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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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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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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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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침입자 (3)

DUMMY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내일 다시 나오자.”


엘르는 마을 주변을 감싼 바람 장벽 앞에서 오늘의 일과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그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들은 외부인, 그저 조력자에 불과하니 그녀의 의견에 따른다.


후웅.


엘르의 손짓에 바람 장벽에 틈이 생긴다. 그 틈으로 무사히 장벽 안으로 들어선다.


모두가 장벽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엘르가 힘을 거두니, 다시 틈이 메워진다. 틈이 메워지는 것을 보고 있던 카를이 아직도 새롭다는 듯 감탄한다.


“히야··· 언제 봐도 자연력을 쓰는 건 신기하네.”


“하긴, 남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북부 사람들은 모두가 전설에 나오는 존재들 같을 테니까.”


하스트는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북부 사람들이라면 자연력이 없는 삶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세상을 떠돌아다닌 하스트만은 그 차이를 충분히 이해했다.


“남부 사람들한테는 저 트롤 한 마리조차 재앙에 가까운데··· 이쪽 사람들은 단독으로 마주치더라도, 회피는 충분히 가능한 것 같고. 게다가 몇 사람이 모이면 퇴치도 가능다고 하니···”


무력 차이 수준이 너무 극심한 것 같다고 중얼거리는 카를이었다. 정작 카를 본인도 단독으로 트롤을 이기는 사람이었지만.


“뭐, 확실히 그렇지. 맨몸으로 싸우는 남부 사람들과는 다르게 북부 사람들은 여러 가지 힘을 사용하니까. 그런데 남부 사람들도 북부나 산맥의 동물들은 충분히 퇴치할 수 있을걸? 트롤도 포함해서. 상대하는 방법만 안다면야.”


“흠··· 그런가?”


고요의 평원 근처에 있던 마을은 예전에 트롤에게 큰 재난을 당했다. 마을의 귀중한 전투인원들, 무엇보다 당대 최강의 전투원인 경비대장마저도 단 한 마리의 트롤에게 모두 살해당했다.


그 이야기를 하스트에게 하니, 만약 상대법, 그러니까 하다못해 불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그렇게까지 안 당했을 거라고 한다.


트롤이라고 상처나 고통을 즐기거나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 상처라는 것은 육체의 손실이다. 즉, 크든 작든 무조건 전투력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목숨과도 직결하는 큰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세력을 가진 강한 동물들의 영토, 우두머리 싸움 같은 것을 제외하면 동물들은 상처를 입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하지만 골치 아프게도 트롤은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다른 전투 방법을 구사한다. 자신이 상대보다 더한 상처를 입는다고 해도 밀고 들어오는 것이 트롤이다. 자신의 상처를 돌보지 않고 오직 상대를 죽이는 것에만 몰두한다. 다른 동물들은 그런 식으로 전투를 했다가는 바로 다음 날이라도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트롤은 바로 치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동물이나 괴물들보다 트롤이 북부와 산맥을 통틀어서 가장 기피하는 적으로 꼽히지. 물론 그보다 강한 놈들도 있긴 하지만, 그 정도 되면 기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조건 피해야 할 수준이니.”


하지만 그런 트롤이라도 불이 자신에게 위험한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불을 사용한다면 트롤을 일반적인 동물들과 같은 전투법을 구사하게 만들 수 있다. 상처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전투법.


물론 다른 동물들은 그런 전투를 주로 하니, 틈을 노려 상대의 목숨을 끊는 것에 능하다. 하지만 트롤은 그런 전투를 경험한 적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전투의 양상을 그쪽으로 끌고 가기만 해도 전투력이 급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남부 사람들이라도 불만 사용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트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물론 남부와 북부의 사람들의 기본적인 전투능력은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북부 사람들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 테지만.


“그리고 엘르를 보고 놀랐어.”


엘르는 무심하게 마을을 향해 걷다가 카를의 입에서 자신의 칭찬이 나올 것 같은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을 고수했지만.


“솔직히 엄청 약할 줄 알았거든.”


그 말에 엘르는 살짝 울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내 진정할 수 있었다.


“하하하! 하긴, 근육덩어리인 남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비리비리하게 보일만도 하지. 하지만 아무리 엘프 마을이라도 이 또래에 이만큼 강한 녀석은 없다고. 이렇게 보이지만 엘르는 무려 예-”


“하스트.”


즐겁게 듣고 있던 엘르는 갑자기 화난 표정으로 하스트의 말을 끊었다. 하스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심히 거슬리는 모양이다.


“에··· 이거 꽤나 영광스러운 명칭 아냐?”


“영광이고 개뿔이고, 내 미래를 멋대로 결정하는 것 같잖아. 마음에 안 들어. 다시는 그따위 명칭으로 날 부르지 마.”


엘르는 두 눈을 부릅뜨며 험악한 표정으로 하스트를 윽박질렀다.


“싫은데~?”


하지만 하스트는 알 바 아니라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엘르에게 대꾸했다. 그에 엘르는 다시 울컥하여 말보다 빨리 주먹을 날렸지만, 예상했다는 듯이 하스트는 회피했다. 그것에 더 열 받은 엘르가 활에 손을 뻗는 것은 본 하스트는 몸을 숨길만한 곳을 탐색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숨을만한 곳이 적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카를의 뒤로 숨으려는 찰나.


덥썩.


“응?”


카를이 눈치채고 하스트를 잡아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스트를 번쩍 들더니, 그대로 자신의 앞으로 내밀었다.


“우왁! 카를! 무슨 짓이야! 이래도 네가 동료냐!?”


“날 방패 삼으려 했던 놈이 무슨.”


하스트는 기겁하며 발버둥 쳤지만, 카를의 억센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잘했어. 덩치.”


‘덩치?’


카를이 무슨 생각을 하던, 엘르는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우후후후. 드디어 이 순간이 왔어. 지금껏 요리조리 날 놀리며 빠져나가던 저 얄미운 낯짝이 일그러지게 할 순간이.”


‘아무래도 예전에도 엄청 놀렸나 보네.’


활을 겨누며 다가오는 엘르에게서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진다. 어찌나 섬뜩한지 하스트를 들고 있던 카를마저 움찔할 정도였다.


“하하하하. 저기··· 엘르 씨? 우리, 말로 할까요?”


“말? 말이 뭐지? 난 그런 거 모르는데.”


“말이란 대화를 뜻하는···”


“아! 대화! 그래. 좋아.”


하스트는 이대로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며시 웃었다. 엘르도 따라 웃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하스트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진다.


“저기··· 엘르 씨? 아직 활이 거둬지지 않았는데요?”


“활은 좋은 대화 수단이지. 상대를 일방적으로 닥치게 할 수 있거든. 몰랐어?”


“그건 어느 세상의 대화입니까?”


후웅.


“우악!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말해. 아니, 말하세요! 아니, 말씀해주세요!”


엘르의 눈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드는 동시에, 활에 모이는 자연력을 느끼고 하스트는 얼른 사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말에 엘르의 눈에서 광기가 조금씩 걷힌다.


“좋아. 나도 사람 하나 죽이기는 싫으니까.”


‘죽일 생각이었냐?’


카를이 엘르의 말에 질겁하는 것과 상관없이 엘르는 자신의 요구 사항을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 날 누님이라 부를 것.”


“네. 알겠습니다. 누님.”


“빠르다···”


저자세로 나가는 것에 전혀 막힘이 없다. 그에게는 자존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마을에 돌아올 때마다 나에게 물건을 바칠 것.”


“저··· 물건이라 하심은?”


“그것도 몰라? 네가 예전에 마을로 돌아올 때마다 다른 곳의 특산물이라며 나에게 보여준 것들 있잖아. 그러면서 주지도 않고, 신기해하는 날 약 올리기 만한 것들 말이야. 아. 생각해보니 다시 열 받네. 역시 화살 구멍을 하나-”


“예예! 당연히 가져다 드려야죠! 올해부터 매년 하나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매년?”


“아? 반년마다?”


후웅.


“아니, 3개월마다 하나씩 바치겠습니다!”


“좋아. 사실 바라는 것은 더 많지만, 여기까지 하겠어. 고맙게 생각해.”


“네! 엘르 누님!”


“좋아. 풀어줘. 덩치.”


“...”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 것 같지만, 카를은 순순히 하스트를 놔준다. 하스트는 땅에 내려오자마자 카를을 째려보았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그러게 평소에 잘 하고 다니지 그랬냐.”


카를은 혀를 차며 하스트를 나무랐다.


“뭐, 앞으로 잘하면 되지. 그렇지, 하스트?”


엘르는 웃으며 하스트에게 다가갔다. 카를은 지금까지 보았던 엘르의 표정 중에 가장 환한 표정이라 생각했다.


“엘르.”


하스트는 나지막이 엘르를 불렀다. 그에 엘르가 살짝 옅어진 웃음을 띄며 하스트에게 말했다.


“엘르 누님이겠지?”


“훗.”


하스트는 갑작스럽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돌발적인 그의 행동에 둘이 당황하는 찰나, 하스트의 웃음소리가 퍼진다.


“메롱이다! 넌 날 아직도 모르는구나! 방금까지 했던 말은 모두 뻥이다! 에베베베베!”


“저게!”


엘르는 자신을 놀리며 도망가는 하스트를 쫓았다. 하스트는 자신을 따라오는 엘르를 보고 발을 더욱 바삐 놀린다. 물론 입도 쉬지 않았다.


“이 만행을 너네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아! 안돼! 너 그러다가는 진짜 죽을 줄 알아!”


“그땐 이미 네가 먼저 너네 엄마한테 죽어있을 거다!”


“... 얘들이냐?”


둘의 유치한 싸움에 카를은 기가 질렸다. 하지만 싸우는 사람의 연령대를 의심하게 만들 언행과는 달리, 둘은 정말로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야말로 바람같이.


“사람 귀찮게시리···”


어쩔 수 없이 카를 또한 그들을 뒤따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


장벽의 앞. 숲의 그림자를 벗 삼아 일행을 지켜보는 한 존재가 있었다.


“저것들은 너무 어려. 약할 거야.”


그 존재는 일행을 평가하고, 실망했다. 그들이 트롤과 싸우는 모습을 보았지만, 크게 강력한 것 같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트롤 따위에게 도망이나 갔으니.


“나에게는 필요 없다. 방해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가만히 앉아서 중얼거리던 그 존재는, 어느 순간 생각의 정리를 마친 듯 다시 숲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다음 날. 셋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 다시 순찰을 나왔다.


“...”


시끄럽던 어제와 달리 침묵만이 남아있다.


‘진짜로 이를 줄이야.’


카를은 어제의 일을 회상했다. 마을에 들어오자 추격전을 벌이던 둘은 얌전해졌다. 마을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으니까.


하지만 저녁 식사 시간 때 하스트가 갑작스럽게 엘르의 어머니에게 엘르가 자신을 겁박했던 일을 말해버렸다. 이에 엘르는 기겁하며 하스트의 입을 막기 위해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겁에 질린 엘르는 빠르게 식사를 마친 후 도망가려 했지만, 이미 어머니의 손길은 그녀의 뒷덜미로 향해있었고, 그녀는 어머니에게 이끌려 조용히 사라졌다.


오늘 다시 만났을 때, 엘르는 하스트를 정말 죽일 듯이 노려봤다. 만약 마을 밖에서 둘만 남는다면 어느새 둘 중 하나는 사라질 것만 같은 눈빛이다. 물론 사라지는 것은 하스트일테고.


‘불편하다··· 차라리 전투가 낫겠어.’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이 분위기에 계속 노출되다가는 기운이 쭉쭉 빠질 것만 같다.


‘저 놈은 용케도···’


하스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휘파람을 불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하지만 그도 양심이 조금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살기가 따가워서인지 엘르 쪽으로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쳤다가는 엘르의 주먹이 날아올 것도 같고.


그는 엘르를 쳐다보는 대신 카를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은 마치.


‘둘만 남겨두고 어디 가지 말아 줘.’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제발. 아무 놈이나 시비를 걸어줘···’


전투를 한다면 이 분위기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카를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점심까지 그 어떤 동물도 그들을 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둘의 분위기는 나아질 줄을 몰랐다.


입이 바싹 마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엘르를 힐끗 쳐다본다.


‘아까보다 표정이 더 안 좋네.’


아직도 기분이 안 풀렸는지, 표정이 굳어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의 추측은 반만 맞았다.


“이상해···”


“응?”


오늘 처음으로 듣는 엘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다시 옆을 쳐다본다. 엘르의 표정이 더욱 굳어진다.


“이렇게 돌아다니는데도 어떻게 전투 한 번 없을 수 있지?”


그 생각은 카를도 계속 해온던 것이다. 그는 분위기 쇄신을 위한 전투가 필요한 것이었지만.


“숲이 원래 이런 거 아니야? 생각해보니 처음에 들어왔을 때도 그렇게 많이 습격받지는 않았는데.”


카를은 요 며칠 동안의 일은 생각했다. 어제는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전투가 벌어졌지만, 정작 처음 숲에 들어왔을 때는 습격을 거의 받지 않았었으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 분명 적을 때는 있었지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어.”


“흠··· 그런 말을 들으니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


“그게 뭐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평소와 다름은 어떤 일의 징조가 될 수도 있다고 했던가? 그리고 보통 그 어떤 일은-”


“크아아아!”


“... 나쁜 일이라고 했지.”


광포한 포효가 주위를 에워싼다. 그 소리를 들은 엘르가 깜짝 놀라 소리친다.


“어떻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녀의 말대로 주변에서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났다고 해도 일행의 앞에 모습을 보이는 저 존재들의 덩치에 걸맞은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쿠웅!


한 마리가 아래로 내려오고 한 마리는 나무 위에 그대로 있다. 팔과 다리에 튀어나온 핏줄과 마치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기 멋대로 꿈틀대는 근육들이 그것들의 힘을 단편적으로나마 일행에게 드러내고 있었다.


“오거! 어떻게 이럴 수가?”


엘르는 자신들의 앞에 보이는 존재들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오거라고?”


카를의 의구심에 대답한 것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딴청 피우던 하스트였다.


“그래. 저것들은 트롤만큼이나 강한 주제에 나무도 타고 다니는 놈들이야. 엘프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최악의 적이지. 개체에 따라 다르지만, 육체적 능력은 트롤보다 위에 있는 놈들도 있을 정도의 엄청난 괴물들이야. 게다가 투쟁심이 엄청나고 흉폭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싸움을 걸어오지. 그것도 먹이사냥이 아닌 그저 죽이기 위한 싸움을. 하지만··· 위험한 놈들이라 판단한 엘프 마을에서 보이는 족족 토벌해서 이제는 이 근처에서는 거의 사라졌을 텐데...”


계속 침묵하고 있던 것이 힘들었는지, 길게도 말하는 하스트였다.


어찌 됐든 하스트의 말에 틀린 것이 없는지 엘르가 신경질적으로 동의한다.


“맞아! 나도 요 2년간 오거는 시체도 본 적이 없어!”


“근데 둘이나 있는데?”


카를은 눈 앞의 오거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두 마리 모두 카를을 아래로 내려다볼 정도로 크다.


‘누군가를 올려다보다니. 나름 신선한데?’


물론 평원에 카를보다 큰 동물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형의 동물들 중에서는 없었다.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서는 트롤과 오거가 유이하다. 10년도 더 전부터 이미 웬만한 성인들보다도 컸던 그였기에 이런 기분은 거진 십몇 년 만이다.


“어찌 되었든 저것들을 봤으니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어!”


오거를 기필코 죽이고 말겠다는 그녀의 말에 살기가 등등하다. 카를은 왠지 아까 하스트에게 뻗어나간 살기의 연장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 정도의 눈치는 있다.


오거들도 그 살기를 느끼고 단번에 표정이 험악해진다. 자신들에게 살기를 내뿜는 엘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리고 오거들은 그 정도의 살기는 가소롭다는 듯 거칠게 포효하며 행동을 개시했다.


“엥?”


오거가 달린다.


“뭐야? 도망가잖아?”


그런데 방향이 이쪽이 아니다. 방금까지 당장이라도 이쪽을 찢어 죽일 것처럼 포효하던 놈들이 갑자기 등을 보이며 도망가고 있다.


“투쟁심이 많아서 물불 가리지 않는다며?”


카를이 하스트에게 어찌 된 거냐고 묻지만, 하스트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 어···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것은 엘르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그녀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지금 멍하니 있을 때야!? 빨리 저놈들을 쫓아야지!”


그리고 그녀는 한발 먼저 달려 나갔다. 하스트와 카를도 그녀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엘르를 따라잡은 카를이 그녀에게 묻는다.


“근데 꼭 잡아 죽여야 해? 어차피 저렇게 도망갈 정도면 사람에게 안 덤비는 거 아니야?”


“저놈들이 나중에 다시 습격하면? 그냥 죽으라고?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저놈들은 안 돼. 이 숲에서 유일하게 우리 마을 사람들을 정면에서 죽일 수 있는 놈들이라고. 일이 터지고 나서 대처했다가는 늦어!”


‘천적 같은 건가···? 아니, 이 경우에는...’


말을 들어보면 개인의 힘 차이가 완벽하게 한쪽으로 쏠린 것 같지는 않다.


‘숲이라는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자 같은 느낌이군. 그런데··· 생각보다 더 빠르네.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는 있지만, 완벽하게 따라잡으려면 조금 더 걸리겠는걸.’


하지만 카를의 생각과는 다르게 숨 가쁜 추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한 장소에서 오거들이 멈춘 것이다.


“뭐야 이건? 공터?”


그곳은 엘프 마을처럼 어떠한 나무의 방해도 없이 빛이 내려오는 장소였다. 갑작스레 바뀐 풍경에 일행 또한 오거들처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언제 이런 곳이? 아니, 얼마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엘르는 공터의 풍경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렇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네. 주변의 나무들을 봐. 아직 생생하잖아. 그 아래의 풀들도 아직 생생하고.”


하스트가 공터의 변두리에 있는 부서진 나무들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우리를 위해 손수 만드신 모양인데?”


오거들은 공터에서 가만히 일행을 마주 보고 있다. 일부러 이곳으로 안내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행동이 엘르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다. 흉포하고 직선적인 것으로 이름 높은 오거들 답지 않게 지능적인 행동이었다.


“저것들, 뭐하는 거지?”


카를의 말대로 오거들은 일행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시선만은 계속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느낀 것이 있는 듯 하스트가 말한다.


“왠지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엘르는 하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온몸으로 오한이 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뭐? 설마-”


쿵! 쿵!


불안이 현실에 나타나며 그녀가 하는 말을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거들이 사방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함정이야!”


설마 오거들이 이런 생각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무리 엘르가 강하다고 해도 한 번에 두 마리를 상대하기 힘든 것이 오거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상의 숫자가 여기에 있다. 엘르는 양 옆의 둘을 바라보고 침울해했다.


‘이 둘이 나보다 조금 더 강하다고 해도 이 수는 너무 많아···’


게다가 지능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전에 보았던 오거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겨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승리는커녕 도주조차 힘들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오거들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최악의 상상을 하려는 찰나, 공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척. 척.


“어?”


다른 누군가가 공터에 들어서는 소리를 듣고 또 다른 적이라 생각하여 절망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 나타난 것은 전혀 생각도 못한 인물들이었다.


“엘르? 하스트?”


그곳에 나타난 것은 또 다른 순찰인원들이었다.


“너희들이 왜 이곳에? 설마 우리처럼 오거를 쫓아왔나?”


“그렇다면 아저씨네들도?”


오거들이 불러들인 것은 카를네만이 아니었다.


“어? 너희들?”


오거들이 나타났던 곳 뒤쪽으로 속속들이 다른 인원들이 채워져 간다. 그들 모두 오거를 쫓아온 것이다.


어느새 공터에는 순찰을 나온 전원이 모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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