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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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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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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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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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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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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마신교도 피니언 (1)

DUMMY

다음 날 아침.

리치는 이스마엘의 침대에 누워 이스마엘의 일기를 읽고 있었다.

"'남루한 보육원의 지하에는 놀랍게도 시가 100골드를 호가하는 크기의 마나석이 있다.

고위의 마법사가 직접 새겨넣은 보호 마법이 인챈트 되어있는데 범위가 보육원과 그 텃밭의 닭장 정도까지 보호할 정도로 넓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엄청난 물건이라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보육원을 떠날 때 가능하면 가져가야겠다.

어린애들보다는 나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리치가 소리를 지르며 일기장을 던졌다.

"이거 완전 개새끼잖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스마엘의 일기는 말 그대로 정신을 잃어가는 리치가 보기에도 정신이 나가 있었다.

"역시 너무 쉽게 보내줬어.

살려달라는 비명이 죽여달라는 비명으로 바뀔 때까지 고문한 다음에, 살려주는 척을 해서 다시 살고 싶게 만든 다음···."

그 소동에 책상 위에서 몸을 말고 자던 이고르가 깨어났다.

이고르는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을 한 번 했다.

[시끄럽다.]

순간 이스마엘의 방문이 쾅 하고 열렸다.

당황한 이고르는 하품을 하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원장님! 식사할 시간이에요!"

반사적으로 매직 미사일을 시전한 리치가 겨우 마법을 취소했다.

매직 미사일은 엠마 사제의 머리에 닿기 바로 전에 작은 바람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응? 창문 열어놓으셨어요?"

"아니··· 아니네. 엠마 사제. 식사 시간마다 부를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지 않았나?"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엠마 사제가 고개를 저었다.

"아침 식사는 하셔야죠! 이제 식대도 안 받아가시니 같이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부른 배는 행복의 첫걸음이잖아요."

"···알겠네, 곧 나가지."

엠마 사제의 시선이 책상 위에서 굳어있는 이고르에게 머물렀다.

"이건 뭐죠? 가고일?"

리치는 턱뼈가 빠질 만큼 당황했지만 1,600년의 노회함을 살려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어, 그래. 가고일 조각상이네."

"자세가 이상하네요. 좀 귀엽네. 사셨어요?"

"음··· 귀여워···서 하나 샀네. 책상이 좀 적적해 보이더군."

"그래요? 진짜 잘 만들었네. 와, 이 털 좀 보세요. 부드러워 보이는데요?"

허리를 굽힌 엠마 사제가 손을 뻗어 이고르를 만지려 했다.

당황한 리치가 엠마 사제의 손목을 잡으려 했지만, 너무 멀었다.

'안 돼!'

"사제님."

열린 문밖에서 미리암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음? 무슨 일이니?"

엠마 사제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리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인이 에밀리랑 싸워요."

"또?"

엠마 사제는 얼굴을 잔뜩 구기더니 다시 성큼성큼 방을 나갔다.

그녀는 마지막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식기 전에 나오세요!"

바람처럼 찾아왔던 엠마 사제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책상 위에 쓰러진 이고르가 벌리고 있던 턱을 닫았다.

[턱이 아프다.]

리치는 이마를 주무르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구해주어서 고맙구나. 무서운 여자다. 안심할 수가 없어."

"뭘요. 협력하기로 했으니 당연한 일이에요."

어쩔 수 없이 시끌벅적한 로비 겸 식당 겸 교실로 나가자 엠마 사제가 반색을 하고는 커다란 대접에 수프를 가득 퍼주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미리암은 곤란해하는 리치를 보며 한숨을 쉬고는 다 먹은 자신의 그릇과 리치의 그릇을 바꾸었다.

"고맙구나."

잠시 후.

두 사람분의 빵과 수프를 먹은 미리암은 힘겹게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리치는 잠자코 앉아 아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용한 던전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

시끄럽지만 싫지는 않았다.

"와아아아악!"

"제이미! 먹는 중에 소리 지르지 말랬지!"

"하지만 미카가 제 감자를 가져갔어요!"

"안 먹었잖아!"

"아껴둔 거야!"

두 아이는 티격태격 싸우다가 유령처럼 나타난 코리 사제가 작은 치즈를 한 조각씩 나누어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웃기 시작했다.

코리 사제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치즈를 나누어준 후 리치에게도 내밀었다.

"아니, 나는 괜찮네."

손을 내저어 거절한 리치가 감탄했다.

"아이들 다루는 솜씨가 굉장하군."

"고마워요. 원장님은 안 도와주시고 부원장님은 백사자성에서 귀족들 허영심 자극해서 예산 따내느라 바쁘시고 엠마 사제는··· 뭐 엠마 사제니까 제가 열심히 해야죠."

"···."

리치의 입을 닫아버린 코리 사제가 다시 유령처럼 사라졌다.

쌕쌕대는 미리암과 함께 방으로 돌아온 리치가 안락의자에 등을 묻었다.

"오늘은 파비안 꼬맹이가 없더구나?"

"파비안은 자경단에서 같이 훈련을 받아요."

"젊군."

미리암은 이고르를 안아 들고 앉아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고르는 잠시 저항하는 듯하다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양이처럼 골골거렸다.

"새벽에 들어오시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보았느냐?"

"네, 잠을 잘 수가 없어서요."

"그랬느냐."

이스마엘의 진실을 알게 되고 자신도 팔릴 뻔한지 겨우 이틀째.

잠이 오지 않을 만도 했다.

"누굴 만났나요?."

"마부를 찾아갔다."

"무슨 말을 했나요?"

"성 아랫마을에 마신교도가 숨어있다고 하더군."

"마신교?"

"알고 있는게 있느냐?"

"악마를 숭배하는 범죄자들이라는 것만 알고 있어요. 마신교도가 누군가요?"

"광신도들 치고는 비밀스럽더구나. 마부는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이스마엘과 거래하던 놈이 확실해."

"···그렇군요."

대화 내내 이고르를 쓰다듬던 미리암이 손을 멈추었다.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왜 그만두냐.]

리치가 떨리는 미리암의 손에서 눈을 떼고는 말했다.

"결착을 짓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만 힘들다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다 끝나면 말해주마."

미리암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이고르는 미리암의 품 안에 아예 자리를 잡고 누웠다.

미리암은 옅은 미소를 띠고는 이고르의 금속질 배를 벅벅 긁었다. 이고르가 뭉툭한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고르, 꼬리가 좀 짧아진 것 같은데요."

[신경 꺼라.]



---



마신교도 피니언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위 마신교도로서는 드물게도 전과가 없었고 그 어떤 단체에도 등록된 적이 없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

피니언이 빈민가의 산 제물 거래를 담당하는 이유였다.

피니언은 중간다리.

언제든지 잘라낼 수 있는 도마뱀 꼬리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피니언은 꽤 수완이 좋았다.

주요 거래처였던 이스마엘이 마신교도들과 직접 거래할 수 있었던 이유도 피니언의 솜씨 덕이었다.

조금만 더 공을 세워 사제가 '승화'하게 된다면 개미처럼 일하던 자신도 인정받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피니언은 자신의 지하실에서 가장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이었다.

"피니언 형제. 제물 공급에 차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피니언은 후드를 눌러쓴 인영 앞에 죄인처럼 앉아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리타 수도사. 물론 알고 있습니다."

피니언이 방심해 이스마엘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한 단 하루, 그 하루 만에 세 명의 교도가 실종되었고 제물과 이스마엘은 멀쩡히 성 아랫마을로 돌아왔다.

피니언이 미처 진상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리타와 그 부하들이 지하실로 들이닥쳤다.

‘젠장, 젠장, 젠장!’

피니언은 아리타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피니언과는 다르게 아리타는 사제를 보조하고 하위 교도들을 직접 관리하는 수도사였다.

마신교의 흔적을 쳐내는 것이 그의 주 임무였다.

그가 직접 길러낸 집행자들에게 고문과 살인은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

아리타가 피니언을 폐기하기로 결정하면 피니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사제께서는 피니언 형제를 신뢰하고 계시오. 이번 일이 피니언 형제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계시지."

'꼬리를 밟힐 것 같다는 말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어.'

피니언은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피니언 형제."

고저 차가 없는 목소리에 피니언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예··· 예. 아리타 형제. 말씀하십시오."

"치안이 상당히 좋은 레온에서 우리가 교세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피니언 형제의 덕이오."

"감사합니다."

"사제께서도 피니언 형제의 노고를 잘 알고 계시니 이번 일을 잘 해결한다면 가벼운 처벌만 내려질 거요."

피니언이 눈을 질끈 감았다.

판데모니엄의 악마를 숭배하는 마신교에서 가벼운 처벌이란 팔다리 하나를 잘라내는 것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소."

지금까지의 살 떨리는 대화는 서론이었단 말인가?

"본론이라면?"

아리타가 테이블에서 팔꿈치를 떼고 피니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피니언은 사자를 피하는 토끼처럼 등을 의자에 바싹 붙였다.

"사제께서는 이번 제례에서 '승화'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하셨소.

그런데 피니언 형제가 맡은 산제물이 도착하지 못해 제례가 물거품이 되었으니 판데모니엄의 악마께서 노하셨소."

"그렇다 하심은?"

"사제께서는 열흘 후에 다시 제례를 올리기로 결정하셨소. 그 제물은 당연히 피니언 형제가 공급해야 하오."

열흘 안에 꼬리가 밟히지 않을 만한 무연고의 어린아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어린아이가 적은 성 아랫마을에서는 더욱이.

"아리타 형제···."

"힘들겠소?"

아리타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후드의 안쪽에서 스르릉 하며 수십 개의 날붙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그···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좋소. 사제께서는 악마를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제물이 필요하다 하셨소."

피니언은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더 많은 제물이라면 얼마나?"

아리타가 흉터로 가득한 양손을 펼첬다.

"열."

"열 명이나요?"

"만약 열 명의 제물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피니언 형제의 헌신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겠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

피니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알겠습니다."

아리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양손을 펼쳤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사제께서 열렬한 교도들을 지원하기로 하셨소.

사냥해야 할 제물이 열이니 사냥꾼도 열. 충분하겠지?"

죽을상이던 피니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물론입니다!"

후드에 가려져 겨우 윤곽만 보이는 아리타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피니언 형제를 위한 선물도 가지고 왔소."

"선물 말입니까?"

"데리고 와라."

문이 열리고 역시 후드를 뒤집어쓴 집행자 둘이 커다란 자루를 들고 왔다.

자루는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열어보시오."

피니언은 내키지 않는 손으로 자루를 묶은 끈을 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피니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자루 안에 든 것은 피떡이 되어 겨우 목숨만 붙은 한스였다.

"도시를 떠나려 하더군. 마신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다니, 멍청하지."

아리타는 말문이 막힌 피니언에게 조언하듯 말했다.

"피니언 형제. 형제를 위한 자루를 준비하고 싶지는 않소. 모쪼록 현명한 판단을 하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멀쩡히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판단한 피니언은 아리타의 협박에도 더는 떨지 않았다.

피니언은 이미 열 명의 광신도들을 어디에 써먹을지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많은 곳이라면 한 군데 있지 않습니까?"

조용히 움직이려면 빈민가를 뒤져 부랑아들을 고르는 편이 낫다.

하지만 피니언은 이스마엘을 제 손으로 처리하고 싶었다.

"보육원 말이오? 큰 목표는 큰 위험을 동반하지. 형제에게 맡기겠소."

아리타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남은 것은 밤을 기다리는 것 뿐.

“걱정하지 마십시오.”

피니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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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6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1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29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8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69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4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10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4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4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1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0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5 11 12쪽
»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2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6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4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9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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