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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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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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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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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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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쪽

침입자 (5)

DUMMY

순찰대는 오거들의 공세를 버텨내고 있다. 근접전을 벌이면 필패였기에, 적극적으로 교전하지는 않는다. 바람의 힘으로 몸을 가볍게 해서 거리를 벌리고, 거리가 벌어지면 힘을 집중하여 공격하는 것을 반복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거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힘을 집중할 시간이 모자라다. 공격을 위해 힘을 집중하는 순간, 속도는 줄어든다. 필사적인 후퇴 속에서도 오거의 접근을 허용하는 위험한 순간이 계속해서 찾아온다.


이번에 새로 뽑힌 순찰대원의 옆으로 오거가 돌진해온다. 진영의 끝에 있는 그는 오거를 뿌리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집중할 시간이 모자라 오거의 자세를 무너뜨릴만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거는 반복되는 전투로 인해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의 위력이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방어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오직 가죽만으로 화살을 튕겨내며 돌진해왔다.


“으악! 저리 가!”


그는 어떻게든 오거를 떼어내려 했지만, 결국 오거의 접근을 허용하고 말았다. 위기와 마주 선 그는 옆을 보며 다른 사람이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앞에 있는 오거들을 막느라 정신이 없다. 애초에 숫자부터가 적으니 어쩔 수 없다. 최초의 11 : 10이었던 숫자의 우위는 한 명의 사망과 한 명의 부상으로 인해 9 : 10이라는 열위에 놓였다.


그의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몸통보다도 두꺼운 오거의 팔이 다가온다. 만약 저 손에 잡히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이 바로 그의 인생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다.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모두 허사다. 오거의 팔은 그가 물러나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결국 오거의 손에 잡히기 직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지나온 세월을 곱씹는 순간.


훙!


드디어 그의 뒤편에서 구원의 바람이 불어온다. 오거는 갑작스럽게 불어온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주춤한다. 비록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다시 자세를 잡고 추격해왔지만, 거리가 벌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거는 엄청난 허벅지 힘으로 인한 폭발적인 가속도를 자랑했지만, 거리가 벌어진 만큼 더 큰 힘을 집중시킨 화살 때문에 방금처럼 단숨에 접근하지는 못했다.


죽을뻔한 순찰대원에게 오거와의 거리는 곧 죽음과의 거리였다. 그리고 그 거리는 지금 멀어졌다. 이 환희에 그는 자신을 살려준 하스트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비록 하스트가 전투에 거의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하스트는 순찰대원이 감사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지만,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시 무언가에 집중했다. 엘르는 하스트의 옆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전방에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다시 위험에 빠진다. 오거가 순찰대원 중 한 명에게 거의 도달하기 직전이다. 엘르는 준비하고 있던 화살로 재빨리 지원했다.


해방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거들이 그 단어를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해방 혹은 집중이라고 말하는 순간 오거들이 방어태세를 갖춘다. 특히 뒤에서 지원만 하는 대신 강한 일격을 준비하는 엘르와 하스트의 목소리에는 과민할 정도로 반응했다.


피융!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집중하고 있던 만큼 강한 힘이 담겨 있는 화살이 앞으로 쏘아진다. 오거들도 엘르가 쏘는 화살이 다른 화살들보다 위협적인 것을 알고, 다른 공격들보다 더 주의하고 있다. 덕분에 처음 몇 번은 지원에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거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의 뒤편에서 쏘아졌다. 완벽한 사각이다. 오거는 엘르가 화살을 쏘는 모습조차 볼 수 없었고, 그저 순찰대원을 죽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다.


화살이 나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거는 화살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화살은 순찰대원의 뒤에 있어, 완벽히 가려져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거가 아니라 순찰대원이 먼저 직격 한다. 카를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엘르의 사격이 실패라고 생각했다. 순찰대원의 미래는 뒤통수에 아군의 공격을 받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오거에게 온몸이 분쇄되는 모습밖에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자신이 도와주기에는 이미 늦었다.


하지만 화살이 순찰대원의 뒤통수에 꽂히기 직전, 순찰대원이 몸을 옆으로 숙인다. 날아드는 오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 공간을 오거의 오른팔이 커다란 호를 그리며 지나간다. 오거는 자신의 공격이 빗나간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왼팔로 순찰대원을 올려치기 위해 힘을 준다. 그러나 오거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왼팔을 올리기 전에, 순찰대원이 피한 오른팔이 지나간 그 공간을 화살이 점유한다.


오거는 자신의 오른팔이 지나간 그 순간, 갑자기 화살이 눈 앞에 나타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오거는 자신의 팔을 다시 휘둘러 화살을 막고자 했지만, 오른팔과 왼팔 모두 화살을 막기에는 한참 모자란 위치에 존재했다. 이를 깨달은 오거는 그 초인적인 인지능력으로 화살의 경로를 파악하고,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화살은 그조차 예상했다는 듯이 옆으로 휘고 있다. 결국 오거는 절망적으로 화살을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콰직!


“크아아악!”


화살에서 뛰쳐나온 두 갈래의 줄기가 오거의 눈에 직격 한다. 오거는 어둠 속에 사로잡힌 공포에 비명을 지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오거는 전력으로 달릴 수 없어, 결국은 전장에서 낙오된다. 이제 그 오거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의 동료가 승리하는 것을 바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동료들이 승리 후 자신을 죽이지 않는 것도.


‘정말 대단해. 오거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모두 예상하다니?’


카를은 정말 순수하게 감탄했다. 전투를 자주 겪어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전투의 흐름을 안다. 아무리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 취해야 할 행동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예측 능력은 마치 백전노장들, 늙어서 은퇴할 수밖에 없는 수십 년의 전투 경험을 가진 사람의 것이다. 그것을 불과 23살의 나이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정말 대단한 실력이야.’


카를의 감탄과는 다르게 자신들의 동료가 실명하는 것을 목격한 다른 오거들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눈이다. 눈에 의지해서 세상을 파악하는 생물들에게 눈을 잃는다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한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그 모습을 보고 아무리 포악한 오거라도 마음의 동요가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오히려 더 앞으로 돌진하는 오거가 있었다. 엘르의 공격이 다른 사람들보다 강한 이유는 더 오래 집중해서다. 그렇다면 다음 공격까지는 분명히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오거는 재빨리 그것을 파악하고 오히려 눈 앞의 순찰대원을 재빨리 처리하기 위해 더 빨리 움직였다.


다른 오거들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고 살짝 안심하고 있던 순찰대원은 자신의 눈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오는 오거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를 본 엘르가 소리친다. 오거의 예상대로 엘르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카를!”


“그래.”


엘르와 마찬가지로 카를도 달려오는 오거를 봤다. 그리고 엘르가 부르기도 전에 이미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던 상황이다. 정확히는 뒤로 달리는 속도를 줄인 것이지만.


카를은 들고 있던 뼈를 다가오는 오거에게 던졌다. 분명 그의 투척 실력은 최악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상관없다. 원체 가까이 있고, 무엇보다 상대의 덩치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명중하지 못하게 던지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지경이었으니까.


퍽!


“꾸억!”


다가오던 오거가 카를의 투척에 얻어맞고 쓰러진다. 아무리 명중하기 편하다고 해도 워낙 자신의 투척 실력에 자신이 없던 카를은, 살해하기 위해 전력으로 던지기보다 힘을 뺀 상태에서 접근을 막기 위해 다리 쪽만을 노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확하게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 뼈가 오거의 영 좋지 못한 곳에 명중하고 말았다.


“아. 이런··· 적이지만 미안하네.”


그래도 오거가 충분히 시간을 번 것일까? 좋지 못한 곳을 움켜잡으며 뒤쳐지고 있는 오거 대신 다른 오거가 다가온다. 미안한 마음도 잠시, 다가오는 오거에게 다시 뼈를 던진다. 하지만 이번 오거는 앞의 오거를 보고 느낀 것이 있는지 자세를 낮추고 최대한 하반신을 방어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흠··· 그렇다면 위쪽.”


목표를 바꿔 상반신을 노린다. 머리는 포기한다. 아무리 가깝고 크다고 해도, 정면에서 머리 쪽으로 오는 물건도 못 피할 정도로 오거가 둔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거는 자신의 상반신을 향해 날아오는 뼈를 보면서도 방어를 위해 팔을 올리지 않았다. 자신의 가죽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뒤쳐진 오거의 최후(?)가 어지간히 뇌리에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오. 그냥 맞겠다는 건가? 그래도 꽤 아플 텐데.”


카를은 오거가 상처를 입을 것이라 예상하고 다음 투척을 준비했다. 하지만 뼈가 오거에게 명중하려는 순간.


“흡!”


오거가 숨을 멈추더니 근육이 일순간 부풀어 오른다. 오거는 그 거대한 근육으로 뼈를 막아내고, 마침내 카를에게 다가섰다.


“쳇.”


좁혀 들어오는 오거가 호쾌하게 주먹을 휘두른다. 오거가 자세를 낮춰 눈높이가 같아졌기에 주먹이 위가 아니라 옆에서 날아온다. 카를은 고개를 숙여 주먹을 피한 후 뒤로 도약한다.


“이거나 먹어라!”


카를은 허리춤의 뼈를 한 움큼 잡더니, 그대로 던져버렸다. 이번에는 힘 조절을 덜했기 때문에 뼈가 사방팔방으로 날아간다. 어떤 뼈는 카를의 발아래에 꽂힐 정도였다.


“크아아아!”


오거는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세를 낮추며, 방어자세를 취한다. 이번에 날아오는 뼈에 담긴 힘은 근육만 믿고 튕겨내기에는 약간 위험해 보였기 때문에 최소한 얼굴만이라도 방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퍼퍼퍼퍽!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것 같은 연속된 타격음과 함께 오거가 살짝 주춤한다. 오거에게는 다행히도 투척된 뼈가 피부를 찢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근육과 그 안의 내장까지 당도하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이에 승리의 웃음을 짓고 다시 앞을 직시하지만, 이내 당황한다. 눈 앞에 있어야 할 카를이 없었다.


“안녕?”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의 근원지는 오거의 머리 아래였다. 깜짝 놀라 방어하고 있던 오른팔을 재빨리 내뻗는다. 같은 오거가 봐도 놀랄 정도로 쾌속의 일격이었지만, 예상하고 있던 카를은 몸을 옆으로 돌려 살짝 피한다. 그리고 오거의 팔을 잡아당겨 자세를 무너뜨리려 한다. 이에 오거는 카를의 노림수를 파악하고 자신도 재빨리 팔을 잡아당겨, 자세를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오거가 팔을 잡아당기는 순간, 카를은 오히려 팔을 밀어버린다. 결국 자신의 팔에 떠밀려 자세가 불안정해진 오거의 발을 카를이 살짝 후려친다.


“잘 가라.”


중심이 완전히 파괴된 오거의 자세가 무너지고, 결국 넘어진다. 또 한 마리의 오거가 술래잡기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완전한 건 아니지.’


순찰대는 공터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도망 다니고 있다. 즉, 공터를 한 바퀴만 돌아도 낙오되었던 오거에게 오히려 뒤를 잡히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공터가 꽤나 넓었기 때문에 당장 벌어질 일은 아니었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전투를 반복할 수는 없다.


‘저놈은 언제 끝나는 거야?’


카를은 하스트를 보며 시간의 촉박함을 알리고 싶었지만, 다시 옆에서 달려오는 오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카를에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순찰대원을 죽이려고 노리는 오거를 옆에서 몸통 박치기로 밀어낸다. 불의의 기습에 당한 오거는 잠시 자세가 흐트러졌지만, 큰 충격은 받지 않은 듯 다시 달려온다.


다시 진영으로 돌아온 카를을 보며 옆의 순찰대원이 놀라움을 담아 칭찬한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보고도 믿지 못할 지경이야. 아무리 우리를 필사적으로 쫓느라 자세가 온전치 못한 상태라지만, 저 오거를 힘으로 주춤거리게 할 수 있다니.”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응?”


카를의 대답을 이상하게 생각한 순찰대원은 더 묻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한다. 잡담을 나눌 정도로 한가로운 상황은 아니니까. 그리고 마침내.


“찾았습니다!”


하스트에게서 낭보가 들려온다.


“어디인가?”


순찰대장이 기쁨을 담아 하스트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소극적인 전투를 하게 한 목적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찾긴 했는데, 여기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이··· 마을 쪽입니다.”


“뭐?”


하스트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전투 시작 전에 모두에게 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우두머리급의 오거가 이렇게 대량 발생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한 마리, 한 마리가 이 숲에서 군림할 수 있을 수준이라면 오히려 서로 영역 싸움이 벌어져야 맞을 텐데, 개인주의인 오거가 겨우 일반 오거보다 약간 똑똑해 보이는 수준으로 이렇게까지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을 리 없다는 것. 그렇다면 분명히 배후가 있다고 하스트는 추측했다. 그것도 오거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은, 아니면 그들 모두를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그렇다면 상관없겠군. 마을로 침입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고.”


“...”


“설마?”


하스트의 대답은 적의 대장이 무슨 존재인지 알려주었다.


“놈은 바람의 힘을 사용합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전 놈이 이동을 시작하고서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바람의 힘을 사용하여 자신을 숨기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말은···”


놈이 바람의 장벽을 무력화시키고 마을로 침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순찰대장은 이 진실의 뒤에 무언가가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바람의 힘을 사용한다고 장벽을 바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게다가 마을에는 촌장님이나 사모님이 계시지. 어느 누가 그분들을 함께, 그것도 마을 전체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무언가를 떨쳐내려 필사적으로 하스트에게 반문한다. 하지만 하스트는 그 말에 고개를 젓는다.


“힘의 일부를 살폈습니다. 잠깐 살핀 것만으로도 자연력의 양이 엄청난 놈이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최소가 영물급입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보통 인간과 맞먹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요. 만약 그런 존재가 마을을 상대로 유격전을 반복한다면···”


마을이 멸하는 일은 분명 없다. 하지만 적지 않은 희생이 나오리라.


순찰대장은 진실의 뒤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마을의 가족들. 그 누구보다도 안전할 것이라 믿을 수 있는 장소에 있는 그들이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그··· 그렇다면 빨리 놈을 추적해야!”


순찰대장은 심하게 동요했다. 얼마나 심했는지 화살이 오거 근처에도 못 갈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순찰대장만이 아니었다. 일련의 대화를 모두 들은 대원들 모두의 명중률이 급감하고 있다. 순식간에 오거들의 접근을 허용할 정도로.


그나마 마을 사람들 중 가장 동요를 쉽게 떨쳐낸 것은 엘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부모는 어디에 떨어뜨려도 쉽게 죽을 수 있는 위인들이 아니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것에는 충분히 동요가 되었지만, 직계가족이 위험한 것과 주변 이웃들이 위험한 것의 느낌은 현격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녀는 떨쳐낸 동요와 함께 모은 힘을 분산시켜 모든 오거들의 발을 노렸다. 발에서 폭발하는 화살에 오거들이 놀라 도약한다. 엘르의 화살에 당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지만, 생각보다 약한 폭발에 안심한다. 하지만 그 안심은 방심이었다.


뛰어오른 왼편의 오거들을 향해 카를이 가지고 있던 모든 뼈를 집어던진다. 아까보다도 강하게 날아오는 뼈에 얻어맞은 세 마리의 오거가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진다. 공중에 있는 상태라 힘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뼈를 던진 카를은 자신의 앞, 진영의 중심에 있는 오거를 목창으로 슬쩍 밀어 넘어뜨린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리고 마지막 세 마리째의 오거를 넘어뜨리는 순간, 오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목창을 잡아버린다. 무기가 잡힌 상태로 뭘 할 수 있겠냐는 비웃음이, 종족이 다른 카를에게도 팍팍 전해져 온다. 그러나 그는 그 비웃음을 가뿐히 무시하고 목창째로 오거를 밀어 넘겼다. 설마 마지막 남은 무기를 포기할 줄 몰랐던 오거는, 오히려 그 전 두 마리보다 더 크게 넘어졌다.


마지막 남은 오른편의 오거들을 처리하려 했지만, 그 전의 오거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오거들은 이미 사람들의 코앞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오거들이 드디어 술래잡기의 첫 번째 희생자를 발생시키려는 찰나.


콰앙!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날아간다. 하스트가 바람을 방출하여 오거들을 날려 보낸 것이다.


순식간에 두 진영이 완벽하게 갈라졌다. 이에 잠시 여유가 생긴 순찰대장은 하스트에게 다시 말했다.


“저놈들은 무시하고 얼른 마을로 돌아가자고!”


이대로 마을로 향하려는 순찰대장.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오거들이 멈춰서 있다. 한꺼번에 몰아치려는 것인지 뒤쳐진 동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스트가 자리에 멈춰 섰으니까.


“왜 그래?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지금 한 시가 급한 거 몰라?!”


엘르가 신경질적으로 하스트를 독촉했다. 빨리 마을에 합류하여 이 위기를 알려야 한다. 하지만 하스트는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분명 그놈은 굉장히 위험한 놈이지. 하지만 우리 눈 앞의 이놈들은? 놔둔다고 해서 과연 이놈들이 우리를 놓아줄까? 아까처럼 후퇴전을 반복하며 마을로 향하면? 우리가 열어놓은 장벽을 이놈들이 통과할 텐데? 그렇다면 대장과 합류한 이놈들이 어떤 식으로 활동을 개시할지 어떻게 알겠어?”


하스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순찰대장은 그의 의견에 반박했다.


“분명히 이놈들을 먼저 처리하고 가는 것이 더 안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방금 후퇴전을 할 때도 우린 거의 전력에 가까웠어. 그런데 지금에 와서 저놈들을 해치우는 것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어떻게 알겠나? 그때는 이미 대장 놈이 마을 구역 어딘가에 숨어서 희생자를 기다릴지도 몰라. 차라리 마을로 가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나아.”


그리고 만약 바람의 힘을 사용하는 대장이 숨는다면 놈을 찾는 것에만 상당한 인력이 투자되고, 희생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말에 하스트는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낸다.


“확실히 그 말도 맞습니다만, 한 가지 간과하신 것이 있네요.”


오거들이 준비를 모두 마친 것인지 다시 돌진해온다. 멈춰서 있으니 더욱 확실히 느껴진다. 지축을 울리는 그들의 발걸음이.


“저흰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스트의 눈은 순찰대와 함께 마을로 돌아가려고 했던 카를에게 꽂혀있다.


“쯧. 귀찮게···”


이대로 전투를 끝내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 대충 일을 마치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하스트의 눈빛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를이 순찰대를 벗어나 하스트의 앞에 선다.


“무기가 없는데 괜찮아?”


하스트는 카를의 몸 어디에도 무기가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 카를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며 그에 대답했다.


“저기 있네. 내 무기.”


오거들의 선두에 선 녀석이 카를의 목창을 들고 돌진해오고 있다. 카를의 신장에 맞춘 긴 무기라 오거도 나름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쩔 수 없군.”


순찰대장도 포기하고 진영을 오거들에 맞서 세운다. 비록 그 둘이 외지인이긴 하지만, 지금만큼은 마을을 위해 싸워주고 있다. 그들을 버리고 갈 만큼 모질지 못하다. 지금은 그저 이 전투가 빨리 끝나길,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희생도 생기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모두 사격 준비!”


이번에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져있다. 최고의 일격을 적들에게 꽂아 넣어줄 수 있다.


“발-”


그리고 사격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순찰대장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달려오는 오거들을 마주하고, 카를이 앞으로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저런 미친 새끼가?! 뒤지려고 작정했나!”


카를의 어이없는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오고 말았다. 분명 카를의 힘은 다른 사람과 비할 바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거만큼은 아니다. 뒤로 물러나면서 오거에게 받는 힘을 줄이며 타격했는데도 그들의 자세를 잠시 잃게 하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저것은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카를을 꼬치로 만들 수는 없다.


“저놈 쪽으로 화살을 보내지 마라! 하스트!”


“네. 네.”


순찰대장은 카를 쪽의 오거들을 하스트가 맡아주라 말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진영이 서로에게 돌진한다. 단, 한쪽은 9마리의 오거였고, 한쪽은 단 한 명의 인간이었다.


오거들은 화살의 폭발에 한꺼번에 당하지 않기 위해 산개하고 있다. 카를은 오직 목창을 가진 오거 하고만 같은 경로상에 설 수 있었다.


카를은 왼손으로 오른팔을 강하게 고정시키고, 오른 어깨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깨를 이용한 몸통 박치기였다. 오거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감히 조그마한 인간이 자신에게 힘으로 도전하는 것이 너무나도 가소로웠다. 자신과 힘으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존재는 오거와 트롤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오거 또한 카를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같은 자세로 카를과 맞선 것이다.


주변의 오거들도 그 모습을 힐끔 보며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자신들을 열 받게 했던 저 멍청한 인간의 최후를.


순찰대는 카를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들은 정할 수밖에 없었다. 카를이 날아가는 그 순간이 사격의 시작이라고.


두두두두!


두두두두!


결국 때가 다가온다. 카를은 인간 기준으로 엄청난 거구였지만, 오거에게는 무리였다. 누가 봐도 대와 소가 확연히 나눠진다. 격돌에 임하는 순간, 오거와 카를이 급격하게 가속한다. 주변으로 바람이 밀려날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나 결과를 예측하고 있는 대와 소가 격돌한다.


콰앙!


두 개의 살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거대한 바위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어찌나 강력한지 주변으로 충격파가 퍼지고, 공터의 끝에 있는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들마저 흔들린다.


대지가 갈라진다. 둘의 격돌로 인한 엄청난 충격을 이기지 못한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커다란 상흔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한 존재가 저 멀리 날아가고 있다.


쿵.


그 존재는 자신이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찌나 큰 충격을 받은 것인지, 온몸이 꿈틀꿈틀 거리는 것이 징그러울 정도다. 어깨 쪽을 보니 완전하게 파괴된 것인지 어깨 아래의 팔이 보이질 않고, 육체를 지탱하는 뼈들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세상 밖의 공기를 탐하고 있다. 그 존재는 자신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이내 숨을 거뒀다.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장면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어이구, 고마워라. 무기도 이렇게 놓고 가주시고.”


패배한 쪽이 소가 아니라 대라는 것뿐.


카를은 자리에 떨어진 오거의 손이 쥐고 있는 목창을 꺼내 들었다. 사방으로 쩍쩍 갈라진 대지에 놓여 있는 오거의 팔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그 비현실감을 느낀 것은 공터에 있는 모두였다. 그것도 오거와 인간 가리지 않고. 양측 모두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있다. 공터가 순식간에 고요에 잠식당했다. 고요 속에서 그나마 하스트만이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네. 주먹다짐을 해서 이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오거를, 그것도 우두머리급의 오거를 몸통 박치기로 날려버려? 거기다 즉사까지? ··· 저 주먹에 맞으면··· 역시 저놈한테는 최대한 안 까불어야겠다.’


하스트의 생각, 다짐과 상관없이 카를은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고 있다.


“음~ 좋아. 뒤로 달리면서는 영 힘을 줄 수가 없어서 답답했는데, 상쾌하네. 오랜만에 몸을 푼 느낌이고. 숲에는 자연력이 많다더니, 왠지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 것도 같고, 아주 좋아.”


카를은 상쾌한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카를과 눈이 마주친 오거들이 움찔거린다.


“뭘 봐?”


웃는 낯 그대로 창으로 오른쪽의 오거를 후려친다. 복부를 얻어맞은 오거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복부를 맞았는데도 거기를 움켜쥐고 있는 것 보니, 아까의 희생자인 모양이다.


“창이라고 해서 받긴 했는데, 날 부분도 나무니, 이걸 창이라고 할 수 있나? 봉 아냐?”


잠시 중얼거린 카를은 오거들과 싸우지 않고 오거들의 뒤편으로 달렸다. 마치 도망가는 것처럼.


이에 정신을 차린 오거들은 필사적으로 카를을 쫓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오거들에게 그의 존재는 숲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이겨야 하는 상위의 포식자로 인식되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그 감정에, 오거들이 이성을 잃고, 오거 본연의 광포함만을 내뿜으며 카를을 추적했다. 숲의 존재들 그 무엇이라도 마주하면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오거의 본성이 세상에 펼쳐졌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본성을 표출하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오거들의 등 뒤쪽에서 화살들이 날아온다. 카를을 쫓느라 순찰대에게 등을 보인 것은 크나큰 실책이다. 카를이 어쩌다 보니 끌어준 시간과, 카를이 보여준 어이없는 장면, 마지막으로 오거들이 뿜어내는 살 떨리는 포악함으로 인해, 순찰대는 본인들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힘을 집중시켜 사격에 나섰다. 몇몇은 너무 큰 힘을 한 번에 내보낸 덕분에 잠시 동안 힘의 운용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7개의 화살이, 카를을 뒤쫓고 있던 7마리의 오거를 노린다. 그 화살들이 전부 자신의 상대에게 명중하지는 못했다. 산개했던 오거가 다시 집결하는 도중이라 한 마리가 여러 화살에 공격당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런 경우에 당첨돼버린 오거는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스트는 쓰러진 고자(?) 오거에게 다가가 마무리를 지었다. 응축된 바람의 화살이 순식간에 오거의 머리에 구멍을 낸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분명 자신이 말한 말은 맞다. 분명 순찰대는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다. 하스트 자신과 카를은 전면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전투가 쉽게 풀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후후후후. 재밌는 놈이야.”


하스트도 다시 전투에 참여한다. 카를은 창을 휘둘러 계속 오거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엘르는 힘을 운용하지 못하는 몇몇 대신에 차분히 화살로 오거들을 마무리 짓고 있다.


전투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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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최강의 오거 (4) 18.11.08 279 1 20쪽
61 최강의 오거 (3) 18.11.07 263 0 13쪽
60 최강의 오거 (2) 18.11.06 267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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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침입자 (6) 18.11.01 278 0 17쪽
» 침입자 (5) 18.10.25 296 0 28쪽
53 침입자 (4) 18.10.18 295 0 14쪽
52 침입자 (3) 18.10.11 344 0 21쪽
51 침입자 (2) 18.10.04 354 0 18쪽
50 침입자 (1) 18.09.20 357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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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동료? (6) 18.08.16 40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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