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인조 습합신 (7)
현수는 그렇게 하은의 증세를 완화시키더니 이제는 망령 마브카가 깃든 관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현수의 곁에는 소형 골렘들이 뒤따랐으니.
그 골렘들은 빅 마니투 쪽의 이계 게이트,
그 안에서 이번에 생긴 흙 인형들 중, 현수를 따라온 특이 개체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골렘들은 자신들이 희생자들 여럿으로 생긴 군체임에도,
그런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해 그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수는 그 피조물들에게 인외종으로서의 새 삶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는 마브카를 만나야 할 두 번째 목적도 곧 그 관목 근처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마브카를 불쌍하게 여겨 그녀를 돌봐주러 온 지성체들.
그 무리 속에서 안나 피어스가 베리계 과일들을 먹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피어스도 그를 가까이서 직시할 수 있었는데, 그녀는 그를 보더니 갑작스레 울먹거렸다.
그래서 현수는 그녀의 시선이 닿은 제 신체 부위로 제 눈길을 옮겼으며.
그는 자신의 몸이 재가 되어 바스라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이윽고 현수는 두 다리가 꺾여 제자리에서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으니.
그는 곧 제 머리가 눈이 있던 자리에서부터 사라졌음도 인지했고.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소우주를 보고 그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때쯤 피어스의 바구니가 엎어져 과일들이 쏟아지고.
현수는 자신의 시선이 지나치게 높아졌음도 인식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샤루르, 그 몽환시 공간이 하나가 돼 진정한 제 본체로 화했음을 확인하니.
마브카는 그런 광경들을 목격해 제 큰 눈을 더 커다랗게 떴다.
그렇게 샤루르 속 정원에서 지성체들이 경악한 사이, 샤루르가 그 내면을 통해 속삭였다.
「바슈티가 고장 난 이상, 그 자리를 메우다 보니 생긴 일이랍니다.」
「참고로 정령 모라나는 저희와 일체화했으니 참고하세요.」
「제가 모라나로서 수은과 황의 역할을 겸하게 됐어요.
이 둘이 수은의 상징을, 그리고 당신이 소금의 상징을 유지한 동안 말이죠.
음, 그러고 보니 새로 들어온 퀘스트 들어왔는데 상태창 수치랑 같이 보실래요?」
●이름 : 시몬 루아흐
(게임 빙의자, 성좌계 신격체 <인마궁 5+2/8>)
<생명력 : 10+11> <지구력 : 7> <집중력 : 10>
<지력 : 7> <영력 : 10+7>
(하단 내용들은 갱신된 항목들 위주로 표시된 것입니다.
각 항목이나 말줄임표 클릭 시 생략된 내용을 확인 가능하니 참고해 주십시오.)
-기본 특성 : 세계수의 주목 화신, 옛 돼지 성좌의 주인, 성장을 멈춘 습합신, 태곳적 축복을 받은 살신자
-후천적 이능 : 죽은 신들의 사안, 옛 운명의 벼락, 붉은 혈액 조작
-습득한 주술 : 인마궁의 다섯 가지 주술, 알라드 샤가의 기적,···
-···
-체화한 비의 : ···, 머리 잃은 세라피스 소환
-빙의자들을 상태창에 더 제물로 바쳐야만 자세한 내용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 업데이트된 퀘스트 : 성전기사단 내부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면 석공, 마라, 에이와스의 빈자리를 핑계 삼아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자들을 쓰러트리세요.
보상은 뭇 세상들의 안정으로, 이는 어린 신들이 격을 높이면서도 금제의 부담을 줄이는 것에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다만 지금 현수의 시선은 상태창과 퀘스트 알림 쪽에만 있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사라졌던 위치에서 다시 그 몸을 만드는 일에도 집중했던 것이고.
그렇게 태어난 현수 분체가 놀란 지성체들을 살피는 동안, 그 본체는 선명해진 의식을 내면 깊숙한 곳으로 투사했다.
그 결과, 소우주와 몽환시가 현수의 내면으로부터 해방돼 샤루르에 신기루 같은 모습으로 녹아들었으니.
그는 심해의 사도가 이계 게이트와 합일했던 일을 일부 모방해,
그 형태에서 취해야 할 것은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렸다.
하지만 그러자마자 이계의 악취와 냉기가 본체의 뼛속마저 변형시켰으며.
그 결과, 먼저 샤루르의 표면이 뒤틀리다 못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샤루르 안에 나무 거신의 그림자도 녹아들자 그 본체는 원래의 구체 모습을 되찾았으며.
현수는 자신의 모든 화신들, 분체들에서 그 심장들의 박동 주기를 일치시켜, 그로써 샤루르를 안정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샤루르 안쪽에서 그 위를 가리는 별들이 생겨 본체 자체에 낮밤의 주기가 생겨나고.
그 별빛에 부엽토의 영들과 잡초 정령들이 태어나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택 정령들 중 소수는 루아흐에서 나와, 그곳에서의 성취감 대신 덤불 속 고블린들로서의 자유를 택한다.
아마라가 주목의 엘프일 때 말했듯, 샤루르는 인외종들을 위한 낙원이 되고 있던 것이니.
그 변화는 현수 일행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극적인 건 아닌 셈이다.
그리고 현수는 그제야 자신이 마브카 쪽에 온 목적대로 행동할 수 있었으며.
우선 그의 인도에 따라 동물 정령들의 불, 영혼 외재화의 주술이 한데 얽혀 마브카의 영육 형태를 모방하고.
그로써 작은 흙 골렘들을 픽시, 마브카, 드레카바크 등의 인외종들로 재탄생시켰다.
따라서 관목 속 마브카는 그런 형제자매들을 훈육하는 일을 맡게 됐으며.
뒤이어 현수는 피어스에게 정령들의 불만을 옮겨 붙여,
그녀를 트롤 체인질링이라는 한계에서 해방시키는 일에도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두 일이 모두 해결되고.
그 폭포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역사조정 위원회의 요원들이 화신들과 골렘들을 부른 일,
그 상황 때까지의 체감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갔다.
***
우유 한 잔 위로 사파이어가 가루 형태로 뿌려졌다.
이 사치스런 음료는 궤양이나 편두통을 치료하고 질투심과 공포를 해결해 준다는 가짜 약이었고.
동시에 유일신에게의 간청을 가능케 한다는 음료였으니.
케케묵은 시절에는 그 자체로 유일신 종교 내에서 허락된 흑마법 피조물과도 같았으리라.
그리고 이제 그 안에는 청람색 마석 가루도 녹아들어 그 우유는 정령계 주민들을 위한 음료수로 완성되었다.
그 괴상한 음료는 최근에 이르러 촉매나 영약 같은 게 되었던 것이다.
「음, 그런 화신들 몸으로도 드실 만 한 거예요. 걱정 마시고 반 잔이라도 좀 드세요.」
피넬라 매더의 그 말에 대꾸라도 하듯, 올피 화신이 듀라한의 목구멍 쪽으로 그 우유 한 잔을 전부 쏟아 부었고.
곧 흰 액체와 푸른 가루가 튀어 듀라한 상의 위에 점점이 번졌다.
하지만 올피는 슈르푸계 주술을 준비 없이도 쓸 수 있는 주술사이며.
따라서 그 얼룩은 금세 희고 반짝이는 모습으로 말라붙어 버렸다.
곧 그 모습을 보고 매더가 말을 이었다.
「화신 몸의 주인은 뭐라 안 해요? 그리고 듣자하니 그 요정을 듀라한이라 부르신다고 들었어요.
투쉬타의 상식 부족한 자들이나 쓸 법한 말이라던데요.」
「피조물이라던데 뭘.
둘러한 원본으로서의 영육이 빠진 상태라 두라한이든 간칸이든 듀라한이든 뭐라 불러도 되는 모양이야.
현수가 듀라한이라 하니 나도 걜 따라서 그렇게 부르고 있고.」
그때쯤 현수 화신이 새로 생긴 꼬리에 불편해하며 그들 곁으로 돌아왔다.
샤루르에서의 합일로 그에게 붙게 된 반투명한 꼬리.
현수는 그런 전갈 신의 꼬리로 마법사들의 관심을 끈 까닭에 그 객실 자리를 잠시 비웠던 것이고.
어느새 그 객실에는 그런 마법사들이 빠져나간 대신 마물 두 마리가 더해져 있었다.
그렇게 마물 래칫이 평범한 들개의 모습으로 화신의 전갈 꼬리를 잡아채려 애썼고.
한때 카도쉬 기사였던 코락스도 까마귀 닮은 피조물로서 날아들어, 그 난장판에 가세하려다 몸이 덜컥 굳어 추락해버렸다.
「실례했소.」
뒤이어 래칫도 혈액 조작의 이능에 마비되어 옆으로 쓰러져 버렸으니.
이제 그곳의 요원들은 화신들에게 마물 주인으로서의 그 책임을 따질 수 있게 된 셈.
하지만 정작 화신들의 표정은 무덤덤했고, 이는 마물 둘에게 그곳으로 따로 찾아오게 한 이유가 있음을 뜻했다.
이제 현수는 매더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빙의자로서 그 상태창이 멀쩡한 상태라면 퀘스트 알림을 받았을 수도 있소.」
「아쉽지만 전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다만 결과가 나쁘더라도 준비만큼은 착실히 했을 거란 소릴 들으며 살죠.
그 게이트에서 잡힌 두 명은 아직 그쪽에 있겠죠?」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내 흔들었다.
그는 그 게이트에서의 일이 끝난 직후. 님프 마녀와 사티로스 노인.
그 인외종 포로들을 샤루르로 데려간 뒤 그 둘을 악령 주물의 일부로 삼아버린 것이다.
「인공 육신 두 구만 준비된다면 언제라도 부활시킬 수 있는 상태요.」
또한 현수는 악령 주물 속에서 포로 둘이 부시리스로부터 이어받은 기억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기억에 대한 정보는 역사조정 위원회의 요원들, 그 일부에게만 공유된 상태였으니.
이는 상태창들이 고장 난 이후, 그 상실감에 마교 쪽으로 전향해 첩자가 된 자들,
그 빙의자 요원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요원들은 그 게이트 관련 조사 중의 교차 검증으로 그 정체가 제대로 탄로 난 상황.
그 와중에 두 마물은 마교 부역자 시절의 경험을 살려, 그 요원들이 자신들의 정체 발각,
그리고 후속 조치에 대한 정보를 알도록 한 상태였고.
이는 성전기사단 및 그 산하 조직에서 허술한 부분들이 그동안 크게 바뀌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곧 첩자인 자들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기어이 사고를 저질렀다.
객실 근처에서 대량의 폭탄들을 터뜨려 그 벽과 안, 그리고 안팎의 물건들을 파괴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직전, 화신의 전갈 꼬리가 허공을 휘젓자 그 독침이 그은 곡선으로부터 몽환시 공간이 열렸고.
그 결과, 폭발은 객실 쪽과 그 근처의 지성체들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파빌사그 주술은 파괴력을 제외하고도 그런 편리한 기예를 감추고 있던 것이니.
이는 현수가 화신에게도 그 불편한 꼬리가 따라붙는 걸 내버려 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태창 상태가 괜찮은 요원들, 그 운 좋은 자들이 유순한 정령들로 매더 쪽에 연락해왔다.
그들도 현수가 이전에 접한 퀘스트 알림을 받았다고 다른 요원들 쪽에도 알려왔던 것이다.
다만 그 퀘스트 알림에는 첩자들과 그들의 현재 위치 때문에 내용이 좀 더 추가되어 있었고.
곧 그 꼬리 끝에 내장된 샤루르, 모라나 파편이 현수에게도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하필 그 첩자들은 트라팔란다의 재건축 장소들 쪽에 숨어 있었다.
***
이계에 침식된 몽환시.
그곳에는 북유럽 청동기 문화가 연상되는, 한 예스런 유적군이 존재했고.
그 지하 안쪽을 향해 한 마교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내부는 흉한 점액들로 더럽혀져 있었으니.
이는 그 마교도가 예측했던 바와 같았으며,
더 깊숙한 곳에는 꾸물거리는 것들이 창백하게 질린 채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들의 황색 비단옷은 원래의 정교한 무늬가 이계 구더기들에 파먹혀 불경한 형상으로 왜곡되고 있었고.
시리도록 흰 가면들은 그 표면이 싯누런 고름에 얼룩진 채,
제 안에서 벌레 같은 손가락들을 뻗어 더 어두운 곳을 향해 숨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교도의 눈앞에 흉측하게 보이는 희생 제단이 드러나니.
꾸물거리는 것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불교의 지옥도 그림 속 야차들과도 닮은 것.
그런 존재가 그 중심에서 제 동족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성전 기사단 산하, 로돈 밀교회의 지모신 숭배···」
「편히 말하시오. 귀 기울여 듣고 있겠소.」
「전 지모신 숭배자 디컨이라 합니다.
성전 기사단의 임시 전령으로서 카도쉬 기사, 태양의 헬리오드로무스, 다면 석공 결사의 애런···」
크리셔의 손안에서 곧 가냘픈 비명이 새어나오다 썩둑 잘리는 소리와 함께 끊겼다.
「그냥 크리셔라 부르시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소.」
- 작가의말
오늘도 이런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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