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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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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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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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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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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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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공성전 (5)

DUMMY

전장의 소리가 달라진다. 기합과 비명, 욕설과 울음으로 가득 차 있던 방금과 달리, 지금은 오직 대치하고 있는 인원의 쇳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뭐?”


“예언자?”


“그분이 온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방금 전의 동요가 마치 속삭임이었다는 듯이, 왕국군에게 폭발적인 소란이 발생한다.


“하스트가 나타난 후로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그분이?”


“너무 안 보여서 이미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인간들이 모여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각자의 말을 떠들고, 모두가 각자의 앞날을 예측하고 있다.


“예언자님이라도 왕을 이길 수 없어!”


누군가는 그렇게 예측했다.


“아니야, 예언자님이라면···”


누군가는 그렇게 예측했다.


“혹시 다른 영물들을 이끌고?”


“혹시 전설에 나온 술법을 여기에 쓰는 거 아냐?”


왕국군은 불안과 함께 전율했다.


예언자의 존재는 그저 예언을 하는 노인이 아니다.


북부에 어떠한 놀라운 풍경이 있다면 거기에는 예언자의 전설이 있었다.


북부에 어떠한 놀라운 영물이 있다면 거기에는 예언자의 전설이 있었다.


산을 일으키고, 땅을 갈랐으며, 재해를 태우고, 생명을 구했다. 그의 존재는 살아있는 전설,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냥 옛날이야기 아냐?”


누군가는 옛 전설을 부정했다.


“그렇다기엔 하스트의 힘이··· 솔직히 그 나이에 그 지식과 술법이 말이 돼? 예언자님의 힘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거지.”


누군가는 현재와 연관 지어 전설을 긍정했다.


‘큰일이군!’


상인마저도 이번에는 당황했다. 이건 단순한 동요가 아니다.


“그럼 왕국에 가담할 필요가 있나?”


“지금이라도···”


왕국군이 분열되기 직전이다.


이건 비단 성벽 쪽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정작 반군과 직접적으로 전투하고 있는 정예병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너 왜 날 봐? 설마 배신하고 날 죽이려고 하는 거 아냐?”


“난 배신하지 않아.”


“뭘 안 배신한다는 거야? 설마 예언자님을 안 배신한다는 거 아니겠지?”


“너야말로 님자를 붙이는 거 보니 배신할 생각이 가득한 거 아냐?”


상황은 심각했다. 반군만이 아니라 아군의 눈치까지 살피느라 제대로 된 전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반군이 궁수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힘들게 후퇴를 막은 것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반군의 후퇴 속도가 빨라진다.


상인은 어쩔 수 없이 도깨비들에게 떨어져 왕국군을 추슬러야 했다. 상인에게는 다행히, 정예병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와중에도 추격은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에 속지 마라!”


상인은 힘껏 소리쳤다. 그러나 혼란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 이유를 곧 알아채었다.


“이 자식!”


어느새 주변에 펼쳐진 바람의 술법이 상인의 소리가 멀리 퍼지는 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이에 상인은 뒤에서 따라오는 술사들을 노려보았다. 원래라면 풍술사들이 알아서 적의 술법을 방해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노려봄에도 우물쭈물하는 풍술사들을 보며, 상인은 한숨을 쉬었다.


퍽!


방패에서 튀어나온 바위에 술사들 중 몇 명이 깔린다.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이에 깜짝 놀란 풍술사들이 힘을 합쳐 소리 차단을 해제한다. 예언자의 출현 예고에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기는 했어도, 저런 식으로 돌에 깔려 죽는 건 어느 쪽이든 사양이었으니까.


“모두 거짓말이다!”


폭풍처럼 퍼져가는 상인의 목소리에 왕국군의 이목이 집중된다.


“만약 예언자가 정말 올 거라면 이미 왔어야 정상이다! 뭐하러 이들의 희생을 지켜볼 필요가 있는가! 예언자가 정녕 이들을 도울 거였다면, 이미 예언자는 우리 앞에 있었을 것이다!”


상인의 목소리에 분열이 잠재워진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왕의 추종자인 드워프 정예병들의 발에는 다시 힘이 들어서고 있다.


“만약 그가 온다는 것이 사실이라도 마찬가지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예언자는 하늘을 건너 우리 앞에 도달했을 터! 거리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터! 그렇다면 올 수 있음에도 지금 온다는 것은 제약이 있다는 것! 그가 예전만큼 강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상인의 말에 반군은 전력으로 후퇴했다. 왕국군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친 후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후면 궁사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왕국은 파멸하지 않는다! 왕국은 영원하다!”


화악!


그 순간, 성문 안쪽이 갑자기 낮처럼 밝아진다. 그리고 반군의 눈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진다.


“저게, 무슨?”


왕성이 불타고 있다. 거대한 화염이 왕성을 불태우고 있다.


“예언의 아이들이 성공했는가!”


한 도깨비의 말에 도깨비들과 엘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왕성이 불타는 이유는 그것 말고 생각할 수 없었다. 왕을 처단하고, 하스트나 스트라가 왕성에 불을 지른 것이다.


“으, 으으··· 으아아아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반응은 그것을 부정했다.


“그놈이다! 그놈이야! 그놈의 자연력이야!”


한 사람이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어댔다. 어느새 걸음은 멈춰진 상태다.


“이, 이봐!”


옆에 있던 사람은 깜짝 놀라며 그에게 손을 뻗었지만, 후퇴 속도 때문에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잡지 못한 것을 깨닫자마자, 그는 눈을 돌렸다. 공포에 질린 사람은 이제 공포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할 테니까. 잠시 후, 다시 정면을 바라본 그 사람의 눈에는 피칠갑을 한 정예병의 모습이 비쳤다.


“보아라!”


상인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외친다.


“그리고 느껴라! 그대들을 압도하는 자연력이 누구의 것인지!”


감지하기 싫어도 느껴진다. 어마어마한 자연력이 모두를 짓누른다.


모든 수인은 그 자연력을 알았다. 그게 누구의 자연력인지 알았다.


“저 힘을 가진 분이 바로 우리의 왕이시다!”


엘프와 도깨비들은 믿지 못할 힘에 넋을 잃기 직전이었다. 영물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자연력이 있다니?”


그것은 퓨지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그가 빨리 정신을 차릴 수 있던 것은, 그가 호수의 주인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믿는 수밖에 없다.


‘예언의 아이들은 저 힘에 대항할 술법이 있을 거야.’


세계를 멸망시킬 재앙을 없앤다는 예언의 아이들이다. 그렇다면 재앙은 호수의 주인보다 강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굉장한, 세계 최강의 영물을 이기는 재앙을 없앨 수 있는 예언의 아이들이니, 저 힘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퓨지조차 예언의 아이들이 정면에서 왕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자연력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커지고 있다.


“예언자가 와도 상관없다!”


왕국군의 혼란은 이제 없다. 왕에 대한 공포가 그들에게 힘이 된다는 듯, 망설임이 사라진다. 마치 무언가에 조종이라도 당하는 느낌이다.


“왕께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상인이 말을 끝맺으며 성문을 향해 손짓한다. 그것은 신호였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화살이 날아온다!”


“술사들은 방어에 전념하라!”


“이번 한 번만 막으면 궁사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두 화살만-”


퓨지는 화살만 신경 써도 된다고 말하려 했다. 화살비가 쏟아지는 이상, 충돌하며 서로 방해될 것이 뻔한 상대의 술법이 날아올 것 같지 않았다. 정예병들도 살고 싶다면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미친! 같이 죽을 셈이냐!”


정예병들이 화살비에 아랑곳 않고 접근한다.


“이 자식들, 술사들의 보조를 믿고?”


정예병들의 선택에 퓨지는 당혹감을 느꼈다. 성벽의 궁사들은 지금까지 충분히 쉬었던 관계로, 쏘아 올린 화살의 위력은 절대 약하지 않다. 아무리 술사들의 보조가 있더라도 위험할 것이 분명하다.


‘버틸 수 있었다면 진작에 사용했어야 할 전법이야.’


퓨지는 낭패감을 느꼈다.


‘왕의 자연력이 만들어낸 공포 때문인가?’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우선 저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아군은 계속 전투를 이어왔다. 그리고 애초에 적은 인원으로 체력을 쥐어짜고 있던 터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화살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한계에 다다랐다.


그런데 지금처럼 정예병들이 아군에게 붙는 상황이면, 전력을 다할 수도 없다.


‘망할···’


너무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 한 번의 공격에, 아군의 수는 크게 줄어든다.


“포기는 이르오!”


콰직! 콰직!


“으아악!”


갑자기 시작된 지진에 모두가 당황한다. 당연하다. 이번 지진은 그저 흔들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땅이 일어선다!”


대지가 파열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장벽이 일어선다. 장벽은 이내 반군의 정면을 가로막았다. 왕성의 불에 익숙해졌던 모두의 눈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장벽을 강타하는 수많은 폭발음이 들린다. 폭발음이 들릴 때마다 벽이 무너져 내린다.


폭발음이 잠잠해졌을 때는 이미 장벽은 형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장벽은 그 역할을 훌륭히 완수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화살비는 무너진 장벽 너머에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 대단한 이적을 누가 이루어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제법 하는군.”


상인의 눈이 이채를 띤다. 설마 이 정도 길이의 장벽을, 그것도 저 화살비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랐다.


“우린 땅의 일족이라서 말일세.”


도깨비들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투와 다르게 그들의 상태는 최악이다.


아무리 셋이 했다지만, 너무 급하게 일으킨 자연력과 그 규모로 인해 셋의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렇군.”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군과 왕국군의 추격전은 계속되고 있다. 도깨비들과 상인의 거리가 다시 가까워진다.


“컥!”


“끅···”


“제길···”


도깨비들은 멋대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훌륭한 술법이었다. 그렇지만 그 대가가 꽤나 크군.”


상인은 도깨비들을 일부러 밟고 지나갔다. 도깨비들은 팔을 교차시켜 방어했지만, 아무리 도깨비들이라고 해도, 최악의 몸상태와 더불어 엄청난 무게가 자신들을 짓누르자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죽지 않은 건 도깨비들의 튼튼함과 마지막 방어 덕분이었다.


상인은 도깨비들을 마무리하지 않고 전력 질주했다. 지금은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


“아, 안돼···!”


엘프들은 다가오는 벽을 보고 절망했다. 이제 상인을 막을 수 있는 자들은 없다.


“눈을 쏴라!”


퓨지는 상인의 방패에 손가락질을 하며 명했다. 방패에는 눈구멍이 있다. 그래야 앞을 볼 수 있으니까.


방패를 부수는 것은 무리라도, 저 사이를 통과해서 눈을 공격하는 것은 가능하다. 아무리 상인이 대단해도 실명한다면 끝이다.


“헛짓거리를 하는군.”


하지만 퓨지는 알고 있었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몇 번을 해도 안 통한다. 방패 안의 손은 장식이 아니니까 말이야.”


이미 계속 시도하고 있던 방법이었다. 그리고 계속 실패했던 방법이었다. 눈구멍을 통과해도, 상인은 그것을 방패 안에 있는 팔로 막아버렸다.


상인이 다가오는 것을 엘프들은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이 났다. 이제 정말 코앞이다.


“죽어- 큭!”


상인이 엘프들을 뭉개기 직전, 작은 불덩이가 상인의 눈구멍 앞을 가로막는다. 정말 미약한 힘이었기에, 상인은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았지만, 불덩이가 내뿜는 빛에 잠시 시야가 흐려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엘프들은 누가 자신들을 구했는지 알았다. 후퇴하고 있는 부대의 맨 앞. 이제는 부대에서 떨어져 버린 작은 무언가가 그들의 눈에 띄었다.


뭉개지기 직전의 엘프들을 구한 것은 몇 명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상인을 노려보며 외쳤다.


“우리 아저씨들 괴롭히지 마!”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술법을 발동하는 순간, 이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약한 아이들이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선택지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꼬마들아. 난 나에게 덤벼드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퓨지는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안 돼!”


상인의 방패가 만들어낸 굉음이, 절망적일 정도로 크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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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드워프 왕 (1) 19.09.10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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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공성전 (2) 19.09.07 16 0 14쪽
170 공성전 (1) 19.09.06 22 0 13쪽
169 격돌, 스트라 대 유키 (4) 19.09.06 20 0 12쪽
168 격돌, 스트라 대 유키 (3) 19.09.05 18 0 12쪽
167 격돌, 스트라 대 유키 (2) 19.09.05 14 0 14쪽
166 격돌, 스트라 대 유키 (1) 19.09.04 21 0 11쪽
165 격돌, 소토 대 묘원 (5) 19.09.04 19 1 14쪽
164 격돌, 소토 대 묘원 (4) 19.09.03 20 1 12쪽
163 격돌, 소토 대 묘원 (3) 19.09.03 23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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