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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루파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리치는 보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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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파루파
작품등록일 :
2020.03.28 18:38
최근연재일 :
2020.04.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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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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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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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DUMMY

리치가 거한들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동안 미리암은 공포에 질린 이스마엘보다도 먼저 움직였다.

폭포수처럼 땀을 흘리는 이스마엘을 지나친 미리암이 마차가 있던 곳으로 달려갔을 때는 멀리 달려가는 마차 소리와 흙먼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스마엘과 마주쳐 좋을 것이 없다 판단한 미리암은 썩은 나무둥치 뒤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앉아 리치가 이스마엘을 죽이고 육신을 빼앗는 장면까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부탁이라 했느냐?"

리치는 눈앞의 꼬맹이가 마기에 침식당해 돌아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데 부탁?

"네. 보육원까지만 저를 데리고 가주실 수 있을까요?"

"보육원?"

"이스마엘은 빛의 집이라는 보육원의 원장이거··· 원장이었거든요. 저는 어제 아침까지 보육원에 있었구요."

리치가 황당함에 되물었다.

"보육원장? 보육원장이 아이를 팔아넘겼다고?"

리치는 보육원장이라는 말을 듣고는 뼈다귀가 뒤집힐 듯 화가 났다. 그는 이스마엘을 간단히 죽인 것을 후회했다.

"인신매매보다 질이 떨어지는 범죄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군.

좀 더 고통스럽게 해줬어야 하는 건데. 혈류를 막은 다음 다리뼈를 뽑아서 그 뼈를 갈아 만든 칼로···. 크흠, 크흠."

흥분한 리치는 어린아이 앞이라는 것을 깨닫고 겨우 자중할 수 있었다. 미리암은 변함없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앞으로 저희 보육원 가족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게 중요하죠."

"침착하구나. 몇 살이냐?"

"열 살이요."

"무섭지 않느냐?"

리치는 눈앞의 미리암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검은 단발머리, 녹색 눈동자. 낡았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옷에 케이프를 걸친 어린아이.

리치는 케케묵은 기억을 되짚어봤다.

열 살은 개구리를 잡고 달걀을 서리할 나이였다.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나이는 아니었다. 남의 가죽을 벗겨 입는 해골은 더욱이.

"사람이 죽는 건 익숙해요. 성 아랫마을에서는 한 달에도 두어 번씩은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 습격하니까요."

리치는 전투로 죽는 것과 생명력이 빨려 죽는 것의 차이를 설명해볼까 했지만 이제 와 미리암을 겁줘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왜 널 마을까지 데려다줘야 하지?"

"사실 보육원은 마을과 조금 떨어져 있어요. 마을보단 덜 가셔도 괜찮을 거에요."

"그건 대답이 아닌데."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어드릴게요.

저를 여기 두고 가시면 저는 50 대 50으로 돌아가거나 돌아가지 못하고 죽겠죠.

도착하지 못한다면 아무 일도 없겠지만 도착한다면 리치가 돌아왔다고 동네방네 알릴 거에요."

"당돌하군. 내가 지금 널 죽이면 걱정도 없는 것 아니냐?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어떻게 알지?"

"저를 죽일 생각이셨다면 벌써 죽었겠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리치 님은 아무나 죽이지 않는 게 아닌가요?"

"똑똑하군."

리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스마엘의 얼굴이 괴이하게 비틀어졌다.

이고르는 그 얼굴을 화가 난 거라 잘못 해석했다. 주인의 골칫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고르는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 딴에는 빠른 속도로 상승한 이고르가 미리암의 얼굴 주변을 빙빙 돌며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어이. 죽고 싶은가, 꼬맹이?]

어른 주먹만 한 푸른 가고일은 미리암에게 딱히 위협이 되지 않았다.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미리암의 얼굴이 확 펴졌다.

"어머, 귀여워라."

[죽고 싶냐고!]

"얘는 뭔가요?"

[내 말이 안 들리나!]

리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녀석은 이고르다. 가고일이지. 내 패밀리어이고··· 지금은 모른 척하고 싶군."

[너무하다.]

이고르는 풀이 죽어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미리암이 이고르를 양손으로 주워들다가 기우뚱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은 미리암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무거워요."

"무거울 수밖에. 가고일은 순수한 한 종류의 광물로 되어있다. 같은 종류의 광물을 먹어 몸뚱이를 불리지.

그 꼬맹이는 특히나 무겁고 귀한 금속인 탓에 자라지 못한 거다."

"어쩐지, 가고일은 원래 무서운 몬스터라고 들었어요."

"무섭지. 골렘처럼 단단하지만 골렘보다 빠르고 지능적이며 날아다니기까지 하니까."

[나도 무섭다.]

"이고르도 무서워요."

[흥.]

이고르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치자 깡 하는 철판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 좋다. 보육원까지 데려다주마. 50대 50? 넌 여기 있으면 100으로 죽는다. 알고도 두고 간다면 내가 죽이는 거나 다름없지."

"그럼 살벌한 이야기는 왜 하셨어요?"

"어디까지 당돌한가 궁금해서 그랬다."

미리암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

역시나 상황과 나이에 어울리는 침착함은 아니었다. 말문이 막힌 리치가 길을 앞장섰다.

"···가자꾸나."



---



타락의 대지와 제국의 접경지대, 레온 영지를 향해 걷는 동안 리치는 미리암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먼저 알아챈 건 파비안이었어요. 성 아랫마을에서 없어진 부랑자들과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그 근처에서 이스마엘을 봤다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보육원이라면 신전에서 보낸 사제가 몇 있을 텐데. 왜 알리지 않았지?"

"확실한 증거는 아니었으니까요. 파비안도 증거를 잡기 전에는 의심받을만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된 것이냐?"

"···방에 숨어 들어갔지만 바로 들켜버렸어요. 그때부터 다음은 제 차례고 그게 마지막이라 정해져 있었던 거죠."

"보육원에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

"제가 아니라도 다른 아이들이 희생될 뿐이에요. 그리고 제게는 보육원을 떠나면 안 될 이유가 있어요."

"이유?"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미리암의 태도는 단호했다.

두 시간을 걷자 미리암은 지쳐서 곧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미리암이 한사코 거부했지만 리치는 미리암을 등에 업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리치의 등에 업힌 미리암은 곧 피곤함에 패배했다.

잠든 미리암의 숨소리는 여느 열 살짜리처럼 약했다.

"열 살 치고는 성숙한 아이야. 그게 타고난 건지 아니면 어린아이에게 성숙함을 강요하는 현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족을 팔아넘긴다. 이해할 수 없다.]

"너도 비슷한 꼴이었잖느냐."

[나는 약했다. 그래서 무리에서 버려졌다. 당연하다. 동족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하지만 끝까지 데려갔으면 고마워했겠지."

[···.]

"보육원이라···. 만드라고라보다는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소리 지르는 풀떼기보다는 소리 지르는 어린애들이 낫겠지."

[리치가 어린 인간을 돌봐도 되는 건가?]

"뭐 어때?"

[그 몸이 썩기 시작하면 '뭐 어때'라고는 하지 못할 거다.]

리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나를 이용하면 안 썩는다. 상처도 안 낫겠지만."

리치는 마나를 만들지 못하니 필연적으로 남들에게서 흡수해야 했다.

[어린 인간들을 돌보려 큰 인간들을 죽이겠다고?]

"모순적인가?"

이고르는 딱히 고민하지 않았다.

[별로.]



---



한 시간을 더 걷자 안개가 걷혔다. 찐득찐득한 마기가 거의 사라진 것을 느낀 리치가 고개를 드니 커다란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 아랫마을. 이름은 소박했지만 그 규모는 전혀 소박하지 않았다.

타락의 대지와 던전을 탐험하는 모험가들이 모여 만든 도시는 엄청나게 컸다.

혼란스러운 질서가 형성된 도시. 작은 성처럼 서 있는 모험가 길드들을 중심으로 거대 상단과 귀족들의 저택, 유흥가와 빈민촌이 어지럽게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리치는 성 아랫마을이라는 모순된 이름이 왜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도시 뒤쪽의 거대한 성에 비교하면 도시의 장경도 빛이 바랬기 때문이다.

낡고 닳아 작은 산처럼 보이는 성은 아직 리치가 기억하는 날카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도시대부터 굳건히 서 있던 거대한 요새는 이제 남부의 야만인들이 아닌 북부의 판데모니엄을 감시한다.

외양은 바뀌지 않아도 본질은 바뀐다.

리치는 새삼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다.

"백사자성이에요."

내리쬐는 아침 햇빛에 잠에서 깬 미리암이 리치의 등에서 내려왔다.

"옛날엔 그런 이름이 아니었지."

"지금은 백사자성이에요. 성주님이 살죠."

"비옥한 사자의 평원을 뒤에 두고 판데모니엄과의 최전선에서 사는 성주라··· 마조히스트가 확실하구나."

"마조···?"

"어린애는 몰라도 된다."

[마조히스트는 고통을 즐긴다는 뜻이다.]

"그렇군요."

"몰라도 된다고."

조금 더 걷자 성 아랫마을과 외따로 떨어진 작은 건물이 보였다.

"저기가 빛의 집이에요."

"···저게?"

미리암이 아니었더라면 버려진 건물이라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빛의 집이라는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양이었다.

2층짜리 건물의 한쪽 지붕은 볼품없이 내려앉아 있었고 흙벽에 난 구멍은 창문보다 컸다. 반쯤 기울어진 나무 울타리는 오랫동안 보수하지 않아 다 썩어 있었으며 대문도 달려있지 않았다.

"교단에서 지원을 끊기라도 했나?"

"옛날부터 저런 모습이었는데요?"

"뭐?"

보육원의 문이 까가가각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에서는 사제복을 대충 둘러 입은 여사제가 피곤한 표정으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그녀는 반쯤 감긴 눈으로 리치가 서 있는 쪽을 보더니 눈을 두 배로 크게 떴다.

"미리암!"

찢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여사제가 맨발로 겅중겅중 뛰어왔다.

"숨어!"

[악!]

리치가 이고르를 잡아 품속에 숨겼다.

"미리아아암!"

짧은 거리가 아니었지만 큰 키의 여사제는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붉은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온 여사제가 비명을 지르듯 질문을 쏟아냈다.

"어디를 갔었던 거니? 어제는 왜 들어오지 않았고? 어째서 타락의 대지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니? 몬스터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원장님은요? 어딜 갔다 오셨어요? 미리암을 어디서 찾았죠?"

"그··· 저···."

속사포같은 질문에 리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땀범벅이 되어 헐떡이고 있는 눈앞의 여사제의 이름도 몰랐으니까.

리치 대신 침착하게 말하기 시작한 건 미리암이었다.

"괜찮아요, 엠마 사제님. 버섯을 따러 숲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서 반대쪽으로 나갔어요. 중간에 만난 모험가분들이 데려다주셨구요."

"···."

리치는 열 살짜리 어린애가 방금 생각해낸 변명이 너무 완벽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원장님은 밤새 절 찾아다니시다가 모험가분들과 저를 만났어요. 사례금을 조금 드리고 헤어졌죠.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미리암이 고개를 숙였다. 엠마 사제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미리암을 끌어안았다.

"혼자 숲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신이여 감사합니다···."

한참 동안 미리암을 안고 울며 기도를 올리다 겨우 진정된 엠마 사제가 얼굴을 닦고는 리치에게 말했다.

"사실 원장님도 그 전 원장님들처럼 보육원을 운영했다는 경력만을 위해 아이들을 맡은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이 짧았군요!"

리치는 이스마엘이 그 전 원장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쓰레기였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 알아줘서 고맙···네."

"물론이죠!"

엠마 사제가 피운 난리를 들었는지 보육원에서는 어린아이 몇 명과 여사제 한 명이 밖으로 나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여사제는 달음박질을 시작하려는 아이들을 보육원으로 밀어 넣고 홀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리치의 시선을 눈치챈 엠마 사제가 뒤를 돌아보고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코리 사제님도 걱정이 되었나 보네요. 아침 예식을 건너뛸 분이 아닌데."

코리 사제의 사제다운 안정된 걸음걸이가 엠마 사제 뺨칠 정도의 다급한 뜀박질로 바뀐 건 그때였다. 그녀는 다급히 뛰어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어!"

"···린! 빨···!"

엠마 사제와는 달리 목청이 작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잠시 뒤였다.

"뒤에! 고블린이 쫓아와요! 빨리 보육원으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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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외전. 이고르 +4 20.04.25 158 6 7쪽
25 9. 승화 (2) + 에필로그 +2 20.04.25 182 4 18쪽
24 9. 승화 (1) +2 20.04.24 137 5 12쪽
23 8. 습격 (2) +2 20.04.23 131 5 13쪽
22 8. 습격 (1) +2 20.04.22 149 5 14쪽
21 7. 때 아닌 던전탐험 (3) +4 20.04.19 174 7 12쪽
20 7. 때 아닌 던전탐험 (2) +2 20.04.18 170 5 12쪽
19 7. 때 아닌 던전탐험 (1) +2 20.04.17 194 6 12쪽
18 6. 수도사 아리타. (4) +2 20.04.16 213 3 13쪽
17 6. 수도사 아리타. (3) +2 20.04.15 205 5 12쪽
16 6. 수도사 아리타. (2) +2 20.04.12 224 4 12쪽
15 6. 수도사 아리타. (1) +1 20.04.11 227 7 13쪽
14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3) +2 20.04.10 257 5 12쪽
13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2) +2 20.04.09 233 5 12쪽
12 5. 사람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다. (1) +2 20.04.08 284 5 12쪽
11 4. 미리암은 결심했다. (2) +2 20.04.05 302 9 12쪽
10 4. 미리암은 결심했다. (1) +2 20.04.04 314 6 12쪽
9 3. 마신교도 피니언 (2) +5 20.04.03 316 11 12쪽
8 3. 마신교도 피니언 (1) +2 20.04.02 362 7 12쪽
7 2. 리치는 이스마엘 (3) +1 20.04.01 387 8 12쪽
6 2. 리치는 이스마엘 (2) +1 20.03.31 419 11 12쪽
5 2. 리치는 이스마엘 (1) +1 20.03.30 494 12 12쪽
» 1. 보육원장 이스마엘 (3) +1 20.03.29 604 11 13쪽
3 1. 보육원장 이스마엘 (2) +1 20.03.28 667 13 12쪽
2 1. 보육원장 이스마엘 (1) +1 20.03.28 873 15 12쪽
1 프롤로그 +1 20.03.28 965 1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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