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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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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9,600

작성
20.04.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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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9. 승화 (2) + 에필로그

DUMMY

꾸르르륵.

사제의 주변에 축 늘어져 있던 촉수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촉수는 사제의 입을 거칠게 벌렸다.

"그어억···."

목을 긁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제를 무시한 채, 촉수들은 꿀렁꿀렁 소리를 내며 사제의 벌린 입속으로 들어갔다.

"꺽··· 꺼억···."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 떼와도 같은 외부의 마기.

거머리나 지렁이같은, 역겨운 환형동물처럼 사제의 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내부의 마기.

두 마기에 의해 온몸의 핏줄이 불거진 사제는 고통스럽게 경련했다.

"컥···."

얼마 지나지 않아 넘실거리던 붉은 마기는 남김없이 사제의 몸 안으로 사라졌다.

우드득.

사제의 등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철퍽.

왜소한 사제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풀어 오르던 등은 결국 폭발하듯 찢어졌다.

꾸르륵. 꾸르르륵.

상처에서 흘러나온 것은 피가 아니었다.

꾸르륵. 철퍽!

그것은 마기의 집합체였던, 사제의 몸 안에서 피륙의 형태를 갖추게 된 여덟 개의 촉수였다.

비루한 사제의 몸이 촉수에 의지해 똑바로 섰다.

몸 안에 있던 것을 모두 쏟아낸 사제, 아니 성인은 3층짜리 건물에 필적할 덩치였다.

"성인이라더니, 그냥 괴물이군."

리치는 경멸을 담아 말하면서도 불의의 공격에 대비했다.

데굴거리며 다시 앞으로 돌아온 사이한 눈동자는 이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성공이다.]

그 목소리 또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이 힘··· 이 충만함··· 악마께서 나를 총애하신다···.]

사제의 목소리는 희열로 떨리고 있었다.

[아아··· 들립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당신의 권태가. 제가 무엇을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어떤 것이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제게 계시를 내려주십시오.]

신을 찾는 것처럼 두 손으로 하늘을 움켜쥔 사제의 고개가 마치 무생물처럼 돌아갔다.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인형을 연상시키는, 괴리감에 가득 찬 동작이었다.

[저 자입니까?]

사제의 두 눈은 리치에게 고정된 채 깜빡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너의 죽음을 원하신다.]

리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겠지."

리치는 직감했다.

사제의 승화는 악마가 그의 공물에 흡족함을 느껴 내린 포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리치가 고통에 몸부림치기를 원했기 때문에, 리치의 대적자로서 사제를 승화시킨 것뿐이었다.

"퉷."

리치는 입안에 고인 마른 침을 뱉어내고는 사제를 향해 뇌까렸다.

"뭘 기다리지?"

사제는 기다리지 않았다.

여덟 개의 촉수가 달린 괴물이 리치에게 돌진했다.

흡사 전차와 같은 중압감.

그 궤도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사제의 전진을 막을 수 없었다.

쿠구구궁.

[플레임 스피어]

화르르륵.

불타는 창은 촉수에 닿자마자 마기에 휩쓸려 사라졌다.

[미물의 공격이 통할 것 같으냐?]

촉수에는 약간의 그을림만이 남았고, 그마저도 마기를 흡수해 재생하면서 사라졌다.

[도망쳐라! 그분을 즐겁게 해라!]

리치는 실드와 블링크를 적절히 사용해 사제의 공격을 피했다.

콰앙!

어떤 기술도 없이 촉수를 휘두를 뿐인 사제.

하지만 그 일격에 바위가 자갈로 변하고 나무는 톱밥 조각으로 변했다.

[크하하하하!]

다 잡아놓은 생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사제는 서두르지 않고 리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리치는 그 틈을 이용해 수십 가지의 공격과 저주를 시전했다.

'베놈 레이, 통하지 않는다. 블라인드, 아무런 효과가 없다. 파이어 월, 통하지 않는다. 게일 블레이드, 역시 통하지 않는다···.'

공격을 피하면서 전개할 수 있는 마법으로는 생채기를 겨우 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다가 생긴 상처조차도 바로 회복해버린다.

속수무책이었다.

[슬슬 지겨워지는구나.]

사제는 한참을 반복된 추격전에 흥미를 잃었다.

악마가 즐거워한다면 며칠이라도 계속할 수 있었지만, 더욱 볼만한 장면을 연출해 악마의 환심을 끌고 싶었다.

사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입가의 피부가 찢어지고 턱의 관절이 비상식적으로 넓게 열렸다.

[두 다리를 없애주마.]

사람도 한입에 삼킬 수 있을 크기로 벌어진 입에서 붉은 마기가 파리 떼처럼 뿜어져 나왔다.

[블링크!]

리치가 다급하게 블링크를 시전했다.

리치의 신형이 점멸하고 몇 미터 너머에서 다시 나타났다.

"크아악!"

하지만 조금 늦고 말았다.

사제가 뿜어낸 마기가 리치의 왼팔에 달라붙어 곡식을 탐하는 메뚜기떼처럼 그 살을 게걸스럽게 탐닉했다.

달그락.

신경과 근육을 잃어버린 팔뼈가 덜렁거렸다.

[더는 귀찮은 마법을 쓰지 못할 것이다.]

리치를 향해 휘둘러지는 촉수.

리치는 고통을 참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이스마엘의 살점 밑의 뼈는 리치 자신의 것.

'움직일 수 있다.'

덜거덕.

뼈만 남은 왼손이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실드]

터엉!

이중으로 전개된 실드는 종잇조각처럼 부서지고 리치는 그 충격에 공중을 날아 나무둥치에 처박혔다.

"크윽···."

상처를 입은 것은 리치. 그러나 놀란 것은 사제였다.

[너··· 인간이 아니군?]

"축하한다. 드디어 내 정체를 알아냈어."

냉소적으로 사제의 신경을 긁었지만, 리치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스마엘의 약하디약한 몸은 강하게 내던져진 충격을 버틸 수 없었다.

리치는 왼팔을 부여잡고 겨우 몇 걸음을 떼더니 뒤돌아섰다.

[도망은 다 쳤느냐?]

"그래. 더는 못 움직인다."

[아쉽구나. 그분께서는 네가 좀 더 몸부림치는 것을 원하신다.]

"싸움은 끝났어."

[그렇다면 고통과 비명의 시간이다.]

"내 비명은 좀 비싼데."

붉은 안광을 빛낸 리치가 오른손을 들어 마나를 움직였다.

타오르는 검은 마나가 사제의 움직임을 막았다.

[이건 뭐지?]

사제는 리치를 비웃었다.

이런 마나의 속박쯤이야 촉수 하나만 사용해도 풀어낼 수 있다.

오히려 반동으로 타격을 입는 것은 리치였다.

마지막 발악.

사제가 움직이지 않은 것은 일부러였다.

리치의 붉은 안광은 더는 사제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분께 남길 말이라도 있느냐? 자비로우신 분께서는 들어주실 것이다.]

마나의 격류 속에서, 리치가 한 자 한 자를 씹어뱉었다.

"나는 너 같은 놈들을 제일 싫어한다."

사제는 잠자코 리치의 말을 들었다.

"나는 사라져가는 인간성의 파편이라도 잡으려고 발악을 하는데, 너희는 어째서 그렇게 쉽게 버리지?"

[큭크크···.]

사제는 그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인간성을 버리고 노예가 되면서까지 힘을 얻고 싶은가?"

[계속해 보아라.]

"나도 성인군자는 못 되지만, 네놈은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

[저주라도 내리는 것이냐? 지금껏 많은 저주를 들었지만 한 번도 통하지 않았지.]

"아니, 너는 오늘 죽는다."

가소롭기 그지없는 선언에 사제가 얼굴 가죽을 푸들푸들 떨며 광소했다.

[날 잡아둘 수 있을 것 같으냐?]

"못 잡아두겠지."

사제가 몸을 비틀기만 하면 리치는 죽는다.

하지만 리치는 사악하게 웃었다.

[너···?]

사제는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치가 비웃음을 흘릴 때마다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치가 사제에게 말했다.

"잠깐이면 충분해."

사제의 몸이 변할 동안 리치도 그저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공격 마법이 마기에 의해 흩어지는 것을 본 리치는 한 번의 절대적인 타격만이 사제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직감했다.

"태초의 불꽃은 영겁의 겁화로 그 존재를 드러내는도다···."

리치는 곧바로 캐스팅을 시작했다.

사제가 성인으로의 변이를 끝마치기 전에 캐스팅을 마쳤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사제가 괴물로 변하는 것이 더 빨랐다.

'조졌군.'

문어 괴물로 변한 사제는 사방팔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마법의 최대 화력을 사제에게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정해진 좌표 위로 사제를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확실한 미끼는 리치 자신.

힘에 취한 사제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리치의 함정으로 걸어들어온 것이다.

성인이 된 사제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마기가 주는 충만감과 쾌감 덕분에 인간으로서의 본능인 위기감은 조금 늦게 찾아왔다.

그게 승패를 갈랐다.

사제가 다급히 소리쳤다.

[무슨 짓을 했지?]

리치가 사제의 질문에 대답했다.

"엿이나 먹어."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익스플로전]

리치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아···.]

사제가 마지막 순간에 비명을 내질렀는지, 리치에 대한 저주를 내뱉었는지, 아니면 그의 신이라던 악마에게 기도했는지 리치는 알 수 없었다.

굉음은 청각을, 폭발은 시각을, 폭풍은 촉각을 마비시켰다.

요동치는 대지.

타오르는 불길.

혼돈의 한복판에 던져진 듯한 진동과 굉음이 가라앉고, 겨우 정신을 차린 리치는 작은 크레이터의 가장자리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크레이터 안쪽에는 석탄처럼 변한 흔적만이 가득했다.

"다행히 소멸하지는 않았군."

이스마엘의 몸은 용케도 살아있었다.

온몸에는 크고 작은 화상이 가득했고 양다리는 부러져 제멋대로 뻗어 있었다.

뼈가 드러났던 왼팔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빌어먹을."

그래도 폭발의 중심에 있었던 것 치고는 가벼운 상처였다.

사제가 거의 모든 폭발력을 받아낸 것이다.

본의 아니게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법칙을 벗어나는 내구력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오른팔만으로 힘겹게 크레이터 밖으로 기어 나온 리치가 힘없이 누웠다.

"허···."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구역질을 겨우 참으며, 리치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발의 여파로 걷힌 안개 너머로 익숙한 북부의 밤하늘이 보였다.

리치는 그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이겼다. 듣고 있나?"

대답은 없었다.

"다시는 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만약을 위해 남겨두었던 마나석을 모두 꺼내 흡수하면서, 리치는 동시에 몸을 재생시키기 시작했다.



---



치안대장 아슈포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폭발의 흔적을 살폈다.

검게 그을린 땅 주변에는 함정에 휩쓸려 죽은 마신교도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성 아랫마을 주변에는 이런 함정의 잔해가 즐비했다.

그 덕분에 도시로 침입한 마신교도는 채 100이 되지 않았고 200에 가까운 시체들은 전부 마을 외곽에서 불타거나 얼어서, 혹은 산에 녹은 채 발견되었다.

"파비안."

"왜."

반말을 찍찍 지껄이는 꼬맹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슈포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보육원의 사제들이 마신교도의 침입을 빠르게 알린 덕분에 거의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사가 이 함정을 다 깔아서 마신교를 막았다고?"

"그렇다니까."

"혼자서 이걸 다 했단 말이냐?“

파비안은 귀를 후비며 대충 둘러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너, 자유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숨기는 건 중죄다. 알고서 뻗대는 거냐?"

"자기 입으로 마법사라고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신고를 하겠어? 미친놈인 줄 알았지."

"···."

사실 아슈포르도 웨이브에 참여해본 경험이 다인,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백사자성에 요청한 마법사가 오기 전까지는 구경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미치겠군."

그때였다.

"대장님!"

치안대원 한 명이 안개 쪽을 가리켰다.

아슈포르가 치안대원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건?"

안개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한 명이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었다.

"2차 습격인가?"

그림자는 하나뿐이었다.

"혼자입니다."

아슈포르는 코웃음을 쳤다.

"항복은 받지 않는다. 목을 베어라."

"예!"

명령을 받은 치안대원은 검을 들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잠깐!"

그 앞을 파비안이 막아섰다.

"우리 원장님이야!"

"···원장?"

아슈포르는 이스마엘을 본 적이 있었다.

항상 거드름을 피웠고 숱이 없는 머리는 잘 빗어넘겼으며 딱 맞는 비싼 옷을 걸친 기분 나쁜 남자였다.

"저게?"

하지만 타락의 대지 쪽에서 걸어오는 남자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신발은 한 짝이 없었고 어째서인지 옷은 불에 타버려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

머리는 산발에다 검댕이 눌어붙은 얼굴은 피곤과 땀에 절어 녹아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 사람이다···."

헤 벌린 입에서 신음처럼 흘러나온 목소리.

좀비가 내는 괴성인지 의심할만한 목소리였다.

겨우 타락의 대지를 빠져나온 리치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원장님!"

파비안이 두다다다 달려가 쓰러지려는 리치를 부축했다.

"파비안이냐···?"

탈진과 탈수에 시달리는 리치의 몸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물 먹은 솜이불을 업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것 같아 보이냐?"

마나를 어찌나 잡아먹는지, 준비해둔 마나석은 몸을 재생시키는 데에도 부족했다.

화상과 상처는 군데군데 그대로 남았고 몸을 재구성한 후유증까지 더해지니 그냥 소멸하는 편이 더 나을 지경이었다.

'으어··· 어어어···.'

리치는 거의 죽어가는 몸을 겨우겨우 끌고 한참을 걸어 겨우 타락의 대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는··· 다시는 안 들어간다···."

그 말을 끝으로 리치는 눈을 까뒤집었다.

"사··· 사제! 사제를 불러!"

"원장님!"

흐려져 가는 의식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리치는 기절했다.



---



#에필로그.



마신교도 습격 이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쓰러진 지 이틀 만에 눈을 뜬 리치는 치안대장의 집요한 질문 공세를 버텨내야 했다.

'어딜 갔다 왔소?'

'마신교도들이 당신을 어떻게 납치했소?'

'옷은 왜 불에 타 있었소?'

'어떻게 탈출했소?'

'마법사를 보았소?'

'···.'

리치를 구해준 것은 엠마 사제였다.

'환자를 내버려 두세요!'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내버려 두시라구요! 잘못되기라도 하면 책임지실 거에요?'

'그렇지만···.'

'질문은 나중에 하시고 나가세요!'

'아니···.'

'어허!'

'알겠소.'

덕분에 리치는 몸의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리치는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기는 했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 느지막이 눈을 뜨고 마당으로 나와 평상에 앉아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들어가 잠들었다.

가끔 어린아이들의 장난에 동참해주고, 슬슬 귀찮아지면 상처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빠졌다.

성외신전에서는 이전의 옷값을 후려치려던 사제가 찾아와 판자 한 무더기를 내려놓고는 감사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제는 레온 중부의 수도원에 요양하러 간다고 말했다.

'이게 뭐에요?'

'판자.'

'잘됐네.'

'···?'

코리 사제에게는 몸이 나으면 보육원의 천장에 난 구멍을 보수해주기로 약속했다.

전날 밤에는 미리암이 방으로 찾아왔다.

'어떻게 되었나요?'

'끝났다.'

'약속을 지켜주셨네요.'

'리치니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다.

"후···."

평상에 드러누운 리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승의 문턱을 넘을락 말락 하던 몸 상태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휴식으로 회복된 몸에서는 조금씩 마나도 생성되고 있었다.

"이제 정말로 은퇴한다."

햇빛을 즐기던 리치가 노곤한 낮잠에 빠져들려던 순간이었다.

"밖에서 주무시면 감기 걸려요."

리치의 옆에 살며시 앉은 사람은 어느새 나타난 코리 사제였다.

"자네, 그 도둑처럼 다가오는 것 좀 어떻게 안 되나?"

리치가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상처받아요."

아무 상처도 받지 않는 표정이었다.

"거짓말 말게."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뭔가?"

"그날 밤에 보육원에 안 계셨죠. 어딜 갔다 오신 거에요?"

"···."

리치가 코리 사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다.

"대답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진심이다.

하지만 뭐라도 대답해주고 싶었기에, 리치는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신을 믿는다는 이를 만나고 왔네."

"신?"

"그래.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어.“

코리 사제는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상념에 빠진 리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치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러다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한 코리 사제에게 돌연 물었다.

”자네는 신을 믿나?"

코리 사제가 코웃음을 쳤다.

"사제한테 물어볼 말은 아닌데요."

"그도 그렇군."

"원장님은 어때요? 신을 믿으세요?"

리치는 잠시 생각해본 후에 입을 열었다.

"아니. 신이 존재한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까."

"증거가 필요하세요?"

"그래."

리치는 사제가 아니라 마법사.

증거가 없는 믿음은 없다.

하지만 코리 사제는 단호했다.

"증거라면 있어요."

리치가 고개를 돌렸다.

"어디에?"

코리 사제는 슬며시 미소를 짓더니 리치의 무릎 위를 가리켰다.

"여기에도 하나 있네요."

리치는 고개를 내렸다.

리치의 무릎을 베고 잠든 카인이 침으로 옷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흐음···."

코리 사제에게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는 알 것 같았다.

리치가 피식 웃었다.

"그렇군."


작가의말

완결입니다.

원래 여기서 완결이 아니지만 너무 부족한 걸 체감해서 과감히 끝내기로 했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폐관수련하러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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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7 6 7쪽
»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2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30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9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69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4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10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4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4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2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1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6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2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6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4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9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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