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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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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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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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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리치는 이스마엘 (3)

DUMMY

이스마엘의 장부에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마신교', 그리고 '마부'였다.

"우선 마부를 찾아 마신교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겠다."

마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차의 제작과 유지 보수에는 장인의 정밀한 손길이 필요하게 마련.

시내를 달리는 마차의 80%는 상단의 소속이고 나머지 20%는 비싼 관리비를 감당할 수 있는 부유한 귀족들의 사유물이다.

화려한 마차는 귀족들이 부를 과시하는 일종의 트로피.

귀족들이 부리는 마부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예법을 익힌 고급인력이게 마련이다.

보육원장이 그런 마차를 탈 리는 없으니 리치가 찾는 마부는 상단 소속의 고용인일 것이다.

어느새 분노를 갈무리한 리치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은 마차 관리소에 한 가지 질문만 하면 된다는 말이지."

[무슨 질문이냐?]

"나와 함께 다니는 마부 놈의 집을 알고 있소?"

[똑똑하다.]

이고르가 심드렁하게 박수를 쳤다.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우선 나가지."

리치는 잠이 덜 깬 채로 잠이 덜 깬 아이를 도와 화장실에 다녀오던 엠마 사제에게 마차 관리소의 위치를 물었다.

잠에 취해 이스마엘에게 꾸벅 인사하다 넘어질 뻔한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낸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손짓과 함께

"어어음··· 후음··· 마차하으으으아악···."

라고 대답했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리치는 엠마 사제의 대답이

'마차 관리소는 성 아랫마을 중심의 길드 지구와 귀족 거주지구를 가르는 지점에 있어요.'

라는 말이라 판단했다.

"고맙네. 어서 들어가서 자도록 하게. 피곤해 보이는군."

엠마 사제는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표정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하으흐어억···커억···! 켈록켈록!"

리치는 그 말을

'뭘요, 별걸 다 물어보시네요.'

라고 해석하고는 엠마 사제가 방으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보육원을 나섰다.



---



리치가 보기에 성 아랫마을은 드물게 정직한 도시였다.

구조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었다.

성 아랫마을은 큰 규모의 도시였지만 외성이 없었다.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안전해지는 도시의 특성상 부유한 이들은 안쪽에, 가난한 이들은 바깥쪽에 살고 있었다.

가장 바깥쪽 빈민가에서부터 가장 안쪽의 길드 지구까지 걷는 동안 풍경은 수도 없이 바뀌었다.

중앙으로 갈수록 거리를 밝히는 빛은 점점 밝아졌고 건물은 점점 높아졌다.

성 아랫마을의 중심, 길드 지구는 밤에도 낮처럼 밝았다.

대로를 걷던 리치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야경이 썩 나쁘지 않군."

밤눈이 밝고 어둠에 익숙한 이고르에게는 불편할 뿐이었지만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불은 왜 켜나? 쓸데없이 눈이 부시다.]

"인간들은 너처럼 밤에도 낮처럼 볼 수가 없거든."

[불편한 생물이다. 인간은 약하고 어린애들은 더 약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번식했는지 모르겠다.]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사람의 살결이 고픈 법이지."

[이해할 수 없다.]

마차 여섯 대가 동시에 달릴 만큼 넓은 길드 지구의 대로를 걸어 올라가자 타국의 귀족들이 거주하는 저택들이 모여있었다.

저택들과 길드 건물들이 맞닿는 거리에 마차 관리소가 보였다.

깨끗한 옷을 차려입은 상단 소속의 접수원이 공손히 리치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빛의 집의 이스마엘 엔파시아스 원장님이시군요.

항상 고용하시는 마부, 한스 씨는 지금 근무 시간이 아닙니다. 다른 마부를 고용하시겠습니까?"

"아니, 그 친구의 집을 알 수 있을까 하는데."

접수원이 곤란하다는 투로 말했다.

"원장님, 죄송합니다만 사적인 고용을 금지하는 상단의 방침상 형평성에 어긋날 만한 정보는 고객들에게 발설할 수 없습니다."

리치가 팔짱을 꼈다.

"그 친구를 사적으로 고용하겠다는 말이 아니네.

내 실수로 마차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내렸는데 그 친구가 맡아두었을 것 같아서."

접수원은 다시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표했다.

"그러시다면 제가 내일 한스 씨에게 말씀을 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관리소까지 오실 필요가 없도록 빛의 집으로 유실물을 전달하도록 하지요."

접수원은 자기 일에 충실했지만 리치에게 도움이 되는 태도는 아니었다.

"급한 물건이라."

하지만 리치가 꼈던 팔짱을 풀었을 때 손가락에 쥐어져 나온 실버 동전 두 개는 그의 직업정신을 통째로 뒤흔들기 충분했다.

"부탁하지."

"···."

접수원의 눈이 불로소득에 대한 열망으로 빛났다.

리치의 품속에 숨은 이고르가 조용히 말했다.

[마법을 쓰면 간단하지 않나?]

리치는 접수원이 눈치챌까 무시하려다가 그냥 대답했다.

내적 갈등으로 바쁜 접수원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은 쪼가리 두 개로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게 마법이 아니면 무엇이냐?"

이고르는 가고일.

실버 가고일이 아닌 이상에야 은에 욕심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고작 광물이 아닌가? 게다가 간에 기별도 안 갈 크기였다.

[멍청하다.]

이고르에게 인간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생물이었다.

그 사이 자신과의 타협을 마친 접수원은 주위를 살피고는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소곤거렸다.

"제가 말씀드렸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리치가 사악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말게."



---



마부 한스의 집은 빈민가에서도 가장 바깥쪽, 다 쓰러져가는 움막이었다.

몬스터가 습격한다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야 할 그런 집.

상단에서는 마부들에게 꽤 높은 급료를 지급한다. 마차 대여료를 빼고서도 빈민가에서 살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한스가 빈민가에 사는 건 그가 쉬지 않고 목구멍에 털어 넣는 포도주 때문이었다.

꿀꺽 꿀꺽

"제기랄···."

한스는 비어버린 가죽 부대를 내팽개쳤다. 한스의 턱 밑으로 시큼한 저급 포도주가 흘러내렸다.

"이게 다인가?"

비틀비틀 일어난 한스가 빈 가죽 부대 더미를 뒤지다 그 사이로 쓰러졌다.

"끄으."

일어서려다 바닥에 흐른 포도주와 가죽 부대를 밟고 미끄러진 한스는 일어서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돌렸다.

"···."

"술을 많이 마셨군. 냉수라도 한 잔 떠주면 도움이 되겠나?"

한스는 자신이 너무 취한 것이 아닌가 고민했다.

"이스···마엘?"

"아예 인사불성은 아니군."

한스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너무 취해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닐까?

타락의 대지에 나타난 해골이 마신교의 광신도들을 죽이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멍청히 있다가는 자신도 죽을 것이 확실했기에 마차를 몰아 도망쳤다.

그런데 설마 이스마엘이 살아있을 줄이야.

"신이여···."

이스마엘은 평소처럼 비열한 미소를 짓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귀신처럼 서 있을 뿐.

"왜? 내가 죽기를 기도했나?"

"매일매일 그리 기도하지.

하지만 당신이 멀쩡한 걸 보니 신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모양이군."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기도는 이루어졌으니."

한스는 이스마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신경 쓰지 말게.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자네의 기도가 아니라 자네가 알고 있는 것들이니까."

리치가 한스에게 검은 마력으로 넘실대는 손을 뻗었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한스가 뒷걸음질을 쳤다.

정확히는 뒷걸음질을 치려 했다. 그는 철벅철벅 소리를 내며 쏟아진 포도주 사이에서 몸부림칠 뿐이었다.

"곧 알게 될 것이다."

리치의 손이 한스의 머리에 닿았다.

자비는 필요치 않았다. 한스는 마신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털어놓을 때 까지만 살아있으면 된다.

그 후로는···.

리치의 눈에 어리는 광기.

그의 규칙으로 한스는 죽어도 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리치는 죽어도 되는 인간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리치에게 인간으로서의 감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에 의한 유사감각은 이해하는 것이지 느끼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인식의 수단인 감각을 잃어버려 불사를 살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리치의 자아는 깎여나가고 광증을 앓게 된다.

광증에 시달리는 리치들은 점점 더 강렬한 감각을 갈구한다.

고통.

극한까지 몰린 사람이 자해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것처럼, 리치는 타인의 고통을 통해 삶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마신교. 어서 말해.]

이성이라는 목줄로 애써 억눌러온 리치의 광기가 쇄도한다.

오래전에 자신의 손으로 멈춘 심장이 다시 뛰는 기분이었다.

"이스마엘···."

한스가 애원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이스마엘. 이제 충분하지 않소? 당신이 시키는 건 뭐든지 했소.

마신교도들에게 전 재산을 바쳤고 불쌍한 아이들을 팔아넘기는 것까지 도왔소.

아이들이 새 가족의 품에서 행복해 보였다고 사제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지긋지긋하오.

나를 죽이는 것은 상관없소.

다만 내 아들을 돌려주시오. 제발."

"아들?"

리치의 눈에 이성이 돌아왔다.

한스의 머리를 파고들던 손이 멈췄다.

"···."

거나하게 취한 한스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스와 아이를 두고 도망간 아내.

술을 찾게 된 아버지를 피해 겉돌던 아들의 모습.

그리고 어느 날 사라진 아들.

한스는 그제서야 백방으로 아들을 찾아다녔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스마엘은 아들을 다시 보고 싶다면 입을 닫으라 말했다.

한스는 리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스마엘이 팔아넘긴 부랑아 중 한 명은 한스의 아들이었던 모양이다.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거지꼴을 하고 있으니 가족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비에게서 도망친 아들은 갈 곳이 있다는 말을 의심할 여유도 없었다.

더 볼 것도 없다.

그의 아들은 이미 죽었다.

이스마엘은 한스를 동업자로 만들어 입을 막음과 동시에, 어떤 명령이든 따르는 종을 얻게 된 것이다.

리치가 고개를 숙여 한스의 귀에 속삭였다.

"네 아들은 죽었다."

오열하던 한스가 움찔하더니 그대로 굳었다.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 진짜로 몰랐을 리는 없다.

그저 죄책감에 시달리느니 아둔한 희망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죽여달라고 비는 놈을 죽여도 재미없지."

그러니 한스에게 가장 가혹한 벌은 죽음이 아니라 그의 죄책감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러니 너를 죽이지 않겠다."

리치는 들끓는 가학심을 가라앉혔다.

더 좋은 계획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이 살아있는 걸 알면 마신교도가 널 찾아올 것이다. 네 생사에는 관심이 없지만 나에 대한 것을 발설하면 곤란해.

그러니 마신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하면 도시를 떠나게 해 주마."

리치가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수락하겠나?"

문득 위화감을 느낀 한스가 물었다.

"당신···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공포가 어지러운 술기운을 몰아냈다.

한스는 이상하리만치 움직임이 없는 이스마엘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개의 붉은 빛이 그를 마주했다.

한스는 그 빛을 본 적이 있었다.

붉은 빛이 그에게 대답했다.

[네 알 바가 아니다.]

한스는 그제야 이스마엘이 한 말의 뜻을 이해했다.

이스마엘은 이미 죽었다.

눈앞의 남자는 이스마엘의 껍데기를 쓴 악마다.

그를 단죄하러 온 악마.

"아··· 아아···."

[대답해라.]

악마가 그에게 대답을 종용한다.

[수락하겠나?]."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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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5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1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29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8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69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4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09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4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4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1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0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5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1 7 12쪽
»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6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3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7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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