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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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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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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83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8.11.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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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최강의 오거 (2)

DUMMY

“아빠! 엄마!”


사람들의 경악을 헤치고, 뒤쪽에서 누군가 촌장 내외를 부른다. 고개를 돌려 달려오는 사람을 확인한다. 엘르와 순찰대장이었다.


“엘르!”


엘르와 그녀의 부모는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며 포옹을 나눴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신경 써줄 수 없었지만, 침입자가 지금 나가 있던 순찰대원들까지 습격하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엘르는 부모님의 무사를 확인하고 나서야 주변의 참상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순찰대장의 분노는 극에 달해있다. 마을 곳곳에 흩어진 혈흔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었으니까. 어느새 활에 메긴 화살이 침입자에게 향한다.


“소용없네.”


무거운 음성에, 순찰대장이 움찔하더니 촌장을 바라본다. 촌장의 침울한 모습을 보고, 이를 악물며 활을 내려놓는다. 그도 오면서 보았다. 바람의 영물로 추정되는 적의 힘을. 그는 무력감에 울분을 토하면서 촌장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 놈은 뭡니까!? 어떻게 한 생명체가 저렇게까지 강할 수 있는 거죠!?”


침입자를 보기 전에는 촌장과 부인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둘을 이길 수 있을만한 존재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둘을 뛰어넘는 사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마을의 은인인 그 사람은 분명 둘보다 강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조차 저 정도로 강할 것 같지 않다.


“오거야··· 오거면서 영물의 영역에 오른,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은 터무니없는 괴물이야···”


“아빠···”


엘르는 그녀의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힘이 없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 누구보다 강한, 그 누구보다 여유가 넘치던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적의 강대함은 그 강함을, 여유를, 송두리째 뿌리 뽑아버렸다. 그나마 저항할 수 없는, 재앙에 가까운 침입자를 보며,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의 정신력과 긍지 덕분이다. 그 예로-


“도망가야 합니다!”


“맞습니다! 비록 조상님들의 의지를 배신하는 것이지만,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숲의 다른 곳으로! 아니, 숲이 아니라 더 멀리 도망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모두 죽습니다!”


이미 마을을 버리자고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비록 회오리가 정지해있다고는 하지만, 점점 커지고 있다. 마을의 절반이 이미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지경이다.


“여보··· 혹시 그걸 사용한다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 또한 바람이야. 아무리 대단한 물건이라지만, 사람도 아니고 도구에 불과한 이상 오히려 저놈의 먹이가 될지도 몰라.”


“그렇습니다! 지금 도망가야 합니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하다 놈이 그 물건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하지만 도망간다면 살 수 있습니다! 물건도 지킬 수 있-”


“도망가면 살 수 있다라···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하스트.”


어느새 다가온 하스트가 주변을 둘러보며 촌장에게 말을 건넸다.


“오면서 봤습니다. 엄청나게 강력한 놈이더군요. 그런데 감지 능력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 좋지 않나? 지금 우리가 몰래 도망간다면 저 놈은 우리를 찾지 못할 거야!”


“과연 그럴까요?”


“뭐?”


하스트는 도망가자는 마을 사람의 의견에 회의를 내비쳤다.


“저 놈은 이미 우리들을 적으로 판단한 것 같은데요. 아무리 도망쳐도 끝까지 따라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게다가 오거라면 더욱 그럴 테고요. 오거들에게 이 마을 사람들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리고 적은 우리보다 빠르고 강합니다. 도망가더라도 숲을 모조리 뒤집어 놓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부하들을 시킬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우리는 부하로 추정되는 오거들에게 습격을 받았으니까요. 그것도 우두머리급들로만 이루어진.”


“그럴 수가···”


“아, 하지만 한 가지 도망가는 방법이 있네요.”


“그··· 그게 무언가!?”


공포에 질린 마을 사람은 그에게 매달리듯 처절하게 물었다.


“누군가 미끼가 되어, 시선을 속이는 거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요. 소수의 희생은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죠. 그렇다면 어차피 약자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봤자 짐승들의 먹이가 될 것이 뻔하니, 그들을 미끼로-”


“하스트! 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그딴 쓰레기 같은 말을 하다니!”


하스트의 말을 자르고, 엘르가 분노하며 소리친다.


그에 하스트는 어깨를 으쓱인다.


“하지만 맞는 말이잖아. 어찌하시겠습니까? 촌장님?”


하스트의 말에 촌장이 움찔거린다.


“난··· 난...”


“아빠! 지금 갈등하시는 거예요!?”


“엘르, 넌 가만히 있거라! 촌장님, 미끼가 될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라도 살아야 합니다!”


공포에 물들었던 눈빛이 삶을 갈구하며 번들거린다.


“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바람에게 인정받은, 숲의 지배자라고 긍지 높던 사람들은 대체 어디 갔어요!? 강적이 두렵다고 미끼로 사람을 사용하고 도망가겠다니!? 그러고도-”


그때 회오리의 위쪽으로 무언가가 내뱉어진다.


“우와아아악!”


회오리로 침입했던 카를이었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자유낙하였지만.


“어이쿠, 사람이 날아오네. 좀 도와주시겠어요? 저 녀석 꽤나 무거워서요.”


“아··· 알았네.”


하스트를 위시한 몇 사람이 카를을 돕는다.


“윽!”


그리고 놀란다. 꽤나 무겁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카를은 무사히 땅에 안착했다.


“휴··· 아찔하네.”


촌장이 다가와 카를에게 묻는다.


“회오리로 들어간 게 자네였나? 어떻게 멀쩡하지?”


“네? 멀쩡하면 안 됩니까?”


너무도 태연히 되묻는 말에 오히려 사람들이 말을 잊었다.


“어때?”


하스트의 질문에 카를이 의문을 표한다.


“뭐가 어떠냐는 거야?”


“힘을 빼앗기는 느낌 같은 거 없었어?”


“응? 딱히 그런 느낌은 없었는데? 애초에 그게 무슨 느낌인 건데?”


“확실히 자연력의 성질이 달라서 괜찮은가 보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튼 난 간다.”


카를이 다시 회오리로 달려간다. 그가 회오리에 부딪히자 다시 회오리가 뒤틀린다.


“놀랍군···”


촌장은 카를을 다시 봤다. 절대 평범한 자는 아니라 생각했지만, 설마 저 광풍을 이겨낼 수 있을 줄이야.


‘하지만 못 이기겠지.’


어떤 생물도 침입자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어떤 속성도 다루지 못하는 카를에게는 자신을 날려버리는 바람을 무효화시킬 방도가 없다. 그 증거로-


“우와아아악!”


카를이 다시 날아오고 있다. 소용없다는 것을 인지할 만도 한데, 그는 다시 사람들에게 받아지기가 무섭게 다시 돌진했다.


“흠···”


하스트는 카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계속 귀찮은 일은 절대 안 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지금은 너무 열심히 전투에 임하고 있다. 혼자서 전투하고 있는 것이 이상할 법도 할 텐데.


‘전투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


카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전투 경험은 다른 사람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몸속 깊이 새겨진 기억이, 적과 싸우는 것을 종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외적에 대한 상처 때문인가...?’


그는 처음 보는, 어찌 보면 재앙과도 같은 이변으로 인해 마을을 잃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의 마을과 겹쳐 보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알아서 싸워주니 다행이네.’


하스트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누군가 카를의 모습을 보고 말한다.


“저 외지인이 시간을 벌 동안 도망가는 게 어떨까요?”


“뭐라고요?”


엘르는 그 말을 뱉은 사람을 노려봤다.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험악한 시선에 움찔했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시간을 벌 수 있는 것도 저 사람뿐인 것 같은데. 차라리 그를 희생해서라도 우리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마을의 약자들도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그는 어차피 외지인-”


“그 입 닥치세요! 화살로 반대편에 구멍을 내버리기 전에!”


엘르는 그에게 삿대질하며 노발대발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대신 씩씩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꽤 되어 보인다.


“이런 똥대가리들 같으니! 됐어요! 꺼지세요! 잘 살아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사세요! 난 그러기 싫으니까!”


엘르가 뒤돌아 걸음을 옮기려 한다.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카를이 있는 회오리다.


“엘르, 어디 가는 거냐! 가지 마라! 네 상대가 아니야!”


자신을 부르는, 평소에는 듣지 못한 격정적인 촌장의 목소리에 엘르가 움직임을 멈춘다.


“아빠. 아빠는 언제나 절 혹독하게 가르치셨죠. 그래서 전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졌어요.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순찰대에 들어갔죠. 하지만 저도 알아요. 정말 위험한 곳에는 절 보내지 않으셨다는 것을요.”


엘르가 뒤를 돌아 촌장과 눈을 맞춘다. 촌장은 그 눈에 담겨있는 감정을 읽고, 입을 다물었다.


“전 영웅인 두 분에게서 나고 자랐어요. 두 분의 영웅담은 저에게 큰 자랑이었어요. 제가 태어나면서 받았던, 누구나 영광스럽다고 말하던 그딴 호칭보다! 두 분이 저의 부모님이라는 것이! 두 분이 누구보다 위대한 영웅이라는 것이 더없이 영광스러웠어요! 그리고 전 그 위대한 영웅의 딸입니다! 제 안에 흐르는 피는, 두 분의 가르침은! 절대! 지금 도망가지 말라고 저에게 외쳐요! 전 절대 두 분의 명예와 긍지에 누를 끼치지 않을 거예요! 설사 두 분이 그런다 하더라도!”


엘르는 다시 회오리를 향해 달려갔다. 그녀를 잡으려 뻗어진 촌장의 손은 그저 허공만을 휘저었다. 촌장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딸을 멍한 눈빛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촌장을 뒤로하며 다른 한 사람이 앞으로 향한다.


“하하하. 그런 관계로 저도 가겠습니다. 부추긴 건 미안합니다. 하지만 엘르의 말과는 다르게 도망가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살아야 뭐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스트는 사람들에게 사과하며, 엘르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자네는 왜 가는 거지?”


촌장이 힘이 없는 목소리로 하스트에게 물었다. 도망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는 그가, 왜 저 사지를 향해 가는 것인지.


“저기에 제 동료가 있어서요.”


하스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아주 조금의 공포도 내비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둘을, 다른 사람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구나.”


촌장은 마음이 꺾일 뻔하던 것이 지금 한없이 부끄러웠다. 언제나 어리다고 생각했던 그의 딸이 지금은 오히려 그를 지탱해주었다.


“후훗. 거 봐요. 우리 아이도 이제 다 컸다니까요.”


“하··· 하하하. 그런 것 같소.”


“아~ 누가 우리 예쁜 엘르를 데려가려나~”


“그런 말은 마시오···”


촌장은 어깨를 펴고 모두를 향해 외쳤다.


“떠날 사람은 떠나라!”


그의 말에 웅성거림이 심해진다.


“미끼가 되시겠다는 겁니까?”


누군가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아니다! 난 이 마을의 촌장! 마을을 지킬 의무가 있는 자! 그리고 그 의무는 다가오는 위험에게서 웅크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위협을 섬멸하는 것이다!”


촌장은 회오리를 바라보며, 소리 높여 외쳤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더없이 강력한 상대가 있다! 저자야말로 내 의무를 수행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자! 마을을 지키고 싶은 이들은, 나의 의무에 동참할 이들은 다시 전투태세를 갖춰라!”


쉬는 동안 회복한 힘으로 바람을 두르며 촌장이 앞으로 나아간다.


“놈은 결코 이 마을에서 성히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주저앉았던 마음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대부분의 전투원들보다 어린 세명의 남녀가 그들의 마음을 일으켜주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을 기회로 여기고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아직도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준비된 전투원들과 함께 촌장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딸이 있는 곳으로.




큰소리치고 앞으로 나서긴 했지만, 하스트와 엘르도 침입자를 어찌할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에 회오리에 다가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오셨습니까?”


하스트가 다가온 촌장을 환영한다.


“그래. 못난 모습 보여줘서 미안하네.”


“흥. 어차피 올 거면서 꿈지럭거리시기는.”


톡톡 쏘는 말투와 달리 엘르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하스트, 방법은 있나?”


촌장의 목소리에서 아까까지 없던 힘이 느껴진다.


“글쎄요···”


“난 자네가 승산 없는 싸움에 임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하겠네.”


“하하하.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저 놈에게 물어보죠.”


“우와아아악!”


날아오는 카를을 다시 받는다. 땅에 발을 딛자마자 다시 달려들려 하는 카를을 하스트가 막는다.


“뭐야? 왜 막아?”


“가기 전에 하나 확인하자.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


그 질문에 카를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혼자서는 도저히 승리할 자신이 없다. 아니, 애초에 전투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회오리 속에서 한 일은, 자신을 날려 보낸 적에 대한 욕지거리와 다시 바람에 날려 보내진 것밖에 없다.


“망했네요. 지금이라도 도망갈까요?”


하스트가 장난스럽게 도망가는 몸짓을 취한다.


“야! 하스트! 계속 분위기 흐트러뜨릴래?!”


엘르가 하스트의 목을 쥐고 흔들며 욕하는 사이, 드디어 회오리가 다시 움직인다.


“이런, 망할. 저놈이 위로 올라가네.”


카를의 말대로 회오리는 점점 위로 떠오르고 있다.


“야이, 망할 놈아! 내려와서 정정당당하게 붙자!”


웃기는 이야기였다. 싸움에 정정당당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제정신이 아닌 침입자가 그 말에 대답 할리도 없다. 물론 카를도 애초에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읏차.”


카를이 주변의 잔해 중 기다란 기둥을 집어 들어 어떻게든 회오리를 쳐내려 한다. 파공음을 내며 호쾌하게 휘둘러지는 기둥에 얻어맞은 회오리가 잠시 흐트러진다. 물론 기둥은 박살이 났다.


“내려와라, 이놈아!”


주변에 널린 것이 잔해다. 카를은 주변의 잔해들 중 긴 물건들을 들어 끊임없이 회오리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언뜻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누구도 웃음을 터트리지 않는다. 사람 몸통보다 굵은 기둥을 들고 휘둘러대는 모습에 오히려 기가 질린다. 덩치도 비슷한 것이, 만약 먼지 속이나 어둠 속에서 목격했더라면 침입자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하스트, 정말 방법이 없겠나?”


카를이 침입자를 방해하는 동안 촌장은 하스트에게 타개책을 물어봤다.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거지?”


“적을 보아하니 술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네요. 오직 의지로만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서 그것이 무섭다는 거 아니겠나. 술법의 준비시간도 없이 자유자재로 속성을 부리다니. 그래서야 마치···”


촌장이 말을 흐린다.


“마치?”


하스트가 끝까지 말하라 종용한다.


“마치··· 정령 같지 않나.”


“훗. 정령이라. 의지만으로 속성을 움직이면 그게 정령입니까?”


그 말과 함께 하스트의 주변으로 바람이 움직인다. 술법의 준비로 인한 것도 아니고, 집중된 힘의 반향으로 인한 것도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바람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건?”


“의지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저도 가능합니다. 촌장님도 연습만 한다면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 거지?”


“이것이 우리에게 맞는 힘의 사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육체를 가지고 있고, 육체 안에 자연력을 쌓아놓죠.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 힘을 펼치든 자연력은 육체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안에서부터 바람을 일으키지 않아요. 자연력을 밖으로 내놓은 다음에 형태를 잡기 마련이죠. 그것이 술법이고요. 왜 그런지는 아시죠?”


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인간이, 영물이 자연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자연에 자연력들이 있다고 해도, 자연력 그 자체가 생명체인 것도, 자연력 자체가 자연인 것도 아니다. 자연과 자연력은 엄밀히 다르다. 바람의 힘을 사용한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 안에 있는 자연력은 결코 바람이 아니다. 바람과 비슷한 바람의 자연력이지. 인간에게 자연력은 자연의 힘을 사용하기 위한 매개물에 가깝다.


자연력을 이용, 가공하여 생물에게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연력 그 자체가 언제나 생명체에게 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그 예로 술법을 육체 밖이 아닌, 안에서 완성해서 사용한다는 짓거리를 하다가는 활성화된 자연력에 오히려 사용자의 육체가 타격을 입게 된다. 만약 그러다 육체가 자연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큰 충격을 받게 되면, 높은 확률로 폭주를 일으킨다. 사람이 미치던지, 자연력이 미치던지.


“정령들은 그 자체가 정신이나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정신이라는 육체, 자연력이라는 육체를 가진 존재들이라고요. 정령들은 인간처럼 육체의 벽을 넘는 한 가지 공정이 더 필요하지 않아요. 그저 자신이 사용하는 속성 그대로, 자연력 그대로 자신 안에 포용할 수 있죠. 그래서 의지만으로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고요. 안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밖으로 내보내기만 해도 되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아닙니다. 게다가 가진 자연력의 양도 정령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 그렇기에 술법으로 주변의 자연과 자연력을 끌어들여 양을 늘리는 거죠.”


“그렇다면 저놈의 방식은?”


“네. 정령이 아닌, 우리 생물체에게는 굉장히 무리한 방법입니다. 술법과 함께 자연력, 그리고 바람들을 통째로 흡수했기에 그나마 저렇게 사용하고는 있지만, 저 방법에는 두 가지의 폐해가 존재합니다. 자연력에 의한 육체의 과부하. 그리고 비효율적인 힘의 소모. 특히 힘의 소모량은 술법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무진장의 자연력이 있지 않는 한 이런 식으로 힘을 발휘하지 않을 겁니다. 영물의 영역에 오른 녀석이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놈은 지금 제정신이 아닐 걸세.”


촌장은 침입자의 현재 상태에 대해 하스트에게 설명했다.


“뇌수가 흘러나올 정도로 큰 타격을··· 그 때문이겠군요. 영물인데도 불구하고 저런 미친 방식으로 힘을 쏟아내는 게.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군요.”


“확실한 방법이 있는 거야?”


엘르가 하스트의 말에 집중한다. 대화의 진행과 함께 점점 길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까 말했잖아. 과부하, 그리고 힘의 소모. 이대로 저 녀석이 계속 힘을 사용하게만 만들어도 놈은 자멸해. 지금이면 놈을 잡을 수 있어. 아니,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놈을 잡기에 최적의 때야. 만약 놈이 이 상태로 정신을 차리고, 힘을 갈무리한다면 그거야말로 재앙이 될 거야.”


“하지만 우리의 술법은 모두 놈에게 흡수되고 있어. 아무리 계속 사용하게 만든다 해도 그전에 술법을 잡아먹고 거대해진 회오리에 우리가 당할 거야.”


촌장의 걱정도 당연하다. 적이 자멸할 것이라 하지만, 도대체 자멸할 때가 언제인지를 모른다면, 게다가 힘이 점점 커진다면 이쪽의 희생도 마찬가지로 점점 더 커질 테니까.


“그게 문제긴 한데, 저희한테는 다행히도 적의 힘을 소모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 더럽게 튼튼한 카를이 있으-”


“으랴!”


하스트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몽둥이질을 피해 점점 상공으로 올라가는 회오리에 짜증이 난 카를이 회오리로 도약했기 때문이다.


콰직!


도약이라기보다 발사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는 카를의 돌진에 안 그래도 황폐화된 대지가 부서진다. 카를은 회오리를 뚫어버리겠다는 듯한 기합과 함께 회오리와 충돌했다. 카를의 몸이 회오리 속으로 사라진다.


“이 망할 놈. 땅에 메다꽂아 주-”


결과부터 말하자면 실패였다. 회오리를 뚫고 다시 침입자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머리만이었다. 발이 땅에 붙어있었을 때도 겨우 뚫고 들어갔던 회오리였는데, 공중에 뜬 상태로는 애초에 무리였다.


“어? 어어?”


회오리를 이루는 광풍에 점점 몸이 밀리더니, 순식간에 침입자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끄아아아~”


회오리에 튕겨져 마을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카를을 보며, 하스트는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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