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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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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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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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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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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0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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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9)

DUMMY

‘우··· 우선은 숨어야 해!’


커다란 덩치 때문에 금방 들키겠지만, 그래도 길 한복판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 혹시 모른다. 기둥이라고 생각해줄지.


가까운 집 옆에 붙어 상황을 지켜본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즉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소리가 작았나? 아니면 모두 술에 취해서?’


어찌 되었든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엄마. 밖에서 이상한 소리 들렸어.”


잠에서 막 깬듯한 아이의 목소리가 카를이 붙어있던 집 안에서 들려온다.


“으··· 응? 잘 못 들은 거 아닐까?”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그것을 부정하지만.


“아니야. 확실히 들었어. 한번 내가 가서 확인해보고 올게!”


‘으아아!’


아이는 사명감 넘치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카를은 이에 식겁했다. 아이가 나오려는 문 바로 옆에 자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야. 우리 아가. 밖에서 아저씨들이 노느라 그랬던 걸 거야. 신경 쓰지 말고 자자. 응?”


‘그래. 아이들은 아직 잘 시간이라고.’


“그래?”


아이는 그 말에 납득한 것 같다.


‘휴···’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럼 나도 놀래!”


‘끄아아아!’


이번에는 집에서 뛰어나오는 소리까지 들린다.


끼이이이.


바로 옆에 있는 문이 살짝 열리고 있다.


‘안 돼!’


“안 돼!”


카를의 마음을 알았는지 집 안에서 아이를 호통치는 소리가 들린다. 다행히도 아이는 그 소리에 놀라서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다.


“아저씨들은 어른이라 괜찮지만, 아이들은 아직 잘 시간이야. 다시 침대로 가서 코~ 자자.”


“힝··· 나도 놀고 싶은데···”


아이는 아쉬운 건지 어른은 놀아도 되고 자신은 안된다는 부조리에 납득을 못 한 것인지 풀이 죽은 목소리다.


‘애엄마. 더 설득해주세요.’


어느새 카를은 응원을 보내고 있다.


“말 안 듣는 아이는 어떻게 된다고 했지?”


아이가 쉽게 마음을 꺾지 않자, 결국은 공포로 회유하기로 한 모양이다.


“괴물이... 와서 잡아먹는다고··· 했어요···”


“그래. 괴물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다시 잠을 자야겠지?”


“네···”


아이는 침울한 목소리로 다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밖으로 나올 기미가 없음에도 카를은 자리에서 몸이 굳은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아이가 잠든 소리를 확인한 후에야 카를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휴우···’


어느새 이마에 자리 잡은 식은땀을 훔친 후 집에서 멀어진다.


‘겨우 살았네.’


아이의 어머니가 막아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끝이었다.


‘우선은 한 고비 넘겼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고비였지만.


‘광장이 이 쪽이었지?’


안전상으로 봤을 때는 광장이 아니라 외곽으로 빙 둘러서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아무리 술에 취해서 뻗어있다고 해도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적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외곽에서는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을 수도 있어.’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마을의 외곽에 경비병이나 그 비슷한 사람들이, 외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경계를 서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적지만 정신 멀쩡한 사람들에게 들킬 바에는 광장으로 가는 게 낫겠지.’


사실 다른 마을 같았으면 그냥 외곽으로 빠져서 외벽을 부수던지, 아니면 그냥 뛰어넘어서 도망간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숲과 이 마을에서 보고 겪은 것들이 그런 선택을 그의 머릿속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외벽에다가 뭔 이상한 짓거리를 해놓았을 수도 있어. 아니, 바람을 부리니 오히려 벽 위쪽이 더 위험할지도 몰라. 적어도 정문은 내가 아까 끌려왔을 때는 감옥 근처 말고는 단 한순간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에 걸어봐야겠지.’


원래라면 정문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구역이지만, 지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감옥을 지키는 사람들도 빠져나갔다. 다른 구역에 있는 사람들도 잔치에 참가했을지도 몰라. 위험하다고는 해도 우선은 가보자.’


생각을 정리하면서 걸었더니 어느새 눈 앞에 광장이 보인다.


‘... 앞에서 보니 더욱 가관이군.’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퍼마셔서 곯아떨어져있다.


‘숨 쉬는 시체들이네.’


이 정도면 살금살금 움직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과감하게 지나가기로 한다.


‘응?’


광장을 그냥 가로지르려 했지만, 그의 눈에 확 띄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기··· 그리고 술···’


거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 그의 걸음은 어느새 음식 쪽으로 가고 있었다.


‘조금만 먹어야지.’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손은 이미 고기를 한 움큼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다주고 있었다.


‘술을 안 먹어주는 것은 또 예의가 아니지. 술 마신 지도 오래되었는데.’


그는 요기나 하려고 했지만, 누가 봐도 시장기를 지울 완벽한 식사였다. 그의 식사 소리가 광장을 메운다. 자신이 낸 쩝쩝 소리에 오히려 그가 놀라 손을 멈췄다.


‘이런, 조금만 먹는다는 게 정신없이 먹었네. 누구 깬 사람 없겠지. 어?’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와 다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잠꼬대와 코를 고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웠건만, 지금은 아주 고요하다. 그의 식사 소리가 퍼질 정도로.


“드러렁~!”


‘... 착각인가?’


바로 앞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을 유심히 본다.


‘음··· 술에 취해서 그런가?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네.’


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잠에 빠진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지 않았다면 방금 어떻게든 카를을 잡으려 하거나, 주변에 이 일을 알리려고 했을 것이다. 카를은 자신의 착각이라 생각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카를은 광장에서 벗어나 건물 옆으로 붙어서 이동했다.


“휴···”


그가 벗어난 광장에서 아까와는 살짝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카를은 드디어 마을 정문 근처에 도달했다.


‘사람은··· 없군.’


혹시 시야에 안 보이는 곳에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서 다가간다.


‘숨소리는··· 없어! 좋아, 바로 탈출이다!’


정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카를은, 문에 손을 대고 힘을 준다.


“억!”


문에 빗장이 걸려있으면 같이 부술 작정으로 힘을 주었건만, 너무도 쉽게 열리는 문 때문에 앞으로 넘어진다. 하지만 얼른 일어서서 앞으로 달린다.


“이 인간들 뭐야? 문에 빗장도 안 걸어놨어? 만약 동물들이 쳐들어오면 어쩌려고?”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방금 문을 너무 강하게 여는 바람에 문이 외벽에 엄청 크게 부딪혔다. 굉음이 나면서 문이 부서질 정도로.


“어차피 이제 밖으로 나왔겠다. 빨리 이 근처만 벗어나면 돼.”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마을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감옥을 확인한 후 추격을 개시한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그는 마을에서 한참 벗어난 후일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벗어났네. 우선은 숲을 벗어나...자?”


하지만 맹렬하게 달리던 그의 귓가에 새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 소리?”


이상하다. 주변에는 바람이 그다지 불어오고 있지 않다. 잔잔하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런데도 강한 바람 소리가 그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점점 커지고 있어.”


바람이 강하게 부는 장소가 이 앞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가 근원지인지 전혀 모르겠다. 지금도 충분히 큰 소리인데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


“젠장. 도대체 뭐야?”


불안감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럴 수가···”


그리고 결국 그는 불안감의 근원을 마주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거대한 바람의 장벽이었다. 얼마나 강한 바람인지 근처에 있기만 해도 진동 때문에 몸이 울릴 정도다.


바람은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고 있다. 모든 것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벽이다.


카를은 시험 삼아 근처의 돌을 벽에다 던졌다. 얼마나 위로 올라가는지 실험해보려던 것이었다. 만약 많이 안 올라간다면,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틱.


하지만 실험은 실패였다. 돌이 바람에 닿자마자 힘을 못 이겨 부서지고 말았다.


“뭐 이딴 것이...”


흙을 던져도 소용없다. 바람이 얼마나 날뛰는지 흙을 퍼부어도 금세 흩어져 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벽 앞에서는 잔잔한 바람만 불어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나마 보이는 것도 근처의 다른 것들이 휩쓸려서 보이는 건가...”


애초에 바람에 색 따위 있을 리 없다. 먼지를 머금었기 때문에 그나마 흐리게라도 벽이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시간은,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바람이 아니라 나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카를이라도, 만약 소리만 아니었다면 달리다가 벽에 부딪혀 하늘로 튕겨 올라갔을 것이다.


“응? 저건?”


벽 너머에서 무언가가 보인다.


“트롤?”


트롤도 벽 너머에 있는 카를을 발견한 건지 입을 뻐금거리고 있다. 바람소리 때문에 들리지는 않지만, 아마도 소리를 지르고 있을 것이다.


“저번 그놈보다 말랐네.”


성체가 안된 것인지, 아니면 사냥을 거듭 실패해서 굶주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번에 봤던 두 놈보다 덩치가 작다. 게다가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이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얼씨구? 미쳤나?”


바로 앞에서 바람소리가 맹렬하게 들려올텐데도 카를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바람의 벽이 있다.


“...!!”


당연하게도 벽에 부딪혀 하늘로 튕겨 올라간다.


“오. 덕분에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볼 수 있겠는데?”


트롤의 안위 따위는 알 바 아니다.


트롤은 하늘로 하염없이 솟구치지는 않았다. 주변의 나무들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더니 그대로 다시 안쪽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결국 트롤은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꼬락서니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 끝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반대쪽으로는 못 가게 만들어 놓은 건가? 이것 때문에 경비병들이 없던 것일 수도.”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소리 소문 없이 목숨을 앗아가는 그런 종류의 함정이 아니다. 돌벽보다도 더욱 확실하게 반대편과 격리하는 최고의 방벽이었다.


“이 정도로 큰 소리를 듣고도 가까이 올 녀석도 없고, 있다고 해도 저 놈 꼴이 날 테니··· 보통은 부딪히자마자 죽겠지만.”


반대편에 있던 트롤도 몸을 치유하더니 장벽에서부터 쏜살같이 도망가고 있다. 어지간히 무서웠나 보다. 하지만 지금 트롤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쩌나?”


“!”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본다. 어느새 촌장을 위시한 마을 사람들이 카를의 뒤로 다가와있었다.


‘바람 소리 때문에!’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렇게 빨리?’


자신이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바로 따라왔다고 해도 너무 빠르다. 카를 본인이 낸 속력은 웬만한 사람은 따라오지도 못할 정도니까. 동물들도 따라올 수 있는 종류가 몇 되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는지 모를 표정이로군? 그나저나 굉장히 빨라. 내가 놓칠정도라니. 만약 발자국만 아니었으면 어느 쪽으로 갔는지도 모를 뻔했어. 그걸 발자국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카를은 덩치에 걸맞은, 아니 오히려 덩치보다도 훨씬 더 나가는 몸무게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엄청난 각력으로 땅을 박찰 때마다 땅에는 발자국이라고도 말하기 미묘한, 엄청난 흔적이 남는다. 촌장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소리가 들려?’


지금에야 깨달았다. 지금은 장벽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줄어들었음을. 처음 촌장이 말을 거는 그 순간부터 그들이 부리는 바람의 힘이 소리를 막아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 어찌하겠나? 다시 얌전히 잡혀가겠나?”


“그럴 수는 없지. 당신들이 날 보통 적대하는 것이 아닌데. 저번에는 어차피 탈출할 생각으로 잡혀갔던 거고.”


이제는 누가 봐도 적군이다. 존대 따위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래서 우리랑 싸우겠다는 건가? 달랑 혼자서? 그것도 맨손으로?”


“그렇다고 얌전히 잡혀가서 죽어줄까? 그리고 맨손도 아니야. 무엇보다 당신들은 하스트를 죽였다. 만난 지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료였다. 그를 위해서 길동무를 많이 만들어주지.”


카를은 자세를 취했다. 명백한 전투의지였다.


‘결국은 최악의 상황이 되었군.’


이제부터는 살육전만이 남았다.


“후후후. 그렇군. 나름 동료애가 있구만.”


“네, 그러네요. 그렇게 친구도, 동료도 아니라고 하더니. 흑흑. 날 그렇게 생각해주고 있을 줄은.”


“엉?”


촌장의 뒤, 무리 속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나오며 말한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앞으로 나선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의 쓰개를 뒤로 젖힌다. 카를의 눈동자에 회색의 머리카락이 박힌다.


“너, 하스트?”


“그래. 맞았어, 친구. 어때? 반갑지?”


카를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하스트의 등장에 얼이 빠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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