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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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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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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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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 수도사 아리타. (4)

DUMMY

제국의 초대 황제가 발의하고 대륙의 왕국들이 맺은 ‘대륙평화조약’은 판데모니엄의 악마를 몰아내기 전까지 인간의 왕국들끼리 전쟁을 금지하는 협정이었다.

물론 왕국들은 제국의 횡포에 격하게 반대했다. 제국이 대륙의 삼분지 일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왕국들이 연합하게 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왕국 두 개가 지도에서 지워진 후에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쟁은 사라지고 각국은 판데모니엄과의 전면전에 힘을 쏟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협정은 왕국 ‘사이’의 전쟁에만 한정되었기 때문에.

왕국 ‘내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군대를 키울 명분이 없는 왕가의 힘은 약해졌고 귀족들의 힘은 강해졌다.

귀족들은 왕가를 중앙에 두고 서로의 꼬리를 잡으려 맹렬하게 경쟁했다.

영지전은 최후의 수단이었지만 암살은 당연한 교양이었다.

귀족들은 마치 훈련된 투견 같았다.

왕국이라는 경기장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게 만든 제국은 지지 않는 태양이 되었다.

그러니 암살자 길드는 대호황이었다.

어제의 의뢰인은 오늘의 목표가 되었다.

아리타는 어반트의 암살자였다.

그는 최고였다.

단검에 마나를 담는 암살자는 그가 유일했다.

어떤 신체 강화를 받은 이들이라도 아리타를 이기지 못했다.

어반트의 모든 귀족들이 아리타를 두려워했다.

정면승부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생각했다.

'죽이시오.'

'너는 쓸만한 도구가 될 것 같구나. 나를 따라와라.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힘을 주마.'

비리비리한 노인네였던 사제를 만나기 전까지는.



---



“···졌군.”

“기분은 어떤가?”

퉷.

아리타는 대답 대신 피 가래를 뱉었다.

전문가다운 침착함으로, 아리타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살아나긴 글렀군."

전문가다움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양다리는 잘려나갔다. 바람 속성의 마법이었다.

걸레쪽이 된 오른팔은 뼈가 살을 뚫고 나와 있었다.

“···.”

오른팔은 무슨 마법에 맞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네도 한 방 먹였잖나."

"저승길 위안거리라도 삼으라는 거냐?"

“팔이 잘려나갈 뻔했어. 자네는 강하네. 인정해주지.”

"정신이 나갔군."

기억났다.

리액티브 실드를 무시하고 이스마엘의 팔을 베어냈을 때 폭발에 의해 입었던 상처였다.

“솔직히 아찔했네. 마나가 실린 무기는 정말이지 무서워.”

리치는 살가죽에 의해 겨우 붙어있는 팔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끄아아아악!"

리치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끔찍하게 아프군.”

“···미친놈.”

"옛날엔 아무리 다쳐도 안 아팠는데."

아리타는 딴지를 걸 기운도 없었다.

피에 젖어 가물거리는 아리타의 시야에 과거의 한때가 비쳤다.

아리타는 젊었고 사제는 그때도 이미 주름투성이 늙은이였다.

기억 속의 젊은 아리타도 지금처럼 엉망이었다.

‘당신은 내 표적인데, 날 부하로 삼아도 괜찮습니까?’

‘죽일 수 있다면 언제라도 죽여라. 네깟 놈에게 죽을 정도라면 나도 늙은 거겠지.’

‘그렇게 하지요. 후회해도 모릅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아리타는 한 번도 사제를 습격하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아리타는 자신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사제를 죽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

아리타가 품속에서 평평한 정육면체의 금속 큐브를 꺼내 던졌다.

리치는 얼떨결에 큐브를 받아들었다.

이게 뭐냐 물으려 했던 리치가 큐브에서 흘러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아티팩트?”

“에코 큐브. 두 개가 하나인 통신용 아티팩트다. 말로 30분 거리 내라면 타락의 대지 안에서도 통신할 수 있지. 나머지 하나는 사제가 가지고 있다.”

확실히 좁은 범위였지만 마기를 뚫고 통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가급의 아티팩트라는 증거.

국가급의 아티팩트는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하며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법이다.

“비싸 보이는군. 그런데 이걸 왜 내게 주는 거지?”

“그걸 이용해 사제를 찾아갈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군. 너는 사제의 부하가 아니더냐?"

"네게 너만의 규칙이 있듯이 내게도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마신교도로서?”

“아니, 암살자로서. 나는 마신교도이기 이전에 암살자였다.”

리치가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규칙인지 모르겠는데.”

“표적은 반드시 죽이는 규칙이지. 내가 죽더라도 말이야.

사제, 네놈. 둘 다 내 표적이었으니 둘 중 하나만 죽어도 반은 성공이라 치도록 하지.”

리치가 허허롭게 웃었다.

“담백해서 좋구나.”

“개인적으로는 네놈이 죽었으면 해. 넌 나를 정말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그건 안 되겠군. 대신 자네를 편히 보내주도록 하지."

리치가 하나 남은 팔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허락하마."

"도대체 네 놈의 정체는 뭐냐?"

리치가 씨익 웃었다.

"임시 보육원장."

"···됐다."

아리타는 눈을 감았다.

이스마엘은 암살자 아리타의 표적은 아니었다.

사제가 암살자 길드를 부숴버렸으니까.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힘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아리타가 죽이고 싶었던 건 한 사람뿐.

좁혀지지 않는 격차에 포기하고 순응했지만, 사제는 그의 마지막 표적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스마엘.

그가 죽일 수 없었던 두 번째 괴물.

암살자로서의 본능일까?

절대 죽을 것 같지 않았던 사제가 이스마엘에게 패배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군.’

아리타는 십수 년 만에 임무를 완수한 기분이었다.



---



푸르르릉!

안개 속에서만 살았던 말들은 내리쬐는 햇빛을 즐기며 기분 좋게 투레질을 했다.

"그래서 이 말들이 어디서 났다고 하셨죠?"

"어디서 났는지 모른다고 했네만."

"아침에 산책을 나왔더니 숲에서 걸어 나왔다구요?"

격전의 흔적을 덮느라 말들을 처리할 시간이 없었다. 전투의 굉음에 놀라 도망가겠거니 생각했지만 대범한 세 마리는 남아있었다.

"그래."

"안장까지 채운 말 세 마리가? 난데없이?“

"그렇다니까. 나도 깜짝 놀랐네."

코를 파며 대답하는 리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긴 했지만 코리 사제로서도 말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이상한데···."

"뭐가 말인가?"

"원장님이 아침에 일어났다는 부분이요."

"그게 왜 이상한가?"

"원장님은 하루에 열두 시간씩 주무시잖아요. 갓난아기들보다 많이 주무시면서."

"잠드는 데 오래 걸리는 걸세. 사색이라고 부르지."

엠마 사제는 이미 말 위에 올라 구보를 즐기고 있었다.

"이거 보세요! 제가 말을 타고 있어요!"

코리 사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엠마 사제. 말 타본 적 있어요?"

"아뇨 처음이에요."

"그런데 그냥 타도 되나요?"

"괜찮지 않을까요? 이렇게 얌전한···."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리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엠마 사제에 대한 것을 잊기로 했다.

말은 조금 뛰다가 멈추었지만. 코리 사제가 어르고 달래 겨우 말 등에서 떼어낸 엠마 사제는 땀범벅이었다.

"허억··· 허억···."

"괜찮아요?"

"광명을 본 것 같아요."

엠마 사제가 어찌나 강하게 매달려 있었던지 오히려 말이 더 지친 것 같았다.

푸르르···.

"말은 길드에 조사를 맡긴 후에 팔도록 하죠."

"네···."

리치는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전투는 즐거웠다.

하지만 너무 즐겼다.

잘 먹고 잘 쉬면서도 피로감에 시달리며 일주일을 꼬박꼬박 모은 마나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바닥을 보였다.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즐거움은 한순간이라더니···."

다 죽어가던 집행자들과 아리타에게서 흡수한 생명력이래 봤자 팔을 붙이고 나니 얼마 되지도 않았다.

찢어지는 듯한 팔의 근육통은 덤이었다.

"리버스 그래비티 필드 같은 걸 써야 했는데."

물론 이스마엘의 마나로 리버스 그래비티 필드를 사용하려면 1년을 모아도 10초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남은 건 사제뿐.'

사제가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우선은 마나가 필요했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때였다.

리치의 주머니가 빛을 내며 진동했다.

"사제라는 놈도 양반은 못 되는군."

두 사제를 놓아두고 보육원 뒤로 돌아온 리치가 주머니에서 아티팩트, 에코 큐브를 꺼냈다.

아무런 무늬도 없었던 금속 표면에 빛의 무늬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리치가 아티팩트를 조작했다.

곧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타 수도사, 아침이 다 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더군. 자네가 이 늙은이의 인내심을 시험하는겐가?>

사제가 가까이 있었다.

말로 30분. 멀어야 20km가 채 안 되는 거리.

범위를 타락의 대지로 한정하면 더욱 좁아진다.

“아리타는 죽었다.”

<그런가? 자네가 이스마엘이로군.>

갑작스러운 대답에도 사제의 말투는 평온했다.

“일단 그렇다고 해두지.”

사제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클클···. 쉬운 목표물이라던 보육원에 독사가 한 마리 숨어있었군. 아리타는 쓸 만한 도구였는데. 자네가 망가트렸으니 어쩔 수 없군. 이 늙은이가 직접 나서야겠어.>

“허세가 심한데. 마신교도들은 다 그런가?”

<조심하게 젊은이. 마신교의 힘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야. 아리타는 유능했지만 그뿐이었네. 자만한 쥐새끼 한 마리에 무너지지는 않아.>

리치가 실소했다.

“그렇다기엔 두 번이나 졌는걸. 쥐새끼가 조금 강했나 보지?”

사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리치는 아티팩트 건너편에서 사제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침묵한 사제가 입을 열었다. 평온함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그래, 인정하겠네. 자네는 골칫거리야. 대체 마신교를 무너뜨리고 얻는 건 뭐지?>

“없어.”

<···없다고?>

리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사제가 리치의 앞에 있었다면 구르는 눈동자까지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집안에 나온 벌레를 잡을 때 뭘 얻을 생각을 하나? 징그러우니까 잡는 거지.”

<벌레라···.>

이제 사제의 목소리는 낮게 으르릉거리는 맹수 같았다.

<자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사제라네.>

"정신 나간 사제지."

<···나는 내가 모시는 신과 교주, 그리고 '승화'한 성인들께 약속을 했고 자네 덕에 지키지 못했어. 더는 용납할 수 없네.>

리치가 눈가를 좁혔다.

"교주?"

<왜? 내가 끝이라 생각했나?>

사제가 끝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피니언이나 아리타의 말대로라면 레온은 단순히 마신교의 지부 하나에 불과했으니까.

타락의 대지와의 경계선을 따라 마신교의 지부가 몇 개나 있는지는 몰라도 사제는 한 명이 아니다.

'승화'

마기는 받아들이고 싶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성인? 교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군.'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숨어있다.'

마신교는 규모와 그 능력에 비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국가급의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고작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 돈을 내고 인신매매에 뛰어드는 광신도들이다.

자금을 대고 흔적을 지우는 이가 따로 있었다. 그것도 국가급의 아티팩트를 몰래 빼돌릴 수 있는 권력자가.

"그렇길 바랐지."

<걱정하지 말게. 레온 지부는 내 것이야. 내가 죽으면 자네를 쫓을 이는 없으니 내가 끝이라 생각해도 무리는 없지.>

"그거 반가운 일이군."

<그러니 제안을 하나 하겠네.>

리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리치는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2인자가 리치에게 죽었으니 좋든 싫든 리치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사제뿐이다.

사제에게도 리치는 눈엣가시.

중요한 제례를 진행하기 전에 죽이려 들 거라 예상했다.

<자네는 날 막으려 하고 나는 자네가 살아있는 걸 용납할 수 없어. 더욱이 자네도 나도 남들 눈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하지.>

"본론으로 들어가라."

<자네와 나, 둘이서 승부를 내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방법의 결투 아닌가?>

고전적? 낭만적?

"지랄을···."

사제가 껄껄대며 웃었다.

<싫은가?>

리치가 사악하게 웃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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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7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2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30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9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70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4 6 12쪽
»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11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4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4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2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1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6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2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6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4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9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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