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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꽈리 님의 서재입니다.

원더랜드의 자룡과 하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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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꽈리
작품등록일 :
2019.07.31 19:49
최근연재일 :
2019.09.04 19:16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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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148

작성
19.07.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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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여긴 어디? 우리는 누구?

DUMMY

후줄그레한 원룸 단칸방.


낡아빠진 아디다스 츄리닝 상 하의를 입고 있는 남자가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십대 중반의 남자는 누군가 입다가 버린 듯한 꾀죄죄한 느낌의 녹색 ‘츄리닝’ 상 하의를 대충 걸치고 있었다.


츄리닝 상의는 오버핏으로 남자의 상체에 쌀가마니를 그대로 뒤집어씌운 듯한 넉넉한 품새를 자랑했고 츄리닝 하의는 엉덩이께는 반질반질 광이나고 무릎께는 격렬하게 툭 튀어나와서 ‘츄리닝’ 으로서의 녹록치 않은 관록을 뽐내고 있었다.


이렇게 츄리닝은 슬리퍼는 이십대 초반의 남자가 별 볼일 없는 숫컷이라는 것을 가열차게 웅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옷과 신발이 떠들어대는 웅변에 설득당해서 남자를 별 볼일 없는 놈으로 취급하려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상대방은 멈칫하게 될 것이다.


장발의 머리카락이 츄리닝 상의에 목 언저리께를 덮고 있는 남자의 외모는, 특히나 그의 눈빛은 그가 걸친 옷과 신발이 웅변하는 그 추레함을 일격에 박살내는 그 무엇이 있었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는 그 눈빛.

그 눈빛은 지금 티비 뉴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뉴스에서는 2019년 미국과 무역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의 현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우리 중국은 먼저 싸움을 걸지는 않지만 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2019년 중국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여자 아나운서가 진지한 표정으로 기사의 멘트를 클로징했다.


“정말로 진실로 확언컨대 나는 미래로 와버렸구나.”


아디다스 츄리닝의 별 볼일 없는 숫컷이 탄식을 내밷었다.


“것도 이천년이나 건너 뛰어서. 기가 막히는군.”


혼자말에 꼬랑지가 달리는데 옆에서 투덜대는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고집 센 놈이야. 내가 몇번을 말했나. 여긴 미래의 중국이라구. 요괴들의 나라가 아니라구.”


아디다스 츄리닝이 고개 돌려서 목소리의 남자를 바라봤다.

이십대 초반의 남자가 여성용 화장대 앞에 앉아있었다.

그는 쫄쫄이 타이즈를 입은 채 잡지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잡지를 한페이지 씩 정성스럽게 넘기고 있었는데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소리없는 탄성을 내질렀다.


‘오.’

‘이런.’

‘어이쿠야.’


입모양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이 감지되는 그런 무음의 탄성이였다.


잡지의 페이지에는 여성 모델이들이 비키니를 뽐내고 있었다. 여름 여성 수영복 광고였다.


“살짝, 아주 사알짝 이곳에 호감이 생길수도 있겠군.”


쫄쫄이남이 중얼거렸다.

쫄쫄이처럼 보이는 하의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용 트레이닝 바지였다. 밑단이 거의 종아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허벅지와 엉덩이 라인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냥 칠부 레깅스나 진배 없었다.

상의를 걸친 티셔츠는 거의 탱크탑 수준을 방불케했다.

하지만 이런 차림새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 당사자들은 덤덤했다.


그리고보면 원룸의 내부도 요상하다면 꽤나 요상한 풍경이었다.


‘츄리닝’ 과 ‘쫄쫄이’ 남자만 두명인데 방 안에는 여성용 화장대가 있었고 당연히 여성용 화장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옷장과 소지품들도 여성용 냄새가 퐁퐁 풍겼다.

하지만 그 반대편 벽에는 사극 영화의 장군들이 입으면 딱 어울릴 고대 갑옷이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갑옷 아래 뚱딴지처럼 요람이 놓여있었다.

요람 안에는 갓난아이가 쌔근 쌔근 자고 있었다.


남자 둘의 차림새만큼이나 방안의 풍경도 기묘하게 뒤틀려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


여전히 티비를 보면서 ‘츄리닝’ 이 중얼거렸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할 수 없는 이 상황.

느닷없이 이천년을 초월해서 미래로 오다니.

괴담이나 전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내게 현실이 되다니.


“요괴한테 홀렸나.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다니.”


“쿵”


‘쫄쫄이’가 화장대를 내리치며 외쳤다.


“화가 난다.”


‘츄리닝’ 이 화장대를 주먹으로 내려친 ‘쫄쫄이’를 쏘아봤다.


‘쫄쫄이’가 화를 내는 것이 잡지의 비키니 광고가 끝나고 그 이후는 시시껄렁한 기사들만 주욱 나열되어 그런 것인지 요괴에 홀렸다는 자신의 말에 동의를 해서 그런 것인지 순간 ‘츄리닝’ 은 헷갈렸다.


‘츄리닝’ 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파악했는지 ‘쫄쫄이’ 는 조용히 잡지를 덮었다.

그리고 말했다.


“전쟁터에서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이런 곳에 오다니.... 화가 나!”


비키니 화보가 끝나버려서 화가 난 것이 아니란 걸 ‘쫄쫄이’는 강조했다.


“......그 전쟁터에 나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니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거 같지는 않은데.”

“닥쳐. 그 빛무리가 우릴 덮치지 않았다면 승리는 내 것이였다. 그 빛무리가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어. 그 염병할 빛무리가.”


‘쫄쫄이’ 는 전쟁터의 아수라장에서 현대로 넘어오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우리’ 라는 단어를 썼다는 사실이 불쾌해졌다.


“우리라니, 어후 이런 무명잡졸과 장군인 내가 ‘우리’ 로 엮이다니 불쾌하다. 몹시 불쾌해”


“내 이름은 ‘무명잡졸’ 아니라 ‘조자룡’이다. 이 떠버리 수다쟁이야.”


무명잡졸이라고 떠들어대는 ‘쫄쫄이’의 말을 듣고 ‘츄리닝’ 이 발끈했다.


쿵.

조, 자, 룡.

헛옷 수거함에서 꺼내 온 것이 분명한 다 헐어빠진 아디다스 츄리닝을 걸치고 있는 남자는 조자룡이었다.


“난 떠버리 수다쟁이가 아니라 ‘하후은’이다. 이 무명잡졸아. 장차 손자병법에 버금가는 하후 병법의 창시가가 되실 것이 분명한 하후 가문의 기린아. 하후은.”


엥?.

하, 후, 은.

투덜대는 ‘쫄쫄이’는 자룡과 함께 삼국시대에서 현대로 넘어 온 하후은이였다.


하후은.

삼국지연의에 장판파에 첫등장하여 조조에게 하사받은 명검 ‘청강검’을 휘두르며 조자룡에게 덤벼들었다가 단 일격에 비명횡사하면서 등장하자마자 퇴장하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그 비중이란 것이 조조조연급도 못되는 엑스트라 수준인데 심지어 삼국지 정사에서는 아예 이름 자체가 등장하지도 않기에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설이 지배적인데 그 하후은이 지금 조자룡과 함께하고 있는 해괴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잘난 체하는 하후은을 자룡이 비웃었다.


“가문의 후광을 업고 장군소리를 듣던 애송이 주제에. 어이가 없군.”

“뭐시라? 근본없는 잡졸따위가 감히 조조 승상 오십만 대군의 선봉장 하후은을 능멸해?”

“나도 수천의 군사를 이끌어봤다. 어느 무명잡졸이 수천의 군사를 이끌수 있는가.”

“푸하하하”


자룡의 항변에 하후은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유비군에 인재가 없다는 소리지.”

“뭐라구!”

“얼마나 인재가 없으면 너 따위가 수천의 군사를 지휘했겠는가 말이야.”

“유비군에 관해 니가 뭘 알겠느냐.”

“흥. 유비군이야 관우, 장비. 달랑 둘이지. 그 둘 빼고는 누가 지휘하든 무슨 상관인가. 미축, 손건. 다 오십보 백보지. 그들을 장군이라 부를수나 있는가. 너 조자룡도 포함해서.”

“어이가 없군. 난 야전에서 컸다. 오로지 내가 휘두르는 창. 내가 움직이는 내 몸. 창과 몸. 이 두가지로 유비군에서 지휘관이 되었다. 가문의 이름 덕분에 경력도 없이 선봉대의 지휘관이 된 너와는 차원이 다르다.”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그래서 유비군에 인재가 없다는거다. 니가 조조군에 있었으면 하후돈, 하후연, 서황, 조인, 장합, 허저, 장료.. .. 에이씨 이름 대기도 벅차네. 이 기라성같은 장군들을 제끼고 수천명 군사를 지휘할 자격이 주어졌겠느냐?”


자룡은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저 떠버리의 자랑처럼 조조군에는 정말 인재들이 차고 넘쳤다.


“나 하후은은 처녀 출전에 바로 그 기라성같은 장군들을 제치고 선봉대의 지휘관이 되신 몸이다. 내가 보여준게 없으면 조승상께서 날 선봉으로 세웠을까? 조승상이 어떤 분이신데 가문의 이름만 보고 날 선봉대 지휘관으로 세웠을까?”


하후은이 조자룡을 대하는 태도나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로 미루어보아 조자룡이 아직 무신으로 그 명성을 중원 천하에 떨치기 전에 현대로 넘어온 것이 분명해보였다.

만약 조자룡이 명성을 날리기 전이라면 가문의 위세가 있는 하후은이 더 유명했을 수도 있었다.


삼국지의 엑스트라 하후은이 자룡을 무시하고 있었다.

삼국지를 관통하는 사나이.

장군 중의 장군.

영웅 중의 영웅.

그 조자룡을 무명잡졸이라고 비아냥대고 있었다.


현대로 온 하후은이 삼국지에서 자신의 역활은 ‘청강검’이라는 명검을 자룡에게 전달하는 ‘칼셔틀’ 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어찌될까?


게다가 정사에서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 허구의 인물, 먼지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되면 어찌될까?


무명잡졸이라고 깔보고 있는 조자룡이 현대에는 무신으로 추앙받으며 영화, 드라마, 게임, 만화의 캐릭터로 세상을 휩쓸고 있는 것을 알게되면 어찌될까?


모르는게 약이다,

라는 격언처럼 어쨌거나 지금은 기세등등했다.


기세등등 퍼부어대는 하후은의 비아냥.

그럼에도 자룡은 기가 죽지 않았다.

자룡이 역공을 펼쳤다.


“첫 출전에 패전을 기록했지?”


하후은이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패전이라니, 기습을 당해서 잠시 혼란했을 뿐.”


하후은이 변명했다.


“패전이 아닌데 장군에서 사병으로 강등당한단 말인가?”

“누가 강등을 당해? 패전은 아니나 기습당한 것은 실수이기에 죄를 청해서 사병되기를 자청했을 뿐.”

“호오. 조조가 하사한 칼도 뺏기지 않았던가?”

“칼은 ... 니가 뺏어갔자나, 치사한 방법을 써서. 이 치사한 놈아.”


하후은이 발끈했다.


“첫출전에 패전만 기록하고, 칼도 뺏기고, 장군에서 사병으로 강등당한 주제에 병법의 대가라니... 그 병법 두 번만 배웠다가는 십만대군도 한방에 전멸하겠구나. 주댕이로 싸우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그 하후 병법의 요체더냐.”

“실패는 병가의 상사라 했다. 하후 병법의 요체는 너 따위 무명잡졸은 알려줘도 이해를 못한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벽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리고 도로 찾았잖아. 바로 저기 걸려있는데 뺏기긴 뭘 뺐겨.”


하후은이 가리킨 벽에는 옷가지들이 되나캐나 널부러져있다시피 구겨넣은 옷상자들이 일열 종대로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 상자 바로 옆에 검 한자루가 역시 되나캐나 널부러져있다시피 박스에 담겨있었다.

검날의 절반은 박스에 담겼고 나머지 절반과 검의 손잡이가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저 검은 너한테서 뺏은 나의 검인데. 난 너한테 다시 저 검을 뺏긴 기억이 없거늘 어찌 도로 찾았다 망발을 날리는가?”

“지금 도로 저 검을 되찾아주랴?”


하후은이 도발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지.”


자룡이 되받아쳤다.


“오냐, 장판파에서 끝내지 못한 승부를 여기서 내보자, 무명잡졸아!”


하후은이 화장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금방이라도 쫄쫄이 하의가 투둑 소리를 내며 실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바라던 바다. 떠버리!”


자룡도 바닥에서 일어났다.

추레하고 낡은 츄리닝에 붙어있던 보풀이 깃털처럼 원룸의 방안을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하후 병법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그 경망한 주댕이를 턱에서 분리시켜주마!”


두사람은 각자 원룸 구석에 쳐박혀있던 검을 챙겨들었다.


‘챙’


허공에서 부딪친 서로의 칼날이 금속성의 소음을 일으키며 원룸의 후줄그레한 공기를 채웠다.


작가의말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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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타임포탈이 열리고 (1) 19.08.22 39 0 13쪽
16 장판파의 요괴 (8) 19.08.21 30 0 13쪽
15 장판파의 요괴 (7) 19.08.20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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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장판파의 요괴 (5) 19.08.17 29 0 14쪽
12 장판파의 요괴 (4) 19.08.16 44 0 12쪽
11 장판파의 요괴 (3) 19.08.15 28 0 12쪽
10 장판파의 요괴 (2) 19.08.15 42 0 12쪽
9 장판파의 요괴 (1) 19.08.14 57 0 13쪽
8 생존의 길 (2) 19.08.13 38 0 12쪽
7 생존의 길 (1) 19.08.10 36 0 13쪽
6 내 이름은 조자룡 (2) 19.08.06 36 0 13쪽
5 내 이름은 조자룡 (1) +1 19.08.03 50 1 12쪽
4 호기심 많은 신병 (3) 19.08.02 55 0 12쪽
3 호기심 많은 신병 (2) 19.08.01 60 0 12쪽
2 호기심 많은 신병 (1) 19.08.01 80 0 12쪽
» 여긴 어디? 우리는 누구? +2 19.07.31 2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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