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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꽈리 님의 서재입니다.

원더랜드의 자룡과 하후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낙타는꽈리
작품등록일 :
2019.07.31 19:49
최근연재일 :
2019.09.04 19:16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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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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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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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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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호기심 많은 신병 (1)

DUMMY

칼날 넘어 서로를 노려보던 두사람은 이내 칼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랴.

하후은이 칼을 내리며 자룡이 들고 있는 ‘청강검’ 을 보며 말했다.


“되찾으면 뭐하나. 그 검이 날 고향으로 데려다 줄 것도 아니고. 그냥 너 해라. 너 해.”


그 말에 자룡도 몸에 힘이 쭈욱 빠져버렸다.


“미래로 와버리는 황망한 일을 겪으니 내 몸도 마음도 천박해지는구나. 근묵자흑이라. 떠벌이가 옆에 있으니 나도 떠벌이가 되버렸어.”

“무명 잡졸 따위가 감히 하후 가문의 기린아를 천박하다 능멸하다니, 주제파악이나 하시지.”


자룡은 콧웃음을 치며 한마디 쏘아붙이려다가 말았다.

지금 중요한 건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였다.

그렇게 조자룡과 하후은, 두 사람은 단칸방 원룸의 결투를 막 재현하려다가 맥이 빠진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쩌다 이천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곳으로 오게 된 걸까?


어쩌다 이 방 한칸에서 적과의 동거를 하게 된 걸까?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 온 그 빛무리는 무엇이었을까?


무얼 어쨋길래 그 빛무리가 생겨난 걸까?

자룡과 하후은은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했던걸까?


장판파의 마을 우물에서.




* *



서기 208년 건안 13년.

유비는 신야성에서 십만명의 백성이 따르는 긴 행렬을 끌고 조조 군대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자룡은 숲 속의 우거진 수풀 뒤에서 조조 선봉대의 야영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척후의 임무를 띄고 있었지만 상황에 따라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제량권을 부여받았고 인원도 백명이었다.


유비 본대의 상황을 알아보고 온 부장이 자룡의 옆으로 다가왔다.

자룡이 부장을 보며 물었다.


“황숙님의 상황이 어떤가?”


부장은 시선을 조조 진영을 향한 채 대답했다.


“유종이 성문을 열어주지 않아 황숙께서 남쪽으로 향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번성(樊城)부터 백성들이 따라오는 지라 하루에10리도 진군하기 힘듭니다.”


부장의 대답을 들으면서 자룡은 작전을 척후에서 기습타격으로 바꿨다.

유비의 피난행렬을 추격하는 조조 수십만 대군.

그 중에서도 최선두에 위치한 조조 선봉대를 타격하려고 자룡은 마음먹었다.

조조 선봉대에 피해를 주려는 의도보다는 적의 진격속도를 늦추려는 의도였다.


“시간을 벌어야겠다. 야습을 시도한다.”


자룡의 말을 들은 부장이 놀라서 적진을 살피던 시선을 자룡에게 보내며 말렸다.


“저희는 백명 남짓입니다. 인원이···”

“적 부대를 타격하자 게 아니다. 군량만 태우고 재빨리 퇴각한다.”


자룡은 숲속 그늘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중천이었다. 야습을 위해 해가 지기를 기다려야했다.



* *


조(曹), 하후(夏侯), 선봉(先鋒)이라 써져 있는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조조 선봉대 야영지에는 병사들이 천막을 세우고 무기를 정렬하는 등 진영을 설치하느라 분주했다.


진영 외곽 쪽에 이제 막 노역에서 벗어난 서너명의 병졸들이 무겁고 거추장스런 투구와 갑옷을 벗고 그늘에서 쉬고 있다.


“심심하구나. 심심하도다, 아.. 심심하여라.”


휴식을 취하고 있던 무리중 병졸 한명이 장탄식을 토했다.


“정신나간 놈일세. 전쟁을 심심풀이로 하나.”

“삽질보다야 칼질이 재미지기는 하지.”


누구는 타박을 주고 누구는 맞장구를 치기도 하는데 노병 하나가 심심하다며 장탄식을 날리는 병졸을 빤히 바라봤다.


주제를 모르고 야망을 불태우는 눈빛.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겠다는 욕심으로 선두를 자처하고 위험한 임무를 자처하고.

그렇게 먼저 허망하게 죽어간 수많은 동료, 고향친구들이 노병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아마 노병 자신도 젊은 시절엔 저런 눈빛을 하고 있었으리라.

보다가 불쌍한 놈 목숨 한번 구해준다는 기분으로 조언을 해줬다.


“너 신병이지?”


장탄식을 날리던 병졸이 흐리멍텅한 눈으로 노병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

“ 싸움이 나야하는데 여기서 땅이나 파고 있으니 답답하지?”

“예.”

“이름을 날리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지?”

“...예.”

“나도 젊을 적엔 그랬지. 그랬는데...”


신병의 눈에는 나이 든 자들의 흔한 잔소리인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장비하고 마주친 뒤론 생각을 접었지.”


장비. 라는 말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술렁거렸다.


심심하다며 동태눈깔을 하고 있던 장탄식 병졸의 눈에도 호기심이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날치처럼 퍼득거렸다.


“영감. 영감이 그 연인 장비...”


신병이 누워있던 자세에서 상체를 들어올려 노병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감 아니다. 이놈아.”


나이는 좀 먹었어도 니깟 놈 두세명은 아직도 거뜬하다는 눈초리로 노병이 신병을 째려봤다.


“좋아, 아저씨.”


그 눈초리에 움찔 할만도 하건만 신병은 넉살좋게 들이밀었다.


“......”

“아저씨가 그 뭐야 우리가 다 아는, 바로 그 장팔사모 장비! 유비, 관우 장비 할 때의 바로 그 장비랑 싸웠다구?”


신병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싸우지 않았다. 이놈아.”


이 영감탱이가 사람 놀리나.


“뭐야.....”

“누가 싸웠댔나. 마주쳤다고. 따악 정면으로 마주쳤다고! 얼굴만 보는데도 오금이 저리더군.”


노병은 그때를 떠올리자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뻥이 아닌가본데.


“아저씨가 보기에 그 장비랑 우리 부대 대장이랑 누가 더 쎄보이요?”


노병이 허세를 부리는 것은 아닌 듯 하자 신병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 대장.. 하후은?”


하후은이라는 말에 주위에 모여있던 병사들 사이에 실소가 터졌다.


“행군 내내 어디 쳐박혔는지 우리 하룻강아지 장군님 얼굴도 못 봤네. 누구 본 사람 있어?”

“그러고보니 우리는 하후은 장군의 얼굴도 본 적이 없네.”

“어디 양양성 기루에서 술이라도 퍼먹나보지.”

“기루면 기생도 있을텐데.. 그 나긋나긋한 기생을 옆에 끼고...”

“에이 그래도 설마 전쟁중인데 ...”

“하후가문의 귀공자께서 기생끼고 술먹는다는데 누가 뭐라고 시비를 걸겠는가.”


하후가문. 그렇다.

조조 정권의 실세들. 하후돈, 하후연을 필두로 해서 조조 정권의 군대 내부에서 활약하는 하후씨들이 도대체 몇명이던가.

군권은 하후 가문이 장악했다고 해도 빈말이 아니였다.

그 막강한 가문의 도련님께서 술 좀 먹느라 부대 합류가 늦어졌다고 감히 시비를 걸 자가 몇이나 될까.

촌무지랭이 출신들이지만 그정도 사리파악은 모두들 하고 있기에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 나라도 기생이랑 술먹을 팔자가 되면 여긴 안 오지.”

“유비 꽁무니라도 보이면 그때 말타고 짜잔 등장하시려나.”

“그러게. 당최 모습을 안 보이니...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대?”

“누구 본 사람 없나?”

“하룻강아지처럼 생겨먹었다더군.”


병사들이 저마다 다들 고개를 내젓거나 한마디씩 흉을 거들었다.


“이제 전쟁터에 막 나온 애송이가 어디... 하후씨라는 가문 덕에 장군자리 꿰차고, 듣자하니 이번 전투가 첫출전이라던데.. 하룻강아지와 범을 비교할 수 있나. 떼끼.”


실소하던 병사 중에 하나가 얼토당토 않는 질문이라며 타박을 줬다.

신병은 호기심이 강한건지 아니면 나름 전공을 세우고픈 야심이 지휘관을 향한 근본없는 존경으로 이어졌는지, 다들 장비쪽으로 기울었는데 혼자만 그래도 해볼만하지 않겠는가 우기기 시작했다.


“장군으로는 첫출전이지만 무예가 출중하고 용맹하답니다. 얼마전에는 승상부에서 주최한 비무대회에서 우승하여 조승상의 보검 청강검까지 하사받았다는데.. 그래도 장비랑 안되겠소?”


“장비가 휘두르는 장팔사모에 목아지가 떨어져나간 장수들은 뭐 이빨빠진 식칼이라도 들고 싸운 줄 아나.”


노병이 타박했다.

하지만 신병은 더 흥미가 끌리는 모양이었다.


“하, 이거 점점 재밌어지네.”


흥미를 보이는 신병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다른 병졸들이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심심해 죽을상이더니 그래 장비 얘기가 재미지나? 눈이 다 초롱초롱해지는걸 보니

이 친구 나중에 조장자리라도 하나 꿰차겠구만”


“그전에 먼저 죽지않고 살아남아야지. 우하하하”


“저런 조장 후보들 내 손으로 치뤄준 장례만 서너명일세.”


농을 던지며 웃는 병사들. 그중의 염소 수염을 한 병사가 떠들었다.


“우리 대장 하후은은 죽은 목숨이야.”


“이 사람이, 뭘 또 그렇게까지.. ”


“그래. 입방정 떨지마라. 대장이 죽으면 우리라고 무사할까. 그리고 우리가 병력이 몇배로 많다고.”


옆에 있는 병사가 염소수염 병사를 향해 퉁박을 주자 염소 수염 병사는 몸을 사람들 쪽으로 수그리며 마치 비밀을 털어놓듯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 하후은 대장이 하사받은 청강검. 그 검이 대장을 죽일걸세.”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염소 수염 병사를 바라봤다.


“청강검은 저주받은 명검이라는 소문이 있어. 청강검의 주인된 자들은 죄다 비명횡사 했다더군.”


“에이 그 무슨....”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자 염소 수염 병사는 열을 올리며 떠들었다.


“우리 조승상께서 그 검을 어찌 얻었는지 아는가? 십수년 전 황건적 일당을 광종성에서 토벌했잖아.”


“그랬지. 장각 형제들을 광종성에서 모두 베어죽였다고 하더군.”


“장각과 그 동생들은 불에 타죽었다던데...”


“목 잘려 죽으나 불에 타 죽으나 송장된 건 매일반이지.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거야.”


염소 수염 병졸이 군사기밀이라도 누설하는 듯 은밀하게 말했다.


“조승상이 하후돈 장군과 함께 장각의 처소에 쳐들어갔을 때 청강검이 저 혼자 칼춤을 추면서 이미 장각이랑 장량, 장보의 목을 베고 있었다네. 조승상은 그래서 그냥 시체만 수습하고 전공을 올릴 수 있었던게지.”


“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병사 한명이 어이없다는 듯 역정을 냈다.


“장각이 누군가. 요술과 사술로 한나라를 위협하던 자가 아닌가. 아프고 병들었던 환자도 고쳐내고 죽은 자한테 사술을 부려서 괴병으로 부활시켜 병사로 써먹었다고 하지 않나. 그런 장각이니 분명 청강검에게도 요술을 부렸을게야. 하지만 그 요술이 실패하면서 자기가 들고 있던 청강검에 자기 목이 달아난거지.”


심드렁하게 청강검의 전설을 흘려듣던 신병이 염소 수염 병사를 향해 물었다.


“그런 저주받은 검을 조승상이 아끼는 장군한테 하사할 리가 있소. 소문대로라면 그 청강검을 하사받은 하후은 장군은 언젠가 그 칼에 죽을 텐데.”


“조승상이 청강검 전설을 전해듣고 그 전설이 진짠가, 가짠가 확인할려구 비무대회를 핑계로 그 검을 하사했다는 소문도 있다네.”


“청강검 전설이 진짠지 아닌지 궁금해지는군요.”


신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병사가 타박을 줬다.


“자네는 궁금한 것도 많네 그려. 그냥 칼 한자루 가지고 싶은 건 아니구.”


“칼은 이미 있습니다.”


신병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을 내비쳤다.

신병이 꼴같잖게 칼 자랑을 한다고 고깝게 여긴 병사 한명이 신병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보며 빈정거렸다.


"거 전투 한 번 안해서 그런가 칼이 아주 쌩쌩하니 좋아보이네. 자네처럼 아주 쌩쌩해."


"좋은 칼이죠. 검명까지 있다오."


칼을 자랑하는 신병의 얼굴에 자부심이 번졌다.


"장군도 아닌 병졸 나부랭이가 무슨 검명이 있어. 그래 뭔데?"


신병이 칼집에서 칼을 꺼냈다.

햇빛에 반사되는 칼이 예사롭지 않다.

병사들 중에서 그래도 문자를 더듬거리며 읽을 줄 아는 노병이 검의 손잡이 부근 칼날이 시작되는 지점에 새겨진 글자를 읽었다.


"... 청 ...강? 청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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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타임포탈이 열리고 (3) 19.08.29 22 0 15쪽
18 타임포탈이 열리고 (2) 19.08.23 33 0 13쪽
17 타임포탈이 열리고 (1) 19.08.22 40 0 13쪽
16 장판파의 요괴 (8) 19.08.21 30 0 13쪽
15 장판파의 요괴 (7) 19.08.20 26 0 12쪽
14 장판파의 요괴 (6) 19.08.19 30 0 14쪽
13 장판파의 요괴 (5) 19.08.17 29 0 14쪽
12 장판파의 요괴 (4) 19.08.16 45 0 12쪽
11 장판파의 요괴 (3) 19.08.15 29 0 12쪽
10 장판파의 요괴 (2) 19.08.15 43 0 12쪽
9 장판파의 요괴 (1) 19.08.14 57 0 13쪽
8 생존의 길 (2) 19.08.13 39 0 12쪽
7 생존의 길 (1) 19.08.10 37 0 13쪽
6 내 이름은 조자룡 (2) 19.08.06 36 0 13쪽
5 내 이름은 조자룡 (1) +1 19.08.03 51 1 12쪽
4 호기심 많은 신병 (3) 19.08.02 56 0 12쪽
3 호기심 많은 신병 (2) 19.08.01 61 0 12쪽
» 호기심 많은 신병 (1) 19.08.01 81 0 12쪽
1 여긴 어디? 우리는 누구? +2 19.07.31 21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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