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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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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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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7
추천수 :
198
글자수 :
139,600

작성
20.04.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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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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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3쪽

6. 수도사 아리타. (1)

DUMMY

쾅!

"아침 먹어!"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묘하게 기대감에 찬 카인의 목소리가 리치의 고막을 두들겼다.

"···."

뜬눈으로 밤을 꼬박 지샌 리치가 햇빛을 애써 무시하며 잠이 들려는 순간이었다.

"자게 둘 수는 없느냐?"

리치의 신음을 무시한 카인이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왔다. 카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돼."

"어째서?"

"오늘은 시장이 열리는 날이야."

"그래서?"

"사제님들은 맨날 바빠서 못가."

"내가 같이 가달라고?"

"응."

"시장은 왜 가고 싶으냐?"

"구경하러."

"중요한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없어."

"그럼 싫다."

리치가 이불을 뒤집어쓰며 등을 돌렸다. 카인이 리치의 팔뚝을 붙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

다.

"제발!"

"···살려다오."

"가자!"

리치의 애원도 통하지 않았다.

"중년에게는 잠이 절실하단 말이다···."

침대가 삐걱대며 흔들렸다. 그 소란을 눈치채고 들어온 에밀리와 미카마저 침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같이 가자!"

"사제님들이 어른 없이는 가면 안 된대요."

"일어나!"

병아리처럼 삐약대는 여섯,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 셋은 정말이지 시끄러웠다. 머리를 베개로

가려도 소용이 없었다.

"빨리."

"재밌어요."

"가자!"

"맛있는 것도 많이 팔아요."

침대가 흔들릴 때마다 리치의 골도 같이 흔들렸다. 이미 잠은 다 깼다. 멍한 느낌만 남았을

뿐.

"···."

리치는 죽고 싶어졌다.

"만드라고라를 키울 걸 그랬어."

소매를 이끌려 1층으로 내려간 리치는 잔뜩 피곤한 표정을 짓고는 엠마 사제에게 시장에 다

녀오겠다고 했다.

내심 피곤해 보이니 쉬라는 말이 듣고 싶었지만, 엠마 사제는 반색을 하며 구입해야 할 물건들을 잔뜩 말해주었다.

결국 리치는 열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심부름 거리까지 받아 성 아랫마을로 외출할 수밖에 없었다.

"다녀오세요!"

엠마 사제는 배웅까지 나와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젠장."



---



성 아랫마을에서 시장이 열리는 날이란 상업 길드와 모험가 길드를 포함해 제국 전역에서 백

사자성으로 보내는 보급품과 기호 물자가 도달하는 날이다.

길드 지구의 드넓은 도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짐마차와 그 수십 배는 많은 사람으로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돈은 많고 쓸 데라고는 술집과 사창가뿐인 모험가들을 위한 온갖 사치품과 특이한 물건을 실은 짐마차들이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소에도 북적거리는 거리였지만 오늘은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활기찼다.

"오고 싶을 만도 했군."

하지만 리치는 그저 피곤할 뿐이었다.

과자와 먹거리가 잔뜩 실린 마차 앞에서 카인이 아나이스의 손을 잡아당겼다.

"아나이스. 사탕 먹고 싶어."

"어제도 원장님이 사주셨잖아?"

"또 먹고 싶어."

미카는 희귀한 동물 우리가 가득한 마차에 얼굴을 들이박고 있었고 에밀리나 다른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언뜻언뜻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멀리 가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미리암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

다.

똑 부러진 아나이스와 미리암이 아이들을 잘 챙기지 않았더라면 리치는 아이들을 전부 잃어

버렸을 것이다.

"사탕!"

"꼬마야. 그렇게 사탕이 먹고 싶으냐?"

"응."

"이거라도 먹을 테냐?"

침을 뚝뚝 흘리는 카인을 보다 못한 과자가게

주인이 상품 가치가 없는 설탕 조각을 하나 건

넸다.

"고마워!"

카인은 설탕 쪼가리를 아작아작 씹어먹은 후에도 한참이나 손가락을 빨았다. 그 모습을 귀여운 듯 쳐다보던 과자가게 주인이 리치에게 농담조로 물었다.

"어르신, 혹시 굶기는 건 아니시죠?"

"너무 잘 처먹어서 문제네만."

"하하! 그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뭐, 단 거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요."

금세 얌전해진 카인을 유심히 쳐다보던 리치가 턱을 쓰다듬었다.

리치가 과자가게 주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단 거라면 아이들이 말을 좀 들을까?"

과자가게 주인이 호방하게 웃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요 꼬마가 강아지처럼 침을 흘리는 것 못 보셨습니까?"

"흠··· 조그만 게 많이 들은 걸로 한 봉지 주게."

과자가게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 종이봉투를 건넸다.

"4 코퍼만 주십시오!"

"여기 있네."

리치가 사탕 봉지를 손에 들자 어떻게 알았는지 구석구석 숨어있던 아이들이 나타났다.

"원장님."

"나도 사탕."

"나두."

리치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는다면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주마."

아이들은 사탕 봉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만 까딱거렸다.

"앉아라."

아나이스와 미리암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지만, 나머지 여덟 명의 아이들은

재빨리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라."

여덟 아이들이 튕기듯 일어섰다.

"소리를 질러라."

"아악!"

"꺅!"

리치는 사탕의 위력이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리도 쉬운 것을···. 나는 지금껏 너희들을 잘못 다루고 있었구나."

과자가게 주인과 지나가던 구경꾼들은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보고는 별 광경을 다 보겠다

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웠던 아나이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리치를 타박했다.

"원장님···. 사제님들이 보면 화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이리도 말을 잘 듣는데."

"아직 안 줬으니까 말을 듣죠."

리치가 고개를 돌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사제들에게는 사탕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마라. 알겠느냐?"

"네!"

"응!"

리치가 아나이스를 향해 이것 보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해결되었다."

"아닐걸요."

리치는 팔짱을 낀 아나이스의 째려보는 눈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내 말을 잘 따랐으니 사탕을 주마. 대신 지금부터는 사제들이 부탁한 물건을 사야 하니 조

용히 따라와라."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은 배급을 받듯 사탕을 받아 입에 넣었다.

한쪽 볼이 부풀은 아이들은 곧바로 사방팔방으로 사라졌다. 과자가게 주인은 배를 잡고 웃다가 지쳤는지 마차 안으로 사라졌다.

"···."

"그것 보세요."

"···어린아이들이란 뻔뻔한 데다가 무섭군."

"항상 경계하세요."

"만드라고라는 뛰어다니지는 않을 텐데."

"만드라고라?"

"아무것도 아니다."

아나이스가 허탈하게 선 리치의 손에 들린 사탕 봉지에 손을 뻗었다.

"저도 사탕 주세요."

"넌 안 앉았잖느냐?"

"아, 진짜 좀."

"농이다."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원하는 색깔의 사탕을 찾은 아나이스가 사탕을 입에 던져넣고 아이들을 데리러 뛰어갔다.



---



"으아악!"

"무거워."

겨우 길드 구역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숨을 돌리며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빽빽한 인파를 뚫고서 원하는 물건을 사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쯤에서야 사제들이 부탁한 가사 도구며 생필품, 그리고 책들을 다 살 수 있었다.

"죽겠군."

리치는 길바닥에 쓰러져 잠들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단 걸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리치는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원장님."

"응?"

미리암이 조용히 리치를 부르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미리암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거주 지구의 어둑한 골목에 모여있는 모험가 한 무리가 보였다.

한 눈에도 험악한 분위기의 모험가들은 체구가 작은 사람 한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리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건···."

"파비안이에요."

모험가들의 어깨 사이로 언뜻 보이는 붉은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 확실히 파비안이었다.

"저 꼬맹이는 왜 저기서 시비가 붙은 거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알아챈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아나이스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자경단은 반대쪽이에요."

리치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됐다."

리치는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지."

미리암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나이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장님이 해결하시겠다구요?"

"그래."

아나이스가 리치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다가 잘못 맞으면 죽어요! 안 그래도 맨날 쓰러지시면서. 모험가들 위아래 없는 거 아시잖아요."

"걱정할 필요 없다."

"원장님!"

"안 싸울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당연히 싸우겠다는 의사 표현인 줄 알았던 아나이스가 머쓱하게 팔을 놓았다.

"아, 네."

아나이스는 뒤에서 그래도 조심하라고 속닥거렸다.

"알았다, 알았어."

골목에 가까이 다가가자 험악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했는지 늘어진 목소리였다.

"꼬맹이가··· 별것도 아니었잖아."

파비안을 구석에 몰아넣은 모험가가 소리쳤다. 파비안은 역겹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말했다.

"길드의 물건을 훔치려다 걸렸잖아. 처벌도 가벼웠고. 뭐가 문제야?"

모험가가 위협적으로 벽을 내리쳤다.

"원정에 다녀오면 갚을 생각이었다고. 이제 너 때문에 원정을 못 나가게 됐어. 그동안의 손실은 네가 책임져줘야겠다."

"자경단이 아니라 치안대에 잡혔으면 너는 손목이 잘렸어. 책임? 네 손목이라도 잘라 달라는 말이야?"

"자경단 주제에 감히 길드 소속 모험가를 건드려놓고 멀쩡히 빠져나갈 생각은 말았어야지."

"모험가 신분 대고 고작 근신 처분받았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왜 엄한 데서 성질을 부려? 취했으면 여관바닥에서 잠이나 자란 말이야."

파비안은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모험가는 할 말이 없었는지 콧김을 뿜으며 씩씩댔다.

"너, 이 새끼···. 고작 빈민 꼬맹이 주제에!"

"빈민 꼬맹이?"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파비안은 모험가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싸움을 대비했다. 곧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덤벼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들.'

좁은 골목인 데다가 고맙게도 벽에 떠밀어줬다. 여섯 명이나 되는 모험가를 데려왔지만, 수적인 이점은 살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일곱 명의 모험가가 상대다. 지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파비안도 취한 모험가 두셋쯤은 두들겨 팰 자신이 있었다. 판단을 마친 파비안이 이죽거렸다.

"그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 하고 친구들까지 데려온 머저리가 할 말은 아닌데."

"개새끼가!"

모험가는 결국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만."

팔짱을 낀 리치의 등장에 모험가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얼굴이 등장하자 파비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장님?"

모험가가 리치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당신은 뭐야? 저 꼬맹이 애비라도 되나?"

이스마엘은 싸울 줄 모른다.

"칫."

파비안이 혀를 한 번 차고는 리치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제 둘러싸이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은···."

"맞다."

파비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리치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있지 않았다.

"애비 비슷한 거다."

뭐가 재밌는지 낄낄거리며 비웃던 모험가들이 말했다.

"이거 반갑네. 애비 비슷하신 분. 그럼 당신이 손해를 메꿔줄 텐가?"

리치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아니."

모험가들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그럼 둘이 같이 개처럼 맞고 돈도 내면 되겠네."

모험가들은 나무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아무리 모험가라도 자경단원을 죽이면 뒷감당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딱 죽기 직전까지만 맞자."

"원장님, 수그려. 머리를 보호해."

파비안이 리치를 가리고 서서 모험가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래서 파비안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모험가들은 리치의 눈에 깃든 붉은 안광과 얼굴에 음영을 드리운 검은 마나를 똑똑히 보았다.

"마··· 마법사···."

모험가들은 뱀 앞의 생쥐처럼 시선을 피할 수도 없었다. 다리를 후들거리던 모험가들의 머릿속에 두개골 안쪽을 긁어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살고 싶다면 한 마디도 더 꺼내지 마라.]

모험가들은 몽둥이를 내던지고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

파비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짓 했어?"

"아니."

조금 더 피곤한 얼굴의 이스마엘이 서 있을 뿐이었다.

리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피곤한 목소리가 파비안을 재촉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짐이나 좀 들어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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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5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1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29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8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69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3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09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3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3 4 12쪽
»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1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0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5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1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5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3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7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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