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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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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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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87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8.09.1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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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동료

DUMMY

“푸하하하. 아주 가관이었지. 얼이 빠진 그 표정이란.”


촌장의 집. 그곳에서 촌장은 하늘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앞의 식탁에는 다양한 먹을 것과 술이 놓여 있었다.


“... 너무 그렇게 놀리지 마십쇼.”


그리고 촌장의 반대편에는 카를이 있었다. 그는 입이 삐죽 나온 상태에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니야. 이 형은 감동했다.”


그곳에는 하스트도 동석해 있었다.


“형은 얼어 죽을. 날 그런 식으로 속여?”


카를은 하스트를 노려보았다. 만약 단 둘만 있었으면 분명히 폭력사태가 일어났었을 것만 같은 험악한 표정이었다.


“억울하다. 나도 끌려 올 때만 해도 몰랐어.”


“그래. 하스트 군은 우리의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아준 것뿐이네.”


“맞아. 게다가 내가 무슨 일을 했어?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그 말이 맞다. 하스트는 그저 광장이 보이는 집에서 술과 음식을 먹고 있었을 뿐이다.


“쳇···”


어디다 화풀이라도 하고 싶건만, 여의치가 않다.


‘젠장. 설마 다 연극이었을 줄이야. 아오.’


그렇다. 카를을 잡아두고, 하스트를 죽였다고 하며 도발한 것은 모두 카를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정말 위험인물은 아닌지. 그의 배경 출신은 둘째 치고, 덩치부터가 위험해 보였으니까.


“멍청이. 아저씨들한테 들어보니 엄청 허술했다고 하던데, 그걸 속아? 바보야?”


옆에서 묵묵히 아침밥을 먹던 엘르는 카를을 비난했다.


“끙···”


울컥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이상한 점이 많았으니까. 눈치 못 챈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아빠도 아빠예요. 다 들었어요. 이 녀석을 심문할 때, 갑자기 사과를 하려고 하질 않나. 표정도 엄청 이상하게 했다고 하고. 정말 이 녀석이 위험한 녀석에다가 멍청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아빠의 이상한 연기가 전부 망칠 뻔했잖아요!”


“딸아. 난 최선을-”


“못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잘하는 사람이 대충하는 게 나아요. 다른 적임자도 있는데 왜 아빠가 거길 나서요?”


“그래도 촌장인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그렇다면 촌장 직도 때려치우시지 그래요? 어차피 평소에도 저 쫓아다니느라 촌장 일도 잘 안 하신다고 하던데.”


“누가 그러더냐?”


“제가 그걸 알려줄 것 같아요?”


‘부녀끼리 엄청 잘 싸우네.’


그 광경을 보며 카를은 지나간 일을 생각했다.


촌장의 이상한 태도는 연기였다. 그는 어색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카를은 그것 때문에 촌장을 더욱 위험하게 여겼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람으로 착각했으니까. 그것도 힘이 있는.


그것만이 아니다. 보초들이 자리를 비우던 것. 취객이 감옥 앞에서 넘어진 것들. 그것들도 모두 작전의 한 부분이었다.


‘정작 감옥문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열려있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길까 봐, 일부러 감옥문에 흠집을 낸 거라고.’


그 부분은 촌장의 연기와는 다르게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취객 연기는 아주 놀라웠다. 평소에도 그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내가 사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밖으로 나오려는 아이를 필사적으로 막아서던 이유도.’


다른 마을 사람들도 이 작전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 엄마가 그렇게 기를 쓰고 아이가 못 나가게 막았던 것이다. 아이가 카를을 발견했더라면 모든 작전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게다가 광장에서 모두가 숨을 죽이던 느낌도 착각이 아니었어.’


그들은 자는 척하며 카를을 감시했다. 카를이 나타나고 감시에 너무 집중하느라, 자는 척하는 것에 소홀했을 때 카를이 수상하게 여기는 바람에 들킬뻔했지만.


‘거기가 고비였다고 했지.’


만약 카를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그중에서 누군가를 해코지하거나 납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그런 낌새가 있었으면 그 광장에서 모두와 싸우게 되었을 것이다.


‘정문이 열려있던 것도 일부러···’


어차피 바람 장벽 때문에 마을의 영역에서는 나가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문도 그냥 열어준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문만이 아니라 외벽을 지키던 사람들도 모두 광장에 있었다고 한다.


“에휴···”


자신감이 사라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이 머리가 나쁘다거나 눈치가 없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좋다고도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후후.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런 상황이면 아무리 눈치가 빨라도 속게 될 거에요. 이거 드시고 화 푸세요.”


한 여인이 다가와 차를 건네준다. 엘르의 어머니였다.


“아. 감사합니다.”


카를은 차를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 그녀의 위로와 차의 향이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는 자책을 거두고, 차를 음미하며 즐기는 풍경처럼 멍하니 부녀의 싸움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저 얘는 뭐 하고 있었어?”


그렇게 툭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질문을 내뱉었다.


“응? 누구? 엘르?”


그 말을 하스트가 받는다.


“어. 보아하니 이번에 날 속이던 사람들은 전부 전투원이었던 것 같은데, 왜 저 얘는 없었어? 여기 사람들 평균은 모르지만, 트롤 같은 괴물이 돌아다니는 숲을 혼자 돌아다닐 정도면 꽤 강자일 것 같은데.”


만약 있었다면 광장에서라도 보였을 것이다. 카를이 아는 얼굴은 얼마 안 되니 쉽게 눈에 띄었을 것이다. 애초에 머리 색도 아주 눈에 띄는 색이니.


“아~ 그거? 다 이유가 있지. 저렇게 자기 아버지한테 연기 못한다고 욕을 욕을 하지만, 본인은 더 못하더라고. 네 앞에 서자마자 들킬 것 같아서 이번 작전에는 참여 안 시켰다고 하더라. 저렇게 아버지를 들들 볶는 것도 그 때문인걸. 자기는 쏙 빼놓고 일을 진행했다고.”


“그런 사연이···”


“야! 하스트! 그걸 말하면 어떡해!?”


자신의 아버지와 시끄럽게 싸우느라 못 들었을 줄 알았는데 용케 들었나 보다. 이번에는 하스트를 윽박지른다. 하스트는 귀를 막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는 짓들이 꼭 10살짜리들 같군.’


“휴··· 이제야 살겠군.”


하스트 덕분에 딸에게서 벗어난 촌장이 카를에게 다가왔다.


“그래. 이제부터 어찌하겠나? 우리는 자네에 대한 의심 같은 건 더 이상 안 가지기로 했네. 어찌 되었든 자네를 시험한 것은 우리고. 자네는 그것을 통과했으니.”


“전 애초에 이 마을에 정보를 얻으러 온 것이니 그것만 얻는다면 바로 길을 떠나도 상관없습니다.”


“정보라··· 세상에 대해서라면 하스트만큼 정통한 사람도 드물 텐데 왜 우리한테? 하스트 군도 모르는 일을 알아내려는 건가?”


“그게··· 동료라고는 했지만, 사실 하스트와 만난 지도 얼마 안 되었고. 그가 하는 말들이 모두 믿기지가 않아서··· 아, 지금도 안 믿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전부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 그러게, 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았어?”


하스트는 엘르를 피해 식탁을 빙빙 돌면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카를은 언제까지 저렇게 뛰어다닐 것인지 궁금해했고, 그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둘 모두 자리에 않으세요. 먼지가 날리잖아요.”


엘르의 어머니가 조용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뿜어지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다. 그녀의 기운이 주변을 짓누르는 느낌이다.


“넵.”


그 느낌을 카를만이 느낀 것이 아닌지, 둘은 즉시 착석한다.


‘꼭 남매 같군.’


“이야기를 계속하세요.”


“어험. 그래, 계속 하지.”


‘이 집의 위계를 잘 알겠어.’


“무언가? 그 눈빛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궁금한 것이 무엇인가? 가능한 것이라면 대답해주겠네.”


“가장 궁금한 것은 요 근래 벌어진 특이한 일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십시오.”


“특이한 일이라··· 그래. 하스트에게 들었네. 자네 마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참으로 힘든 여행이구만. 이정표 자체가 애매하니··· 우리 마을에서 최근 들어 생긴 특이한 일이라고는 감옥에서 말했던 그것밖에 없네.”


“마을 사람들이 행방불명되고 있다는 것 말입니까?”


“그래.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어. 우리도 그 일만 아니었으면 자네를 이렇게 시험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리고 흠··· 그것 말고는 딱히···”


“여보. 저번에 그 일이 있었잖아요.”


“그 일? 아! 숲이 웅성거렸던 것 말이군.”


“숲이 웅성거렸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네. 얼마 전이라고 해야 하나? 이미 꽤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한데··· 숲에 있던 동물들 중 몇몇 개체가 괴성을 지르며 한쪽으로 이동하더군. 우리도 당황해서 그들을 따라나섰었지. 그런데 쫓다 보니 한 두 군데에서 그런 게 아니더군.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니 꽤 많은 수가 그런 반응을 보였어. 게다가 꽤 강한 놈들만 그러더군.”


‘그건 설마?’


“혹시 그놈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수는? 그게 언제인지 기억하십니까?”


카를은 흥분하며 촌장에게 쉬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카를. 진정해.”


하스트가 카를의 흥분을 잠시 막아선다. 그가 진정된 것 같자 촌장이 다시 말을 잇는다.


“흠··· 주변만이 아니라 산맥에서까지 동물들이 마을로 왔다고 했었지? 확실히 그렇다면 어느 정도 공통점은 있겠지만, 숲의 동물들은 그 상태를 얼마 유지하지 않고 다시 뿔뿔이 흩어졌어. 숲을 벗어나지도 않았지.”


“... 그렇습니까.”


일말의 희망을 찾았던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나 보다.


“관계있을지도 몰라.”


하스트가 실망하고 있는 카를에게 말한다.


“뭐?”


“너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하지? 한번 말해봐.”


“그건···”


카를은 그 일이 언제였는지 모두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때야.”


“그렇다면!”


카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온다.


“하스트. 너 어떻게 알았어? 보아하니 너도 언제 일어난 일인지 정확히 몰랐던 거 같은데.”


잠자코 듣고 있던 엘르가 하스트에게 묻는다.


“혹시 스승에게 들은 것 중에 이번 일도 있었어?”


“뭐!”


이번에는 촌장이 흥분한다.


“그게 사실인가?!”


“아닌데요.”


“아··· 그래?”


“저도 그때 느낀 게 있어서 그래요.”


“무엇을 느꼈다는 거야?”


엘르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하스트의 대답을 독촉했다. 카를은 하스트의 스승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지만, 말을 끊지 않기로 했다.


“거대한 힘이 세상으로 퍼지는 느낌. 만약 그 힘이 다른 동물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어느 정도 카를의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 납득은 돼. 그야말로 세상 끝까지 갈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걸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지?”


카를의 말에 하스트는 퉁명스레 대답한다.


“네가 날 안 믿었잖아. 날 안 믿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하는 말들을 모두 안 믿는 놈한테 내가 뭐하러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하냐? 믿지도 않을 거.”


“음··· 그건 그렇네.”


자신이 한 일이 있기에 순순히 납득하는 카를이었다.


하지만 하스트의 말에 무언가를 느낀 것은 카를만이 아니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힘이었는지 아는가?”


그 힘은 이 숲의 동물들에게 아주 잠깐이지만 영향을 미쳤다.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은데도 말이다. 미리 알아둬서 손해 볼 것은 없다. 정보만 있다면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그건 저도 몰라요. 거기까지는 느껴지지 않았어요.”


“참, 도움 안 되는 녀석이네.”


“엘르, 넌 느끼지도 못했잖아. 아니, 애초에 이 마을에서 느낀 사람이 있어? 나니까 그나마 가능했던 거야.”


“흥. 잘난 척은. 소인족들이었다면 더 잘 감지했을 거야.”


“그건 그렇지...”


“소인족?”


카를은 새롭게 들린 단어에 반응했다.


“그들이라면 그 힘에 대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고?”


“그래. 그들만큼 자연력에 친화력이 높은 존재도 없으니까. 하지만 찾기는 힘들 거야.”


“왜?”


“그들은 원래 북쪽에 있는 호수에 살았었어.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고 사라졌지. 왜 사라졌는지는 나도 물론이고, 근처에 다른 사람들도 몰라. 어느 정도 예상은 가지만.”


“어떤?”


“그들은··· 아주 자유분방하거든. 물의 자연력을 다루는 사람들이 바람보다 더 자유로워. 원래 마을이 있을 때도 개인적으로 잘 쏘다니더니, 이번에는 아예 마을 사람들 전부를 이끌고 여행을 떠나간 것 같아. 물론 내 예상이지만.”


“마을이 없이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게 가능하다고? 남부에서도 꿈도 못 꿀 일인데··· 그들이 그렇게 강해?”


“나름 강하긴 하지만··· 그들의 친화력은 자연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거든. 그들은 타고난 조련사야. 동물들과 함께 싸우지. 동물들이 아무리 강해도 그들은 그들과 친구가 돼. 강함 같은 것은 아무 의미 없지. 물론 모든 동물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구나···”


카를도 들어 본 적은 있다. 남부에서도 동물들을 조련하는 마을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약한 동물이나 초식동물들을 겨우 길들인다고 했다.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보살펴야 가능하다고. 길가다 다른 동물과 친구가 될 정도는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그들을 추적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어. 애초에 소인족이라는 이름대로 엄청나게 작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것은 가지각색의 동물들이야. 다른 동물들의 발자국이랑 섞여버리면 그대로 끝이지.”


“... 그렇군. 아쉽네.”


진심으로 아쉽다. 진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괜찮다.


‘굉장히 많은 것을 알아냈어.’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은 바로 남부와 북부의 차이점이다. 평생 동안 알고 있던 남부와 북부의 차이는 그저 동물들이 얼마나 강한가였다.


‘하지만 아니야. 이건···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달라.’


이들에게는 자연력이라는 힘은 아주 기본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이들의 무력의 정도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일 정도로. 반면 남부는 오직 육체의 힘이다.


“혹시··· 북부에서는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자연력을 다루는 경우가 있어?”


카를은 진지하게 하스트에게 물었다. 만약 동물들도 자연력을 다룬다면··· 끔찍하다.


“있어. 강한 놈들은 인간들만큼 다루기도 해. 게다가 그들은 지능도 높지. 아마 맞붙어보면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랑 싸우는 느낌이 들 거야. 뭐, 이 근처에는 그 정도까지 강한 녀석은 없겠지만.”


“이런···”


뒤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있다는 그 한마디. 그 한마디만이 카를을 관통했다.


‘힘이라면 웬만한 놈들한테는 지지 않겠지만··· 자연력은 달라. 자연의 여러 요소들을 활용하는 상대라니.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카를, 더 나아가서 남부의 모든 인간은 오직 짐승들을 상대하기 위한 훈련을 한다. 바로 눈 앞에서 치고받는 상대와의 싸움만이 전투술의 방향이었다. 원거리 공격을 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니 애초에 상정하고 훈련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자연력을 사용한다면? 아마 원거리 공격을 사용하지 않는 놈이 더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공격들까지 모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말로만 쉽지,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을 하는 것이니까.


‘미지의 공격에 대비하다 보면 움직임이 꼬여버릴 거야. 그렇다면 허점도 늘어날 테고. 골치 아프네. 앞으로 더 강한 놈들을 만날 거 같은데··· 쳇, 출발할 때만 해도 이런 걱정까지는 안 했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많나 보구만. 남부는 자연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더니, 그것 때문인가?”


“네. 자연력을 사용하는 놈과는 싸워본 적이 없어서요. 이대로 아무 대책 없이 산맥으로 가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흠··· 그렇다면 내가 한 가지 제안해도 될까?”


“무슨?”


“우리 마을에서 잠시 지내게. 다른 것까지는 힘들겠지만, 바람의 자연력은 우리 마을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익숙해질 걸세.”


“흠···”


“물론 공짜는 아니네. 자네는 자연력을 쓰는 강적과 한번 싸워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으니.”


“아저씨. 설마 그 행방불명의 원인을 카를에게 조사하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하하하. 하스트군은 눈치가 빠르군. 맞네. 우리 마을 사람들을 습격할 정도라면 분명히 아주 강한 놈이 분명해. 인간이든 아니든, 카를 군의 기대에 어긋나지는 않을 거야.”


“딱히 기대는···”


“물론 우리도 찾아 나설 것이지만, 워낙 일손이 부족해서 말이야. 자네가 만약 그놈을 찾는다면 사람들을 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네. 어떤가? 자네는 훈련과 적응을. 우리는 안전을. 서로 좋은 조건인 것 같은데?”


“그냥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하- 읍읍~!”


촌장은 하스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기대에 찬 눈으로 카를을 바라보았다.


“... 알겠습니다. 저도 불안감을 느끼며 여행을 지속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좋아! 그렇다면 내가 적당한 사람을 한 명 붙여주겠네. 어차피 하스트와 셋이서 내일부터 열심히-”


“제가 갈게요.”


“엘르? 아니, 넌 안- 읍읍~!”


촌장은 목숨보다 귀중한 딸을 잘 모르는 카를과 같이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아내의 손 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든 말을 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풀려나지 못한다.


“그러려무나. 아빠한테는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 피곤할 텐데 오늘은 셋 모두 쉬고.”


촌장은 계속 발버둥 쳤지만, 아내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아까와는 발버둥의 느낌이 다르다. 카를은 밤새 쌓은 피로도 풀어야 하니, 그녀의 말을 따랐다.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숙박할 곳은 이 곳에 오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미 짐도 풀었으니 오늘은 그곳에서 푹 쉬면 된다.


카를과 하스트가 일어나자, 엘르가 따라온다. 내일 일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셋이 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촌장은 대화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헉헉.”


“왜 그렇게 숨이 차셨어요?”


“당신이 내 숨구멍들을 막았잖아! 헉헉. 숨 막혀 죽을 뻔했네.”


“그러게 왜 발버둥을 쳐요?”


“헉헉. 후우··· 왜 그랬어? 왜 엘르가 저 녀석들을 따라가게 놔뒀어? 다른 사람을 붙이고 나랑 같이 다니게 하려고 했는데. 쩝.”


“후후후. 당신도 딸을 그만 놓아주세요. 걔 나이가 몇인데.”


“어허. 자식은 언제나 부모에게 아이인 법.”


“후후후. 그 말을 들으니 딸을 아비의 검은손에서 벗어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네요.”


“여보···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튼 걔도 혼기가 꽉 찬 지 오래예요. 차다 못해 넘칠 지경이라고요. 게다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외부 남자들과도 한번 어울려보겠어요?”


“안 돼! 엘르는 내 거야! 헉헉.”


퍽하는 소리와 함께 촌장의 몸이 기역자로 꺾인다.


“끄억···”


“정신 차려요.”


훌륭한 복부 공격이었다.


“여··· 여보··· 농담인데···”


촌장은 바닥에 쓰러졌다.


“어머. 미안해요. 당신이 하면 농담으로 안 들려서요.”


“흑···”




“그렇게 해서 내일 그 시간에 나오면 돼. 알겠어?”


카를의 방에서 세명의 남녀가 의견 조율을 마무리하고 있다.


“네네.”


“그럼 내일 봐. 멍청하게 늦지 말고.”


엘르는 내일을 기약하며 방에서 나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왠지 모르게 울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도 좀 쉴까.”


“...”


“왜 말이 없어? 어이, 카를?”


“미안하다.”


“응?”


갑작스러운 사과에 하스트가 어리둥절해한다.


“지금까지 네가 나한테 한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었어. 그런데도 널 거짓말쟁이로 치부하고 무시했지. 정말 미안하다. 넌 그저 사실을 알려주려 했을 뿐인데. 내가 무지렁이라서 널 의심했다. 미안하다.”


카를은 진지한 얼굴로 하스트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자신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거짓말쟁이 소리를 계속 들었으니 기분이 나빴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그에게 부끄러울 뿐이었다.


하스트는 카를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마음 쓰고 있었구나. 하긴 만약 내가 엄청나게 섬세한 사람이라면 목매달아 죽었을지도 몰라. 내가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


반박하고 싶었지만, 사과하는 입장이라 함부로 입을 놀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뭘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


“그래. 우리 사이. 우린 이제 친구 아니겠어?”


“친구라···”


그는 자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친구와 동료라고 노래를 불렀다. 어떻게 보면 그가 먼저 다가와 준 것이리라.


물론 하스트는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거였지만.


“아니지. 내가 나이가 많으니 이제 친구라고 하기에도 그런가? 형 동생?”


“훗.”


하스트의 너스레에 진지함이 사라진다. 카를의 입가를 굳히게 했던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많이 사라졌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뭘 우리 사이에 형 동생이야. 게다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친구야?”


“헷. 아직도 긍정하지 않는구나.”


“언젠가는 친구가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 만족해라.”


카를은 하스트에게 악수를 청한다. 하스트는 그에 응했다.


“너와 동료가 되는 것에 긍정한다.”


“오오. 또?”


“넌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으니 많은 지도 부탁해.”


“그게 목적이었구만. 근데 그게 부탁하는 태도야? 너무 당당한데?”


“비굴한 것보다는 낫지. 뭘 그래?”


“하하. 그래. 뭐 어떠냐. 그럼 어차피 오늘은 쉬는 거, 축하하는 의미에서 술이나 마셔볼까?”


“오오. 그거 좋지.”


두 남자는 정식으로 동료가 된 것을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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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침입자 (5) 18.10.25 297 0 28쪽
53 침입자 (4) 18.10.18 295 0 14쪽
52 침입자 (3) 18.10.11 344 0 21쪽
51 침입자 (2) 18.10.04 354 0 18쪽
50 침입자 (1) 18.09.20 357 0 20쪽
» 동료 18.09.13 376 1 22쪽
48 동료? (9) 18.09.06 381 1 14쪽
47 동료? (8) 18.08.30 384 1 13쪽
46 동료? (7) 18.08.23 394 0 14쪽
45 동료? (6) 18.08.16 406 0 14쪽
44 동료? (5) 18.08.09 425 0 14쪽
43 동료? (4) 18.08.02 434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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