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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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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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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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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9,600

작성
20.04.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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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마신교도 피니언 (2)

DUMMY

피니언은 정신이 없었다.

그는 온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실수 하나가 그의 목숨과 직결되었으니까.

길드의 눈에 띄지 않도록 무기와 밧줄 등의 도구를 준비하고 자경단이 거리를 순찰하는 시간을 파악했다.

피니언이 거만한 하급 교도들을 맞이했을 때는 벌써 늦은 밤이었다.

"일을 그르쳤다고 들었소."

"멍청하기는. 마신교의 형제들 말고는 믿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비웃는 머저리들.

평소였다면 웃는 표정으로 목덜미에 단검을 박아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만도 못한 지금은 참아야 했다.

"다음 제례까지 겨우 열흘입니다."

계획을 설명하던 피니언이 열 명의 무뢰배들을 눈으로 쓱 훑었다.

관심도 없다는 표정들.

'빌어먹을.'

마신교도라고는 해도 이들은 아리타의 부하들처럼 정예가 아니었다.

타락의 대지로 도망친 범죄자들이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마신교에 몸을 의탁한 것뿐.

그와 같은 소모품이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교도들에게 피니언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요점만 정리하면 보육원을 기습해 사제들은 모두 죽이고 제물들을 생포하는 게 목표입니다.

뒤처리는 제가 맡겠습니다."

지루하게 머리를 긁던 마신교도가 물었다.

"이스마엘이란 놈은 싸움을 잘하나?"

"별 것 아닙니다. 이스마엘은 군소 귀족일 뿐이고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검도 마법도 쓸 줄 모릅니다."

"그런데 그놈이 어떻게 우리 형제들을 셋이나 처리했다는 거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팔짱을 끼고 앉은 마신교도 한 명이 지하실 한구석에 널부러진 한스를 가리켰다.

"저 마부놈은 뭐라도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그것이···."

피니언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스는 침묵했다.

온종일 계속된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이 보통 독한 게 아니었다.

"술독에 빠져 살던 머저리치고는 입이 무겁습니다."

"큭큭큭, 고문도 제대로 못 하고, 할 줄 아는 게 뭐요?"

마신교도들이 피니언을 비웃었다.

으드득.

'멍청한 놈들. 제 놈들이 레온에서 활개를 칠 수 있는 게 전부 누구 덕분인 줄 알고···.'

피니언은 속으로 욕을 했지만, 얼굴로는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더 질문 있습니까?"

형식적인 마무리였다.

그런데 지하실의 맨 뒤, 문 옆에 기대어 서 있던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피니언은 심드렁하게 눈을 흘겼다.

"말씀하십시···발 뭐야?"

수도사 아리타의 앞에서도 엎드려 빌거나 오줌을 지리지 않을 정도의 침착함을 자랑하는 피니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질문해도 되겠나?"

손을 든 이가 이곳에 있을 리 없는 이였으니까.

"이··· 이··· 이스마엘?"

피니언의 손이 떨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저기에 서 있던 거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아무도 몰랐던 건가?

"질문은 내가 하고 싶은데. 뭐 됐네."

피니언을 따라 고개를 돌린 마신교도들도 적잖이 놀라 벌떡 일어섰다.

"이··· 이 새끼, 뭐야?"

"어떻게 들어왔지? 보초를 세웠는데?"

리치가 무심하게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친구 말인가?"

리치의 손에는 바싹 말라 곱아버린 머리가 들려 있었다.

온갖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온 범죄자들도 모골이 송연해질 광경이었다.

"미친!"

리치는 솔직히 실망했다.

"적을 보고도 소리나 빽빽 질러대는 놈들이 그 무시무시한 마신교도인가?"

리치는 굳어버린 마신교도들을 지나쳐 미동도 없는 한스에게 다가갔다.

"지독하게 당했군."

리치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한스가 눈을 떴다.

"역시··· 당신의 손을 벗어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네.

죽음은 받아들였나?"

"예."

"내가 준 물건, 어디에 있지?"

"오른쪽 주머니에··· 있습니다."

"수고했네."

"부탁이 있습니다."

"말하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모두 드릴 테니··· 부디 제 아들의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자격이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부디···."

"아니, 자네에겐 내가 원하는 것이 없네.

따라서 부탁할 필요도 없네."

"···."

"하지만 어떤 맹랑한 꼬마와 벌써 비슷한 약속을 했지.

그러니 자네 바람은 이루어질걸세."

"고맙···습···."

한스는 몸을 한 번 떨더니 죽었다.

리치가 한스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방금 죽은 시체였기에 조금이나마 마나를 얻을 수 있었다.

"잘 쓰도록 하지."

리치가 한스의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죽여!"

"멍청한 새끼!"

그제야 마신교도들이 무기를 들고 리치에게 달려들었다.

리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마법을 전개했다.

[본 스피어]

우드드득.

죽은 한스의 가슴을 뚫고 갈비뼈 다섯 대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다섯 개.'

리치는 실망했지만 피니언은 경악했다.

"마법?"

한스의 몸을 뚫고 빠져나온 갈비뼈들이 창으로 변해 달려들던 마신교도들의 몸을 꿰뚫었다.

"아악!"

"커억···."

다섯의 마신교도가 쓰러져 경련했다.

달려들던 마신교도들이 뒤엉켜 쓰러졌다.

리치는 드레인으로 그중 한 명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다음 본 스피어를 만들어냈다.

콰드득.

본 스피어가 허공을 갈랐다.

다시 두 명의 마신교도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남은 마신교도들은 이미 덤벼들 생각을 잃은 상태였다.

'도망가야 해···.'

피니언이 등을 돌려 문으로 뛰려던 찰나 뼈의 창이 피니언을 꿰뚫어 지하실 벽에 박아버렸다.

"크어억!"

고통에 몸부림치던 피니언이 겨우 고개를 들었다.

리치는 서두르지 않고 아직 살아있는 마신교도들에게서 생명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르륵···."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던져버리고 다음 희생양을 찾던 리치가 말했다.

"사실 벌써 이렇게 우글우글 몰려 있을 줄은 몰랐다. 하루만 더 늦장을 부렸어도 일이 어려워질 뻔했어. 칭찬해주지."

박제 꼴이 된 피니언이 이를 악물었다.

"네놈··· 마법사였나?"

"그래."

"내 지하실··· 네 놈에게 알려준 적은 없는데.

어떻게 찾아냈지?"

"한스가 길을 안내해주었다."

리치가 한스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푸른색 금속 파편을 꺼냈다.

"아마르타의 청광석.

마나 흡수율이 매우 높아 위치 추적 마법에 제격이다. 본래 특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유용하지."

리치가 청광석을 툭 던지자 하늘을 날던 푸른 가고일이 입을 벌려 청광석을 받아 아작아작 씹어먹었다.

[꼬리가 돌아왔다.]

가고일의 뭉툭한 꼬리가 우드득 하며 자라기 시작했다.

[보기 흉하다.]

"조금 기다리면 자랄 게다."

피니언은 이를 딱딱 부딪히며 분노와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마부가 잡힐 걸 알고 있었나?"

"확신은 없었어."

리치는 한스에게 살아서 빠져나갈 기회를 주었다.

한 가지 조건을 걸었지만.

그것이 이고르의 꼬리에서 떼어낸 아마르타의 청광석이었다.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면 살 것이고 너희가 용의주도하다면 잡힐 거라 생각했지."

"그렇다면···."

"그래, 너 스스로 무덤을 판 거야.

이곳을 추적하니 알아서 정보를 흘리고 있더군."

"마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까지 알고 있었던 건가? 네놈이 마법사인 걸 들켰다면 대응을 예상했을 텐데?"

리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몰랐군."

리치는 엉망이 된 한스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피니언을 응시하고는 말했다.

"아는 걸 말해라."

피니언이 고통을 참으며 씹어뱉었다.

"말해줄 건 아무것도 없어."

"말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만."

피니언이 피를 쏟으며 리치를 비웃었다.

"마신교는 어중이떠중이 조직이 아니야. 네놈도 나도 그저 쓰다 버리는 패다. 내가 뭐라도 알고 있을 것 같으냐?"

리치가 손을 뻗어 피니언의 가슴을 뚫은 뼈에 마나를 주입했다.

[본 그로우.]

"끄아아악!"

피니언의 몸에 박힌 본 스피어가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가지를 뻗었다. 피니언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는 것만 말해."

"마신교의 눈은··· 어디에나 있다.

아리타··· 아리타가 널 죽이러 올 거다···."

"아리타. 네놈이 아는 이름은 그게 전부냐?"

피니언은 리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통에 미쳐가는 피니언이 소리쳤다.

"착각하지 마라. 네 놈이 선인이라도 된 것 같으냐? 저 떨거지들을 죽이던 네 눈빛을 다 보았다. 즐거워하더군? 네놈은 나와 다를 게 없어!"

열변을 토하는 피니언을 비웃으려던 리치는 문득 미리암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리치 님은 착한 사람이에요.'

미리암의 말은 틀렸다.

그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착하지도 않다.

규칙은 목줄일 뿐, 내재된 광기는 야수와도 같다.

죽일 이유가 생기면 누구라도 기쁘게 죽인다.

당연했다.

그는 리치니까.

"흠."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스마엘···."

리치가 상념에 빠진 것을 본 피니언이 왼손에 숨긴 단검을 휘둘렀다.

"죽어!"

하지만 벽에 몸이 고정된 상태에서 휘두른 단검이 제 속도를 낼 리가 없다.

리치는 몸을 살짝 틀어 단검을 피했다.

[본 그로우.]

우두두둑.

"크아악!"

피니언의 단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악! 아아아아악!"

몸 안에서 자라나는 이물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피니언은 비명을 지르며 버르적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졌다.

"질문이 남았는데. 기분만 더럽게 만들고 죽다니."

아쉬웠지만 필요한 정보는 알아냈다.

마신교는 철저한 점조직.

피니언은 아는 것이 없다.

그리고 기다리면 마신교에서 먼저 리치를 찾아올 것이다.

리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꾸나."

리치를 따라 피바다가 된 지하실을 나서려던 이고르가 리치의 팔 뒤쪽을 보고는 말했다.

[리치, 상처가 났다.]

"응?"

리치가 팔을 살폈다. 옷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런."

뭉툭한 고통이 느껴졌다.

리치는 피식 웃었다.

"뼈만 남은 몸에 익숙하다 보니 피한다고 피한 게 뼈만 피했군."

[안 나을 거다.]

"어쩔 수 없지. 의심하면 떠나는 수밖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리치는 순간 석연찮은 느낌을 받았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뭐지, 이 위화감은?"

뭔가 이상했다.

"···?"

리치가 상처를 다시 한번 살폈다.

고통이 느껴졌다.

"이건?"

1,600년 만에 느끼는 고통.

리치는 위화감을 넘어 공포를 느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뭐지?"

[리치··· 숨을 몰아쉬고 있다. 괜찮은 건가?]

"숨을? 내가?"

리치가 손을 코에 가져다 댔다.

들숨, 그리고 날숨.

숨을 쉬고 있다.

"이게 무슨···."

몸의 이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팔에서 시작된 감각의 발현은 리치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삐걱대고 눈앞이 노랗게 변했다.

"크윽···."

리치는 빙글빙글 도는 시야를 애써 견디며 보육원으로 향했다.

밀려오는 구토감과 어지러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라.]

이고르가 파닥거리며 리치를 부축했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욱··· 우우욱!"

빈민가를 겨우 벗어난 리치는 구토감을 이기지 못하고 몸 안에 든 것을 전부 게워냈다.

검게 변한 액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각들을 뱉어낸 리치가 입을 닦고는 다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허억··· 허억···."

끼이이익

가쁜 숨을 몰아쉬던 리치가 보육원의 울타리를 붙잡았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돌겠군."

리치는 눈을 까뒤집고 보육원 마당에 쓰러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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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7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1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30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9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69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4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10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4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4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1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1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6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2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6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4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9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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