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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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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8.09.2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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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침입자 (1)

DUMMY

“오른쪽에 세 마리!”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숲 속이었지만, 하스트는 정확하게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알았어!”


카를이 허리춤에서 무기를 꺼내 들더니 그대로 후려쳐버렸다. 다가오던 그림자는 엄청난 속도로 친구와 함께 멀리 내동댕이 쳐졌다. 어찌나 강하게 쳤는지 두 마리 모두 몸을 부르르 떨더니 숨을 거두었다.


“마무리!”


카를의 무기가 마지막 남은 그림자를 찔렀다. 카를을 물기 위해 벌어진 입 사이로 무기가 침투한다. 결과는 관통. 즉사하지는 않았는지 꼬챙이가 된 상태로 잠시 버둥거리던 그림자는 곧 힘을 잃고 축 늘어져버렸다.


“이대로 구워 먹어도 되겠는걸?”


하지만 아직 식사 때가 아니니 무기와 함께 옆에다 버린다. 그의 허리에는 무기들이 아직 한가득 있었다.


“수고했어. 역시 굉장한걸?”


하스트는 나무 위에서 내려와, 손뼉을 치며 카를을 칭찬했다.


“흥.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칭찬이라니.”


“넌 참 뾰족하구나. 좀 좋게 받아들이면 안 되냐? 넌 지금까지 계속 구경만 했으면서.”


카를은 엘르에게 핀잔을 주었다.


“흥. 정작 하스트도 그다지 굉장하다고 생각 안 할걸? 난 그런 가식적인 건 질색이야.”


그것을 들은 하스트는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말했다.


“흑흑. 어렸을 때 엘르는 귀여웠는데.”


“...”


말도 없이 조용히 활이 들어 올려진다. 하지만 하스트는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이미 나무 뒤로 숨은 상태였다.


“쳇.”


잠시 울컥했지만, 괜히 힘 낭비하기 싫었던 엘르는 다시 화살을 거두었다.


“그나저나 둘은 어렸을 때부터 어울렸어? 저 녀석 말로는 계속 세계를 떠돈다고 했는데, 나름 친근해 보이는걸?”


카를의 질문에 나무 뒤에서 다시 나온 하스트가 대답한다.


“어렸을 때부터라고 해도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야. 몇 년밖에 안되었으니까. 쟤가 10대 후반 때?”


“그래. 맞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는 몇 개월 정도 우리 마을에서 머문 정도야. 그나마 그것도 중간중간 어딘가 갔다 왔으니, 실제로 우리 마을에서 생활한 것은 1개월 정도밖에 안되었을 거야.”


“흠··· 그렇구나. 근데 궁금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뭔데?”


“너 나보다 두 살 어리다고 했지?”


“그래.”


“그런데 반말이 굉장히 자연스러운데?”


“그래서? 싫어?”


“아니, 그렇게 말하니 딱히 싫다는 건 아닌 것도 같고.”


“뭐라는 거야? 딱 부러지게 말해. 그리고 네가 나보고 남 말할 처지야? 너도 하스트에게 존댓말 안 하잖아.”


“그건 그러네.”


카를은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 둘 모두 나를 좀 더 존중하고 치켜세워줄 필요가 있어.”


하스트는 둘 모두에게 자신을 사랑하라 말했지만, 엘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카를에게 말했다.


“네가 하스트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는 이상, 나에게 존댓말 들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언뜻 건방져 보일 수 있는 말이었지만, 카를은 신경도 쓰지 않고 산뜻하게 말했다.


“그래. 나도 하스트에게 존댓말 쓸 생각이 없으니 우리 모두 그냥 반말하기로 하자.”


“야, 너네 너무한 거 아니냐? 내 의사는? 왜 가장 손해 보는 내 의견은 안 물어봐?”


“좋았어. 그럼 다시 순찰을 시작해볼까?”


“그래.”


카를과 엘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망할 연놈들.”


“하스트, 뭐라고?”


작게 속삭였건만 그걸 들었는지 엘르가 뒤를 돌아 째려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스트는 뒤에서 구시렁대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귀가 좋은 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바람으로 소리를 막고서.


“우씨. 열 받네. 내 저것들을 콱!”


뒤에서 몰래 주먹을 들어 올려보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근데 싸우면 내가 질 것 같고··· 그래. 난 질 것 같아서 마음을 다 잡는 게 아니야. 내 나잇값을 하려고 그러는 거지. 그래, 나이 많은 내가 이해해야지. 내 나이가 몇인데 저런 걸로 연연해서야 되겠어? 하하하하.”


누군가 들었으면 불쌍하다는 눈빛을 그에게 보낼 것이 분명한 내용이었지만, 그에게는 다행히도 아무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하스트가 뒤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동안, 앞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누가 범인인지 짐작은 가?”


“아니. 그건 정확히는 몰라. 아빠가 널 심문할 때 했던 말은 어느 정도 진짜야. 아주 강하다던지, 우리를 속일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다던지, 아니면 둘 다인지.”


“흠. 그렇군. 근데 너네 마을은 언제나 이렇게 순찰을 해? 솔직히 그 마을이면 안전 그 자체일 것 같은데.”


카를은 마을을 감싸고 있던 바람 장벽을 떠올렸다. 그 어떤 생물도 그것을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네가 말했듯 생물들은 전부 다르고 숲은 넓으니 어떤 이상한 괴물이 생겨났을지도 몰라. 혹시라도 우리처럼 바람의 힘을 사용하는 놈이 태어나서 우리 마을에 들어올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이렇게 순찰을 하는 거지. 원래는 마을에서 아주 강하신 분들 중 몇 분만이 하시던 일이지만, 그분들이 모두 당하시고 나서 이렇게 대대적인 순찰을 시작한 거야. 그리고 너희들이 그에 맞춰 숲에 들어온 거고. 만약 너희들이 1달, 아니 1주일만 늦게 왔어도 그런 일은 안 당했을지도 모르지. 그 정도 시간이면 범인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테니.”


“운이 없었군. 하지만 괜찮아. 덕분에 바람의 힘을 체험했으니까.”


카를은 순찰을 나오기 직전, 촌장에게 부탁하여 바람의 힘을 체험해보았다. 그리고 바람의 힘은 그의 생각과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하스트가 그랬지. 바람이든 물이든 땅이든 결국 실체를 가지고 공격을 할 때는, 결국은 물리력과 다를 바 없다고 말이야.’


그래서 카를은 그나마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막연하게 신비로운 미지의 것이라고 생각되던 것들이 모두 동물들의 공격수단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물론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는 것과,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면서 변화가 다채롭다는 점은 굉장히 난감한 사항이었다.


특히 다른 것보다 바람으로 공중에 고정시키는 것이 가장 난감했다. 자신처럼 무거운 인간은 처음 본다는 촌장의 말도 있었지만, 결국은 제압당한 것은 마찬가지.


만약 상대가 다수가 된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스트 왈, 확실히 자신이 아는 존재 중에서 촌장은 손가락 안에 꼽히는 풍술사지만, 자신 또한 세상의 모든 강자를 아는 것이 아니니, 여행을 하다 보면 어딘가에서 촌장 이상의 존재가 나타날지 모른다고 한다.


촌장만 해도 상대하기 힘든데, 만약 그런 존재가 나타난다면 대처방법을 모르고 상대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것이다.


그 말을 떠올리며 카를은 뒤를 돌아 하스트를 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중얼중얼거리고 있다.


‘이놈과 같이 다닌다면 그런 걱정은 덜 수 있다고 했지.’


촌장이 말하길 하스트는 모든 자연력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모든 생물들은 보통 한 가지 속성의 자연력을 가진다. 아니, 정확히는 한 가지 속성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여러 속성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가능하더라도 효율이 엄청 나빠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기도 힘들다고 했지.’


자연력에 변화를 주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며, 강제로 변화를 준다 해도 질적인 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은 자연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자연에서 오랫동안 변화해온 자연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다듬는다고 한다. 이미 속성이 고정되어 있는 것을 다듬는 것은 그렇게 힘들지 않단다.


그리고 엘프 마을의 주변은 바람의 속성을 가진 자연력이 풍부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엘프 마을의 주민들은 바람 속성의 힘을 쉽게 모을 수 있는 것이고. 즉, 주변 환경에 따라 가질 수 있는 힘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놈은 다르다고 했지.’


세상 이곳저곳을 떠도는 하스트는 그런 것에 구애되지 않았는지 홀로 무려 네 가지 속성을 다룰 수 있다고 한다. 보통은 몸 안에 여러 속성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내부에서부터 파괴된다고 하는데, 하스트는 그것을 해냈다.


‘두 가지도 힘든데 네 가지가 가능한 것은 아마 세상 전부를 뒤져도 얼마 안 될 거라고 했지. 어쩌면 유일할 수도 있다고 말이야.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천재라고.’


눈 앞의 얼굴과 천재라는 단어에서 도저히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자신 또한 그런 힘을 가질 수 없는지. 딱 봐도 쓸 수 있으면 편해 보이는 그런 힘이니까. 바람을 이용해 날아다닌다던지, 아니면 고기를 구울 때 불을 만들어 쓴다던지.


그러자 그는 카를에게 허락을 맡고 몸을 훑어보았다. 그때 다시 보았다. 얼마 전, 샘에서 착각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빛나는 눈을.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안돼. 넌 이미 몸에 자연력이 있어. 문제는, 다른 자연력이었다면 활용방안을 알려주었을 텐데, 네 몸에 있는 자연력이 무슨 속성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네 가지 속성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그렇다고 번개도 아니고. 예전에 자주 보였다는 움직이는 나무들이 가지고 있었다던 자연력과 그나마 비슷하네.


그렇다면 다른 자연력을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스트도 했으니 혹시 자신도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하스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자연력은 몸 구석구석에 빠짐없이 퍼져있어서 들어갈 공간이 전혀 없어. 괜히 다른 속성을 집어넣었다가 반발이라도 일어나면 최소 반불구니까 시도할 생각도 하지 마라.


그 말은 카를에게 대실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하스트는 그 자연력이 카를의 괴력과 방어력의 원천일 것이라 말해주었다. 즉, 만약 가능하더라도 다른 자연력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 같은 힘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카를은 깨끗이 포기했다.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약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데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회상 도중, 하스트의 말소리가 갑자기 들리자 카를은 움찔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아무 소리도 안 나다가 갑자기 들리니 어떤 방법을 취했는지 알고 있음에도 놀라버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스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엘르를 바라본다. 그녀의 하얀 머리가 바람에 나풀거린다.


‘참··· 입만 다물고 있으면 예쁜데.’


“뭐야? 나한테 할 말 있어? 뭘 빤히 쳐다봐? 콱 눈을 찔러버릴까 보다.”


‘역시 저 입이 문제군···’


“아니. 궁금한 게 있어서.”


“참, 궁금한 것도 많다. 어제나 아침에 아빠한테 물어볼 것이지, 왜 이제 와서 날 귀찮게 하나 몰라? 그래서 뭔데?”


“왜 너희 마을이 엘프 마을이야? 너 엘프 아니지? 하스트 말로는 엘프의 후예들이라고 하던데. 내가 보기에는 전혀 엘프와 비슷하지 않은데.”


“네가 아는 엘프가 뭔데?”


“응? 그야 귀가 뾰족하고··· 키 크고··· 예쁘고?”


“흥.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멍청하게 옛날이야기 그대로 믿는 놈이 세상에 어딨어?”


“그럼 네가 엘프는 맞아?”


“아니, 그건 아니야.”


“...”


카를은 왜 자신이 멍청하다고 욕을 먹었는지 차분히 생각해봤다.


“하스트가 제대로 말했네. 우린 엘프의 후예야. 하지만 엘프 그 자체인건 아니지. 애초에 우리 선조들부터가 엘프와 남부 사람들의 혼혈이라고 들었거든. 그런데 엘프들이 사라지고 나니 그 피가 점점 옅어졌다나 뭐라나.”


엘르의 말이 끝나자 하스트가 부연설명을 해준다.


“그래.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엘프들의 인종도 한 가지가 아니라고 들었어. 네가 말한 대로 그렇게 생긴 엘프도 있었다고 하고, 말라비틀어졌다는 느낌이 드는 인종도 있었다고 하고, 어두운 피부색에 시체같이 생긴 엘프도 있었다고 하던데.”


“그 정도면 거의 다른 종족 아니야? 너무 느낌이 다른데?”


“하지만 남부 사람들도 피부색이 다 다르잖아. 체질도 많이 다르고.”


“흠··· 그건 그렇긴 하지. 그런데 하스트.”


“응? 왜?”


“넌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거야? 태어나기도 전의 옛날이잖아?”


“아~ 나 같은 경우에는 스승님에게 들었지.”


“아, 그래. 어제부터 궁금했는데. 네 스승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마을 사람들도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천재인 이 몸의 스승이니 당연히 엄청난 사람이지. 우리 스승님은-”


궁금하다는 감정을 얼굴 가득 채운 카를에게 설명해주려는 찰나, 하스트는 말을 멈췄다.


“이런, 아무래도 다음에 이야기해야겠다.”


“뭐? 아, 이런···”


하스트의 말을 듣고 카를도 알아챘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이동해오는 그림자들이 보인다.


“쳇. 저 놈 때문에 나무 위로 올라가지를 못하니 아주 온 동물들에게 표적이 되는구나. 전투가 끊이질 않네.”


엘르는 카를이 들으라는 듯 혼잣말 인척 크게 외쳤다.


“...”


엘르의 말이 틀린 건 없다. 이 숲에서는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도 보통은 나뭇가지를 이용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한다. 지상에 있으면 머리 위에서 습격하는 동물들 때문에 너무 위험하니까. 하지만 카를은 불가능했다.


마을에서 출발할 때도 시도해보긴 했었다. 어찌어찌 굵은 나뭇가지에 안착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카를이 도약하는 순간 나뭇가지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기 일쑤였다.


“쳇. 나도 해보려고 했다고.”


“하지만 실패했지. 무슨 사람이 그 정도의 힘 조절도 못해? 덩치답게 세심함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네.”


“... 나도 나름 힘 조절이라면 자신 있는데···”


“말다툼은 그쯤 해. 저놈들에게 적의가 있는 게 분명하니.”


그 말을 들은 엘르는 고개를 돌려 활시위를 당겼다.


“오. 드디어 그 잘나신 궁술을 보는 건가?”


카를은 옆에서 비아냥거렸다. 그렇지만 내심 엘르의 솜씨가 궁금하기도 했다. 촌장은 바람의 힘만을 사용했지, 활을 사용하는 것은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래, 멍청아.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멍청아. 해방. 관통. 멍청이.”


“...”


해방이라 외치자, 엘르의 화살에서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리고 이내 모이더니 화살촉을 기준으로 뾰족하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멍청이라는 말에는 어떤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카를의 기분만 달라졌을 뿐.


“... 그런데 저 해방이라는 말, 꼭 외쳐야 힘이 들어가는 거야? 저번에 촌장님도 그러던데.”


카를이 질문했지만, 엘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오직 그림자들만 쫓고 있다.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리고 뻘쭘하게 서있는 카를에게 하스트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아니. 말은 필요 없어. 저건 동료들에게 알려주는 거야. 지금 내가 이러이러한 행위를 하고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거지. 어차피 평범한 동물들은 알아듣지 못하니까, 말을 듣고 대응하진 않을 테고.”


“헤에···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카를은, 자신도 전투에 참여하려는 듯 허리춤에 있던 무기 중 하나를 집어 든다. 언뜻 보면 창처럼 생겼지만, 일반적인 창과는 생긴 게 다르다. 정도는 다르지만 곡선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나마 등에 있는 한 개만이 평범한 창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스트는 그 무기를 보고 질린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넌 그런 걸 용케 사용한다?”


“그럼 어쩌겠어. 엘프 마을에는 광석이 없어서 제대로 된 창이 없다는데, 그나마 있는 것도 전부 나무 창이고. 그 사람들처럼 바람을 이용하면 모를까, 나한테는 턱없이 연약한 무기라고. 게다가 이건 어차피 버리는 거라고 하니 딱 좋잖아.”


“... 그렇다고 해도 뼈를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건 좀··· 아무리 깨끗하게 손질했다고는 해도 말이야.”


카를의 허리춤에 있는 창들은 모두 동물들의 뼈였다. 거의 대부분이 갈비뼈로 추정되는 그것들은 엘프 마을에서 모아둔 것이었다. 뼈는 그 튼튼함 때문에 생각보다 쓸 곳이 많으니까. 하지만 너무 많아서 모아둔 것을 카를이 가지고 나왔다. 엘프 마을에서 받은 나무 창은 다른 곳의 나무 창과는 비교도 안되게 튼튼했지만, 그거 하나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무기 부숴 먹은 게 너무 많으니.’


둘이 대화하는 동안 사정거리에 들어왔는지, 그림자를 쫓던 엘르의 화살이 마침내 몸을 날렸다. 그 화살은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큰 소리를 내며 뻗어나갔다.


소리를 들은 그림자는 화살을 보았지만, 만약 이대로라면 나무가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와.”


카를이 감탄사를 내뱉는다. 나무를 믿고 다가오던 그 그림자는 나무와 같은 모양의 구멍을 간직하고 땅으로 추락했다.


“이번엔 원숭이인가.”


땅으로 내려온 그림자를 보고 하스트가 말했다.


“흥.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어. 내 화살에 걸리면.”


엘르가 다시 화살을 메긴다.


“죽는 거야. 해방. 돌출.”


이번에는 원숭이들도 화살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나무 뒤로 숨지 않고 회피기동을 하고 있다.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는데 맞출 수 있겠어?”


카를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원숭이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지상과는 다르게 움직임이 입체적이고, 대놓고 맞추기에는 너무 빠르다.


“흥. 너 같은 놈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시위를 당기고.


“난 아니야.”


바로 쏘아버린다.


‘이렇게 빨리?’


거의 시위를 당기자마자 쏘아버렸다. 옆에서 보면 조준조차 안 하고 대충 아무나 맞아라 하고 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캬악!”


하지만 결과는 카를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나무를 박차고 허공에 떠 있는 그 순간을 노리고 정확히 가슴에 꽂혔다.


“이럴 수가.”


분명히 쏠 때만 해도 원숭이는 나무에 있었다. 적어도 카를이 보기에는 어느 쪽으로 도약할지 확실하지 않았다. 앞 쪽이 아니라 위로, 아니면 아래로, 그것도 아니면 옆쪽으로 도약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방향의 나무가 원숭이에게는 충분한 이동거리였으니까. 하지만 마치 허공을 향해 날아가던 화살에 원숭이가 몸을 들이미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게 명중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퓩.


아주 미약한 소리만이 들렸다. 그와 함께 화살 근처에 있던 원숭이 중 한 마리가 추가로 절명한다.


“뭐··· 뭐야? 저거 왜 죽은 거야?”


“왜긴. 화살에 있던 자연력을 원숭이 쪽으로 발사한 거지. 그것도 몰라?”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화살이 근처에 없는데도, 원거리에서 어느 쪽으로 발사할지 정할 수 있는 거야? 아니면 근처에 있는 걸 알아서 따라가서 명중하는 건가?”


“그렇게 편리한 게 어딨어, 멍청아. 당연히 미리 정해놓는 거지.”


“뭐? 어느 방향으로 언제 발사할지까지?”


“그럼? 그렇게 안 해놓으면 어떻게 맞춰?”


카를은 엘르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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