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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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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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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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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9,600

작성
20.04.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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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때 아닌 던전탐험 (2)

DUMMY

"···던전?"

"던전."

"던전?"

"그래, 던전!"

"원장님, 그 전에 먼저 말해야 할 것이 있지 않나요?"

미리암이 채근하자 리치가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리암이 맞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어."

파비안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뭔데?"

"나는 마법사다."

"···?"

파비안의 한쪽 눈썹은 치켜 올라가고 한쪽 눈썹은 아래로 내려갔다. 파비안은 이스마엘이 마법사인지 아닌지보다는 이스마엘이 제정신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못 믿겠느냐?"

"당연히 못 믿지."

"미리암?"

말 한마디에 믿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리치가 미리암을 데려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리치의 시선이 미리암에게 향하자 미리암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원장님은 마법사야."

"···."

파비안은 왜 이 둘이 아무도 믿지 않을 거짓말까지 하면서 자신을 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마법사라고?

왜, 판데모니엄의 악마라고 하지 차라리?

"···나는 그만 들어갈래."

괜히 들었다는 듯 귀를 후비며 돌아서는 파비안의 손목을 리치가 냉큼 붙잡았다.

"잠깐."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린 파비안은 리치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불꽃을 보고는 숨이 멎을 뻔했다.

"마··· 마··· 마··· 마···."

"숨 쉬어라."

"마법사···."

리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마법사다."

리치가 주먹을 쥐어 불을 껐다.



---



"이곳에 오는 건 처음이네."

파비안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모험가 길드의 2층으로 올라갔다. 길드의 직원, 혹은 모험가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장소였다.

모험가들의 사교 장소를 겸하는 듯 커다란 탁자와 주점까지 갖춘 의뢰소는 모험가들로 가득했다.

"오? 자경단의 꼬마 아니냐?"

진지한 눈으로 게시판에 붙은 의뢰장을 살피던 모험가 하나가 파비안에게 아는 척을 했다.

파비안이 고개를 돌려 모험가의 얼굴을 확인했다.

웨이브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파비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경단이 모험가 길드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이제야 자경단에서 구르고 동전 몇 개 받는 것보다는 모험가가 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구나?"

파비안은 모험가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날리는 상상을 하며 대답했다.

"그런 셈이지."

"네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모험가에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파티를 찾는다면 말해라. 널 위한 자리는 있으니까."

"고맙군."

자신만 믿으라는 듯 파비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모험가는 의뢰장 한 장을 찢어 들고 사라졌다.

까드득.

"빌어먹을."

파비안은 모험가라는 족속을 싫어했다.

편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직접 보고 들은 것들 때문이었다.

자경단원인 파비안 앞에서 자경단을 쥐꼬리만 한 보수로 일하는 머저리 취급하는 것부터가 모험가들이 얼마나 오만방자한 족속인지 알려주었다.

"괜히 왔어."

파비안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는 사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험가보다는 덜 짜증났지만 몇 배는 더 약오르는 목소리였다.

[아, 아, 들리나? 소드마스터? 벌써 말했듯이 텔레파시 마법은 유효범위와 지속시간이 극히 짧으니 임무를 서둘러 완수하게. 다시 한번 묻겠네. 들리나? 소드마스터?]

"···."

파비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치가 다시 한번 파비안을 재촉했다.

[암호명 소드마스터. 대답하게. 모험가 길드 내부에 디스펠 마법이 걸려있나 확인해야 하니 꼭 대답하게.]

파비안은 이를 악물고 소리치듯 중얼거렸다.

"들려. 들리니까 그만해."

[다행이군.]

"원장님, 굳이 이런 마법까지 걸고 들어왔어야 해?"

연락을 위해 텔레파시 마법을 허락하긴 했지만 파비안은 마법에 걸렸다는 사실이 찜찜했다.

파비안이 들었던 그 어떤 이야기에도 마법에 걸린 사람이 좋은 결말을 맞는 꼴은 본 적이 없었다.

[암호명 소드마스터. 건물 내부에 감청 마법이 걸려있을지 모르니 암호명을 사용하게. 내 암호명이 뭐라고 했지?]

파비안이 주위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속삭였다.

"말하기 싫은데."

리치가 은근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어서, 소드마스터.]

"···어썸매지션···."

[푸···큭···큭크···.]

파비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뻔뻔하게 길드 로비에 앉아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을 이스마엘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그만하지?"

[미안하다.]

한숨을 쉰 파비안이 리치에게 물었다.

"마나석은 보육원 지하에도 하나 있잖아? 왜 위험을 무릅쓰고서 찾는 거야?"

[마나석을 활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마법을 새기는 것과 직접 사용하는 것.

직접 사용하면 폭발적인 마나를 내지만 다시는 쓸 수 없고 마법을 새기면 효율은 떨어지지만, 효과가 영구적인 마법기관이 되지.

보육원 지하에 있는 마나석을 내가 써버리면 보호 마법이 사라질 거다.]

"그렇군."

파비안은 의뢰장이 매달려있는 게시판을 둘러보았다.

게시판은 모험가의 등급에 맞춰 총 다섯 개였고 구리, 강철, 은, 금, 백금의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구리 등급의 의뢰가 가장 많았다. 의뢰장은 갈수록 줄어들어 금 등급의 의뢰는 두어 장이 매달려있었고 백금 등급의 의뢰는 한 장도 없이 비어있었다.

파비안은 구리 등급의 게시판을 살폈다. 모험가가 될 생각이 없었던 파비안이기에 의뢰장을 자세히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길드의 인장이 찍힌 종이 위에는 갖가지 내용의 의뢰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몬스터 퇴치.

마신교 토벌.

약초 채집.

몬스터 소재 탐색.

광석 채굴.

던전 탐색.

의뢰장을 뒤지던 파비안의 손가락이 멈췄다.

"몇 개 있긴 하네."

[다행이군. 무슨 던전이지?]

"개미 던전. 종유석 동굴.

곤충형 몬스터 다수 확인.

비행형 몬스터 없음.

깊이 불명.

난이도, 구리 등급 하급에서 중급으로 예상됨.

보스 몬스터의 존재 확인."

[습한 곳은 별로인데.]

"그러면 석영 던전. 탑.

골렘 발견.

똥꼬 빠지게 도망침.

여기까지만 적혀있는 의뢰장도 있어."

[정보의 질이 너무 차이나는군.]

"그야 하나는 길드의 레인저가 직접 작성한 던전 정보이고, 나머지는 직접 공략할 자신이 없는 던전을 발견한 모험가들이 길드에 판 정보니까."

[관심이 없다면서 잘 아는군?]

"모험가에는 관심이 없어. 하지만 나는 언젠가 판데모니엄을 정복할 거야. 알 수 있는 건 다 알아둬야 해."

[판데모니엄을 정복한다고? 꿈이 크군. 소드마스터.]

파비안은 그런 조롱이 익숙했다.

웨이브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찬 자경단 소년의 꿈은 무시당하기 딱 좋은 것이었으니까.

모험가들도, 자경단 동료들도, 심지어 백사자성의 기사들까지도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600년 동안 패배한 적이 없는 판데모니엄의 악마.

아무도 악마의 땅을 정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파비안을 빼고는.

"···비웃으려면 비웃어."

파비안의 꿈을 들은 사람들은 전부 웃음을 터트린다. 그다음에는 굳이 안 들어도 될 말을 덧붙인다.

'제정신이냐?'

'현실을 봐라.'

'자살이라도 할 생각인가?'

'꼬맹이가 돌아도 한참을 돌았군.'

'병신.'

마지막 말을 한 모험가는 앞니가 날아갔다.

전부 파비안이 직접 들은 말들이었다.

[뭘 비웃으라는 거냐?]

하지만 리치는 정말로 뭘 비웃으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연했다.

파비안이 15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꿈은 리치가 1,600년을 쏟아 넣은 꿈이었으니까.

비웃을 거였다면 처음부터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말이 안 된다 해서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 그게 꿈 아닌가?]

재미도 없는 소드마스터 한 단어를 가지고 하루 종일 자신을 괴롭히는 이스마엘이었다.

그런데 정작 예상한 곳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파비안은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

[소드마스터. 시간이 없네. 다음 던전! 빨리!]

까드득.

"···그 두 개가 다야."

[그렇군. 수고했네. 위치에 대한 정보를 말하고 철수하게, 소드마스터.]

"···."

파비안은 다시는 이스마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



타락의 대지 초입에는 던전이 없다.

안개의 장막을 넘어서야 마기가 뭉치기 시작하며 판데모니엄의 악마의 의지에 적극적으로 따르기 시작한다.

타락의 대지 안으로 들어선 리치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일주일 만이군."

리치의 던전도 안개의 장막 너머 타락의 대지에 있었다.

타락의 대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형이 변화하는 곳.

리치가 만들어둔 이정표는 18년이 지나면서 모두 사라졌다. 던전을 떠나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은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었다.

"찾아봤자 용사 놈들이 다 털어가서 이미 빈 동굴에 불과하지만."

[그러고 보니 리치.]

일주일 만에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타락의 대지로 돌아온 이고르는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이고르가 리치의 어깨에 앉아 물었다.

[용사 놈들한테 복수는 안하나?]

"복수?"

리치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을 소멸시킨 용사의 일행.

솔직히 귀찮았다.

18년이나 지났으니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용사 일행은 대륙에 뿔뿔이 흩어져 제 맘대로 살고 있을 것이다.

리치에게는 소멸이 별 의미가 없었다. 고작 일곱 명을 죽이자고 대륙을 다 뒤지고 싶지는 않았다.

18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니 벌써 죽었을 수도 있다.

라이프 포스 베슬만 아니었으면 리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안 한다.'라고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규칙 아니었나? 놈들한테 소멸당했다. 돌려줘야 한다.]

"그렇긴 한데···."

리치는 필사적으로 핑곗거리를 고민해 결국 하나를 찾아냈다.

"놈들의 목표는 마왕이었다. 마왕의 생사를 알게 될 때까지는 보류해두도록 하지."

[리치, 귀찮아서 아무 말이나 한 거다.]

눈초리를 좁히는 이고르에게 손가락을 흔들어준 리치가 말했다.

"아니, 중요한 요소다. 마왕이 살아있다면? 손발톱을 다 뽑는 선에서 용서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마왕이 정말 그 애송이들에게 죽었다면? 손가락, 발가락을 뽑아내야지."

[흥.]

리치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사제부터 처리하는게 중요하니 눈앞의 일에 집중하도록 하자꾸나."

이고르가 불만스럽게 날갯짓을 했다.

"더 중요한 건 말이다."

[뭐냐.]

"놈들은 이미 타락의 대지에 발을 들였어. 악마는 그 영지에 발을 들인 이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이미 죽어 나자빠지지 않았다면 애써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다시 만나게 될 거다.

판데모니엄의 악마는 비극적인 드라마의 연출을 좋아하니까."

말을 끝낸 리치의 눈앞에 거대한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과 100m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탑은 그림자도 없이 서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흉물.

"던전."

판데모니엄의 악마가 모험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구조물.

그 내부는 악마가 공들여 꾸민 온갖 괴물과 시험, 함정과 마법 장치로 가득하다.

시련을 이겨낸 모험가만이 던전의 끝에 준비된 악마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아티팩트.

마법 무기.

마나석.

다른 세계의 마법책.

마도 시대의 금화에서 고대의 유물까지.

던전 하나를 클리어한 모험가들은 길드에 낼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쾌감을 잊지 못해 망령처럼 다시 타락의 대지를 떠돌게 되지."

[멍청하다.]

"그럴지도 모르지."

끼이이익.

리치는 주저 없이 탑의 문을 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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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7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2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30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9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70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4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10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4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4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2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1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6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2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6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4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9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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