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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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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09.13 03:11
최근연재일 :
2012.09.13 03:1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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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2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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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51화: 사랑, 가시 그리고 갑옷(Love, Thorn, Mail)

DUMMY

브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브런트는 테르지오의 백마 투스텝이 보이지 않음을 알아챈 것이었다.


“투스텝이 안보입니다. 어디 있는지요?”


테르지오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 투스텝은 요 근래 싸움이 없어지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그래서 자신의 차원(Plane)으로 돌려보냈지. 자네도 알잖는가? 그 녀석은 이 차원의 생명체가 아냐.”


브런트는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초식동물이 싸움이 없어져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테르지오의 말이 들려왔다.


“그동안 계속 금식기도를 해서 힘이 없지만 지체말고 출발해야 할 듯 하네. 그런데…… 밴시의 울음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나?”


이미 테르지오가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기에 브런트는 그를 따라가며 대답해야 했다.


“이곳으로 올라오기 전에,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의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먼 발치에서 들렸지만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테르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서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 더욱 공포스럽지. 그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 즉시 죽고 만다네.”


“그…… 즉시…… 말입니까?”


브런트는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죽는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속에 공포감이 조금씩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테르지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 즉시 죽지…… 하지만 겁먹지 말게. 밴시가 그 끔찍한 울음을 낼 수 있는 힘은 하루에 한번 뿐이니까. 자네는 오늘 이미 밴시의 울음소리를 한번 들었다고 했지? 그럼 밴시는 오늘 하루종일 울음을 낼 수 없어. 그러니 지금이 바로 그 사악한 생명체를 분쇄할 적기이지.”


길을 가던 테르지오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브런트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자네는 사후세계가 있는 것을 믿나? 그러니까, 살아생전의 행동으로 죽음 이후에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믿냔 말이지.”


브런트는 흡혈귀인 바르쿠스와 싸운 적이 있었지만,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삶이 평범한 사람에게도 있을거란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다. 브런트에겐 언데드란 완전히 죽지 못한 생명체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런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후세계가 있는 것을 믿어야 하나요?”


“당연하지. 만약, 사후세계가 없다면…… 이 세상 어차피 죽을거 왜 사는가? 오늘 죽던, 내일 죽던…… 백년 후에 죽던 살면서 고통을 당하고 죽을텐데…… 허무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브런트는 테르지오의 인품을 신뢰하고 있었을 뿐이지 테르지오의 종교관마저 신뢰하고 있지는 않았다. 때문에 그는 대답치 아니하고 테르지오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테르지오는 브런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브런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사후세계가 있음을 믿게. 죽음을 두려워 말고 의롭게 사는거야. 언젠간 죽을 목숨, 떳떳하게 살아야 해. 우리가 죽는다 하더라도 사후에 큰 축복이 있을 것이네. 영원한 축복이 말이지…….”


말을 마친 테르지오는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브런트는 테르지오가 갑자기 왜 이런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한편, 테르지오는 브런트가 들었다는 밴시의 목소리가 있는 곳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길을 갔을까? 능선을 두 개나 넘을 정도의 오랜시간동안 두 사람은 계속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테르지오는 아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브런트…… 이게 보이는가?”


브런트는 어둠 때문에 아래를 잘 쳐다볼 수 없었다. 그는 야광목걸이를 내밀어 테르지오의 발 아래쪽을 비추었다. 초록색의 불빛 사이로 노루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노루군요…… 하지만 이미 죽었습니다.”


“잘 보게. 상처가 있는지.”


브런트는 고개를 저었다.


“상처는 없습니다. 신기하군요…… 상처도 없이 노루가 죽다니.”


“짐승은 먹이를 얻기 위해 사냥을 하지. 뜯어먹힌 짐승은 처참한 몰골이 되지만 그건 자연의 법칙이야. 하지만 이렇게 깨끗하게 생명이 죽은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야. 이는 것은 먹이 때문이 아니라는 거지. 이 노루는 밴시에게 희생당했네.”


그제서야 브런트는 밴시가 있는 곳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 테르지오는 계속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나무들을 봐…… 모두 시들었어. 밴시 그 사악한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지. 밴시의 울음을 들은 모든 생명체는 동, 식물을 가리지 않고 저렇게 된다네.”


테르지오의 말대로, 울창해야 할 숲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거미줄처럼 엉겨있었다.


“브런트, 십자궁을 장전하게. 싸움이 곧 시작될거야.”


브런트는 황급히 권양기를 감기 시작했다. 그는 권양기를 감다가 테르지오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쩌면 매커드경은 그토록 언데드에 대해 잘 아시는지요? 이곳 수색대들은 모두 밴시 그림자도 찾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테르지오는 주변을 경계하며 브런트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우리 매커드가문은 대대로 언데드헌터(Undead Hunter)를 배출하는 가문이거든.”


“언데드헌터요?”


“그래. 대지여신 아반다나님의 뜻을 받들어, 대지를 더럽히는 언데드를 해치우는게 우리 가문의 일이야. 하지만, 언데드를 해치운다는 숭고한 뜻은 할아버지 이후로 끊겨버리는 듯 했어. 나의 아버지께서는 언데드 사냥보다는 출세에만 관심이 있으셨거든, 하지만 삼남인 나 테르지오가 간신히 할아버지의 유지를 잇게 되었지. 대신 아버지와는 사이가 멀어졌지만 말이야.”


말을 마친 테르지오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브런트는 테르지오에게 더 이상 자세한 가정사를 물어선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더 이상 자세히 묻지는 않고, 아발레스트를 들어 주변을 경계하기만 할 뿐이었다.


브런트는 한발한발 앞으로 가다가, 나무주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로 보이는 이 사람은 이퀄리브리온에 의해 생명이 빨린 것처럼 바짝 말라붙어 있었다. 브런트가 물었다.


“이…… 이 여자도 밴시에게 당한 걸까요?”


테르지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그렇다네. 밴시를 해치우고 이 여인의 명복을 빌어주세. 그게 현세에 남은 우리가 할 일이야.”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 전진하면서 두구의 시신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시신들도 미이라처럼 비쩍 말라붙어있었다.


“브런트…… 놀라지 말게나.”


“뭘 말입니까?”


“밴시는 자네 상상보다도 빠르거든…….”


테르지오의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나무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이 그림자는 엄청난 속도로 나무사이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매우 큰 그림자였는데, 이 큰 그림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테르지오와 브런트의 근처를 맴돌기 시작했다.


“저게 밴시야! 브런트!”


테르지오의 말과 함께, 브런트는 밴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나풀거리는 긴 머리카락과 나풀거리는 의복들…… 이 의복의 디자인은 브런트가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엘프식의 복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밴시의 몸이 커 보이는 것은 머리카락과 하늘거리는 옷 때문이었지, 밴시의 몸 자체는 인간보다 다소 작았다.


결국 브런트는 밴시와 시선을 마주치게 되었다. 밴시의 얼굴은 매우 아름다웠으나, 눈에는 섬뜩한 증오의 빛이 뻗어나왔다. 아름다움과 증오가 뒤섞인 언밸런스한 얼굴은 브런트를 공포의 도가니로 빠뜨리고 말았다. 브런트는 가슴부터 몸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허헉!”


브런트가 멎어버리자, 밴시는 사냥감이 굳은 것을 발견하고는 한바퀴 빙 돌아 브런트에게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테르지오가 없는 방향에서 브런트를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브런트는 공포로 인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테르지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이 두려운가!? 브런트!?”


순간, 브런트의 뇌리에 테르지오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사후세계가 있음을 믿냐 했던 테르지오의 말…… 그 말들이 순식간에 브런트의 머릿속으로 빨려들어가며 브런트는 테르지오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어차피 죽을거, 떳떳하게 죽으면 사후에 축복이 임하리!’


그러자 갑자기 브런트의 가슴에서 용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테르지오의 말은 묘한 힘을 불러일으켜서 브런트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공포가 사라진 브런트는 황급히 몸을 뒤로 눕히면서 아발레스트를 발사하였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브런트의 볼트를 맞은 밴시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결국 밴시는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면서도 계속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밴시의 거친 몸부림도 이 볼트의 위력을 이겨낼 순 없었다. 이 볼트는 언데드에게 정말로 치명적인 무기였던 것이었다. 밴시의 몸부림은 점점 사그라들더니, 그 빛나는 몸체또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밴시는 소멸했던 것이었다. 일어나는 브런트에게 테르지오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자네…… 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맞추었는가? 사실, 그것까진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사실 브런트는 이 밴시보다도 더 빠른 움직임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흡혈귀 바르쿠스였다. 바르쿠스와 싸웠던 브런트에겐 밴시의 움직임은 결코 빠른 움직임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흡혈귀와 싸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흡혈귀는 밴시보다 더 빨랐어요.”


브런트의 말에 테르지오는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뭐라구? 자네는 늘 나를 놀라게 하는구만…… 흡혈귀와 싸웠다고? 그럼 자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흡혈귀와 싸워서 살아남았다는 것이겠지?”


브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커드경이 주신 볼트가 아니었으면 제가 죽었을 것입니다.”


“아…… 흡혈귀와 싸웠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군. 하지만 지금은 밴시에게 당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주는게 우선이니 그 이야기는 마을로 내려가서 듣자구.”


테르지오는 밴시에게 살해당한 사람들 앞으로 가더니, 무릎을 꿇고는 대지여신의 축복과 망자들의 명복을 기원하였다. 한편, 브런트는 주변을 살피다가 돌덩이 아래에 초록색으로 빛나는 물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브런트가 가까이가자, 돌덩이 아래에 사슬갑옷이 흙과 함께 묻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록색의 빛은 사슬갑옷이 야광목걸이의 빛을 반사했기 때문에 초록색으로 보인 것이었다.


브런트는 사슬갑옷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사슬의 고리는 보통의 사슬갑옷보다도 훨씬 촘촘했다. 브런트는 흙을 털어내며 사슬갑옷을 돌덩이 아래에서 빼내었다. 순간 브런트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뭐, 뭐가 이렇게 가볍지? 철로 만든 거 맞나?’


흙이 모두 털어져 내리자, 완전한 모습의 사슬갑옷이 나타났다. 이 사슬갑옷의 무게는 실로 가벼워서, 보통의 사슬갑옷의 절반 무게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브런트는 갑옷 벨트에 글자가 씌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 가시, 그리고 갑옷?(Love, Thorn, Mail:러브쏜메일)'


문법에 전혀 맞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브런트는 자기가 아직 글자를 온전히 배우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며 계속 글자의 뜻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런트는 이 글자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브런트는 벨트 아래에도 작은 글귀가 씌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달콤한 사랑 안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으리-


그때 테르지오의 말이 들려왔다.


“아…… 그게 밴시가 지키던 보물이었나?”


어느덧 기도를 마친 테르지오가 브런트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한편, 브런트는 테르지오에게 물었다.


“이 글귀를 보십시오. 전 전혀 이해할 수 없군요.”


테르지오는 받아든 사슬갑옷이 극도로 가벼운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가볍고 튼튼하군. 이건 엘프식 사슬갑옷이야. 엘프들의 기술로 만들어진 귀한 갑옷이지.”


테르지오는 갑옷을 다시 찬찬히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밴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물에 미련을 가지고 있어. 아마도 이 밴시는 먼 곳에서 처형된 엘프였을거야. 증오를 담고 죽은 이 사악한 엘프는 원혼이 되어 자신의 보물이 있는 이곳까지 돌아오는 중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이 밴시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고……. 사실, 대부분의 밴시는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거든. 이 밴시는 특이하게도 행동반경이 넓었다네.”


잠시 후, 테르지오또한 ‘러브쏜메일’이라는 암호같은 글귀를 발견하였다. 테르지오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도 이 말의 뜻은 알 수가 없지만…… 밴시가 찾아올 정도면 대단한 보물임에 분명해. 한번 실험을 해보자구.”


테르지오는 러브쏜메일을 바닥에 펼쳤다. 그리고 주변에 떨어진 나무를 집어들어 곤봉처럼 내리쳤다.


-파아아악!


곤봉에 맞은 러브쏜메일은 마치 사람이 속에 갑옷을 입은 것처럼 순식간에 부풀어버리는게 아닌가? 테르지오는 갑옷 속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시(Thorns)로군……. 갑옷을 입은 사람이 공격을 받으면 가시가 튀어나오게 되어있어.”


브런트는 갑옷의 속을 보고는 놀라고야 말았다. 갑옷의 안쪽에는 무수한 가시들이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옷이 부푼 것은 가시때문이었던 것이었다. 테르지오는 손가락으로 가시를 매만졌다.


“엉겅퀴류의 가시야……. 그나저나 가시들이 굉장히 큰데, 쇠사슬 속에 어떻게 집어넣은 거지? 마법사가 갑옷을 만들었던 것 같군.”


어느덧, 갑옷 속에 자라난 엉겅퀴가시들은 다시금 사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걸 본 브런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 엘프가 생전에 왜 처형당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걸로 동족을 죽였을 거에요.”


“그런데…… 왜 사랑이라는 말이 갑옷에 들어간거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만들었을까? 이해가 안되는군…….”


테르지오는 벨트 아래에 적힌 글귀또한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뭔가 더 발견한 듯, 조심스레 벨트 아랫부분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벨트 버클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안에는 메모지가 들어있었다.


“그 목걸이를 가까이 비춰주게.”


브런트가 야광목걸이를 메모지에 가져다대자 깨알같은 글자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브런트는 이 글자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테르지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엘프들의 문자야. 내가 읽어보겠네.”


테르지오는 메모지의 글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호네로스(Honeross), 내가 사랑했던 그대여. 나는 모든 기술을 이용하여 당신을 위해 이 갑옷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나를 저버리고 미리엘(Miriel) 그 머저리같은 여자와 놀아났지요. 당신이 이 갑옷을 입기 전에 이 메모지를 발견하기를 바래요. 만약, 이 메모지를 발견하였다면 죽지는 않을테니까……. 당신을 보호하려 만든 갑옷이 당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면 놀랄 테지요. 제발…… 부디 이 메모지를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당신과 함께 죽고싶은 탈리드라(Talidra)로부터-


브런트는 이 메모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사랑하는데 죽인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이 메모지를 발견해서 남자가 살기를 바라잖아요? 탈리드라 이 여자는 과연 호네로스가 죽기를 바랬을까요? 아니면 살기를 바랬을까요?”


브런트는 갑자기 테르지오가 고개를 수그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테르지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테르지오의 눈가에 눈물이 약간 맺혀있었다.


“이 갑옷의 의미를 알겠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갑옷이 아니야. 그를 지키려고 만든 갑옷이지.”


“네? 어째서입니까? 이 갑옷을 입고 공격한번만 받아도 가시에 찔려 죽을텐데요?”


테르지오는 갑자기 사슬갑옷의 벨트를 풀더니 갑옷을 뒤집기 시작했다. 옷처럼 찰랑거리는 이 사슬갑옷은 손쉽게 뒤집혀졌다. 그리고, 뒤집혀진 갑옷에 다시 벨트를 다니까 원래의 모습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 테르지오는 다시 나무를 집어들더니 러브쏜메일을 내리쳤다.


-콰지지직!


갑옷에서 솟아나온 가시들은 테르지오가 휘두른 나무를 찌르는 것도 모자라 완전히 쪼개버렸다. 브런트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고, 테르지오는 우두커니 서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원래 갑옷의 용도가 이거였어. 하지만 연인이 변심을 하자 갑옷을 뒤집어 준거야. 메모지가 그대로인걸 보니 연인이 죽은 모양이군. 연인이 죽자 이 갑옷을 만든 탈리드라는 처형당했고, 밴시가 되었던거야. 결국, 그녀는 연인 호네로스를 사랑하기도, 증오하기도 했던 셈이야. 아…… 사랑과 증오는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였어. 깊은 사랑이 깊은 증오로도 바뀌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네. 그리고…… 나도…… 겨우 이런 사람뿐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고나 할까?”


테르지오의 눈이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결코 눈물 때문이 아니었다. 테르지오는 에트린에 관한 아픈 기억을 완전히 벗어버리게 되었다. 작은 사랑에 울고불고 했던 그 자신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한 것이었다. 브런트는 테르지오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엘프들의 세계는 끔찍하군요. 연인을 죽였다고 엘프가 밴시로 되다니요?”


“아니, 사랑은 사랑이고 악인은 악인이야. 그녀가 밴시가 된 것으로 보아, 평소에도 악행을 많이 저지른게 분명해.”


순간, 브런트는 스와이번과 아이리엘을 떠올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모두 악인이 아니었던가? 악인들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 사랑은 매우 좁은 의미의 사랑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브런트, 이 갑옷은 자네가 입도록 하게.”


테르지오의 말에 브런트가 놀라 되물었다.


“네에!? 저 가시가 튀어나오는 무시무시한 갑옷을 입으라고요?”


“위험해보이지만 알고보면 저만큼 안전한 갑옷도 없어. 위기의 순간마다 저 가시가 자넬 지켜줄걸세. 게다가…… 자네 또한 지켜야할 ‘사랑’이 있지 않나?”


브런트는 베르니타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야 하는 자신의 과업또한 떠올리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브런트는 그의 아버지를 증오해야 할지 사랑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던 터였던 것이었다. 마치 러브쏜메일을 만든 탈리드라와 같은 상황이었다. 브런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은 러브쏜메일을 입게 되었다. 몸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행동에 거의 제약을 주지 않을정도로 활동성을 주는 갑옷에 브런트는 감탄사를 연발할 뿐이었다.


잠시 후, 밴시를 해치운 브런트와 테르지오는 산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내려오면서 테르지오는 브런트에게 흡혈귀와 싸운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결국 브런트는 스와이번 일행을 만나 모험을 했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하투와 싸워 이퀄리브리온과 에뎁세스의 반지를 얻은 이야기도 했으며 황제의 무덤에서 만난 흡혈귀 바르쿠스와 싸웠던 이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포탈로 탈출하여 레드드래곤 기가비어턴에게 이퀄리브리온을 빼앗긴 이야기까지 하자 테르지오의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테르지오는 길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큰일이군……. 로메리온(Romerion)을 찾아가야해…….”


“로메리온? 그게 누구죠?”


하지만 테르지오는 브런트의 질문에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다.


“브런트…… 드래곤과 정면으로 맞딱드린 자네야말로 드래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수 있지 않았나?”


“맞습니다. 게다가 드래곤은 마법까지 부릴 줄 알아요.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렵군요.”


테르지오는 다시 브런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강력한 드래곤이 왜 세상에 활개치지 않는지 아는가?”


순간 브런트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그러게요? 그 정도 힘과 능력이라면…… 인간들을 모두 멸망시키고 남을 것 같은데…….”


“자네가 만난 것은 레드드래곤이네. 하지만 드래곤은 레드드래곤만 있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그 드래곤들 사이에는 힘의 균형이 존재한다네.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지. 로메리온은 기가비어턴과 힘의 균형을 이루는 골드 드래곤(Gold Dragon)이네. 그를 찾아가서 이 사실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만 해. 로메리온은 선하니 반드시 도움을 줄 것이네.”


“그런데…… 그 골드드래곤 로메리온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지요?”


테르지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네. 하지만 자네가 가지고 있는 에뎁세스의 반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지.”


그제서야 브런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에뎁세스의 반지를 떠올렸다.


“이, 이 반지의 사용법을 아시는지요?”


“아니. 하지만 유능한 마법사를 알고 있지. 그녀가 반지의 사용법을 알려줄걸세. 그러니 나랑 같이 가줬으면 하는데……. 힘들지 않다면 같이 가주지 않겠나?”


오히려 그건 브런트가 바라는 바였다. 브런트는 이 반지를 이용하여 그의 아버지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브런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무덤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덤이라는 말을 들은 테르지오는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화들짝 놀라며 브런트에게 물었다.


“잠깐! 자네…… 황제의 무덤 포탈에 화로가 두 개 있다고 했었지?”


“네. 하나는 포탈을 여는 화로였고 다른 하나는 포탈을 닫는 화로였습니다.”


“그, 그럼…… 포탈을 닫는 화로 또한 가동 시켰는가?”


“아니요. 탈출하느라 그럴 경황이 없었습니다.”


테르지오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테르지오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자네와 싸웠던 흡혈귀가 포탈로 나왔을 수도 있겠군…….”


“아!”


브런트는 문미러 방향을 바라보았다. 문미러의 하늘에도 보름달이 떠 있었다.그런데 달에 짙은 구름이 함께 끼어 있는게 아닌가? 늘 밝은 달만이 보이는 문미러와 룬바스크에 구름이 낀 생긴 불길한 밤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룬바스크에서 멀리 떨어진 문미러의 수풀. 이곳에도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잠시 후, 허공 속에서 다리 하나가 드러나더니 지면의 수풀을 밟았다. 그리고 키큰 사내의 모습이 허공 속에서 나타났다. 붉은 고대귀족의 치렁치렁한 복장과 그와 대조되는 푸른 살결…… 그리고 미끈한 얼굴에 드러난 날카로운 송곳니……. 그는 흡혈귀 바르쿠스였던 것이었다. 바르쿠스는 그의 붉은 눈을 들어 구름이 잔뜩 낀 달을 바라보았다.


“내가…… 성직자들의 사악한 주술에 의해 처형될때도 저렇게 달에 구름이 껴 있었지…….”


바르쿠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도 오래간만에 본 지상은 오히려 낮설게 느껴졌다.


“오랜시간을 지하에 갇혀있었다…….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이었지…… 이젠 인간들이 그 기나긴 고통을 느껴야 할 차례다. 안 그런가? 스와이번?”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이제…….”


바르쿠스의 뒤에, 스와이번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스와이번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얼굴엔 표정도, 생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이고 있었다.


“…… 우리들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마법사 스와이번…… 그는 죽음 직전에 흡혈귀 바르쿠스에게 붙들려 새끼 흡혈귀(Vampire Spawn)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계속


작가의말

팔라딘은 공포에 완전면역이고, 그의 동료는 공포에 +4 저항을 가진다고 했는데요…… 여기선 그걸 표현하기 위해 사후세계가 어떻고, 죽음이 어떻고 이런 말을 테르지오가 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괜히 종교적 패러다임 때문에 기분 나쁘지 아니하셨으면 합니다. 이건 단순한 모험소설이니 그냥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 브런트의 갑옷인 러브쏜메일이 드디어 등장하는군요. 끔찍한 가시가 튀어나오는 갑옷이지만 굉장히 요긴하고 튼튼한 갑옷입니다.

이거 쓰느라고 축구를 못 봤네요. 이제 글을 올렸으니 쿠웨이트전 결과를 보러 가야 겠습니다.

내일은 3.1절이네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영웅들을 생각하니, 정말 그들이 죽어서도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 편에 뵙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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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에필로그(Epilogue) +87 12.09.13 4,582 92 14쪽
87 -87화: 붕괴되는 신전 +11 12.09.13 3,400 50 22쪽
86 -86화: 용사의 귀환 +11 12.09.13 3,193 53 25쪽
85 -85화: 발리스타(Ballista) +25 12.09.10 3,667 62 19쪽
84 -84화: 마차 속의 소녀 +21 12.09.06 3,484 64 17쪽
83 -83화: 용사, 일어나다. +30 12.08.31 3,550 68 16쪽
82 -82화: 속죄의 방 +24 12.08.28 3,607 67 17쪽
81 -81화: 달빛에 비친 그녀 +28 12.08.26 3,639 59 18쪽
80 -80화: 국화와 물매화 +16 12.08.22 3,417 62 17쪽
79 -79화: 내가 조준당하고 있다 +19 12.08.20 3,493 60 16쪽
78 -78화: 불타는 노웃그래스(Knotegrass) +22 12.08.17 3,545 58 16쪽
77 -77화: 시간싸움 +14 12.08.15 3,630 65 19쪽
76 -76화: 성녀의 정체 +17 12.08.13 3,608 67 17쪽
75 -75화: 리터너(Returner) +29 12.08.11 3,751 59 20쪽
74 -74화: 예언의 석판 +27 12.08.09 3,834 65 17쪽
73 -73화: 바라탄으로 +19 12.08.06 3,829 64 15쪽
72 -72화: 전설의 무기 +20 12.08.04 4,263 73 21쪽
71 -71화: 역설(逆說)의 갑옷 +16 12.08.03 3,968 64 20쪽
70 -70화: 남은건 너 하나 뿐이다. +21 12.07.31 3,832 60 29쪽
69 -69화: 문을 열어주세요. +16 12.07.29 3,943 64 20쪽
68 -68화: 흡혈귀(Vampires) +19 12.07.27 4,089 69 20쪽
67 -67화: 도시의 비밀 +17 12.07.25 3,882 67 15쪽
66 -66화: 샤인스트림(Shinestream) +17 12.07.23 4,146 69 20쪽
65 -65화: 천공(天空)의 기사 +31 12.07.21 4,751 71 22쪽
64 -64화: 플라투스의 성녀(聖女) +52 12.04.22 6,088 96 18쪽
63 -63화: 진실문답 +46 12.04.18 5,902 101 23쪽
62 -62화: 대지의 신전 +30 12.04.12 6,353 98 25쪽
61 -61화: 바텐호스(Bartenhose) +34 12.04.02 6,798 108 21쪽
60 -60화: 가장 맞추기 힘든 표적 +31 12.03.28 6,678 104 23쪽
59 -59화: 사막의 폭풍우 +25 12.03.25 7,130 108 23쪽
58 -58화: 세레네의 성직자 +33 12.03.21 7,487 113 25쪽
57 -57화: 황제의 침공 +28 12.03.19 8,806 109 26쪽
56 -56화: 골드 드래곤의 거처 +35 12.03.15 9,072 129 26쪽
55 -55화: 의식을 막아라 +47 12.03.12 8,896 132 30쪽
54 -54화: 반지의 정체 +42 12.03.09 9,442 119 23쪽
53 -53화: 엘프들의 산 +58 12.03.06 9,889 128 24쪽
52 -52화: 텐 세컨즈(Ten Seconds) +52 12.03.03 9,773 146 23쪽
» -51화: 사랑, 가시 그리고 갑옷(Love, Thorn, Mail) +35 12.02.29 9,846 110 24쪽
50 -50화: 우연한 재회 +46 12.02.26 10,221 117 22쪽
49 -49화: 밴시(Banshee) +33 12.02.23 10,749 125 23쪽
48 -48화: 버려진 자 +44 12.02.21 10,654 120 28쪽
47 -47화: 아발레스트(Arbalest) +39 12.02.18 10,873 121 21쪽
46 -46화: 무기를 손에 넣다 +32 12.02.15 10,513 109 21쪽
45 -45화: 마검(魔劍) 이퀄리브리온(Equalibrion) +20 12.02.13 10,599 99 23쪽
44 -44화: 구덩이 +29 12.02.10 10,005 108 20쪽
43 -43화: 황제의 무덤 입구 +25 12.02.07 10,353 105 21쪽
42 -42화: 문 미러(Moon Mirror) +26 12.02.04 10,158 102 16쪽
41 -41화: 스와이번 일행 +22 12.01.31 10,053 106 14쪽
40 -40화: 제분소를 나서다 +30 12.01.29 10,333 100 14쪽
39 -39화: 에뎁세스의 반지 +27 12.01.26 10,665 10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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