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8,596
추천수 :
198
글자수 :
139,600

작성
20.03.30 18:45
조회
492
추천
12
글자
12쪽

2. 리치는 이스마엘 (1)

DUMMY

세 사람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끄르륵?

미행을 들킨 고블린 무리의 선두가 입을 찢으며 웃었다.

"젠장."

고블린은 몸집은 작지만 무리를 지어 커다란 짐승도 사냥하는 타고난 사냥꾼이다.

사냥감을 발견한 한 마리의 정찰꾼이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피리를 불면 순식간에 십수마리의 사냥꾼 무리가 형성된다.

"뛰세요!"

엠마 사제가 미리암을 옆구리에 끼어들며 소리쳤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리치도 얼떨결에 엠마 사제를 따라 뛰었다.

'일부러 조용히 뒤를 따라왔어.'

고블린은 인간도 무리를 짓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깡마른 남자와 어린아이 하나로는 고기가 부족하다고 여겨 무리로 안내하길 기다렸다.

리치가 이마를 짚었다. 마나가 부족하지 않았다면 풀풀 날리는 검은 마력이 고블린의 접근을 알렸을 것이다. 아니, 접근하기도 전에 고블린이 먼저 똥오줌을 지리며 도망쳤을 것이다.

"불찰이군.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나."

고블린 무리를 막는 건 어렵지 않다. 오히려 달리는 게 더 힘들지.

하지만 이스마엘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마법을 사용하면 누군가는 의심할 것이다.

"빨리!"

문을 열어둔 코리 사제와 사제에게 옹기종기 달라붙어 눈을 빼꼼 내밀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보였다.

엠마 사제가 보육원 안으로 미리암을 던지듯 밀어넣었다. 그녀가 문을 닫을 준비를 하며 리치를 재촉했다.

"원장님!"

낡고 비튼 문은 여는 데는 어렵지만 부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게 조그만 고블린일지라도.

"···젠장."

리치가 뛰던 걸음을 멈췄다. 품 속에 숨은 이고르가 속닥였다.

[안으로 들어가라. 정체를 숨기고 가만히 있어도 아무도 모른다.]

시원하리만치 자기중심적인, 몬스터다운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리치는 그럴 수 없다.

"내가 끌고 왔으니 내가 처리해야지."

리치는 빚을 지지 않는다.

모든 리치들은 불사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광증(狂症).'

리치술이 사장된 가장 큰 이유.

전설과 역사로 남은 모든 사악한 리치들은 광증을 이기지 못한 이들이다.

리치에게 있어서 이성적 행동. 규칙을 지키는 행동은 자신이 아직 인간임을 상기시켜주는 경종이다.

모든 리치의 정해진 종착점인 광증을 유예하고 이성을 유지시켜주는, 말하자면 썩은 동앗줄인 셈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지."

[마음대로 해라.]

-끄게게겍!

-끼아아악!

단검과 도끼 등을 꼬나쥔 고블린들이 침을 흩뿌리며 달려들었다. 리치가 양 손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고블린의 숫자는 열 둘.

한 호흡이면 충분하다.

리치의 수인을 따라 열 두개의 투명한 매직 미사일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매직···.]


-키에엑!

성 아랫마을 쪽에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온 건 그 때였다. 돌에 머리를 맞은 고블린이 녹색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여기다, 더러운 고블린들아!"

뒤이어 열 대여섯쯤 된 소년이 보육원과 리치를 단숨에 지나쳐 고블린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대열이 깨진 고블린들은 당황해 대응하지 못했다.

"하아앗!"

소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소년이 고블린 무리를 종횡무진 휩쓸었다.

작은 방패의 날로 고블린의 얼굴을 후려친 소년이 단검을 찔러오는 고블린의 목을 아밍 소드로 정확히 베어냈다.

-끼악.

"꽤 싸우잖아?"

리치는 황급히 마법을 거두고 소년의 전투를 관전했다. 검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리치였지만 소년이 전투에 숙달된 베테랑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키이익!

소년이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쓰러뜨렸을 때 대장 격으로 보이는 고블린 한 마리가 도끼를 치켜들고 높이 뛰어올랐다.

"시끄러워! 너나 죽어!"

소년이 아밍 소드를 치켜들었다. 도끼를 휘두르던 고블린의 뱃가죽에 아밍 소드가 깊이 박혔다.

-끼아아악.

"제기랄."

고블린은 도끼를 놓치고 죽었지만 뱃속 깊이 박힌 검은 바로 빠지지 않았다. 방패를 휘둘러 떨어지는 도끼를 쳐낸 소년이 검을 빼려 안간힘을 썼다.

-크륵!

그 틈을 노린 두 마리의 고블린이 소년의 뒤에서 단검을 찔러들어갔다.

'이런.'

리치가 조용히 수인을 맺었다. 난데없는 나무뿌리가 고블린 한 마리의 발을 걸고 매직 미사일이 다른 고블린의 명치를 때렸다.

-게흐흑?

겨우 검을 빼낸 소년이 회전력을 실어 주춤한 고블린 두 마리의 목을 단숨에 날렸다.

-키이이익!

-끼기긱!

"덤벼."

녹색 피범벅이 되어 숨을 몰아쉬는 소년의 모습은 네 마리 남은 고블린들을 기백으로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끼익···.

고블린들은 도저히 이길 수 없다 판단했는지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덤비라고!"

소년은 아밍 소드를 빙빙 휘두르며 분개했다. 소년이 갖은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봤지만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전력질주까지 감당할 체력은 없었다.

"허억··· 허억··· 빌어먹을 놈들···. 더럽게 빠르네."

고블린들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자 소년이 가죽 건틀렛을 벗고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굉장한 꼬맹이로군.'

리치는 소년의 전투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게다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소년은 리치의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해주었다. 리치로서는 감사할 일이다.

"파비안!"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이 녀석이 파비안.'

미리암의 말에 의하면 이스마엘의 정체를 가장 먼저 의심하기 시작한 눈치 빠른 꼬맹이다.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파비안은 아이들 사이에서 미리암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미리암! 무사했구나!"

파비안이 미리암을 향해 달려갔다. 리치의 옆을 지나치던 파비안은 리치에게 눈을 흘기며 한 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신, 미리암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내가 지켜볼 거야."

파비안은 이스마엘이 맞이한 불행한 운명에 대해서 전혀 몰랐으니까.

'제기랄···.'

귀찮은 일 다음에는 다시 귀찮은 일이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



질긴 호밀빵을 질겅질겅 씹던 엠마 사제가 리치에게 물었다.

"원장님은 싸워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보육원으로 안 들어오셨어요? 보호 마법이 어느 정도는 버텨줬을텐데."

'보호 마법이 있었다고?'

다 무너져가는 보육원이라 당연히 보호마법 같은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리치는 괜히 눈에 띄는 행동을 했음을 깨닫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고블린들이랑 친했나보지. 어쩌면 일부러 놈들을 끌고 온 걸 지도 몰라요. 누가 알아?"

"파비안!"

멀건 수프를 스푼으로 휘젓던 파비안의 볼멘소리를 코리 사제가 일축했다. 파비안이 입을 댓발 내밀고는 조용해졌다.

리치가 고개를 저었다.

"결국 아무것도 못했으니 상관없지 않은가?"

"상관없다뇨? 나서는 것 만도 대단하죠. 감동적이었어요!"

엄지를 치켜올린 엠마 사제가 씨익 웃고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시끄러운 곳이군.'

리치는 1층의 식당 겸 로비 겸 교실 쯤으로 보이는 커다란 방에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조용하고 음습한 던전에서 생활하던 리치에게 보육원의 아침식사 시간은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시끄러웠다.

"사제님, 미카가 바닥에 떨어진 빵을 먹어요."

"사제님! 수프 더 주세요!"

아이들은 커다란 식탁 네 개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었다. 크고 퍽퍽한 호밀빵과 수프가 든 솥이 식탁 중앙에 올라가 있었다.

코리 사제와 엠마 사제는 서른 명이 넘는 어린아이들이 빵을 코로 넣거나 수프 그릇을 던지지 않도록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식사는 항상 다같이 하고 있어요."

리치의 옆에 앉은 미리암이 작게 소근거렸다.

"이스마엘은 한번도 같이 먹은 적이 없지만요."

"그건 다행이구나. 굳이 끼니마다 자리를 채우지 않아도 상관없겠어. 자리에 앉아서 음식은 먹지 않으면 의심만 더 받겠지."

"리치는 밥을 먹지 않나요?"

"뼈다귀가 밥을 먹어봤자 목뼈에 묻을 뿐이지."

"···."

미리암이 리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리치는 미리암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이런.'

너무 침착해서 자꾸 잊게 되지만 미리암은 겨우 열 살이었다. 비위가 강하다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스마엘의 몸은 이미 죽었다. 시체는 식사가 필요 없어."

미리암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는 어색하게 앉아 식사 내내 자신을 노려보는 파비안을 마주 노려보았다.

'나는 꿇릴 게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꿇릴 건 없었다. 실제로 이스마엘은 인간말종이었지만 리치와는 상관이 없으니까.

결국 노려보는 데 지친 파비안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 미리암을 어디로 데려갔었어?"

'팔아치우러 갔었지.'

쾅!

리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파비안이 식탁을 내려쳤다.

"대답해!"

리치는 대답하지 않고 파비안의 뒤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새 다가온 엠마 사제가 파비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 자식이!"

"악!"

"원장님한테 버릇없게 뭐하는 짓이야!"

엠마 사제의 손이 어찌나 매웠는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파비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블린 사냥한 보수 받으러 다녀올게요."

파비안이 보육원을 뛰쳐나가자 아이들이 까르륵 웃으며 파비안을 흉내냈다. 엠마 사제가 웃으며 말했다.

"파비안도 미리암을 찾아 성 아랫마을을 밤새 돌아다녔거든요. 원장님이 미리암을 찾아왔으니 질투가 난 게 아닐까요?

사내자식이 쩨쩨하긴··· 잘 보일 방법은 많은데."

"그런 건 아닌 것 같군."

엠마 사제가 리치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원장님. 평소에도 창백하고 무표정이셨지만 오늘은 한층 더 창백하시네요!"

"걱정을 해주는 건가, 욕을 하는 건가?"

엠마 사제가 눈을 크게 떴다. 억울한 표정이었다.

"물론 걱정하는 거죠! 무슨 말을 하시는 거람! 하루종일 미리암을 찾아서 타락의 대지를 돌아다니셨으니 그런 게 아닐까요?

여기, 더 많이 드세요. 골병이라도 드시면 아이들이 걱정해요."

엠마 사제가 솥을 번쩍 들어 리치의 앞에 놓인 나무그릇에 수프를 한 국자 떠주었다.

"난 괜찮네. 배가 고프진 않아."

리치는 내용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멀건 수프를 옆으로 살짝 밀었다. 엠마 사제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수프를 다시 솥에 부었다.

"항상 이런 걸 먹는 건가?"

"이거라도 먹는 게 다행이죠. 원장님은 괜찮으세요?"

엠마 사제가 호밀빵을 덩어리째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괜찮냐니?"

"원장님은 평소에 따로 드신다고 식대까지 받아가셨잖아요."

엠마 사제는 이스마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어느새 다가온 코리 사제는 이스마엘에게 조금 응어리가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 한 끼 먹을 값을 다 가져가셨죠."

"···내가 그랬단 말인가?"

"네."

유령처럼 대답한 코리 사제가 천천히 사라졌다. 리치는 엠마 사제에게 말했다.

"이제 줄 필요 없네. 그 돈으로 수프에 넣을 재료를 사던가 하게."

리치는 식사를 할 필요가 없으니 식대도 필요없다.

물론 엠마 사제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럼 이제 저희랑 같이 식사하세요! 아이들 먹이려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거든요. 다행이다!"

"뭐?"

"원장님이 이토록 헌신적인 걸 아이들도 알았을 테니 이제라도 친해지는 거에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엠마 사제는 너무 좋은 생각이라는 듯 연신 손뼉을 쳤다. 이스마엘보다 키가 큰 엠마 사제는 손도 컸고 박수소리도 컸다.

리치는 박수소리에 맞춰 편두통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리치가 이마를 짚었다.

"···그건 안되겠군···."

"에···."

엠마 사제가 슬픈 얼굴로 박수를 멈추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5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1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29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8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69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3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09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3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3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6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1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0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5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1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5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3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7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