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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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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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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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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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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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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최강의 오거 (4)

DUMMY

“머리··· 아프다···”


술법에서 빠져나온 침입자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틀거린다. 하지만 아무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공격이 오히려 적에게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공격 의지를 막고 있다.


하스트는 침입자의 눈을 보고, 이 상황을 파악했다.


‘오히려 적의 자연력을 뺏은 것이 해가 되었어.’


침입자의 머리에 난 상처는 육체가 스스로 만들어낸 자연적인 치유가 아니었다. 자연력에 의한 치료였다. 하지만 영물의 영역에 올라 자연력에 친숙해진 육체라 하여도, 뇌를 침범한 과다한 자연력에는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오랫동안 그 상태가 지속되었다면, 뇌는 자연력에 의해 그 기능을 잃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까처럼 계속해서 폭주하던가.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힘을 소모시킨 덕분에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점점 고갈되어가는 자연력 때문에, 뇌를 침범했던 자연력이 다른 부위로 이동한 덕이다. 하지만 뇌를 침범당한 반동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다. 지금도 자기 자신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 만약, 다시 자연력에 침범당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어도 계속 전투는 지속될 테지만. 아니, 그럴 수도 없겠군.’


침입자는 이미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에게 자연력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자신의 술법에 힘을 흡수시킬지언정 아마 다시 자신의 안으로 채워 넣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어쩌지? 모두 지쳐있어. 이 상태로 저놈을 막기에는 무리야.”


촌장이 침울한 목소리로 현 상황을 확인해준다. 침입자의 힘이 많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 역시 지쳐있기는 마찬가지다.


“어쩌긴 뭘 어째요? 술법이 안되면 화살이라도 쏴야죠.”


엘르가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표정으로 술법을 걸지 않은 화살을 냅다 쏘아버린다. 물론 통하지 않는다.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침입자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너무나도 쉽게 쳐냈다.


“안 통해.”


하스트는 고개를 저으며, 엘르의 행동을 부정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당할 거야?”


엘르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화살을 쏴댄다. 침입자는 화살이 귀찮았는지, 장벽과 같은 형태의 방어막을 형성한 채로 몸을 돌본다. 자신을 괴롭히는 힘을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달려들려고 했던 카를은 방어막을 보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오. 저 놈의 바람.”


회오리처럼 옆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방어막이다. 그에 엘르도 분한 표정으로 사격을 중지한다. 저 방어막이라면 수백 발의 화살이 쏟아진다고 해도 충분히 날려 보낸다.


“바람···?”


하스트는 불현듯 카를의 말에서 뭔가가 걸리는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카를은 갑자기 자신을 빤히 보는 하스트의 모습에 움찔했다. 하스트는 정확히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두른 천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하스트는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능할까?’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양쪽이 가지고 있는 무력 수준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다.


하스트가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고민하자,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엘르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에게 소리쳤다.


“야! 뭔 고민을 그렇게 해!? 그냥 해! 뭔지는 몰라도, 지금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실행할 때야!”


엘르의 확언이 하스트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어.”


마음을 굳힌 하스트가 모두에게 외친다.


“여러분. 지금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뭐?”


그 말에 모두가 부정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왠지 아까처럼 마을을 버리고 가자는 말을 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또 포기하자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촌장은 하스트의 진의가 무엇인지 물었다.


“아뇨. 포기할 겁니다.”


“야! 하스-”


엘르가 다시 욱해서 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려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입을 틀어막아 준 덕에 모두의 귀는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을이 아닙니다. 바람을 포기할 겁니다.”


“그게 무슨···?”


“어차피 바람으로는 저쪽이 명백히 상위의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하나? 게다가 우리가 포기한다고 저쪽도 버리진 않을 거 아닌가?”


남은 것은 활뿐이었지만, 도저히 순수한 활로는 적을 죽일 자신이 없다.


철이 들기도 전부터 바람과 함께하는 엘프 마을 사람들은 어느 정도 바람에 의존적인 면이 있었다. 술법을 사용하면 남부 사람들보다 월등히 강한 화살 공격을 할 수 있지만, 정작 술법이 없으면 남부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다. 오직 활의 장력만이 공격력에 영향을 받는 남부와는 달리, 이 마을의 활은 장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침입자는 육체 능력도 오거를 넘어섰다.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정면에서 활을 쏜다고 해도 피부와 근육만으로 튕겨낼 것이 분명하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스트가 모를 리가 없다.


모두의 의구심을 풀어주기 위해 하스트가 대답한다.


“버리게 만들어야죠.”


그 말과 함께 하스트가 카를이 두르고 있는 천을 가리킨다. 촌장이 하스트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 천은 카를을 압송할 때 사용했던 진공의 천이었다.


“그렇군. 적의 주위를 진공상태로 만든다는 건가? 그렇다면 확실히 적이 사용할 수 있는 바람의 양도 적어질 테지.”


“네. 하지만 작은 공간으로는 안됩니다. 적의 속도라면 반경 몇십 미터 정도는 순식간에 돌파당할 겁니다.”


“그렇게 거대한 공간을 진공으로? 아쉽지만, 그럴 순 없네. 감당할 수 없어. 지속적으로 안의 바람을 밖으로 내보내며 진공을 만들려면, 바깥의 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동시에 막아야 하네. 그런데 그렇게 큰 공간을 진공으로 만들 여력은 지금 우리에게 없어.”


“아뇨. 꼭 진공으로 만들 필요 없습니다. 만들면 좋긴 하겠지만, 힘들겠죠. 단지, 밖의 바람이 안으로 들어오지만 못하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


촌장은 바람을 내보낼 방법을 물으려 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하스트가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도 공격할 수 없어.”


촌장의 말에 하스트는 고개를 돌린다.


“왜 날 보냐?”


그 시선 끝에는 카를이 있다.


“친구. 미안하지만, 이 작전의 핵심은 다름 아닌 너야. 아마도 작전이 실행되는 순간, 전투원은 너밖에 없을 거야.”


“뭐?”


그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하스트를 바라본다.


“나 혼자 싸우라고? 저 놈이랑? 날아갈 텐데?”


“그건 우리가 막을 거야.”


“야.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냐? 난 이 마을에 속아서 골탕도 먹었는데, 무슨 애착이 있어서 혼자 싸워?”


맞는 말이다. 같이 전투를 한다면 모를까, 외지인인 카를보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혼자 나가서 목숨 걸고 싸우라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부디 부탁하네.”


촌장이 카를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촌장님!”


모두가 식겁해서 촌장을 일으키려 다가가지만, 촌장은 만류한다.


“염치없는 말이지만, 믿을 건 자네밖에 없어. 자네가 혼자 저 괴물을 이겨줘야 하네. 만약 이 일을 수락만 해준다면, 자네가 달라는 것은 뭐든지 해주겠네. 그래. 마을의 보물이라도 주겠네.”


“촌장님! 그건 이 마을의 존재 의의입니다! 어찌 그런 걸 외지인에게!?”


“존재 의의 때문에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을 놔둬야겠나? 어차피 여기가 파괴되면 저놈에게 뺏기는 것은 마찬가지야.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보물을 숨겨놓은 장소가 무너져서 그 힘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어. 그리고 저 놈이 그 힘을 못 느낄 리가 없지.”


촌장은 다시 카를을 바라보며 부탁을 거듭했다.


“그 보물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걸세. 만약 자네가 그것을 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환대받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야.”


“흠··· 그건 조금 끌리네요.”


“그렇다면 나서 주는 건가?”


“까짓 거 그러죠.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구경도 하고 싶고.”


“이 은혜를 잊지 않겠네.”


“그런데 그러려면 빨리 시작하는 게 좋지 않아요? 저 녀석 이제 움직이려고 하는데.”


카를의 말대로 침입자는 힘을 어느 정도 갈무리한 것인지,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있는 마을 안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니, 침입자도 아직 전투를 계속하려는 모양이다.


“그건 걱정 마. 이미 준비는 끝났으니까.”


어느새 마을 사람들은 부채꼴 모양으로 흩어져 있다. 촌장과 카를이 대화하는 사이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스트도 준비를 마쳤는지, 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허. 내가 아직 수락하지도 않았었는데, 이미 준비하고 있던 거야? 하하. 그렇게도 내가 믿음직스러웠나?”


“아니.”


“...”


하스트의 차가운 말투에 카를은 머쓱해졌다.


“그저 지금은 이거 말고 답이 없어서일 뿐이야.”


“... 그런가.”


침입자가 앞으로 걸어오고 있다. 자신의 상대를 확인한 카를이 앞으로 걸어가려 한다.


“어째서야?”


갑작스러운 하스트의 의문이 카를의 전진을 막는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카를에게만 들리는 모양이다.


“뭐가?”


“넌 그다지 물욕이 있을 것 같지 않았어. 보물이 그리도 탐나나?”


“탐난다기보다 좀 궁금하잖아.”


“겨우 그런 가벼운 이유로 어째서 목숨을 거는 거지? 솔직히 넌 여기를 버리고 가도 아무 상관없잖아.”


“그게 작전을 제시한 네가 할 말이냐?”


하스트의 술법인지, 카를의 말도 주변으로 퍼지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도 둘이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구태여 그것을 캐묻지도 않는다.


“난 그저 제시했을 뿐이야. 결정은 네가 하는 거였고. 대답해줘. 어째서야? 적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오거야. 저 오거보다 강한 존재는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힌다고 감히 말할 수 있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실력에 자신이 있어?”


“흠···”


카를은 하스트의 질문에 잠시 생각한다.


“아니, 자신 없어. 애초에 난 태어나서 내 실력에 자신 있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궁술, 투척술, 창술, 방패술, 하다못해 검술까지. 나보다 대단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어. 그나마 가장 자신 있어하는 검술조차 어느 마을에서도 평균에 미치지 못해.”


“그런데 왜 목숨을 거는 거지? 두렵지 않은 건가? ”


“하하하. 그래, 맞아.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크겠지.”


들리지 않는 카를의 웃음을 뒤로하고 촌장에게서 작전의 시작이 선언된다.


“시작하자!”


사람들이 술법을 펼친다. 지금까지와의 술법과는 다르다. 바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배제하기 위한 술법이다. 술법의 발동을 보고 침입자는 잠시 움찔했지만,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아닌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술법은 허공으로 퍼져, 일정한 공간을 기준으로 막을 형성한다. 그 목적은 안과 밖의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해 안 간다.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나? 이제 너희 무슨 짓 해도, 나 못 이긴다. 차라리 도망가는 거 어떠나? 그러면 지금은 살 수 있다. 나중에 마주치면 다 잡아먹힐 테지만.”


그건 자만이 아니라, 명확한 사실이었다. 지금 이 순간, 하스트를 포함한 엘프 마을 사람들 전부가 덤벼들어도 침입자에게 당해낼 수 없다. 힘의 상성이 너무나도 명확하다.


“하스트! 네 차례야!”


엘르가 술법을 유지하며 하스트를 부르지만, 하스트는 술법을 펼치지 않는다. 카를에게 듣고 싶은 대답이 아직 더 남아있다.


“그게 가장 크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사실 난 이상한 놈이지.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으니까. 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이 힘을 얻은 게 아니야. 그렇기에 긍지가 없지.”


눈을 감은 카를의 눈에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관. 그는 저주받았다고 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강해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언제나 그는 일과가 끝나고, 자신과의 싸움을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훈련도, 그에게는 고난이었다. 지켜보기만 해도 마음이 깎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검술은 육체와는 완전히 달랐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빼앗길 것 같던 그의 검술은, 너무나도 섬세했으며, 또한 현란했다.


고요의 평원 마을의 경비대장은 트롤을 이기기 위해 죽을 각오로 오직 하나의 검술을 완성했다. 다른 모든 검술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던 그의 내려베기는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했다. 그런 내려베기는 아마 평생 동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봐도 반칙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나야.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도 난 대답할 수 없어. 나조차 모르니까. 그래서 난 언제 내 힘이 없어져도 딱히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아. 내가 이룩한 게 아니거든. 난 다른 사람과의 큰 괴리를 느끼고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그 둘과 싸우면 자신이 승리한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 비록 그들과 기술을 겨룬다면 지겠지만,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면 지겠지만, 전투에서는, 현실은 다르다.


그들이 아무리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카를에게는 소용없다. 그들의 기술을 넘어선, 압도적인 힘이 카를에게는 있다. 모든 기술은 힘 위에서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야! 카를! 하스트! 둘이 뭘 속닥거리고 있어! 저놈이 다가온다고!”


엘르의 독촉에도 하스트는 카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거야?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거야?”


“아니. 그렇게 말해주면 고마울 수도 있지만, 그런 숭고한 게 아니야. 그저-”


카를이 눈을 뜨고, 다시 서서히 앞으로 걷는다.


“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 적에 의한 죽음의 공포를. 그것을 모르는데, 어찌 적을 두려워할 수 있겠어?”


하스트는 그의 대답이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만 터트렸다.


“하··· 하하하하. 참으로 단순한 이유구나. 자신감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야!”


“네네. 알겠습니다.”


엘르의 죽일듯한 독촉에 드디어 하스트가 움직인다. 더 뜸 들이다가는 엘르가 술법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느낌을 강렬히 받았다. 그에 땅에 손을 대고, 술법을 해방한다.


화르륵!


대지에 가득 수 놓인 마을의 잔해를 따라 화염이 달린다. 회오리가 빨아들였던 갖가지 물질들이 화염의 먹이가 되어 재로 화한다.


“이건?”


침입자는 그 열기에 위협을 느꼈다. 그가 전혀 생각지 못한 공격이었다. 사방을 가득 메운 화염을 없애기 위해 바람을 이용하지만, 소용없다. 그의 바람으로도 미처 다 잠재우지 못할 정도로, 화염은 거듭 커지고 있다. 결국 침입자는 자신의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 힘을 피부에 압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더 강해졌군.”


대단한 조작능력이다. 마치 바람이 또 하나의 피부가 된 것처럼 얇게 퍼진다. 하지만 결코 그 안에 담긴 힘이 작지 않다. 엘프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화살에 술법을 걸어도 방어를 뚫지 못할 정도로 견고하다. 바람이 아니라 바위의 술법을 사용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람들은 혹시 열기로 인해 침입자가 큰 피해를 입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침입자의 능력은 그 기대를 거칠게 무너뜨렸다.


화염으로 인한 재와 연기가 어느새 상공으로 날아간다. 퍼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펼친 술법의 막에 막혀 연기가 갈 곳을 잃고 쌓여간다.


하스트가 술법이 제대로 펼쳐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다. 술법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화염의 탐욕은 자신이 없어도 모든 것을 없애버릴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카를. 빨리 끝내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고 있지만,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거야. 들어오려는 바람의 압력은 엄청나게 무겁고, 안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그들의 술법도 먹어치울 테니까.”


“그걸 아는 놈이 그렇게 말을 걸어댔어?”


하스트는 카를의 불평에도 어깨를 으쓱 일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창에 술법을 걸어준다. 창을 단단하게 해 줄, 대지의 술법이다.


“너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단단한 무기겠지.”


카를이 하스트의 말을 알아듣고 만족스러운 듯 웃는다. 그리고 곧바로 화염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람들은 불안했다. 근처에만 있어도 살이 익어버릴 것 같은 고온의 열기다. 그런데 어찌 이런 곳으로 전투가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침입자가 기대를 무너뜨리듯, 카를은 불안을 잠식시켰다. 이글거리는 화염 속을 카를은 아무 이상 없이 멀쩡히 걸어간다.


그의 안위를 확인하는 것도 잠시, 대기가 화염에 일그러지고, 자욱한 연기 때문에 안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그의 승리를 비는 것뿐이다.


단, 한 명만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 힘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다오.’




“알겠다.”


침입자는 왜 이런 술법을 펼쳤는지 이제 이해했다. 화염이 먹이로 삼은 것은 지상의 잔해들만이 아니다. 바람이, 공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바람마저 화염의 먹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침입자가 이 공간에서 빨리 몸을 빼려는 순간, 카를이 그를 막아선다.


“어이. 어디 가냐?”


“...”


침입자는 느꼈다. 이 기나긴 전투의 마지막 상대가 바로 눈 앞의 사나이라는 것을.


카를과 침입자가 마주 선다.


“야. 우리, 말도 통하는데 말로 해결하는 거 어때? 너 이 마을 사람들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스승님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필요 없다. 그들 모두 나보다 약하다.”


“그럼 이대로 뒤로 돌아서 가. 왜 여기서 어물쩍거려?”


“더 강해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저곳에 날 더 강하게 해 줄 무언가가 있다.”


“촌장님이 말한 보물을 말하는 건가? 진짜 느낄 수 있나 보네. 지금도 충분히 강한데, 왜 더 강해지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향상심이네.”


“강해지고 싶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너 전사 아니다. 전사, 강해지는 것에 목숨 건다.”


“그래. 난 전사 아니다.”


“그리고 난 목표가 있다.”


“목표가 있다고? 너보다 강한 놈이 있다는 건가?”


“알 필요 없다. 전사 아닌 너와, 도움도 안 되는 너와 대화 안 한다. 나중에 먹어줄 테니 길 비켜라.”


“하하하. 대답 안 하겠다는 건가?”


카를이 창을 든다. 창고에서 발견한 뼈 창이었다. 창고에서 가지고 온 목제 창은 모조리 화염에 불타버렸다. 결국 유일하게 남은 뼈 창은 하스트가 걸어준 술법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힘으로 말하게 해 주지.”


“나와 힘으로? 너 제정신 아니다. 창에서는 조금 느껴지지만, 너에게서는 다른 힘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보다 오거 힘, 아주 강하다.”


“그래? 그건 맞지. 너희는 인간보다 아주 강하더라. 그런데 하나 잘 못 되었네. 여기 있는 건 인간과 오거라는 종족이 아니라-”


카를의 손이 휘둘러진다. 창의 궤적을 따라 화염이 일소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창에서 엄청난 힘을 느낀 침입자는 팔과 어깨를 이용해 창을 막는다.


“큭!”


창에서 생성된 충격파가 주변을 밀어낸다. 순식간에 둘 주위가 깨끗해지고, 공터가 생성된다. 그야말로 화염의 투기장이었다.


“-너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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