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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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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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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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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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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공성전 (2)

DUMMY

상인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토대로 퓨지의 의중을 유추해보았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언의 아이들이 왕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믿음 하에, 무리하지 않고 체력전으로만 밀고 나가도 왕국을 정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


혹은 미리 성문의 정보를 적들이 알았기에, 쓸데없는 소모를 피하겠다는 조심성.


“둘 다일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병력이라면 한 번 정도는 시도해볼 만도 하건만···”


상인은 퓨지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지 않았다. 아무리 드워프 왕국의 병력들이 가진 무장이 대단해도, 사기는 분명히 적들이 위다.


‘솔직히, 이쪽의 사기는 언제나 말이 아니다.’


그저 죽기 싫다는 발악에 불과할 뿐. 훈련과 왕에 대한 공포만 아니었으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도망갔을 놈들이다.


지금도 명령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고 숨기 바쁜 놈들이 많다. 그나마 부관들이 윽박을 지르고, 참수까지 감행하니까 전투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아군은 용기를 내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은, 그저 전쟁의 광기에 잠식된 사람들뿐이다.


‘그에 반해 저쪽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적들에게도 두려움은 있다. 그 어느 누가 전쟁의 두려움에서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적군에게 보이는 것은 광기가 아니라 용맹함이다. 이 성을 무너뜨려야만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어느 누구도 뒤로 물러나는 자가 없다.


‘이 정도 사기 차이면, 아무리 수성의 입장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버티지 못해야 정상일 텐데.’


무엇보다 유명 인사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하스트가 알려준 소식이지만, 이 먼 곳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한 엘프 마을과 도깨비 마을의 촌장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언제라도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인가?’


특히 도깨비 마을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어려운 전투를 이어나가야 했다.


지금처럼 공성과 수성이 아닌, 즉석에서 성을 건축하여, 성 대 성의 전투라는 어이가 없는 경우도 만들 수 있는 것이 도깨비 마을에 대한 정보 부대의 보고였다.


상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군이 안고 있는 불안들이 보인다. 아무리 일반 병사들이라고 해도, 생각이 있다면 적군의 강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들이 나타나는 순간, 자신들은 패배하고 죽는다는 공포에 몸을 제대로 못 움직이는 자도 있다. 이미 절망에 잡아먹힌 자들이다.


아마 저들은 곧 있으면 부관들의 참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나마 성문이 있어서 다행이군. 성문이 없었다면, 앞으로 1시간도 버티지 못했겠지. 아니, 그전에 이미 병사들이 모두 도망갔을 수도 있겠군.’


왕이 직접 설계하고 검수한 이 성문의 방어력은 상인이 봐도 비정상적이었다.


‘지맥을 이용해서 힘을 공급하고 있다고 했나? 지맥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왕은 이야기했지. 무한한 힘의 공급에 따른 절대적 방어라고.’


왕은 단언했다. 본인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이 성문을 부술 수 없다고. 설사 하스트라고 해도.


그나마 사기가 떨어진 아군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이 성문의 절대적 방어력 덕분이다.


적들이 성문을 뚫고 성 안을 침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집에 있을 가족들만큼은 안전하다.


‘하다못해 저 빛기둥들만 아니었더라면 이 정도까지 사기가 내려가지 않았을 텐데.’


병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은 성문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침입했다는 것이 분명한 예언의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을 계속해서 쳐다보는 사람도 많았다.


역설적이게도, 병사들이 각자 집으로 흩어지지 않은 것은, 예언의 아이들이 무력한 사람들을 죽일 리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저··· 장군님. 3진의 체력이 모두 바닥났습니다.”


적군을 살펴보며 방어에 전념하고 있던 상인에게 보고가 들어온다. 상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군의 상태를 확인했다. 확실히 지쳤다.


“그런가? 그럼 다음 병력으로 교대해라. 어차피 적들도 지쳤다. 이대로 밤을 새워서라도-”


상인은 명령을 내리다 말고 멈칫했다.


“장군님?”


상인은 손을 들어 부관의 말을 제지했다.


부관은 안절부절못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상인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부대의 체계는 순식간에 흐트러진다. 무엇보다 상인이 방어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구멍이 생긴다. 이에 다급한 눈빛으로 자신의 상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인은 그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상인은 자신의 말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왜 지쳐있지? 저들의 병력은 많다. 그리고 노림수도 저쪽의 뜻대로 되고 있을 터. 끌려다니는 우리와는 체력 소모가 명백히 다르다.’


마침 상인의 눈에 교대하고 있는 적의 병력이 눈에 띈다. 누가 봐도 체력이 모두 회복되지 않은 자들이다.


‘저놈들은?’


그리고 상인은 이 전투의 끝을 보았다.


“사거리에 자신 있는 자들은 모두 모여라!”


상인의 명령에 곳곳에 흩어져있던 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너희들이 할 것은 하나다! 적들에게 신경 쓰지 마라! 내가 신호를 하면 최대한의 거리에 화살을 날려라!”


“그게 무슨 의미가? 게다가 적들이 그것을 놔둘까요?”


“놔두지 않겠지.”


상인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뭐야? 갑자기 조용한데?”


퓨지는 불길한 예감이 자신의 감각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준비하나 보군.”


그리고 이내 적군에게서 반응이 나타난다.


“이건?”


자연력이 적군에게서 요동치고 있다. 아까와는 명백히 다른 규모다.


“일제 사격?”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퓨지는 기겁하며 아군에게 외쳤다.


“모두 대응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 술법을 준비하라!”


수많은 사람들이 술법을 준비한다. 적군과 마찬가지로, 이쪽에서도 자연력이 요동친다.


“지금 승부수를 걸겠다는 건가? 왜지?”


“예언의 아이들이 분투한 것에 놀란 게 아닐까요?”


퓨지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벽 위로 저 많은 병력이 모두 올라설 수는 없어. 지친 자들도 많아서 여기까지 날아오지 못하는 술법들도 많을 텐데. 자신 있는 건가?”


“막무가내의 발악 아닐까요?”


“그럴까?”


하지만 퓨지는 이내 부정했다. 아까 마지막으로 본 상인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포기한 눈빛은 아니었어.’


퓨지는 방심하지 않았다. 상인이라는 인종에 대해서는 그도 들은 바 있다. 최강의 수인족. 도깨비조차 능가하는 완력.


‘게다가 지혜롭기까지.’


평균적인 강함이라면, 도깨비와 정상을 놓고 다툴 수 있는 인종.


그런 자가, 게다가 촌장급의 강자가 이대로 물러날 리 없다.


‘하스트도 그랬다. 저자와 맞설 수 있는 촌장은 손에 꼽는다고.’


맞설 수 있는 촌장만 해도 손에 꼽는다. 이길 수 있는 촌장은 더욱 적다. 그리고 간접적이나마 맞서 보니 그 이유를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과연 저 방어력을 뚫을 수 있는 자가 존재하긴 할까?’


“적이 움직입니다!”


퓨지는 들려오는 외침에 다시 전장에 집중했다. 성벽 위에는 어느새 적군이 가득 차 있었다.


“확실히 지금까지보다 많은 수로군. 하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수다! 모두 겁먹지 말아라!”


그리고 그에 대답하듯 상대편 쪽에서 공격을 가해온다.


“역시 예상대로군!”


역시나 일제 사격이다. 그리고 결과까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성벽 뒤에 있는 대기인원들까지 모조리 쥐어짜 낸 공격이다. 그 수가 지금까지의 몇 배에 달한다.


“모든 공격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 아군의 진영에 다가오는 공격만 처리해라!”


그러나 역시나 그런 자들의 공격은 정확도가 많이 떨어졌다. 사정거리조차 짧은 공격 또한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격의 수가 많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큭!”


“위험해!”


이쪽도 체력이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라, 다가오는 공격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아슬아슬했다.


퓨지는 다시 힘차게 외쳤다.


“버텨라! 이 공격만 넘어서면 우리는 확실한 승기를 가져올 수 있다! 세계, 아니,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녕을 줄 수 있다!”


이에 반군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노년의 견인도, 팔팔한 나이의 커다란 웅인도, 용맹한 호인도, 겁이 많은 토인 소녀도. 모두가 내일을 위해 버텼다.


“하하하! 멍청한 녀석들! 힘 낭비나 하고 있네!”


누군가 용기를 북돋기 위해, 크게 외치며 적을 조롱했다.


아무리 일제 사격이라고 해도, 성벽 뒤에서는 상대편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정확한 조준 없이 공격을 시도했다. 누가 봐도 힘 낭비다.


효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다. 지금까지 적절한 지시를 내려온 상인이 했다기에는 이상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 힘이 넘치는 놈들도 있나 봐! 저건 우리를 넘어가는데? 술법도 안 걸고 뭐 하는 걸까?”


“뭐?”


퓨지는 그 사람의 눈길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위다. 아군 진영의 위로 화살 몇 개가 지나가고 있다.


“젠장!”


퓨지는 그 화살에 담긴 술법의 속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게 문제였다. 저 화살에는 자연력을 은폐하는 술법이 걸려있다. 그리고 상인이 무엇을 눈치챘는지 알았다.


그에 퓨지는 방어조차 도외시하고 날아가는 화살을 처리하기 위해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너무나 많은 술법이 날아오는 바람에, 눈에 띄지 않는 공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만약 파악했다면, 저런 공격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상인이 무엇을 노리고 이따위 공격을 시도했는지도 눈치챘다.


“이건 눈속임이다!”


퓨지의 외침과 함께 모두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화살들이 점화된다. 그것들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인영들 사이로 쏟아졌다.




“저건?”


“뭐야?”


성벽 위의 병력이 동요한다. 수많은 인영들이 있는 곳에 불이 붙은 후였다.


“역시, 그랬군.”


상인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에 흡족하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커다란 코가 흔들흔들 자신을 뽐내고 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적들의 군세는 많고, 노림수도 적들의 뜻대로. 그런데 체력이 회복되지도 않은 자들을 다시 전면에 내세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전쟁 중에 누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는가? 체력이 금방 회복되지 않는 것도 이해한다. 주변에서 요동치는 자연력 때문에, 자연력의 회복이 느린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인이 반군의 노림수를 알아챈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정 확실하게 속이고 싶었다면, 복면이라도 썼어야지.”


반군의 얼굴이다.


부상당한 자가 급한 조치만 취한 채로 전면에 나선다. 분명히 뒤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이 전면에 나선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부관이 허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관에게 물었다.


“난 기억력이 좋다.”


상인은 뛰어난 기억력으로 반군의 모든 얼굴을 머리에 새겼다. 각자의 특성을 분석한 다음, 적절한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알았다. 적들의 진실을, 반군의 규모를 확실히 파악했다.


그리고 아군의 현재 상태도 확실히 알았다. 아무리 자신감 있게 떠든다 해도, 겁에 질려있는 아군이 말만 듣고 안심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무리라고 해도 승부수를 띄웠다.


“설마 이런 식으로 속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얄팍한 수였지. 하지만 나도 한심하군. 반군의 위세에 나조차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지금에서야 눈치채다니.”


성벽 위의 아군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진실을 깨닫고 나서는 오히려 분노했다. 자신들이 겁을 먹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적군의 인영으로 떨어진 화염이 적들의 진실을 낱낱이 알려준다.


“가짜였다니!”


인영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나무나 바위들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한 조각에 불과하다. 그것을 전장에 나서기 힘든 어린아이들이 흔들면서 아군을 농락한 것이다.


“보아라! 들어라!”


그리고 상인의 예상대로 전투의 끝은 모두에게 보였다.


“이게 반군의 정체다! 예언의 아이들이, 하스트가 모은 오합지졸들이다! 엘프 마을과 도깨비 마을의 원군은 없다! 그저 왕에게서 도망친 패배자들 밖에 없다!”


상인의 거대한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진다.


‘이토록 웅대한 소리라니!’


바로 옆의 부관은 귀까지 막았지만, 그럼에도 파고드는 소리에 기함했다. 소리가 귀가 아니라 몸을 통해서 들어온다. 아군 중 몇몇은 고작 소리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정도다.


전장의 모두가 그 소리를 듣고 심장이 떨려옴을 느꼈다. 왕국군은 흥분에, 반군은 두려움에.


“전쟁은 끝났다!”


상인이 성문 앞으로 내려앉는다. 대지를 울리는 거대한 진동에 모두가 전율한다.


성문을 통해서 판금 갑옷을 차려입은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원거리 교전이 떨어지는 대신 근거리에 특화되어 있는 정예 전사들이다.


“왕국의 용맹한 전사들이여! 나를 따라라! 몰살의 시간이다!”


“와아아아!”


거대한 함성은 공성전의 끝을 알렸다.


작가의말

 드디어 100만자가 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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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드워프 왕 (1) 19.09.10 19 0 13쪽
174 공성전 (5) 19.09.09 18 0 13쪽
173 공성전 (4) 19.09.09 19 0 16쪽
172 공성전 (3) 19.09.07 15 0 14쪽
» 공성전 (2) 19.09.07 16 0 14쪽
170 공성전 (1) 19.09.06 21 0 13쪽
169 격돌, 스트라 대 유키 (4) 19.09.06 20 0 12쪽
168 격돌, 스트라 대 유키 (3) 19.09.05 17 0 12쪽
167 격돌, 스트라 대 유키 (2) 19.09.05 14 0 14쪽
166 격돌, 스트라 대 유키 (1) 19.09.04 20 0 11쪽
165 격돌, 소토 대 묘원 (5) 19.09.04 18 1 14쪽
164 격돌, 소토 대 묘원 (4) 19.09.03 19 1 12쪽
163 격돌, 소토 대 묘원 (3) 19.09.03 2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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