442 119 23쪽
53 -53화: 엘프들의 산 +58 12.03.06 9,889 128 24쪽
52 -52화: 텐 세컨즈(Ten Seconds) +52 12.03.03 9,772 146 23쪽
51 -51화: 사랑, 가시 그리고 갑옷(Love, Thorn, Mail) +35 12.02.29 9,845 110 24쪽
50 -50화: 우연한 재회 +46 12.02.26 10,221 117 22쪽
49 -49화: 밴시(Banshee) +33 12.02.23 10,749 125 23쪽
48 -48화: 버려진 자 +44 12.02.21 10,654 120 28쪽
47 -47화: 아발레스트(Arbalest) +39 12.02.18 10,873 121 21쪽
46 -46화: 무기를 손에 넣다 +32 12.02.15 10,512 109 21쪽
45 -45화: 마검(魔劍) 이퀄리브리온(Equalibrion) +20 12.02.13 10,598 99 23쪽
44 -44화: 구덩이 +29 12.02.10 10,002 108 20쪽
43 -43화: 황제의 무덤 입구 +25 12.02.07 10,350 105 21쪽
42 -42화: 문 미러(Moon Mirror) +26 12.02.04 10,157 102 16쪽
41 -41화: 스와이번 일행 +22 12.01.31 10,051 106 14쪽
40 -40화: 제분소를 나서다 +30 12.01.29 10,332 100 14쪽
39 -39화: 에뎁세스의 반지 +27 12.01.26 10,665 10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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