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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꽈리 님의 서재입니다.

원더랜드의 자룡과 하후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낙타는꽈리
작품등록일 :
2019.07.31 19:49
최근연재일 :
2019.09.04 19:16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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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148

작성
19.09.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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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 (3)

DUMMY

장비와 조조 등등의 역할을 맡아서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던 경극 배우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입 두 놈이 무대를 망칠려고 작정을 했구나. 요새 것들은 대본을 충실히 따를 생각은 안하고 애드립 칠 생각부터 하지.”


“연기의 기본이 되먹질 않았어. 기본이.”


조자룡과 하후은이 액션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무대 구석으로 이동한 경극 배우들이 투덜댔다.

경극을 어설픈 액션 몇 가지로 후려쳐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두 신입 배우의 마음에 깔려있는 듯 보였고 그 점이 장비 역할 배우의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들었다.


경극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다.

카메라 앞에서 짧게 끊어치며 가는 연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긴 호흡과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경극배우에게 요구되는데 21세기, 누가 경극 배우가 되려 하겠는가.


재주있는 친구들은 처음부터 영화와 드라마쪽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저런 경우없고 얼치기같은 신입들이라도 오냐 오냐 엉덩이 두들겨주며 끌고가야했다.

그래서 참아 준 것인데.. 이 두 놈은 해도 해도 너무 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멱살을 잡아 끌고 무대 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리고 싶었지만 관객들이 보고 있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장비역의 배우가 고민에 빠져 있는데 조조 무리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 탄성은 자룡 역할의 배우와 조조쪽 병사 역할로 나온 두 신입 배우가 펼치는 액션 연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햇병아리들이 무대를 망친다고 툴툴거리던 배우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경극 연기 십수년 동안 이렇게 합이 잘 맞아떨어지는 액션 연기는 처음 보았다.


동작의 화려함도 으뜸이지만 연기를 넘어 실제상황같은 긴장감을 관객에게 던져주는 스릴이 있었다.

진정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을 것처럼 보이는 연기의 진정성이 칼끝에서 묻어나왔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뭐야 쟤네들...”


“간지 작살이다.”


“이연걸과 견자단의 액션을 보는 것 같아. 진짜 리얼 액션이야.”


무대 구석에 서있던 배우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그리고 장비 역할의 배우가 마침표를 찍었다.


“액션 연기의... 신이다.”


반응은 객석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관람객들은 사실 경극을 보러 온 사람들이 아니기에 경극이 진행되는 동안 불법 유물 경매를 둘러싸고 누가 어떤 경매에 참가할 것인가, 누가 그 물건에 얼마를 부를 것인가, 내가 배팅에 뛰어들 것인가 등등의 결정을 준비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해서 평소에는 경극이 진행되던 연주회가 진행되던 신경쓰지 않고 경매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눈치작전을 벌이느라 분주했었다.

물론 겉으로는 와인잔을 들고 매너 있는 대사를 주고 받으며 격조 있는 척 하지만 물밑으론 오리발을 동동거리는 치열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두 배우의 열정적이고 격렬한 연기에 정보를 캐내기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경매 참가자들의 오리발들이 하나 둘 씩 멈춰지고 그들의 시선 역시 하나 둘 무대에 고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정된 시선은 이내 짧은 탄성으로 바뀌었고 금새 입을 헤 벌리며 무대만 바라보게 만들었다.


자룡과 하후은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어떤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른 채

대결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실 하후은은 칼을 들어 자룡과 맞서면서도 걱정이였다.

입으로야 하후병법이 어쩌니 저쩌니 떠들어댔지만 자룡은 확실히 무예가 한 수 위였다.

그 전에야 청강검이라는 명검으로 그 무예의 격차를 벌충하며 백중세를 유지했지만 이제 그 청강검은 자룡의 손에 있었다.

하후은이 들고있는 칼은 청강검에 두들겨맞아 검날의 이빨이 듬성 듬성 거릴 정도로 너덜해졌다.

과연 하후은의 예상대로 격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이 부러졌다.


‘망했다!’


부러진 칼을 보며 하후은이 망연자실 서있는데 자룡이 공세를 펼치지 않았다.


“새 칼을 잡아라.”


자룡이 말했다.

하후은은 감사의 의미로 포권을 취한 뒤 재빨리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조조 무리의 배우들 중 한명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앗아 들었다.


“지금 날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게다.”


“흥”


자룡이 대답대신 코웃음 치며 공격해 들어왔다.

하후은은 허세를 부리긴 했으나 슬슬 걱정이 밀려들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지원병이 올 때까지 버텨야한다. 하후은이 이빨을 앙 다물었다.


하후은 역시 이곳은 장판파의 어느 한 구석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에 이 밤의 어둠 속 어딘가에 조조의 기마병들이 유비를 찾기 위해 달리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햇불이 어디서 타고 있는 지 찾아볼 경황은 없지만 어쨌든 이곳은 햇불 덕에 대낮처럼 환하지 않은가. 장님이 아니고서야 멀리서도 보일 터.

조금만 저 미친 청강검을 버텨내자. 조금만 더.

하는 마음으로 자룡을 칼날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합이 길어질수록, 칼날과 칼날이 마주칠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할만한데.’


자룡의 무예가 몇시진 전보다 현격하게 무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지? 이런 경우는 뭐지? 약하게 보이고 빈틈을 보여서 내가 무모하게 덤벼들기를 바라며 함정을 파고 있구나. 이거 생각보다 약은 놈일세.’


해서 하후은은 자룡에게서 빈틈이 보여도 그 빈틈을 공략해서 우위에 서기 보다는 오히려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전열을 가다듬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하후은은 제 꾀에 제가 속은 격이었다.

자룡의 무예가 현격하게 무뎌진 것은 하후은을 속여 덫을 놓기 위함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배가 너무나 고파서, 기력이 달려서였다.

거의 하루 온 종일 먹은 게 없고, 하루 온 종일 싸움박질은 쉬지않고 해댔고, 미소의 죽음을 목격하며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으로 완전히 잊고 있던 허기였는데 방금전 오랑캐 여자가 칼 끝에 꽂아준 햄버거의 냄새에, 도저히 이 세상의 냄새라고 할 수 없는 천상의 맛을 연상시키는 냄새에 그만 잠자고 있던 허기가 눈을 뜨고 말았다.


잊혀져 있던 시간만큼 복리이자를 쳐서 엄청난 사이즈로 불어난 허기라는, 배고픔이라는 맹수가 자룡의 근육세포와 운동신경을 물어뜯었고 팔 다리에 이빨을 박은 채 대롱대롱 매달렸다.

상황이 이러니 자룡은 자룡대로 하후은의 칼을 막아내는 것만으로 벅찼고 곳곳에 구멍과 빈틈이 생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빈틈이 생길 때마다, 좀 더 정확히 짚어서 말하자면 자룡이 웅지를 펴보기도 전에 저 떠벌이 수다쟁이한테 고작 배가 고파서 이렇게 허무하게 무릎을 꿇게 되다니 싶은 좌절감이 들 때 쯤에,

그 좌절감이 뇌리를 사로잡을려는 찰나 쯤에,

냉큼 하후은이 뒤로 물러나는 거였다.

우직한 구석이 있는 자룡은 당최 하후은의 행동이 납득불가였다.


하후은의 자가당착과 자룡의 납득불가가 허공에서 서로의 시선으로 교차하고 엉키면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숨을 고르며 힘을 비축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검과 도의 앙상블이 펼쳐보이는 용호상박의 액션에 압도당한 관객들이 무대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두명의 경극 배우들을 향해 아낌없이 보내는 찬사였다.

함께 무대에 서있던 동료 배우들도 관객들 못지않게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


이때 관객들의 반응에 흥분한 공연 조명 팀에서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려고 쓸데없는 짓을 벌이고야 말았다.


배우들이 서있는 무대의 조명을 꺼버린 것이다.

일순 공연장 전체에 암흑이 찾아왔다.

그리고 조명이 하나씩 켜졌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아니라 관객들이 서있는 야외 객석쪽이었다.


- 터엉, 터엉


조명들이 켜지며 두 신입 경극 배우의 혼이 담긴 액션연기에 감동받아 환호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조명이 켜지는 순서에 따라 차례 차례 드러났다.

그리고 불법 유물 마켓 곳곳에 포진한 채 관객들과 한마음이 되어 박수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까지도 함께 드러났다.

그러는 사이에도 무대는 여전히 어둠에 차있었다.


칼을 마주대고 선 채로 서로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던 자룡과 하후은의 시야가 객석쪽을 그러니까 야외 잔디밭쪽을 하나 둘 씩 밝혀주는 조명들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주변의 많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이삼십미터 떨어진 잔디밭에 원형 테이블이 주르룩 깔려있고 그 테이블 주위로

이브닝 드레스 차림의 여성들과 양복, 혹은 캐쥬얼 사복을 걸친 남성들이 누구는 일어서서 누구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간단한 다과와 와인, 음료들이 놓여있었다.


자룡과 하후은의 눈에는 기기묘묘한 의상을 걸친 수많은 남녀들이 동그란 밥상 주변에 서서는 영문모를 박수를 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박수가 설마 자신들을 향해서 치고 있는 것이란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동그란 밥상들의 대열 너머로 대형천막과 차양들이 보였고 그 사이사이에 서있는 남녀들도 역시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릴레이 경주를 펼치듯 주변을 쭈욱 돌면서 켜지던 조명이 마지막까지 어둠 속에 잠겨있던 무대를 비추며 켜졌다.


관객들의 반응에 얼이 빠진 두 배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자룡과 하후은은 정말로 얼이 빠져버렸다.

장판파라 믿고 싸웠는데 방금 전 본 광경들은 뭐란 말인가? 이건 오랑캐들이라고 우길 수도 없었다.

도대체 뭐냐 이거.

장판파의 우물에서 환한 빛무리에 싸였다가 깨어 난 이후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요괴 세상인가 싶었는데 여전히 장판파인 듯 안심시키다가 다시 요괴 세상이였다.

정말로 의심할 바 없이 요괴들의 세상이였다.

기기묘묘한 복장의 인간들이 박수치고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하후은이 힘없이 말했다.


“요괴다, 요괴야.”


역시 힘이 빠져 촤악 가라앉은 음성으로 자룡이 답했다.


“확실히, 요괴천지야.”


자룡과 하후은은 서로를 바라봤다. 비록 적이지만 둘은 몇번의 경험을 통해 눈빛 만으로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통 이런 사이를 지피지기라 하던데 우리는 지피지적이라 불러야되나?

아무튼 중요한 건 이런게 아니지.

우리끼리의 싸움은 휴전이다. 눈앞의 요괴들을 물리친 뒤에....

아, 요괴 여인에게 후주를 맡겨버리지 않았나.


좌절감이 엄습했다. 엄습한 좌절감은 뭔가 이 기묘하고 요상한 세계의 요물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분노로 바뀌어갔다.


“요괴들, 본관을 농락치 마라.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인간세와 귀신계의 경계가 지엄하거늘 어찌 오늘 이리도 요괴들이 쏟아져나왔단 말인가. 본관이 눈감아 줄터이니 어서 요괴들은 썩 꺼지거라. 어서 썩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거라!”


하후은이 무대 아래 손님들을 향해 나름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고 있을 때 자룡은 마켓 이곳 저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소정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때 소정은 잠든 아이를 잠시 맡겨두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아이를 안고 무대 뒷편을 돌아서 야외 원형 테이블 뒷편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무대쪽을 보고 있었다.


자룡은 두리번거리며 무대쪽을 바라보는 소정을 목격했다. 그녀의 품에 후주가 안겨있었다.

저 요괴가 후주를 빼앗아 달아나려는구나


“요괴는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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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타임포탈이 열리고 (1) 19.08.22 3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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