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8,600
추천수 :
198
글자수 :
139,600

작성
20.04.17 18:20
조회
193
추천
6
글자
12쪽

7. 때 아닌 던전탐험 (1)

DUMMY

<이틀 후, 다시 연락하지.>

리치는 살짝 당황했다.

“이틀?”

<그래.>

“조금만 늦게 하면 안 되나? 일주일 정도.”

<안되네. 제례 전에 자네의 목숨을 거두려는 건 일말의 변수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네.>

리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틀.

이스마엘의 마나 회복량으로는 무리다. 아무리 싹싹 긁어모아도 중급 마법 두 발이면 쓰러질 테니까.

마나를 회복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리치가 열심히 짱구를 굴렸다.

리치가 말이 없자 사제는 이스마엘이 도망칠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엄포를 놓았다.

<이틀. 연락이 닿지 않으면 곧바로 교도들을 보내겠네.>

리치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날 협박하는 거냐?"

사제는 가소롭다는 듯 껄껄 웃었다.

<약속을 지키게. 그렇지 않으면 성 아랫마을은 불바다가 될 테니.>

“잠깐만."

대답은 없었다.

"야, 야! 끊겼잖아?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른 말씀하시는데 감히 통신을 끊어?"

리치는 천문학적으로 비싼 국가급 아티팩트를 땅에 던지며 화풀이를 했다.



---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다니···."

리치는 오후가 되도록 에코 큐브를 두들겨댔지만, 사제는 이미 타락의 대지 안쪽으로 떠났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빌어먹을."

손가락 끝이 아려오는 것을 느낀 리치는 이내 포기하고 마당의 평상에 벌러덩 누웠다.

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리치의 뒤를 따라다니던 아이들도 평상 위에 누워 재잘거렸다.

"할아버지 놀이."

"원장님 놀이."

"으··· 힘들어··· 피곤해···."

"원장님이랑 똑같네."

마침내 리치가 눈을 부라렸다.

"조용히 해라. 파비안 꼬맹이한테 놀자고 하던가 하지 왜 날 못살게 구는 거냐?"

아이들은 볼멘소리를 냈다.

"파비안은 칼만 휘둘러요."

"원장님보다 재미없어."

리치가 이마를 짚었다.

"그럼 조용히 있어라. 시체놀이를 하면 되겠군."

"시체놀이?"

"그게 뭐야?"

아이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리치를 올려다봤다.

리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죽은 척을 해서 오래 버티는 놈이 이기는 놀이다. 제일 먼저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녀석이 지는 거다. 지는 놈은 꿀밤이다. 알겠느냐?"

"알았···."

"쉿!"

양손으로 입을 가린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해진 아이들을 확인하고는 다시 누운 리치가 생각에 잠겼다.

사제가 원하는 것은 리치가 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리치의 목표는 사제의 죽음이다.

머리인 사제가 죽으면 몸통인 마신교도들은 흩어진다. 십중팔구는 타락의 대지에서 미치거나 몬스터에게 죽을 것이다.

반대로 사제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위협인 이스마엘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아리타는 이스마엘에게 배후가 있을 거라 판단했고, 발각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사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수도사가 죽은 것보다 마신교에 대한 모욕에 더 화를 내던 사제다. 사제에게 마신교도란 얼마가 죽던 상관없는, '승화'를 위한 제물일 뿐이다.

'결국, 노리는 것은 서로의 목.'

그러니 사제가 이판사판으로 나온 것은 허세가 아니었다. 리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사제는 정말로 성 아랫마을을 침공할 것이다.

리치가 혀를 찼다.

"이거 귀찮게 됐군."

성 아랫마을이 불타던 말던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더 끌었다간 사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리치는 혼자이고 마신교는 다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어린아이들을 납치하고 죽일 수 있다.

'승화'한 사제를 놓친다면 추적이 힘들어진다.

리치가 마음을 굳혔다.

"이틀 안에 마나를 회복하고 사제의 요구에 응한다."

리치가 고를 만한 선택지는 하나였다.

대량의 마나가 응축된 마나석.

자연에서 마나석을 발견하는 건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으로는 구할 수 있다.

"던전."

결심한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다.

벌떡 일어나려던 리치는 잠시 멈추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쌔액···."

"쿨쿨···."

죽은 척을 하던 아이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들어있었다.

"···."

어느새 다가온 코리 사제는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리치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담요를 가져오게. 날이 아직 춥군.'

코리 사제가 팔짱을 끼고 미소지었다.

'아이들을 귀찮아하는 게 아니었나요?'

'물론 귀찮지. 달라붙을 때 콧물을 묻히면 더 귀찮아지니 하는 말일세.'

코리 사제는 고개를 젓고는 담요를 가지러 들어갔다.



---



파비안의 하루는 아침 일찍 시작되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뜬 파비안은 몸을 풀고 바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막 보육원을 나서는 파비안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

서쪽 숲에서 코리 사제가 말을 탄 엠마 사제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이스마엘은 가만히 서 있었다.

"뭘 하는 거야?"

궁금했지만 단련이 먼저였다. 자경단의 일원인 파비안은 훈련이 없을 때에도 전투력을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웨이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한 시간을 달리고 돌아온 파비안은 보육원 밖의 물통에서 물을 한 바가지 퍼내 머리에 냅다 부었다.

"후우···."

냉수로 땀을 씻어내니 머리가 개운해졌다.

그새 일어난 아이들이 파비안의 등을 두들겼다.

"파비안, 등에서 김이 나."

"달리기 하고 왔어?"

아이들은 아직 잠이 덜 깼다. 눈을 부비는 에밀리는 베개를 끌어안고 있었다. 자신이 아직 침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난기가 돈 파비안이 에밀리를 높이 안아 들었다.

"그래, 임마."

"꺅!"

깜짝 놀란 에밀리가 팔을 마구 내저었다.

"이거 놔!"

"싫은데?"

"아악! 사제님!"

파비안은 에밀리를 든 채 보육원으로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동안 쉰 후에는 보육원 옆의 공터에서 체력단련을 시작했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토끼뜀 등 다시 한 시간에 걸친 맨몸운동을 마치니 그제서야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좋아."

백사자성 내부의 자경단용 임시 병영, 즉 땀 냄새에 절고 비가 다 새는 낡은 천막이 아닌 따뜻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니 몸 상태가 좋았다.

"오랜만의 휴식을 즐겨볼까 했는데."

상단의 캐러밴이 도착해 백사자성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치안대는 경비를 서느라 몸이 두 개라도 부족했다. 성의 주 병력인 백사자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레온 기사단까지 동원되었다.

성의 병사들은 마차가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죄수병까지 풀어서 경비를 세울 거라고 농담을 했다.

자경단의 훈련을 봐줄 여유가 없어서 얻은 휴가였다. 하지만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날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뭘 한단 말인가?

"좀 휘둘러볼까?"

파비안은 전투태세를 갖췄다.

가죽 건틀렛을 끼고 오른 다리에는 각반을 찼다. 오랫동안 사용한 나무 방패를 왼손에 단단히 든 파비안이 짧은 아밍 소드를 빙빙 휘둘렀다.

"느낌 좋은데."

파비안은 자경단의 고참들과 용병들에게서 배운 싸구려 검술을 몇 번이고 몸에 익을 때까지 연습했다.

"핫!"

기사들이 본다면 웃을 만큼 정직하고, 마나의 사용을 완전히 배제한 용병식 검술.

하지만 파비안의 눈은 진중했다.

자경단에 입단한 지 2년.

이제 자경단 내에서는 아무도 파비안을 어리다 무시하지 못한다.

"하앗!"

부웅!

재능이 탁월해서는 아니었다.

파비안은 매일매일 살아남기 위해 검을 연습했고, 강해졌다.

고된 훈련이 끝난 뒤에도 혼자서 검을 휘두르는 파비안을 눈여겨본 기사들도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때면 몇 가지 기본적인 검술을 알려주기도 했다.

파비안은 당돌하게도 마나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달라 했지만, 기사들은 검을 휘두르다 보면 깨우친다는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병사들에게서는 스크럼을 짜고 방진을 형성하는 법, 기다란 창을 사용하는 법과 목책을 세우고 진지를 구축하는 병사로서의 지식에 대해 배웠다.

깃발과 나팔을 이용한 전술 신호는 쥐약이었다. 파비안은 머리 아픈 전술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 검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전황의 파악이었기에 파비안은 열심히 외웠다.

파비안에게는 꿈이 있었다.

언젠가 기사, 나아가 소드마스터가 되어 판데모니엄을 정복하는 꿈.

보육원의 식구들에게 하루 세끼 따뜻한 빵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를 먹이는 꿈.

그리고···.

"하앗!"

휘리릭!

파비안의 검법이 바뀌었다.

투박한 용병식 검로에서 백사자성의 기사들이 배우는 기본적이지만 치명적인 검로로.

아밍 소드가 세 번의 찌르기를 빠르게 반복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각각 목, 심장, 명치를 노린 검격.

레온 기사단의 평기사에게 배운 검술이었다.

검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허공을 갈랐지만 파비안의 표정은 불편해 보였다.

"···."

"···."

물론 검술의 문제는 아니었다.

미리암을 데리고 온 이스마엘이 공터 한쪽에 앉아 파비안의 훈련을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시선을 견디지 못한 파비안이 소리쳤다.

"원장님, 할 말 있으면 해. 부담스러우니까."

리치는 엄숙한 표정으로 양손을 들어 선서하듯 손바닥을 세웠다.

"아니다. 미래의 소드마스터의 수련을 방해할 수는 없지. 우리는 여기서 지켜보기만 하도록 하겠네."

리치의 농담은 파비안의 미간에 불쾌한 주름을 만든 것 외에도 예상외의 효과를 냈다.

"프훗···. 미래의 소드마스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적신 이불을 숨기려다 들켜 울면서 벌을 서던 파비안이 소드마스터라니. 미리암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둘이 시비 걸러 온 거야?"

"미안. 프흣···."

미리암은 결국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우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거렸다.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화를 참는 파비안에게 리치가 쐐기를 꽂았다.

"소드마스터. 화를 참고 평정심을 유지하게. 명경지수의 마음. 기사들이 중요시하는 것 아닌가?"

더는 상쾌하게 검을 휘둘러댈 기분이 들지 않았기에 파비안은 방패를 풀어 땅에 던졌다.

"···할 말 해."

"소드마스터께서 그리 강권하니 어쩔 수 없군."

"흐흣···."

미리암은 소드마스터라는 말에 꽂힌 것 같았다.

파비안은 유들유들하게 웃는 리치를 쏘아보며 그리브와 건틀렛까지 벗어던졌다.

"앉지 그러냐."

입이 댓 발은 튀어나온 파비안이 툴툴댔다.

"그렇게 오래 있고 싶지는 않은데."

"우리가 미안해, 파비안."

"그래, 미안하네. 소드마스터."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미리암에게서 리치에게로, 파비안의 불타는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당신···."

"껄껄, 미안하다, 미안해. 너무 열심히 연습하고 있길래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열의가 대단하더구나. 싸구려 검법으로는 보이지 않던데, 기사의 종자라도 될 생각이냐?"

파비안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심통이 나 있었던 파비안은 매몰차게 말했다.

"용건이나 말해."

"알겠다. 알겠어. 원, 농담도 못 하겠구나."

목소리를 가다듬은 리치가 진중한 표정으로 파비안에게 물었다.

"자경단에 가입하려면 기본적인 모험가 자격은 있어야 한다더구나. 맞느냐?"

"그렇긴 한데."

자경단에서 기본 조건을 내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소한 싸울 수는 있어야 하니까.

최하급의 모험가 등급. 구리 등급의 등급패를 받는 자격도 동일하다.

'싸울 수는 있을 것.'

그 기준이야 시험관 마음대로였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데 무리가 없다면 구리 등급은 받을 수 있었다.

"있긴 있는데. 별 의미는 없어."

리치가 원하는 것은 길드가 가진 정보였다.

"상관없다. 길드의 의뢰서를 볼 수만 있으면 되니까."

"무슨 의뢰서?"

리치는 씨익 웃었다.

"던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5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1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29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8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69 5 12쪽
»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4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09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4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4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1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0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5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1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5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3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7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