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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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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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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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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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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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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동료? (6)

DUMMY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인지 나를 덮고 있던 천이 걷힌다. 그것만이 아니라 눈을 가리던 천마저 제거된다. 자유를 찾은 시야를 만끽하고자 감아져 있던 눈을 뜨니 바로 앞에 사람의 형태가 보인다.


“심문은 잠시 후에 한다. 여기서 기다려라. 허튼짓을 할 경우 바로 사살할 거니 그리 알도록.”


촌장은 다른 곳으로 갔는지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게 경고를 내뱉고 있다.


“알겠습니다.”


“흠··· 순순해서 좋군. 앞으로도 계속 그러기를 바라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가 자리를 비운다. 하지만 자리를 비운 것은 오직 그 한 명뿐. 입구인 나무로 된 창살 옆에는 나를 감시하는 인원이 몇 명이나 있다.


‘하스트는 없군··· 다른 곳으로 이송한 건가?’


저쪽에서는 우리 둘을 동료라고 판단했으며 죽이려고 하고 있다. 괜히 같은 곳에 놔뒀다가 불온한 모의를 은밀히 진행할지 모르니 따로 떨어뜨려놓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까 그곳에서부터 꽤 떨어진 곳인 모양이야. 꽤 오래 걸었어.’


우선은 나중에 도망칠 때를 대비해서 도주로를 찾기 위해 창살로 다가가 밖을 정찰한다.


‘이건?’


예상외의 장면이 펼쳐진다. 당연히 감옥은 사람들의 눈에 안 띄고, 주변을 파악할 수 없는 구석진 곳에 있을 줄 알았다. 감옥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하지만 내 예상은 틀렸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마을의 전경마저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참 높게도 지어놨네. 하지만 왜 이런 곳에 감옥을?’


분명히 도망가기는 힘든 지형이다.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어떤 길도 보이지 않는다. 사다리를 통하던지, 숨겨진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살이 있는 쪽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건물의 앞에는 마을의 중심으로 보이는 광장이 있다. 그리고 광장에서 대로를 따라 가면 그 앞에 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즉, 감옥과 마을 입구는 정확히 일직선에 놓여있다.


‘흠··· 여기가 마을 입구와 가장 멀기는 한데··· 그래도 도망갈 길이 너무 훤히 보이잖아?’


보통 사람이라면 이 높이에서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할 테지만, 난 다르다. 다른 사람이라면 떨어진다면 무조건 추락사할 높이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 문제는 이 건물에서 나온 뒤다. 뛰어내린다면 분명히 엄청 큰 소리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나 탈출하고 있다고 마을에 광고하는 꼴이 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넓은 광장과 대로는 사람들의 시야에서부터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 아마도 광장에 진입하는 즉시 발각될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그 공간들이야말로 조용히 탈출을 시도하기에는 어쭙잖은 감시체계보다 훨씬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이 정도면 쉽게 도망갈 수 있겠군.’


하지만 그건 조용히 탈출한다는 가정 아래에서다.


저들의 무력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돌아다니는 마을 사람들을 보아하니 활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무리 대로가 넓다 한들 다른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신을 죽이기 위해 같은 마을 주민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활을 쏴댈 것 같지는 않다.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무작정 돌파하기만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족쇄가 된 마을 사람들에게서 쉽게 이탈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저들이 활만 사용한다는 보장은 없으니 예상처럼 쉽게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군.’


건물 사이나 사물들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이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심리적인 작전은 할 수 없다. 내 덩치는 너무나 눈에 띈다. 수그리고 다닌다고 해도 쉽게 발견될 테지.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닥치고 돌진뿐.


‘평소라면 당연히 밤에 탈출을 시도할 테지만, 여기는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겠네. 숲들 때문에 언제나 어두우니··· 아! 언제나 어두우면 언제라도 상관없는 건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본다.


‘응?’


당연히 나뭇잎들로 뒤덮인 나무들만이 시야에 가득 담길 것이라 생각했다.


‘달이 보여?’


하지만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언제나 밤길을 밝혀주던 두 개의 달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이 더욱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오직 탈출로를 모색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시야가 트인다.


‘주변에 나무가 없어.’


아까까지의 숲과는 다르게 마을 주변에는 나무가 없다. 하지만 마을 밖과는 다르게 안쪽에는 나무가 있다. 그것도 엄청 큰 나무들이.


마을의 군데군데 커다란 나무들이 기둥처럼 서있다. 그리고 그곳에 난 문으로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으로 보아 나무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분명하다.


‘나무 안을 파내고 거기서 사는 건가? 설마 여기도?’


증거 따위는 없는 단순한 추측이지만, 왠지 맞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면 내가 있는 건물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높이의 고층건물이다.


아무리 밖을 싸돌아다닌 나라고 해도 건물을 새로 지을 때는 어김없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건물은 어느 정도 이상 높이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기둥을 튼튼하게 세운다고 해도 나무가 견뎌내는 무게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정도 높이의 건물을 세울 수 있는 기술이.


그렇기에 다른 건물들의 옥상이나 지붕이 아래로 보이는 것은 마을 주변의 언덕이나 도시의 근위대가 있는 산에서 밖에 경험한 적이 없었다. 마을 내에서 이런 광경은 겪어 본 적이 없다.


‘아. 우리 마을의 탑에서 한번 그런 적 있구나.’


마을을 생각하니 다시금 씁쓸해진다. 억지로 이겨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좋든 싫든 이 기분은 나를 평생 따라다닐 것이니까.


‘지금은 우울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해야 할 일이 생겼으니까. 우선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그것을 위해 감옥을 지키고 있는 보초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 무슨 일이냐?”


‘생각보다 순순히 대답을 해주네.’


말을 걸어도 무시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대화에 성공했다.


“혹시 남는 옷 같은 거 없습니까? 이 모습으로 있기에는 너무 민망한데요.”


난 아직도 방패로 국부만 가린 상태다. 그 외의 다른 곳은 가리지 못한 상태다. 당장 뒤로 돌기만 해도 둔부가 노출된다.


“너에게 맞는 옷이 우리 마을에는 없다.”


“그렇다면 아까 저에게 덮어 씌웠던 천이라도 괜찮습니다.”


“방금 씌웠던 천이라도 괜찮다고?”


“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반응이 이상하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옆의 보초와 눈빛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에게 다시 고개를 돌린다.


다시금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은 방금과 다르다. 방금까지는 감시였다면, 지금은.


‘경계하고 있는 건가? 나를? 그것도 그냥 경계가 아니야. 나를... 두려워하는 건가?’


그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느껴진다. 저 눈빛은 많이 봐왔다.


‘나한테 얻어맞은 동물들이 저런 눈빛을 보였지. 하지만 도대체 왜?’


아직 저들에게는 내 힘을 보여준 적이 없다. 물론 엘르라는 녀석과 그 부친인 촌장이라면 나무를 부수고 다니는 것을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 처음부터 경계했을 것이다. 아까는 안 그렇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경계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그 천에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군.’


“알겠다. 그 천을 가지고 오도록 하지.”


“고맙군요.”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도 너의 그 몰골을 계속 보기는 싫으니 하는 조치일 뿐이다. 그리고 창살에서 떨어져라.”


그는 딱 잘라 이야기하더니 다시 뒤로 돈다. 옆에서 눈빛을 교환하던 다른 보초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천을 가지러 간 모양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완수했으니 우선 그의 말에 따라 순순히 창살에서 떨어져 안쪽 벽에 등을 기대고 생각을 정리한다.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야.’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조차 아니다. 바로 방금 전에 여기로 이송되면서 일어났던 일들만으로도 이상한 점이 있다.


‘그래. 천을 덮고 출발할 때부터였어.’


촌장의 경고 후, 마을을 향해 출발하면서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소리.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지.’


숲은 절대로 조용하지 않다. 게다가 출발한 곳 근처는 화재 때문에 주변 동물들이 모두 민감해져 있어 더욱더 시끄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귀를 괴롭혀야 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꿈을 꾸는 기분이었지.’


다른 감각은 모두 멀쩡한데 소리만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들리는 것은 오직 나의 심장 고동뿐이었다. 너무나 이질적인 그 느낌은 이질적이다 못해 섬뜩할 정도였다.


‘그때부터였나. 답답한 느낌이 든 게?’


알 수 없는 현상 때문이었을까. 속이 답답하더니 호흡이 살짝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어떻게 나를 여기에 올려다 놓았지?’


난 분명 오르막길이나 사다리를 오른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 곳에 있다. 감옥에 도착하기 직전 움직이지 않던 시간이 있었으니 그때가 분명하다.


그때 분명 무언가가 나를 위로 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 무언가가 사람의 느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스트의 말이 사실인가···’


그가 말해준 것이 생각난다. 자연력, 혹은 정령력이라고 하는 힘에 대해서. 그때는 말도 안 된다며 주의 깊게 듣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기름도 없는데 화염과 함께 폭발한 화살··· 엘르가 쏜 화살에서 나를 공격한 것. 무엇보다 촌장이 화재를 진압했던 그 힘···’


이미 겪은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 것들을 보고 겪으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실 도피자라고 불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현실 도피자가 아니다.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방금까지는 탈출로가 뚜렷했다. 불안요소가 있을지언정 탈출에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에게 활과 검 같은 물질적인 무기만 있을 때의 이야기다.


창살을 통해 바람이 들어온다. 육체를 식혀주는 서늘한 바람이 나에게 후회를 안겨주고 있다.


‘바람인가···’


그렇다. 바람이다. 분명 저들이 사용하는 힘 중에는 바람이 있다. 우선 겪어본 것이 그것이니까.


‘엘르가 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촌장이 발휘한 힘은 바람이 분명해. 그리고 만약 나를 여기다 올려놓은 것이 그 힘이라면···’


화염은 하스트에 의해 강제로 시험당한 것이 있으니 이제 그다지 두렵지 않다. 하지만 만약 촌장이 사용한 것처럼 강한 바람이 자신에게 사용된다면 버틸 재간이 없다.


바람이 자신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면 도망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나를 들어 올릴만한 바람을 사용하는 자는 존재한다. 그 증거가 바로 내가 있는 감옥의 위치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하스트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들어둘걸···’


도저히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기라도 있으면 모를까. 자신에게 남은 것은 달랑 방패 하나뿐이니.


‘방패를 던져서 기절이라도 시켜야 하나···’


하지만 그것도 요원하다. 그 힘을 부리는 사람이 촌장 한 명이라면 모를까. 만약 다른 사람들도 모두 사용 가능하다면 겨우 방패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적다.


‘게다가 눈으로 본 것만 해도 화염과 바람이니··· 다른 것도 사용할지도 몰라.’


생각을 할수록 점점 불안요소가 늘어간다.


‘괜히 잡혀왔나?’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잠시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물론 즐거움의 웃음은 아니다.


‘그렇게 동료라고, 친구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며 녀석에게 거짓말쟁이라고 했는데···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하스트의 정보군···’


자책을 한다고 해도 이미 그와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만약 탈출을 감행하고 성공한다 해도 하스트까지 챙기는 것은 무리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를 찾고 마을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마을 전체와 싸워 이기는 것뿐이다.


자연력이라는 미지의 힘을 사용하는 이 사람들이 상대라면 나도 손속에 여유를 둘 수 없으니 태어나서 들어본 적도 없는 살육전이 될 것이다. 만약 조용히 탈출에 실패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제발, 이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불안하다.


“오셨습니까.”


불안감이 쌓이기 시작하는 그때, 감옥에 사람이 찾아왔다.


“그래. 녀석은 어떤가?”


창살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다.


“별로 특이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그 천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몸을 가릴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뿐이었습니다.”


“그건 오면서 들었네. 그래서 천도 가지고 왔지. 저 놈에게 덮어주게. 심문해야 하니 얼굴은 덮지 말고.”


“알겠습니다.”


보초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의 몸에 천을 둘러준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것에 똑바로 답하게나. 그렇다면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줄 테니.”


목소리의 주인공이 창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나에게 1:1이라고 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 못하게 하는 이.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최대의 난적이라고 생각되는 이. 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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