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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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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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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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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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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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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공성전 (1)

DUMMY

“하, 하하, 하하하.”


스트라는 안도의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무언가에 성공했다는 기쁨. 언제나 도망 다니느라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정이 지금 심장을 터트려버릴 것 같다.


“스트라··· 당신···”


유키는 누운 상태에서 스트라를 바라보았다.


“왜... 도망치지 않았나요?”


“죄송하지만, 지금도 도망치고 있어요. 더 괴로운 것으로부터요.”


“이 곳을 벗어나는 것이 더 괴롭다는 건가요?”


“그것도 있네요. 그것보다 다른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게 더 무섭다는 이유도 있지만요.”


“후··· 후후후··· 대단하네요··· 그런 이유로 여기에 남을 수 있다니···”


유키는 스트라가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한 말이네요.”


“겁쟁이라 죄송합니다.”


“후후후. 아니에요. 겁쟁이는 그렇지 못해요. 정말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어떠한 잔꾀를 내어서도 도망을 택했을 거예요.”


유키는 조용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누구와도 싸우지 못했던 한심한 사람.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도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 굽히는 것밖에 못하는 심약한 사람. 그것이 당신이라고 왕은 그랬죠.”


“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네?”


“남과 싸우기 싫어한 사람. 약한 사람을 봐주는 사람. 굽힐 줄 아는 사람. 그게 당신이에요. 당신은 겁쟁이가 아니에요.”


유키는 안에서 느껴지는 정수의 상태와 주변의 자연력을 느끼고 있었다. 지맥의 분출구 때문에 사방으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자연력이, 스트라의 술법 안에서만큼은 느껴지지 않는다.


술법에 담긴 자연력을 생각한다면 폭풍에 무참히 부서져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마치 여기만 안전지대가 선언된 것처럼, 폭풍은 이 공간으로 들어올 생각도 못하고 있다.


유키는 생각했다. 이것은 자연력의 크기, 술법의 숙련도와는 별개의, 스트라만이 가진 하나의 능력이라고.


유키는 다시 스트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세상은 당신 같은 사람을 겁쟁이라 하지 않아요. 상냥한 사람이라고 부르죠.”


“제가, 상냥하다고요? 전 그저-”


“더 괴로운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거라고요? 하지만 당신이 괴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생명의 위험 같은 게 아니죠. 정신적 괴로움이죠. 그것을 결정한 건, 당신의 선성이에요.”


“유키 씨···”


쿠구구궁.


그때, 지맥의 자연력이 점점 감소한다. 스트라는 알았다.


‘지맥이 멀어지고 있어.’


지맥이 안정화되며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가고 있다. 더 깊은 곳으로,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점점 더 희미해지는 지맥을 보고, 스트라는 술법을 해제했다.


어느새 주변에는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지맥의 안정화와 동시에 빛기둥도 그 역할을 마친 것이다.


“여기에서의 일은 모두 끝났나 보군요.”


“네.”


“왕에게 가실 건가요?”


“... 네.”


“그와 싸우실 건가요? 그 두려운 상대와? 그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나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지만, 어차피 도망칠 수 없는 상대니까요.”


“당신은 예언의 아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으셨나요?”


“맞습니다.”


“그런데 다른 예언의 아이들과 함께 그와 맞서겠다고요?”


“네.”


“왜죠?”


“나이트를 타도하는 것은 예언의 아이가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전 개인적인 용무로 나이트에게 가는 겁니다. 중간에 저와 똑같은 용무를 가진 친구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요.”


“후후후. 말장난인가요?”


“설마요.”


“그래요. 그것만으로 당신의 짐이 가벼워진다면 지적하지 않을게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네. 유키 씨도 몸조심하세요.”


스트라는 일어서서 왕성을 향해 걸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걸음걸이다.


“아.”


중간에 멈춰 선 스트라를 향해 유키가 묻는다.


“무슨 일이죠?”


“약속 하나 할게요.”


“약속?”


“꼭 당신의 딸을 찾아내겠습니다.”


“스트라···”


“기필코. 찾아드리겠습니다.”


아까와는 다른 힘 있는 목소리에 유키는 웃었다.


“후후후. 이번에는 기대할게요. 딸을 만나게 돼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왕의 횡포에 휘말리지 않는다고. 당신이 왕에게서 도망치는 것보다, 저와의 약속을 어기는 게, 더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할게요.”


“네. 그 말대로예요. 전 괴로운 건 정말 싫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스트라는 광장 너머로 사라졌다. 스트라가 사라진 어둠 위로, 우뚝 솟은 성이 보인다.


“정령의 축복이 함께하길...”




“퓨지 대장님! 빛기둥 4개가 전부 올라갔습니다!”


“그래. 그들이 성공했나 보군.”


퓨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처음 빛기둥이 보일 때부터 계속 조마조마했다. 혹시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실패했을까 봐.


그들은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 한 명 한 명이 세계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작전에 실패하고 생명에 지장이 있었다면, 지금 성문 앞에서의 싸움과는 무관하게 모든 것이 끝난다.


퓨지는 활을 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상에 신음하고 있는 아군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뒤로 보이는 수많은 인영들. 비록 피해는 있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다. 이대로 예언의 아이들이 왕만 이기면 된다.


하지만 퓨지는 상황이 이대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성벽을 공격할 때만 해도, 이렇게 길항하고 있지 않았다. 상대편은 이미 과도한 노동에 의해 지쳐있었고,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실시한 기습으로 지휘관 중 몇을 죽였기에 적들은 우왕좌왕하느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었다.


비록 성문의 견고함에 감히 뚫을 생각은 못했지만, 인원은 확실히 줄일 수 있었다. 만약 지속되었다면, 지금쯤 성벽 위의 인원들은 모두 시체가 되거나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퓨지는 성문 위의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 마치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것도 잠시, 주변 상황을 모두 살피더니 부하들의 진형을 정비한다.


“코끼리.”


성벽 위의 상인(象人). 그만 아니었다면 전투는 조금 더 쉽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대로 성문을 뚫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성문 위에 나타난 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적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라진 대응에, 오히려 이쪽이 당황할 정도로.


“투석기 준비되었습니다!”


“좋아! 앞으로 민 다음 재빨리 사격하고 복귀해!”


사격이나 술법에 자신 없는 수인들 중에서, 힘이 강한 수인들이 모여 투석기를 밀어낸다.


‘가능하면 전방에서 장전하며 쏘게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망가지고 말리라.


“투석기 쪽으로 술법들이 날아옵니다!”


지금도 상대편은 도깨비들이 만들어낸 투석기가 앞으로 오자마자 집중해서 공격하고 있다.


“우리도 대응 사격해! 저들의 공격이 투석기에 닿게 하지 마라!”


퓨지의 명령이 아니어도, 이미 부대는 빠르게 대응하고 있었다. 허공에서 수많은 공격들이 서로 상쇄된다.


어떤 술법은 옆의 폭발에 반응해서 멋대로 허공에서 사라진다. 어떤 화살은 중간에 다른 술법과 만나서 불에 타 재가 된다.


그러나 모든 공격을 상쇄하지는 못했다.


“아직 격추하지 못한 술법이 있습니다!”


“방어부대!”


그러자 투석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대가, 투석기 앞으로 방패를 들고 술법을 발휘한다.


“큭!”


방어부대는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강한 충격에 휘청거렸다. 방패에서도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온 것으로 보아, 같은 충격을 한 번 더 받았다가는 그대로 파괴되게 생겼다.


퉁!


그러나 다행히 대지를 울리는 진동으로 인해 방어부대는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투석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적들도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바위에 다양한 공격이 퍼부어진다.


바위는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고, 조각조각 난 상태로 추락했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투석기가 저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궁수 부대!”


엘프 마을 사람들을 필두로 수많은 궁수들이 자신의 활에 시위를 건다.


“발사!”


화살들이 성벽 위로 발사된다. 그리고 그중 몇 개는 어둠을 틈타 적들을 암살하기 위해 조용히 날아가고 있다.


화살이 성벽에 도착하자,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적들 중에 화살에 맞은 자가 있는 모양이다.


“겨우 한 명이라니.”


발사된 화살에 비해서 너무나 작은 성공률이다.


확실히 처음과 다르다. 처음에는 부상 정도가 아니라, 많은 목숨이 이 한 번의 공격에 사라졌다. 아무리 여러 번 당해서 익숙해졌다지만, 화살 중 몇 개는 쉽게 피할 수 있을만한 공격이 아니다.


“투석기 돌아왔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다행히 적들의 공격력도 많이 약해졌다. 그 증거로 지금까지 1회용에 불과했던 투석기가 멀쩡히 돌아왔다.


하지만 적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았다.


“좌측에 대형 쇠뇌 등장!”


“준비된 부대는 어디지!?”


“지금 화염술사들의 술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아! 바로 파괴해!”


한쪽에 모여있던 화염술사들의 술법에 수많은 화염이 허공을 수놓는다.


그에 상대가 대응한다. 보통은 화망을 펼쳐 날아오는 술법들을 격추하겠지만, 상대의 대응은 다르다.


상인이 자신의 덩치에 걸맞은 거대한 방패를 들고 쇠뇌 앞을 막는다.


콰과과광!


어떠한 장애도 없었다. 어떠한 가감도 없었다. 술법은 목표한 그대로의 속도로, 목표한 그대로의 파괴력으로 명중했다.


일반적인 성벽쯤은 그대로 무너지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의 힘이다.


“확인! 적의 쇠뇌는 무사합니다!”


“젠장!”


하지만 상대가 딛고 있는 성벽은 보통의 성벽이 아니었고, 방패를 들고 있던 상인도 보통의 수인이 아니었다.


“볼 때마다 허탈하군.”


아군 진영에서 탄식이 섞여 나온다.


성벽 위에는 너무나도 멀쩡하게 서 있는 상인이 있었다. 저 상인은 단 한 번의 방어로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지대한 공적을 세우고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방어력이야.”


그에 주변의 도깨비들이 끄덕인다. 도깨비들의 눈에서 더 없는 호승심이 불타오르고 있다.


상대는 바위를 사용하는 자. 게다가 저 거대한 덩치와 힘. 그 무엇 하나 도깨비의 상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넘친다.


“우리 촌장님 말고 저런 자는 처음 보는군.”


“그러게 말일세.”


“정말 온몸이 근질거리는군.”


하지만 자중한다. 이 전쟁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개인적인 호승심은 접어두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었다. 저 대단한 사내와 붙을 순간은 반드시 온다.




“좌측에 일제 사격! 적의 술법이 날아온다!”


“크아아악!”


“장군님! 또 아군이 당했습니다!”


“알고 있다.”


“이번에는 화살이다!”


“내가 가겠다. 너희들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도록.”


화살들은 상인의 근처로 날아오고 있다. 방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터터터텅!


상인은 화살들을 무리 없이 막아내고 다음 지시를 내렸다.


“쇠뇌를 발사해라. 목표는 정중앙이다.”


“알겠습니다! 쇠뇌 발사!”


상인이 방금 지켰던 쇠뇌가 드디어 힘을 발휘한다. 화살이라고는 부르기 힘든 거대한 기둥이 퓨지를 향해 날아간다.


쾅!


거대한 충격음이 다른 모든 소음을 잡아먹을 정도로 크게 울린다. 그리고 퓨지의 앞에는 거대한 석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쯧. 도깨비 놈들. 번번이 거슬리는군.”


마음 같아서는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다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지휘계통이 사라진다.


“아쉽군. 지휘를 할 수 있는 놈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상인이 성문에 도착한 것은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지만, 그 잠시간의 시간 동안에 수많은 지휘관이 죽어나갔다.


상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반군의 공격에 성문의 병력이 혼란에 빠진다면, 그것을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시간 끌기인 것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니. 짜증나는군.”


하지만 그것이 대단한 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을 보아하니 안쪽의 간부들은 모조리 당한 것 같지만, 아무리 예언의 아이들이 대단하다고 해도 왕에게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짜증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반군을 제대로 물리치지 못했다는 오명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멍청한 작전이군. 저만한 수가 있는데도 체력전으로 밀어붙이다니. 아니면 성문의 비밀이 적들에게 새어나갔는가?”


성문은 왕의 힘에 의해 어지간한 대술법으로도 부술 수 없는 강고함을 자랑한다. 아무리 체력전으로 몰고 간다고 해도, 저 대단한 병력들을 데리고 성문을 뚫어볼 생각도 안 하고 있다는 게 어쩐지 께름칙했다.


상인은 퓨지와 눈을 마주쳤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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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공성전 (4) 19.09.09 20 0 16쪽
172 공성전 (3) 19.09.07 16 0 14쪽
171 공성전 (2) 19.09.07 16 0 14쪽
» 공성전 (1) 19.09.06 22 0 13쪽
169 격돌, 스트라 대 유키 (4) 19.09.06 20 0 12쪽
168 격돌, 스트라 대 유키 (3) 19.09.05 17 0 12쪽
167 격돌, 스트라 대 유키 (2) 19.09.05 14 0 14쪽
166 격돌, 스트라 대 유키 (1) 19.09.04 21 0 11쪽
165 격돌, 소토 대 묘원 (5) 19.09.04 19 1 14쪽
164 격돌, 소토 대 묘원 (4) 19.09.03 19 1 12쪽
163 격돌, 소토 대 묘원 (3) 19.09.03 23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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