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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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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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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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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글자수 :
139,600

작성
20.04.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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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수도사 아리타. (3)

DUMMY

똑똑똑.

이른 아침, 보육원을 울리는 노크 소리가 울렸다. 엠마 사제가 문을 열자 한 남자가 혼이 빠진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누구세요?"

"원장님을."

엠마 사제는 남자와 초점을 맞춰보려 했지만 얼이 빠진 남자는 허공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원장님께 용무가 있으세요?"

"원장님을."

"누구세···요?"

엠마 사제는 이 남자가 갈대처럼 연약한 이스마엘에게 해라도 끼칠까 걱정이 되었다.

"원장님···."

하지만 더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엠마 사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문을 닫았다.

남자는 계속 서 있었다. 문 안쪽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냄비는 왜 들고 있나?'

'정신 나간 사람이면 기절시켜야죠!'

'···아는 사람이네. 들어가 보게.'

'조심하세요. 눈이 정상이 아니에요!'

'알았네.'

'눈!'

곧 리치가 문을 열었다.

"루서. 반갑군."

남자는 집행자, 루서였다.

루서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수도사께서 연락하셨다."

에고 트릭에 지배당하는 루서는 모든 연락을 보고하라는 리치의 명령에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중이었다.

자신의 밀고를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일주일이라. 오래도 걸렸구나. 언제 온다더냐?"

"새벽."

리치가 사악하게 웃었다.

"수고했다. 네 바위 밑으로 돌아가라."

루서는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 바위로 돌아가 보육원을 감시하던 자세 그대로 엎드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응?"

루서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뭐지?"

예리한 감각 덕분에 자신의 행동에 어떤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너무 오래 감시하고 있었나?"

조바심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리면 집행자들과 수도사가 올 것이다.

루서는 그동안의 지루함을 피와 비명으로 보상받을 생각에 몸이 달아올랐다.



---



그 날 새벽, 서쪽 숲.

열세 명의 집행자를 태운 열세 마리의 말이 나무들 사이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루서는 어디에 있지?"

아리타와 열두명의 집행자들은 서쪽 숲 언저리에 은신한 채 불 꺼진 보육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리타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마티아스."

"분명 이 근방의 바위에 은신하고 있다 했습니다."

"확인해라."

마티아스가 바위 밑을 살폈다.

"흔적은 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다는···."

순간 무언가를 감지한 아리타가 고개를 돌려 숲 안쪽을 응시했다.

"수도사?"

그러고자 한다면 청각만으로 주변의 지형까지 살필 수 있는 아리타였다.

귀에 마나를 집중하자 새와 벌레 소리 사이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가 명확해졌다.

"으···."

"신음?"

숲 안쪽이었다.

말을 몰아 숲으로 들어간 집행자들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아···."

알몸의 루서가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참담한 모습이었다.

잘려나간 한쪽 팔은 양호한 편이었다.

뱃가죽은 뜯겨나가 있었다.

발목에서부터 무릎 밑까지, 모든 살과 근육을 걷어내고 뼈만 남아 있었다.

그 옆에는 사과를 으적으적 씹으며 예리한 단검으로 루서의 뼈를 긁어내는 이스마엘이 서 있었다.

"아··· 으···."

밥을 먹으면서도 시체를 치울 자신이 있는 집행자들이었지만 그들이 받아들이기에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너··· 너."

이스마엘은 그제야 집행자들을 알아챘다.

"아, 왔군. 목이 빠지게 기다렸네. 예상한 것보다 많이 늦었군.

루서가 없었다면 지루할 뻔했어."

"루서!"

분노한 마티아스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적에 대한 정보 획득. 당연한 게 아닌가?

약물 투여와 마법 시술로 강화되어있더군."

리치의 말투는 한없이 일상적이었다.

"뭘 먹여서 근력을 강화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추어 마법사가 시술한게 분명해."

"뭐라고?"

"근력만 비상식적으로 높이고 뼈를 강화하지 않았다. 비효율적인 데다가 수명까지 줄어들었어. 앞으로도 마나를 사용할 능력을 잃은 건 덤이지.

아니, 이건 일부러인가?"

"이게 무슨 장난질이냐!"

듣다 못한 마티아스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양손에는 어느새 뽑아 든 단검이 들려있었다.

리치가 씨익 웃었다.

"이거? 이건 너희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하는 퍼포먼스다."

"무···."

마티아스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그의 머리가 퍽 하는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기 때문이다.

마티아스의 단검이 땅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집행자 한 명이 다급히 외쳤다.

"함정입니다."

"산개!"

아리타는 당황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숲에서는 말 위에서보다 집행자의 발이 더 빠르다.

말에서 미끄러져 내리듯 뛰어내린 집행자들이 지면에 닿을 듯 낮은 자세로 달리기 시작했다.

"괜찮은 판단이다."

리치가 집행자들을 칭찬했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 산개하는 것은 기본이다.

마법사가 어디에 어떤 함정을 깔아놓았을지 알 수 없으니까.

적어도 하나의 함정으로 여러 명이 말려드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집행자들이라면 감각을 확장하는 것으로 발동 직전에 피해낼 수도 있었다.

"아, 나라면 더 이상은 다가오지 않겠어."

그것이 일반적인 마법사의 함정이었다면 말이다.

카가가각.

"어··· 어어··· 억!"

땅에서 치솟은 나무뿌리가 집행자 하나를 쥐어 터트렸다.

[트렌트의 손아귀]

"아아악!"

다른 집행자는 얼어 부서진 양다리를 붙잡고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빙결지뢰]

아리타가 집행자들에게 소리쳤다.

"접근해라!"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집행자들이 아리타의 명령에 복종했다.

"존명!"

아리타가 키워낸 최상의 암살자들.

살아남은 집행자들이 이를 악물고 리치에게 달려들었다.

악귀 같은 표정으로 달려오는 집행자들.

누구라도 공포에 질릴 만한 광경이다.

하지만 리치는 그저 즐거웠다.

마나가 부족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3분은 가겠군."

이스마엘은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

마법을 배운 적이 없더라도 이건 심했다.

기본적인 매직 미사일 다섯 개를 만들어내면 이스마엘의 마나는 바닥을 보였다.

하지만 리치는 생명력을 마나로 바꿔 저장할 수 있다.

리치는 이 전투를 위해 이스마엘의 몸에서 생성되는 쥐꼬리만 한 마나를 적금처럼 저장해왔다.

생명력도 좀 저장했고.

안 그래도 허약한 몸은 매일 마나를 뽑아내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할 만한 전투 한 번을 위한 마나를 모을 수 있었다.

"마법사!"

한쪽 팔이 석탄처럼 불타버린 집행자가 리치에게 접근해 롱 소드를 휘둘렀다.

리치는 침착하게 검지와 중지를 뻗어 빠르게 수인을 그렸다.

[실드]

카앙!

롱 소드가 리치의 실드를 때리고 튕겨 나갔다.

리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헤이스트]

[스트렝스]

마법사가 전사를 상대할 때 반드시 걸어둬야 하는 마법들.

대충 준비를 마친 리치가 실드 위에 다시 수인을 맺자 롱 소드는 무언가에 잡힌 듯 공중에 멈춰버렸다.

"사술을···."

숙련된 전사인 집행자는 바로 칼을 놓고 손목을 세차게 튕겨냈다.

순식간에 자루와 송곳같은 날 뿐인 단검을 쥔 집행자의 손이 다시 튕겨 올라와 리치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한 호흡도 걸리지 않은 연계동작.

"죽어라!"

리치는 한 발짝을 물러나며 캐스팅했다.

"발밑의 땅은 네 적이다."

[그리스]

집행자의 발이 마찰력을 잃고 미끄러졌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럼에도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균형을 붙잡고 설 수 있었다.

"도망?"

이스마엘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

리치는 마법을 시전함과 동시에 다시 한 발짝을 전진해 팔을 휘두르지 못할 범위로 들어와 있었다.

"아슬아슬했다. 칭찬해주지."

리치가 집행자의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인시너레이트]

리치의 손에서 펼쳐진 근거리 착화 마법은 불붙은 기름처럼 집행자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크아아아아아아···."

바닥을 구르며 얼굴을 긁어도 떼어지지 않는 불길. 집행자의 비명소리는 곧 잦아들었다.

빠드득.

아리타가 이를 갈았다.

준비된 마법사와 싸우는 것은 공성전이나 다름없다.

마법사가 강할수록 성벽은 더욱 높고 단단해진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성은 아리타가 만난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단단했다.

"놈! 정체를 밝혀라!"

리치는 피식 웃었다.

"나라면 입 말고 발을 놀릴 텐데."

아리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관찰했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의 기본 원칙.

마법사의 한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웃음을 지워주마."

콰앙!

보법을 밟아 떨어지는 불덩이를 피해낸 아리타가 다음 가능성을 생각했다.

'워 메이지?'

백사자성의 워 메이지들은 한 발 한 발이 강력한 원소 마법을 주로 익히며 웨이브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이스마엘이 워 메이지라면 가까이 접근한 시점에서 99%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워 메이지가 호위 하나 없이 수십 명의 암살자 앞으로 나섰을까?

백사자성에서 안 그래도 부족한 워 메이지를 첩자로 보낼 여력이 있을까?

아니다.

'배틀메이지.'

마탑의 '마법사 사냥꾼' 배틀메이지일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마법사 사냥꾼들은 자유 마법사들을 사냥하는 것 외에도 마탑주가 명령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했다.

하지만 아니다.

"아니, 배틀메이지도 아니다."

배틀메이지들의 특기는 전통적인 마법사들을 속전속결로 상대하는데 전문화되어있다.

배틀메이지들은 무기를 사용하며 근접전에서의 빠른 버프와 디버프, 그리고 독과 저주를 장기로 삼는다.

[게일 블레이드]

"아아아악!"

굳이 바람의 칼날로 적을 난도질하는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리타는 이스마엘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건 이스마엘의 정도를 넘어선 강력함 뿐이었다.

"아니, 아니다. 이건 말도 안 돼."

마법은 한 우물만 파기도 어려운 학문이다.

필연적으로 주 장기로 다루는 한 종류의 마법을 정체성으로 삼게 마련.

뇌전의 창술사.

강철성채.

베놈로드.

유명한 마법사들의 별칭이 그것을 증명한다.

마법사의 공략법 또한 그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아리타는 지금껏 약점이 없는 마법사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준비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든 속성과 형태의 마법을 전부 사용하고 있었다.

"넌··· 도대체 뭐냐?"

아리타의 눈에 비친 이스마엘의 모습은 옛 마탑의 마스터나 그랜드마스터 급의 아크메이지.

아니, 그보다도 위였다.

"아니··· 되었다."

아리타는 이스마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강력함이었다.

빠져나갈 길은 단 하나였다.

이스마엘의 죽음.

아리타가 발끝에 마나를 실어 땅을 박찼다.

콰앙!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꼬여서는 안 됐다.

지금쯤이면 사제는 승화해 악마의 힘을 얻었어야 했다.

악마의 힘을 얻은 사제는 대륙 어딘가에 있을 교주의 부름을 받았어야 했다.

그리고 아리타는 다음 사제로서 간택 받았어야 했다.

빠드드득.

변수는 단 하나.

이스마엘이 제물을 빼돌리고 세 명의 교도가 실종되었다.

이스마엘이 피니언과 교도들을 죽였다.

이스마엘이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고 세뇌한 집행자들을 장난감처럼 죽인다.

이스마엘.

이스마엘이다.

빠직, 빠지직.

마기에 오염된 붉은 마나가 아리타를 둘러싸고 비명을 지르듯 스파크를 튀겨댔다.

촤라락.

펼쳐진 망토 안에는 비도가 열 지어 꽂혀있었다.

아리타는 비도를 뽑아 던지며 돌진했다.

집행자들은 목숨을 바쳐 아리타의 길을 뚫었다.

아리타의 눈에는 단 한 명만 보였다.

빠르게 커지는 그의 모습.

"이스마엘!"

분노에 찬 아리타의 외침이 서쪽 숲의 하늘을 갈랐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25화 언저리, 한 권 정도 분량에서 완결을 낼 생각입니다.

욕심은 많았는데 그걸 보여줄 실력은 없어 죄송합니다.

아무튼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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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5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1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29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8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2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69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3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09 3 13쪽
»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4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3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4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1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0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5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1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5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3 12 12쪽
4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2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4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67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3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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