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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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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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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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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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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 (4)

DUMMY

“뭐야, 이것들? 도대체 무슨 속셈이야?”


수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함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적만이 아니라 아군도 늘어난 이 상황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종 잡을 수가 없어, 혼란스러워진 엘르였다.


“거기까지 생각할 지능이 없었던 것 아닐까?”


카를이 오거의 지능 수준을 의심했다.


“... 그런가? 확실히 오거들이 그렇게 지능적인 녀석들은 아니지만··· 아냐. 그렇다면 이렇게 함정을 파지도··· 아냐. 오히려 함정을 파는 것 자체가 쟤들의 지능으로는 무리였나? 그래서 서로 손발이 꼬인 거고? 으으으. 도저히 모르겠네!”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야?”


모여든 순찰자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선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목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어차피 눈에 띈 이상 모조리 죽이면 그만이야. 오히려 이렇게 모여있다니 정리하기 딱 좋잖아.”


그의 눈은 증오로 물들어있다. 그의 부모가 오거에게 살해당한 기억 때문이다.


“지금 같은 순간을 위해 검술을 갈고닦았다. 멀리서 활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너희들을 죽이기 위해. 살육의 순간을 이 손으로 똑똑히 느끼기 위해! 집중! 칼날!”


노기가 등등한 그의 검에서 바람이 휘몰아친다.


‘저건?’


카를은 그 검에서 지금까지 보았던 자연력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검에 사용하는 것도 처음 보았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자연력들은 폭발적으로 방출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하스트와 촌장의 술법은 난폭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저 검사의 자연력은 다르다.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검에 맺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정되고 있다. 주변을 떠돌던 바람들은 검으로 압축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술법이 발동되는 모습을 못 봤다면 자연력이 검에 맺혀져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죽어라!”


그는 검을 들고 앞으로 달렸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도울 준비를 한다. 그가 지금 감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오거를 죽이는 것에는 어떠한 이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 오오.”


카를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약간 기대되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특기를 발휘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었다. 과연 어떤 힘들을 사용 할지 궁금했다. 물론 모두 바람의 힘이겠지만.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검사의 검이 지나는 모든 것들이 갈라진다. 분명 날이 없는 목검이건만 검에 닿기도 전에 잘려나간다.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그의 검은 대지에 상처를 남기며 궤적을 그리고 있다. 무엇이 있든 그 검은 모든 것을 잘라버릴 것 같았다. 그것이 두꺼운 가죽을 가진 오거라 할지라도.


그 살벌한 예기에 주눅 들지 않고, 오거들도 포효하며 전투태세를 취한다. 그리고 한 오거도 뛰어나가 달려오는 검사를 맞이한다.


“어딜! 해방! 압박!”


누군가 소리치며 힘을 해방한다.


콰드드득!


오거들의 주변으로 바람이 내려앉아 모든 것을 짓누른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는지 오거들이 무릎을 꿇는다. 땅에 있던 물체들은 압력을 이기지 못해 형태를 잃고 바스러진다. 마치 거대한 거인이 손바닥으로 짓누르는 것 같은 모양새다.


오거들이 몸은커녕 팔조차 들어 올리지 못할 때, 검사가 달리며 검을 치켜든다. 지금이라면 무방비한 오거들을 단숨에 처리할 수 있다.


“이야··· 이런 싸움법도 있구나. 쉽게 이기겠는데?”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담긴 카를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오거들을 압박하고 있는 술사가 카를에게 말한다. 저 많은 수의 오거들을 압박할 정도로 큰 힘을 사용하느라 안색은 핼쑥해져 있지만, 어지간히 자신의 술법에 자신이 있는지, 웃음이 호탕하기 그지없다.


“하하! 당연하지! 나와 저 녀석은 이 연계로 무수히 많은 적들을 쓰러뜨렸다! 아무리 강한 오거라해도 이 압력 속에서 반항하는 것은 불가-”


콰직!


살을 찢고,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모두가 기다려왔던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검에 의한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크··· 억···”


오거의 목을 치러 달려들었던 검사의 등 뒤로 무언가가 빠져나와있다. 붉은 피를 머금고 소름 끼치도록 생명을 발산하고 있는 그것은, 오거의 팔이었다.


“이럴··· 수가...?”


검사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오거는 절명한 검사에게는 관심이 없는지 팔을 휘둘러 검사의 시체를 날려버렸다. 검사는 주변에 있는 나무에 부딪치고 그 나무를 자신의 묘비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 허망한 죽음에 모두가 한 눈을 팔아버렸다.


“정신 차려!”


하스트의 외침이 전장의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운다.


“아차!”


늦었다. 그 감각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오거들을 압박하고 있던 술사였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에 그나마 오거들의 행동을 방해하고 있던 압력이 줄어들었다. 오거 중 하나가 그 틈을 타 뒤에 있던 나무를 집어 든다.


“위험해!”


전방에서 압력을 가하고 있던 술사에게 나무가 날아든다. 나무가 아니라 화살이 날아오는 것 같은 엄청난 속도였다. 그것도 보통 나무가 아니라 두께가 성인 남성 몸통의 10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나무가.


압력을 가하고 있던 술사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죽음을 보았다. 저 크기, 저 속도. 압력을 없애고 나무를 막는 것에 온 힘을 쏟는다고 해도, 너무 늦었다.


쾅!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주변 동료 중 한 명이 준비하고 있던 술법으로 그 나무를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컥!”


하지만 완벽하게 막아주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날아오는 힘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바람에 의해 날아오는 속도 자체는 줄었지만, 워낙 무거웠던 나무였기에 술사는 큰 상처를 입고 기절해버렸다. 어느새 풀린 술법에 오거들이 자유를 찾고 행동을 개시한다.


“조심해! 이것들··· 평소의 오거들이 아니야!”


술사를 위해 나무를 막았던 사람이 모두에게 경고를 내뱉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 숲에서 평생을 전투와 함께했던 자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의 경고가 들려오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다잡은 상태였다.


오거들이 앞으로 달려온다. 마치 땅이 밀어주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쾌속의 진격이었다.


“하스트! 놈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없나!?”


순찰대원 중 가장 연장자인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그는 자신보다 더 강했던 자들이 모조리 행방불명된 탓에 어쩔 수 없이 순찰대장을 맡고 있었다.


“무리입니다.”


하스트가 그 술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술법이 완성될 시간이면 아마 오거들은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적들만이 아니라 아군까지 휩쓸린다. 하물며 오거를 제압할 만큼 강한 힘이라면 아군은 술법 근처로만 가도 적들보다 더 행동 제약이 클 수도 있다.


검사가 압력의 중심으로 쇄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본인에게 압력을 중화할 수 있는 술법을 걸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춰서 술법을 맞춰왔던 방금의 두 사람이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그런 것을 따라 했다가는 압력에 뭉개질 것이다. 설사 이겨낸다고 해도 오거를 죽일만한 공격을 못할 가능성도 있다.


순찰대장은 하스트의 대답에 근접전을 각오했다. 하지만 하스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지금이면 그것보다 좋은 방법도 있고요.”


“뭐?”


순찰대장의 의문에 대답하듯 하스트의 주변으로 바람이 모여든다. 난폭을 넘어 폭주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바람이었다.


“이건 트롤에게 썼던?”


카를이 그것을 보고 하스트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지금의 바람이라면 저번에 트롤을 날렸던 것보다 분명히 강하다. 저 거대한 놈들조차 날릴 정도라면 가벼운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휩쓸린다면 저 숲 안 쪽에서 오거들과 함께 기상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하스트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하지만 어느새 오거들은 코 앞까지 도달했다. 이대로라면 늦을 수도 있다.


“해방!”


“해방!”


순찰대원들은 오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이미 준비해놨던 자신들의 술법을 풀어냈다. 대규모 술법을 특기로 하는 사람은 나무에 맞은 술사가 유일했는지, 모두가 화살을 촉매로 힘을 풀어낸다.


“사격!”


순찰대장의 구령과 함께 일제히 쏘아진 화살이 지근거리까지 다가와있던 오거들을 공격한다.


어떤 화살은 오거가 막자마자 터진다. 어떤 화살은 오거가 반응할 틈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명중한다. 어떤 화살은 회전하며 관통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어떤 화살은 사각과 방심을 노리기 위해 엉뚱한 곳에 박히더니 화살에서 갑작스럽게 힘을 내보낸다.


그 모두가 일반적인 동물들이라면 반응할 틈도 없이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고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일반적인 동물은커녕 평범한 괴물조차 아니었다.


어떤 오거는 화살이 터졌을 때 잠시 뒤로 주춤했을 뿐, 다시 쇄도해왔다. 어떤 오거는 화살에 반응하지는 못했으나, 자신의 가죽을 뚫지 못한 화살에 코웃음만 쳤다. 어떤 오거는 회전하는 화살의 옆을 손으로 쳐내 무력화시켰다. 어떤 오거는 땅에 박힌 화살을 예상했다는 듯이 다가오는 바람을 미리 피해냈다.


“미친!”


그 모두가 오거들에게서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우리 기술을 알고 있어?”


엘프 마을 사람들과의 전투 경험이 있는, 노년의 오거가 구사할 것만 같은 움직임들을 눈 앞의 막 성체가 된듯한 놈들이 구사하고 있다. 아니, 그 움직임은 그런 자연스러운 것들조차 아니다. 마치··· 누군가 오거를 훈련시킨 것 같은 움직임이다. 하지만 누가 오거를 훈련시킬 수 있단 말인가?


순찰대장은 눈 앞의 모습으로 인해 마치 악몽을 꾸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평범한 오거들조차 성체가 되면 엘프 마을 사람들이라도 1:1이라면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해야만 하는 강력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놈들은 그런 평범한 성체보다도 강력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경험을 메꾸는 엘프 마을 기술에 대한 지식까지 가지고 있다. 각각이 예전에 보았던 오거 우두머리들만큼 강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내 정신 차린다. 적들이 순찰대의 공격으로 잠시 주춤했을 뿐, 다시 다가오고 있다. 생각에만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 다시 힘을 모아 사격을 개시하려는 찰나.


“아주 좋았습니다. 시간을 벌어들인 보답을 하죠.”


그 잠시의 시간 동안 술법이 완성되었는지, 하스트의 손이 앞으로 향한다.


쿠아아아!


가볍게 내민 손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폭풍이 전방으로 몰아친다. 트롤에게 마지막으로 쏘아 보낸 바람보다도 강하다. 어찌나 강한지 하스트의 한창 뒤편에 있던 나무들마저, 빨아들이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몸의 일부를 내줘야 할 정도였다. 하스트에게서 떨어진 순찰대원들도 바람의 힘을 이용해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와··· 이걸 버텨?”


하지만 오거들은 이것조차도 버텨내고 있다. 오거들의 무게라면 이미 처음 바람을 받았을 때 날아갔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오거들은 자신들의 팔다리를 땅에 박아 넣으면서까지, 바람을 견디고 있다.


“... 저것들, 네가 바람을 내보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너의 손이 앞으로 향하자마자 팔다리를 박아 넣은 것을 보면.”


엘르가 하스트에게 말했다. 주변의 바람소리 때문에 절대 들을 수 없어야 정상이지만, 엘르는 바람에 소리를 띄워 하스트에게 직접 보냈다. 하스트도 소리를 띄워 답한다.


“어떻게 우리 기술을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골치 아프게 되었네.”


지금 전투 가능한 인원은 최초의 11명에서 죽은 검사와 기절한 술사를 제외한 9명이다. 그에 반해 오거들은 10마리. 처음에 아주 쉽게 승리를 확신한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아주 불리하다는 것을 안다. 적들은 모두가 우두머리급의 개체들이었지만, 이쪽 순찰대원의 몇몇은 행방불명된 인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숙련자들과 짝을 이뤄 교육받고 있던 자들이다. 평소였다면 오거를 제압하려면 두배의 숫자는 족히 필요했을 것이다.


하스트는 바람을 내보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생 세계를 떠돌았던 자신의 눈으로 봐도 평범하지 않은 적들. 해결책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지. 조금 위험하지만.”


하스트는 적들에게 들리지 않게, 모두에게 소리를 띄웠다.




한 그림자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터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들은 한번 강한 힘을 뿜어내더니 힘이 다했는지, 그 후로 오거의 공세를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다. 그것도 그나마 하스트라 불리는 인간이 중간중간 강한 바람으로 오거들을 밀어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약하다.”


하스트라는 인간은 꽤나 쓸만해 보였지만, 쓰는 힘이 바람을 앞으로 내보내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나머지는 그의 생각대로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특히, 거대한 인간은 별다른 특기가 없는지, 어쩌다 다른 사람이 위기에 빠졌을 때만 맨 몸으로 오거의 발을 묶어두는 정도밖에 못하고 있다.


“처음 알았다. 인간이라도 저 정도로 몸이 커지면 강해진다. 하지만 역시 여기에는 없다.”


그림자는 이내 그들에게 관심을 끄고, 몸을 돌렸다.


“저기에는 있을까? 스승님이?”


그림자는 중얼거림과 동시에 나무를 타고 빠른 속도로 공터에서 멀어져 갔다.


‘난 놈을 기필코 이길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회색 머리를 가진 한 쌍의 눈동자가 감지해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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