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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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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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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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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글자수 :
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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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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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최강의 오거 (5)

DUMMY

침입자는 지금 얼굴 가득 ‘나 놀랐소’라고 써놓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나고 있다. 침입자의 입장에선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는 카를은, 그냥 덩치만 큰 사내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것도 인간의 기준에서다. 오거 기준으로 보면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자신과 비슷할 정도니까.


침입자는 카를이 싸우는 것을 보았었지만, 카를이 오거 우두머리를 무찌르는 것을 끝까지 보지 않았기에 이렇게까지 강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그가 폭주했을 때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뭘 놀라고 그러냐?”


거리가 벌어진 만큼 무기를 운용할 틈이 생겼다. 카를의 창이 앞으로 내뻗어진다. 침입자는 자신의 복부를 노리는 창을 팔로 쳐낸다.


카를은 옆으로 돌아가고 있는 창을 억지로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고,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짧아진 거리만큼 다시 창을 손에 쥐고, 비스듬히 올려친다. 창날의 반대편인 창대의 끝을 이용한 공격이다. 짧은 몽둥이를 휘두르는 느낌이 창에게서 전해진다.


침입자는 자신의 턱을 노리는 공격에 고개를 올리며, 뒤로 피한다. 하지만 턱을 위로 올리느라 좁아진 아래쪽 시야 때문에 미처 볼 수 없던 카를의 다리가, 침입자의 다리를 걸기 위해 따라붙는다. 이에 침입자는 목표가 된 발을 들어 올려 위협을 피한 다음, 반대쪽 발로 도약했다.


한 발로 도약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거리를 벌린다. 이번 공격을 회피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몇 호흡을 더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사람의 시선이다. 카를의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카를 또한 휘둘러진 다리 때문에 전속력을 내지는 못했다. 침입자의 불안정했던 자세는 그 사이에 안정화되었다.


‘상대, 긴 무기 쓴다. 거리 좁혀야 한다.’


창을 사용하는 카를에게 거리를 주면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할 뿐이다. 이에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것을 포기하고 앞으로 쇄도한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침입자를 보며, 창으로 허벅지를 노리며 휘두른다. 머리나 가슴처럼 몸을 숙이며 회피할 수 없는, 피하기 어려운 위치다. 피하려면 정지하던지, 아니면 높게 도약해야 한다. 그로 인한 틈이 카를이 노리는 바였다.


이지선다를 요구받은 침입자는 정지 대신, 도약한 다음 공격하기로 마음먹는다.


‘응?’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도약을 할 필요가 없게 되어버렸다. 허벅지를 베어 들어오던 카를의 창이 거리 조절에 실패하여 허공을 베었기 때문이다. 이에 침입자는 도약의 방향을 바꿔 앞으로 쏘아진다.


“칫.”


카를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침입자의 주먹을 옆으로 피하고 공중에 떠 있는 그를 발로 차기로 한다. 하지만 그건 실패였다. 자신의 발이 공격에 나서기도 전에, 이미 침입자의 발이 날아오고 있다. 그것도 달려오는 반동으로 옆에서 후려치는 게 아닌, 몸의 무게를 실은 강력한 일직선의 옆차기다.


‘공중에서 방향을 바꿨어?’


공중에서 공격받는다면 피할 수 없다. 대지와 맞닿은 디딤 발로 몸의 위치와 중심을 바꿀 수 있는 지상과 달리, 공중에서는 몸을 이동시키기 위해 반발력을 이용할 매개체가 없다.


하지만 침입자는 할 수 있다. 적어진 바람으로 인해 비행술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는 힘들지만, 한 순간 방향을 바꾸는 것 정도는 그에게 식은 죽 먹기다. 물론 자연력의 소모는 어쩔 수 없지만, 조금 더 소모하더라도 승부를 빨리 끝내는 것이 이롭다고 침입자는 판단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옆차기를 본 카를은 공격하려 했던 발을 방어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발로만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억지로 자세를 바꾸다 보니 균형이 무너져 속절없이 뒤로 밀린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침입자가 카를에게 따라붙는다. 카를은 침입자를 저지하기 위해 다시 창을 휘두른다.


“쳇.”


하지만 빗나간다. 화염과 연기, 그리고 아지랑이 때문에 거리 감각이 흐트러졌다.


‘창날 끝으로 벨 생각을 버려야겠네.’


자신에게 다가오는 침입자를 향해 앞차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다. 침입자가 다가오는 속도를 생각하면, 필중할 수밖에 없던 공격이었지만, 침입자가 갑자기 우뚝 멈추며 공격을 무산시켰다.


그리고 공격에 실패한 카를의 발을 오히려 침입자가 잡아버린다.


“어? 어어?”


그리고 그대로 들어서 패대기친다. 카를과 땅이 부딪히며 생긴 충격파 때문에 주변의 화염이 일소한다. 하지만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침입자가 카를을 놓아주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다리를 으스러뜨릴 생각으로 꽉 잡은 채 연속적으로 패대기친다.


“이 놈이!”


잡힌 발을 끌어당겨, 몸을 침입자 쪽으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반대편 발로 침입자의 팔을 찬다. 공격을 허용한 침입자의 손아귀에 힘이 빠지고 카를은 자유를 되찾았다. 하지만 휘둘러지고 있던 힘이 있었기에 땅을 향해 튕겨나간다. 쟁기가 땅을 갈아엎듯 기다란 흔적이 남는다.


등으로 땅을 긁으며 밀려가던 카를이 반동을 이용해 뒤로 튕겨 일어난다. 그의 눈 앞에 어느새 다가온 침입자의 왼주먹이 보인다. 이에 고개를 숙여 주먹을 피한다. 하지만 아직 그의 눈 앞에 주먹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카를의 얼굴을 향해 침입자의 오른주먹이 올려치고 있다. 이에 다시 고개를 들어 주먹을 피하려 하나, 그전에 피한 왼손이 어느새 그의 목을 붙들고 있다. 피할 수 없다.


쾅!


주변으로 퍼지는 충격파를 따라, 카를 또한 침입자의 강렬한 올려치기에 몸이 붕 뜬다. 다행히 손을 이용해 방어했기에 큰 타격은 없었는지 무사히 착지에 성공한다.


“나 바람만 잘 쓰는 거 아니다. 난 오거. 근접전 잘한다.”


“그래. 그런 거 같...네!”


다시 한번 카를의 창이 쏘아진다. 목표는 침입자의 가슴이다.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창을 침입자는 몸을 옆으로 숙여 피한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기 위해 오른발을 옆으로 내딛는다. 이대로면 창이 카를에게 돌아가기 전에 안으로 파고들어 일격을 먹여줄 수 있다. 만약 창이 돌아오는 속도가 그의 예상보다 빠르다고 해도 적의 공격력을 반감할 수 있는 위치였기에 전투를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다.


‘이쪽이군!’


하지만 그건 함정이었다. 카를은 적의 움직임을 예측했다. 애초에 창은 속임수였다. 이미 몸의 중심은 오른손에 있는 창이 아니라, 왼손의 주먹을 위해 이동했다.


침입자가 공격에 나선 순간, 카를 또한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예측하고 함정을 파놓은 만큼 미세하게 카를이 더 빠르다. 침입자는 이미 공격을 위해 몸은 던졌다. 이 호흡의 틈을 침입자는 메울 수 없다. 반드시 명중한다. 만약 침입자가 카를의 주먹을 이겨내고 공격에 성공한다고 해도, 카를의 힘 때문에 반감된 공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것은 카를만의 생각이었다.


펑!


‘어?’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카를의 주먹이 허공을 향해 내질러진다. 어느새 침입자의 몸은 그곳에 없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듯 바로 전 순간의 위치에 존재했다. 믿기 힘들게도 몸의 중심과 방향은 오른쪽에 있는데도 왼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물리법칙을 거스른듯한 움직임에 카를이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 틈을 침입자는 놓치지 않는다.


카를은 자신의 얼굴을 노리는 침입자의 주먹을 보았다. 하지만 카를의 양손은 모두 공격으로 인해 방어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분명히 침입자의 주먹이 먼저 도달할 것이다. 이에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려 힘을 반감시킬 요량으로 상대의 배를 향해 앞차기를 시도한다.


펑!


‘또?’


하지만 그 시도는 다시 실패했다. 소리와 함께, 마치 뭔가가 침입자를 옆으로 강제로 옮겨놓은 듯이 침입자의 몸이 이동한다. 결국 카를의 앞차기 또한 허공을 가른다. 모든 방어 수단을 잃은 카를은 마지막 발악을 했다.


쾅!


발악에도 허무하게, 공격에 적중당한 카를의 몸이 다시 한번 떠오르고, 침입자의 힘에 뒤로 날아간다. 침입자는 주먹을 폈다 쥐며 다시 달려온다. 공격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카를이 죽지 않았음을 아주 잘 알았다.


‘한 순간에 맞는 곳, 바꿨다.’


카를은 얼굴을 맞기 직전, 몸을 뒤틀며 얼굴을 오히려 아래로 내렸다. 그 결과, 다른 부위가 아닌 가장 단단한 이마로 침입자의 공격을 맞을 수 있었다.


“에고고.”


카를은 대지에 누운 상태로 침입자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생각할 것도 없다. 침입자의 주특기가 무엇인지 뻔하니까.


‘젠장. 또 바람이냐.’


몸이 이동하기 전에 들렸던 소리를 보아 바람으로 자신을 밀어 살짝 옆으로 이동시킨 것이 분명하다.


확실히 그건 지금과 같은 접근전에서 아주 유용한 수단이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다채로운 움직임이 가능하다. 술법이 없는 순수한 접근전을 펼치는 카를을 상대로는 고작 몇십, 아니 몇 센티미터만 몸을 옆으로 이동시켜도 공격을 반감, 무력화시킬 수 있다.


‘어휴. 생각할 시간도 안 주네.’


어느새 다가왔는지,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고 있는 침입자를 피해 카를이 살짝 옆으로 구른다.


쾅!


침입자의 주먹에 맞닿은 대지가 터져나간다. 움푹 파인 구덩이가 생긴 덕분에 카를의 몸이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오잉?’


분명히 적의 공격을 피했음에도 다시 공격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버렸다.


공격을 가한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스러울 만도 했지만, 침입자는 호흡도 고르지 않은 채 곧바로 주먹을 다시 내뻗었다.


‘이런!’


카를은 팔을 교차시켜 주먹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땅이 점점 파이는 것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구덩이는 침입자의 공격에 의해 점점 깊숙해져 갔다. 결국 카를이 어떤 회피 동작을 피할 수 없었음에도, 주먹을 내지를 수 없을 지경까지 깊숙해졌다. 침입자가 무릎을 꿇고 주먹을 내질러도 주먹이 카를의 상체까지 닿지 않을 지경이다. 오직 카를의 창만이 구덩이에서 밖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에 침입자가 카를의 창을 쥐고 위로 끌어올린다. 계속 창을 쥐고 있던 카를도 같이 딸려 올라온다. 침입자는 카를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위로 살짝 던져 회전시키더니, 카를의 등을 걷어차버린다.


사람이 아니라 평원에 사는 동물들이라도 일격에 허리가 절단될 정도로 강력한 공격에, 카를은 어느새 술법의 끝부분에 도달했다. 침입자의 공격에 계속해서 밀렸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올린 카를의 눈 앞에 엘르 가족과 하스트가 보인다. 카를이 날아오는 것을 본 그들의 표정이 불안으로 가득하다.


지금까지의 전투의 흐름은 침입자가 우세하다. 하지만 그래도 침입자의 표정은 펴지지 않는다.


‘엄청 튼튼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는 힘껏 공격했다. 단 한 대만 맞아도, 인간은커녕 같은 오거마저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공격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인간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끝이다.’


침입자 입장에서는 다음 공격을 카를이 피하던지, 아니면 막던지 이제 아무 상관없었다. 막아서 튕겨나가도, 피해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 줘도.


‘술사들을 죽인다.’


여기 펼쳐진 술법에 침입자를 막을 만한 힘은 없다. 물론 힘이 있다고 해도 침입자는 술법을 억지로 파훼할 수 있다. 술법에서 빠져나간 다음, 술사들을 죽이고 고갈된 바람을 다시 채운다면, 카를이라고 해도 침입자를 막을 수 없다. 침입자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에고··· 큰일이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침입자뿐이 아니다. 일어난 카를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난감함을 표시한다.


카를의 표정을 보고 밖에서는 뭐라 뭐라 소리치는 것 같지만, 화염의 시작이었던 이곳은 특히 공기가 적어서 소리가 잘 안 들린다. 화염조차 먹이가 없어 위태롭게 흔들거리고 있다.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공기도, 화염도 아닌 단순한 열뿐이었다.


침입자가 카를에게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달려온다. 주변의 화염이 박력을 이기지 못하고 길을 터준다.


‘버틸 수 있을까?’


창을 꽉 쥐며,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해내야 한다. 해줘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이 마을은 끝이다. 애착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죽는 꼴은 보기 싫다.


다짐을 마친 카를이 오른손을 뒤로 뺀다. 누가 봐도 전력을 다한 일격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침입자는 피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피하는 순간, 승리는 결정된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흥분이 차오른다. 저 지겹도록 튼튼한, 전에 없던 강적인 카를을 이기고 자신은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 후에는 바라마지 않던 목표와의 결전이 기다린다. 이 사실이 침입자에게 전에 없던 고양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에 더욱 속도를 올려 카를에게 달려간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더 크게 고동친다.


하지만 심장이 고동칠수록 다른 감정 또한 몰려온다. 불안. 너무나도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는 카를의 눈이 그에게 불안 또한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카를의 사정거리로 들어간다. 심장의 고동은 이미 최대치다. 그리고 터질듯한 심장을 잠재우겠다는 듯 카를의 창이 앞으로 쏘아진다.


‘빠르다!’


그 속도는 방금 전 전투와 또 다르다. 하지만 궤적이 너무 단순하다. 이미 공격을 예상했던 침입자는 몸을 옆으로 살짝 돌려 창을 너무나도 쉽게 흘린다.


술법의 밖에서 경악이 느껴진다.


‘이겼다.’


침입자는 승리를 직감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시하기 위해 다시 몸을 돌려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카를을 마주 본 침입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침입자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방금 전과 똑같은 광경이다. 카를이 느꼈던, 바로 한순간 전으로 시간이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이번에는 침입자가 느끼고 있다.


카를이 창을 찌를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 창을 찔렀냐는 듯 아까와 같은 자세다. 카를의 창은 쏘아진 속도보다도 빠르게 어느새 카를의 품으로 돌아와 있었다.


침입자는 자신이 공격할 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자신을 향해 마주 보고 있는 창에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창이 내뻗어진다.


‘큭!’


침입자는 이번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죽을 각오로 옆으로 이동해 아슬아슬하게 다시 창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창의 시선은 아직도 자신을 향해 있다. 다시 한번 창이 내질러진다.


불안정한 자세로는 저 가공할 찌르기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방법은 남아있다. 바람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쳐낸다.


‘해냈다!’


이번에도 피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이다. 아직도 자신은 저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침입자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환각 같다. 어딜 어떻게 피해도 다시 자신을 볼 것 같다. 고온에 뒤틀린 세상 때문일까? 창날 끝이 이상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보인다. 저 창이 자신을 꿰뚫는 미래가. 고동치던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간다.


침입자는 생각했다. 화염과 열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모된 자연력은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 술법이 펼쳐질 때만 해도, 화염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마을 사람들의 힘이 먼저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카를과의 전투가 그에게 생각 이상으로 큰 자연력의 소모를 안겨주었다. 이대로라면 이곳을 감싸고 있는 저 술법보다 자신의 목숨이 먼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침입자의 생각을 창이 끊는다. 창이 다가온다. 침입자는 아직도 자신을 비웃는 창의 환각을 보고 있다.


‘부순다!’


침입자가 행동을 달리한다. 회피는 포기다. 감히 자신을 비웃고 있는 창을 부수기 위해, 환각을 끊기 위해 침입자의 주먹이 내달린다.


우우웅!


주위를 떨게 하는 공명음과 함께 바람이 휘몰아친다.


‘이 자식!’


주변에 바람은 없다. 바람이 휘몰아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카를의 눈 앞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은 바람이다.


우우웅!


침입자의 몸을 두르고 있던 바람이 회전하며 내지른 주먹으로 모인다. 회전하는 뾰족한 송곳이 주먹에 생성된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침입자는 카를을 인정하고, 도박을 던졌다. 피부에 둘렀던 바람을, 아직 내재되어있던, 고갈되지 않은 자연력을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한다. 이제 화염에게서 몸을 지킬 수 없다.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열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회전하는 바람에 이끌려 주변의 열조차 모여들고 있다.


침입자의 일격이 실패하여, 걸음이 멈춰지기라도 하는 순간, 그는 고갈된 자연력을 채우지 못하고, 열의 먹이가 되어 화염으로 화할 것이다. 하지만 카를을 뚫는 것에 성공한다면, 술법까지 파훼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주위의 바람을 마음껏 흡수하여 전투를 승리로 끝낼 수 있다.


서로의 공격이, 창과 주먹이 서로를 향해 다가선다. 이 한 합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콰직!


그리고 맞부딪힌 순간, 파괴되어 버린 것은 카를의 창쪽이다. 결국 카를의 창은 하스트의 술법에도 불구하고, 침입자의 일격을 버티지 못했다. 회전하는 송곳의 끝에서부터 창날이 산산이 부서진다.


‘결국 못 버티나···’


송곳이 창을 거슬러 다가온다. 창을 쥐고 있던 손까지 다가온 송곳을 보며 카를은 결국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카를의 손이라는, 자신을 고정하고 있던 거대한 힘을 잃은 창은 회전에 휘말려 공중으로 치솟는다.


이번에 침입자는 승리를 직감하지 않았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자신 이상으로 상식을 초월한 상대다.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는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이다. 승리의 포효를 내지를 때는, 오직 이 전투의 끝에서다. 그리고 침입자의 걱정대로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카를이 양손으로 회전하는 송곳을 잡으려 한다. 침입자는 카를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카를이 힘으로 술법을 억제하려 한다. 회전을 멈추려고 한다.


‘그럴 순 없다! 승리는 내 것이다!’


고요를 타고 침입자의 기백이 전장을 휘감는다. 술법의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마저 느껴질 정도의 굉장한 기백이었다. 눈을 마주치고 있는 카를도 기백에 담겨있는 침입자의 언어를 읽었다. 기백과 함께 회전이 속도를 더한다. 그리고 침입자도 카를의 눈에 담겨있는 언어를 읽었다. 카를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카를의 손이 바람의 송곳을 잡는다. 안 그래도 주위의 열은 빨아들이며 온도를 높이던 송곳이 손과의 끊임없이 마찰하며 더욱 온도를 높인다.


정지시키기 위한 카를의 손과 계속 회전하려는 침입자의 송곳이 서로를 이겨내려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한다.


엄청난 긴장감으로 인해 술법 밖의 사람들은 이 시간이 영속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느낌과 다르게 둘의 경쟁의 끝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콰직!


두꺼운 카를의 팔이 한층 더 부풀어 오르며 송곳에 강력한 압박을 가한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송곳은 파괴되어 산산이 부서진다.


‘크아악!’


침입자는 그에 저항하며 회전을 지속하려 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한다. 술법을 지속시킬 정신력, 자연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력에 노출되고, 고온에 노출된 육체 자체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먼저 한계를 드러냈다.


침입자가 힘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힘을 없어진 그는 결국, 고온의 공격에 속절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다. 육체를 침범한 열이 피부를 불태운다. 피부를 넘어선 열이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있다.


죽음을 넘어선 고통 속에서도 침입자는 카를에게 다가갔다. 눈조차 화염에 노출되어 이미 시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카를을 찾는다. 그를 아직 움직이게 하는 투쟁심이 아니다. 입을 계속해서 벙긋거리는 것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이에 카를은 침입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실패한다. 카를이 들어올 때는 술법을 완벽하게 펼치지 않았을 때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카를은 밖의 사람들에게 술법을 해제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술법을 당장에 풀 수는 없다. 만약 그랬다가는 안쪽의 열이 사방을 덮칠 것이다. 술법을 점점 약하게 만들면서 열을 밖으로 서서히 배출해야 한다.


‘하스트 이 자식이? 이거 내가 안에서 못 버텼으면 나까지 타 죽었을 술법이잖아?’


그런 의구심이 샘솟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카를은 자신의 창을 찾았다. 그리고 침입자의 뒤쪽, 멀지 않은 곳에 반쯤은 파괴되어 버린 그의 창이 있다.


급박한 상황에 카를은 그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자신의 다리를 붙잡는 침입자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고온에 녹은 오른손 대신 자신의 다리를 잡은 왼손을 보며, 카를은 이내 자리에 앉았다. 만약 자신이 창으로 천장에 구멍을 내서 열을 뺀다고 해도, 그전에 침입자가 명을 달리 할 것이다. 이에 침입자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침입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벙긋거리다, 이내 힘이 다한 듯 축 늘어진다.


이렇게 엘프 마을을 미증유의 공포에 휩싸이게 한 전설적인 오거의 생이 마감했다. 모든 힘을 쥐어짜고, 마침내 생명마저 소모한 침입자의 시체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 재로 화한다.


마을은 현재 환호하고 있다. 길고 길었던, 악몽과도 같던 전투가 마침내 끝났다.


단 한 사람, 카를만이 침입자의 마지막 말을 곱씹고 있었다.


‘호수로 가라...고?’


마지막 순간, 침입자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카를은 생각했다.


작가의말

으악, 3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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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침입자 (3) 18.10.11 346 0 21쪽
51 침입자 (2) 18.10.04 356 0 18쪽
50 침입자 (1) 18.09.20 358 0 20쪽
49 동료 18.09.13 376 1 22쪽
48 동료? (9) 18.09.06 382 1 14쪽
47 동료? (8) 18.08.30 385 1 13쪽
46 동료? (7) 18.08.23 395 0 14쪽
45 동료? (6) 18.08.16 408 0 14쪽
44 동료? (5) 18.08.09 426 0 14쪽
43 동료? (4) 18.08.02 435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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