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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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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56,368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8.04.1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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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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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7쪽

프롤로그

DUMMY

초목도 잠드는 깊은 밤. 고요해야 할 마을에서 검을 부딪히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소리의 근원지인 마을의 중앙에서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해 검을 흩뿌린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잔인한 짓거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차림의 사내가 울분을 토해낸다. 자신의 호흡을 관리하는 것보다 상대를 향한 이 말이 더 중요하다는 듯이.


“······”


하지만 상대는 대답이 없다. 그렇지만 투구 속에 감춰진 그의 눈빛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죄책감... 그리고 결의.


죄책감의 원인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인영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그 인영들이 그의 죄책감의 근원이다.


“우리들은 친우였을 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마을 사람들에게 독을 먹이다니··· 저기 있는 애나는 겨우 5살이란 말이네! 자네랑도 친하지 않았던가! 그런 아이에게 어찌···!”


사내는 다시 한번 외친다. 이 말을 듣고 상대가 이 일을 그만둘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 것이었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저 상대의 대답을 듣고 싶을 뿐이다. 한때의 친우에게.


그 처절한 외침에 상대도 흘깃하고 잠시 눈길을 돌린다.


그 또한 기억한다.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고향의 아이들도 슬슬 피하던 자신을, 거리낌 없는 해맑은 웃음으로 맞아 주었던 아이. 그 아이가 지금은 나무 옆에 쓰러져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기억들이 머릿속을 멋대로 유영한다. 어느새 입술을 깨물었는지 피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대로 이 감정에 몸을 실을 수는 없다. 이를 악물고 유영하는 기억을 억지로 떨쳐내며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 모습에 사내는 더욱 울분을 토해낸다. 상대의 모습에서 이제 자신의 친우는 없다. 비정한 살인마만 있을 뿐이다. 살인마는 절대 자신에게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네놈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야! 네놈들이 죽인 수많은 영혼들이 한이 되어 영원토록 따라다닐 것이야!”


사내는 상대뿐만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두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상대는 그 저주도 감내하겠다는 듯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사내가 그 어떤 저주를 퍼붓는다 해도 이제 그는 결의를 꺾지 않는다.


그때, 쿨럭하고 사내는 피를 토해낸다. 좋지 않았던 안색은 더욱 심각해져 파리해진다. 독이 몸을 좀 먹어 한계에 달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던 사내는 피를 토함과 동시에 중심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크헉!”


사내는 결정타를 맞고 결국은 쓰러진다.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하지만, 울분에 가득 찬 그의 마음과 다르게 몸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한다.


상대는 그런 사내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이내 발걸음을 뒤로한다. 그는 이제 곧 죽을 것이다. 이미 정신은 흐릿해졌을 것이고, 독 성분 때문에 고통도 별로 느끼지 못할 터. 굳이 큰 상처를 추가해서 고통을 더할 필요는 없다.


“이런다고··· 달라질 것 같더냐··· 그것이··· 결국 세상의··· 이치이거늘··· 허억··· 허억··· 네놈들은 그저··· 씻지 못할 죄만··· 늘린-”


사내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결국 숨을 거뒀다.


상대는 사내의 숨이 멎은 것을 느끼고 뒤로 돌았던 그대로 멈춰 선다.


“··· 그래.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르오. 우리가 세상의 이치에 반하는 것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우리는 살아야겠소. 그 이치가 우리 모두를 없앤다면, 우리는 세상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남을 것이오.”


사내에 대한 마지막 배웅이라는 듯 지금껏 굳게 닫혀있던 그의 입이 열린다. 아마도 이 말이 사내가 마지막까지 듣고 싶었던 대답의 일부일 것이다.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근처의 흙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가 흙을 퍼냄과 동시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부대원들이 움직인다. 그가 하듯이 이 곳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이대로 놔두고 떠나면 시체들은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비록 서로의 길이 달라서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술을 나누던 친우였다. 마지막만은 직접 묻어주고 싶었다. 누군가가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치졸한 발악이라고 욕을 한다고 할지라도.


“대장님. 정리가 모두 끝났습니다.”


사내와 싸우던 상대가 사내를 직접 묻어주는 것을 끝으로 주변의 모든 정리가 끝났다.


사내가 뒤를 돌아보니 부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슬픔은 여실히 드러난다. 억지로 참은 슬픔이 흐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눈에 뛰어들었다. 눈은 눈물 대신 그 슬픔을 전달한다. 모두의 눈은 피가 고인 듯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그래. 이제 성으로 복귀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된다. 자신 또한 그들의 눈과 똑같을 것이다.


분명 몇 시간 전만 해도 사람들의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썩하던 마을은, 이제는 고요만을 시끄럽게 떠드는 무덤가로 바뀌어 있다.


‘분명 우리는 지옥에 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죄책감이 잡아먹던 결의 속에서 수 없이 다짐했던 말. 그 말을 다시 다짐했지만, 이제는 결의를 다짐하며 상대할 대상이 사라졌다. 대상 없는 결의는 그의 마음을 이리저리 떠돌다 이내 환영이 되어 흐트러진다. 결국 결의를 통해 필사적으로 억누르던 죄책감만이 남아 그를 짓누른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겠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거야. 비록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죄책감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거다.’


부대는 승리하여 성으로 복귀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영광은 보이지 않는다. 승리한 부대답지 않은 슬픔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승리의 함성 대신 울음 참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릴뿐이다.


전투는 끝이 났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적 사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것은 부대를 이끄는 부대장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하늘을 보기가 두렵구나.’


구름 때문에 흐렸던 오늘. 달빛마저 우리의 악행을 보지 못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비웃듯 찬란하게 빛나는 두 개의 달빛과 무수히 많은 별빛들이 그들을 꿰뚫듯 비추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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