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이고르
70년 전.
[희귀금속이다.]
[드문 아이다.]
[무리에 넣자.]
[동의한다.]
갓 깨어난 푸른 가고일은 인간의 주먹보다 살짝 작았다.
작은 가고일을 둘러싸고 선 수십마리의 가고일은 3미터에서 시작해 가장 큰 가고일은 5미터나 되었다.
단단한 강철로 된 4미터짜리 가고일이 앞으로 나섰다.
[무리에 받아들인다.]
가고일들은 각자의 몸을 이루는 광물을 먹고 성장한다.
따라서 같은 재질로 이루어진 가고일끼리는 경쟁이 붙을 수 밖에 없고 한 무리에 둘 이상이 끼어있는 경우는 광맥을 점거한 무리가 아니라면 많지 않았다.
[까웅?]
아마르타의 청광석. 가고일들은 이름조차 모르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푸른 가고일은 별 이견 없이 떠돌이 무리의 일원이 되었다.
푸른 가고일은 무리 사이에 섞여 날았다.
무리와 함께 눈을 맞았고 비를 피했다.
녹슨 부위를 핥아 반짝거리게 만드는 법도 배웠다.
[까아악!]
[말을 가르친다.]
[알아서 배울 거다.]
[내버려 둔다.]
[까악!]
푸른 가고일은 무리 사이에서 즐거웠다.
---
10년이 지났다.
가고일은 10년이면 거의 최대치로 성장하며 그때부터는 섭취한 광물의 효율이 극도로 낮아진다.
5미터 이상의 가고일은 그 자체로 희귀했으며 오래되어 깎여나간 자국이 있는 가고일이라면 무리의 존경을 받는다.
푸른 가고일도 언젠가는 커다란 가고일이 되어 무리를 이끌고 싶었다.
하지만 푸른 가고일은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아마르타의 청광석은 희귀해도 너무나 희귀한 광물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느리다.]
무리의 리더, 현명한 강철 가고일이 푸른 가고일에게 소리쳤다.
[너는 성장도 할 수 없다.]
푸른 가고일은 커다란 강철 가고일의 앞에서 조약돌만도 못했다.
10년 전과 똑같은 크기.
[먹은게 없어서 그렇다.]
[앞으로도 없을 거다. 너는 작고 느리고 약하다.
가고일은 크고 강하고 빨라야 한다. 너는 무리를 따라오지도 못하고 무리에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
[어쩌겠다는 거냐?]
강철 가고일은 매몰찼다.
[너는 추방이다.]
푸른 가고일은 혼자가 되었다.
푸른 가고일은 날개가 닿는 대로 타락의 대지를 날아다녔다.
작은 가고일에게는 고기가 없었기에 큰 몬스터들이 노릴 일도 없었다.
위협이 될 크기가 아니었기에 어떤 몬스터도 굳이 푸른 가고일을 신경쓰지 않았다.
[···.]
가고일은 괜찮았다.
가고일은 혼자 자고 혼자 날았다.
혼자 눈을 맞았고 혼자 비를 털어냈다. 혼자 녹슨 부위를 핥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느 날 가고일은 자신을 강력하게 이끄는 냄새를 맡았다.
[냄새!]
그것이 아마르타의 청광석이 내는 냄새,
자신만이 맡을 수 있는 음식의 냄새라는 것을 알아차린 건 10년동안 굶주려온 가고일의 본능 덕분이었다.
가고일은 그때까지 내본 적이 없는 속도로 날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모래알처럼 조그만 아마르타의 청광석!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었다.
[인간!]
낡았지만 확실히 인간의 냄새였다.
몬스터로서의 본능에 충실한 가고일은 이빨을 세웠다.
으르릉대며 인간을 위협했다.
[손에 든 걸 내놔라!]
인간 주변을 빠르게 선회한 가고일이 인간에게 날아들었다.
[하앗!]
퍽.
[악!]
푸른 가고일은 알지 못할 힘에 맞아 땅을 나뒹굴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가고일에게 인간이 다가왔다.
[뭐야 이건? 박쥐?]
[나는 가고일이다!]
가고일은 일어나려 했지만 날개가 꺾여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조그만 가고일은 본 적이 없는데.]
가고일은 항상 괜찮았지만 조그맣다는 말에는 화가 났다.
[나는 조그맣지 않다. 그걸 내놔라. 그걸 먹고 커질거다.]
인간은 손에 든 모래알만한 청광석을 내밀었다.
[이것 말이냐?]
[그래, 인간!]
가고일이 손을 뻗었지만 인간은 손가락만 살짝 움직여 피했다.
[어차피 이 크기로는 쓸 데도 없으니 상관은 없다만, 나는 인간이 아니다.]
[무슨 소리냐? 인간 냄새가 난다.]
가고일은 그제서야 인간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뼈다귀?]
인간은 그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 나는 인간이 아냐.]
[뼈만 남은 인간은 인간이 아니냐?]
[글쎄? 일단 나는 아니다.]
[상관없다. 그걸 내놔!]
뼈만 남은 인간은 가고일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더니 혼잣말을 시작했다.
[청광석 가고일이라.
이렇게 큰 청광석 덩어리는 본 적이 없는데.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너는 나를 공격했으니 죽어도 불만은 없겠지?]
뼈만 남은 인간은 가고일을 죽일 생각인 것 같았다.
가고일은 바닥에 엎어진 채 악악 소리쳤다.
어차피 이제 잃을 것도 없었다.
[그걸 내놔라. 그걸 먹고 커져서 무리로 돌아갈 거다. 내가 커지면 다시 받아줄 거다. 무리를 따라잡을 만큼 빨라지면 받아줄 거다.]
뼈만 남은 인간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무리에서 버려졌느냐?]
[그래!]
[흠.]
[···.]
가고일을 내려다보던 리치가 손가락 끝에 청광석 조각을 내밀었다.
[주도록 하지.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뭐냐?]
[내 패밀리어가 되어라.]
[패밀리어?]
[나의 무리로 들어오라는 말이다.]
[뼈만 남은 인간과 무리가 되라는 말이냐?]
[그래.]
가고일은 흰 뼈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마르타의 청광석을 뚫어질 듯 바라봤다.
[어쩌겠느냐?]
가고일은 갈등했지만 본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인간의 손 위에 올려진 조그만 알갱이를 황급히 잡아 허겁지겁 먹었다.
뼈만 남은 인간이 흡족하게 말했다.
[계약 성립이군.]
가고일은 뼈만 남은 인간에게 물었다.
[뼈만 남은 인간도 내가 안 커지면 날 떠날 거냐?]
[내가 왜?]
[가고일들은 그랬다.]
[아니. 그럴 일은 없다.]
뼈만 남은 인간이 가고일에게 물었다.
[넌 이름이 뭐냐?]
[가고일에게 이름은 없다. 그냥 가고일이다.]
[오늘부터 이고르라고 부르마.]
[흥!]
[마음에 안 드나?]
[마음대로 불러라.]
뼈만 남은 인간은 뼈를 달그락대며 웃더니 가고일을 주워들었다.
[가고일이니 곧 회복하겠지?]
[그래, 뼈만 남은 인간.]
[뼈만 남은 인간은 너무 기니 그냥 리치라고 불러라.]
[리치?]
[그래, 리치.]
[리치.]
이고르는 다시 무리의 일원이 되었다.
이고르는 즐거웠다.
- 작가의말
외전을 의도하고 쓴 건 아니고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보려고 처음에 썼던 건데그냥 제가 아쉬워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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