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잔인한 마법사
#023 잔인한 마법사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앞으로의 인생은 정말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캄캄한 어둠을 달리며, 리더는 이를 으드득 씹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법사가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이지만, 리더가 알기로 우리 마을 촌장은 이상하다.
원래 정령이 그렇게 사람 눈에 자주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마법사가 정령의 힘을 이용하는 건 사실이지만, 마법사조차도 정령을 못 보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그렇게 시시때때로 누구 눈에나 나타나 날아다니는 존재가 아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마법사라고는 코빼기도 보지 못하는 무식한 농사꾼이라 웃으며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거다.
리더도 원래는 몰랐다.
불법 길드를 통해 일을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마법사라고 해서 정령을 보고 그들 주위에 정령이 항상 날아다닌다면, 마법사를 가지기 위해 이 세상 모든 나라가 난리일 거다.
마법사를 한 명이라도 더 갖기 위해 전쟁이 일어난다.
정령이 있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비가 내린다.
농작물이 잘 자라는 것도 정령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정령이 없으면 농작물은 자라도 쭉정이가 많이 나오고 땅은 영양가 없이 메마른다.
정령 나무가 죽고 난 뒤 정령은 하루가 멀다고 사라지는 중이라 들었다.
정령을 느끼고 볼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정령 나무가 죽어버렸다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니 그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건, 정령을 보는 사람이 소수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 일은 대부분 알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어째서 자기들 옆에 마법사가 있으니까 정령이 보이는 거라고 그냥 믿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주문도 없이 바람을 일으켜 사람을 휙휙 날려버린다고?
그런 마법사는 정말 힘이 강한 사람밖에 없다.
적어도 리더가 알기로는 그렇다.
물론 리더가 생각하는 강한 마법사라는 건 보통 사람 수준에서 말하는 거지만, 어쨌든 그 촌장은 이상하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나타날 때부터 이상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 허허벌판에서 불쑥, 그렇게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혼자 걸어 나오다니.
무기 하나 없이 그 벌판을 걸어 다니면 낮에도 짐승한테 습격당한다.
그렇게 멀쩡히 돌아다닐 수 없다.
심지어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던 사람이 갑자기 유창하게 말하고 듣는다고?
그런 거 이상하기로 정해져 있지.
개척마을로 우리를 데려온 대장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힘을 숨긴 마법사라서 그 벌판을 무사히 지나온 거라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일 촌장이 마법 쓰는 모습을 봤다면 그 역시 리더처럼 어딘가에 정보를 팔아넘기려고 했을지 모른다.
물론 대장은 마법사가 어떤 식으로 마법 쓰는지 전혀 보지 못했으니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불법 길드와 연관 있으면 정상적인 길드에서 일을 끊어버리니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으려나.
어쨌든 리더는 촌장의 정보를 팔아넘길 생각이었다.
불법 길드에서는 항상 마법사를 찾고 있다.
그는 잘 모르지만 마법사는 돈이 되는 모양이다.
아예 정령이 붙어 다니는 마법사가 있다면 거금을 내놓을 것이다.
리더는 숨을 헐떡거리며 발을 멈췄다.
캄캄한 어둠은 늪처럼 사람의 힘을 빼앗는다.
조금 달렸을 뿐인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미 마을 놈들의 횃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주 작은 점 같다.
이 정도 멀어지면 잡힐 염려는 없다.
쫓아오려는 것 같지도 않고.
리더는 그 자리에 엎어지듯 주저앉았다.
비록 원하던 음식은 얻지 못했지만 아직도 희망은 있다.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물은 얻을 수 있다.
음식은 숲으로 들어가 자생하는 열매를 따 먹거나 작은 동물을 잡아먹으면 된다.
모두 힘을 합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만 무사히 빠져나가 불법 길드에 도착하면 된다.
그러면 부자가 되는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리더는 문득 옆을 보았다.
"이봐, 모두 잘 따라온 거야?"
대답이 없다.
당황해서 몸을 일으킨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잠시 동안 횃불에 익숙해졌던 눈은 아직 제대로 된 시야를 찾지 못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깜박거리는 빛을 보았다.
작다.
손톱보다도 작고 희미한 빛은 마치....
'설마.'
리더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건 마치 그 마법사의 정령 같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쫘악 끼쳤다.
그 마법사, 토끼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얼굴로 정령한테 그를 쫓아가 죽이라고 시킨 건 아닌가.
그렇게 겁먹는데, 빛이 깜박거리며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헉! 저리 가! 저리 가라구!"
빌어먹을 마법사, 빌어먹을 정령.
리더가 외치지만 정령은 도망치지 않았다.
물론 정령 눈에 사람이 무서울 리 없다.
어쩔 수 없이 리더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지 않나 생각하면 반짝거리는 빛이 다시 눈앞에 다가온다.
그는 쉬지도 못한 채 어둠을 달려, 어느새 눈치채고 나니 숲에 들어와 있었다.
부엉, 부엉, 불길한 새 울음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먼 곳에서는 으르렁거리는 짐승 소리도 울린다.
'크, 크, 큰일 났다.'
숲을 나가야 한다.
어둠 속의 벌판도 위험하지만, 숲은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나뭇가지에 하늘이 가려 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으나 뜨나 앞이 똑같다.
리더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들어온 반대 방향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자기가 제대로 몸을 돌린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열심히 발을 놀린다.
그렇게 잠시 가던 그의 앞에 뭔가가 나타났다.
"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놈이 그를 덮쳤다.
이놈이 뭔지 모르지만 미끌거리고 왠지 뭉클뭉클한 것 같다.
리더의 전신은 이내 뭔가에 싸여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었다.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질 때, 정령의 반짝거리는 빛이 근처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역시 그 마법사, 정령한테 그를 죽이라고 시켰구나.
'... 빌어먹을 놈....'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리더의 의식은 완전히 끊겼다.
* * *
아이들 공부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도 슬슬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겁보는 내일 자기 밭을 정하기로 했다.
이제 잘 시간인데 흥분되어서인지 혼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돌아다녔다.
기쁜 모양이다.
'그런데 저 사람은 마을 일원이 되고도 계속 겁보구나.'
원래 이름도 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겁보라고 부른다.
그 자신도 그걸 크게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쩐지 이대로 겁보가 이름이 될 것 같다.
사람들 말로는 그런 식으로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민 중에는 특별히 부모가 이름을 붙이지 않아, 자라면서 별명이 그대로 이름이 되는 일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꺽다리, 작은잭, 거인잭, 뚱보, 주먹코, 똥싸개, 오줌싸개 등....
아니, 똥싸게, 오줌싸개는 좀 심하지.
그런 이름에 비하면 겁보는 그리 나쁘지 않은 이름이다.
그래서 본인도 만족하는가.
어쨌든 이제 잘 시간이다.
사람들이 겁보한테 잠 좀 자라고 뭐라 하면서 하나둘 눕기 시작했다.
나도 모닥불 앞에서 담요를 끌어안고 눕는데, 팝콘이 파닥거리며 날아왔다.
"피피피피피!"
굉장히 흥분한 모양이다.
날아다니는 속도가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른 것 같다.
이쪽으로 왔다 저쪽으로 갔다 하며 두 팔을 벌렸다 내렸다 하는데 정신없다.
"왜 그러니."
그냥 자려고 하면 자꾸만 눈꺼풀을 잡아당겨서 어쩔 수 없이 묻자, 팝콘이 두 팔을 위로 올렸다.
팔이 둥글게 안으로 굽는다.
"원? 동그라미?"
그렇게 물어봤지만 뭐, 말이 통할 리 없다.
팝콘은 내가 반응한다는 점에 만족하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짧은 팔로 크게 원을 그리고 흔들흔들 허공을 몸으로 뛰는 흉내를 낸다.
그리고 다시 동글동글 포즈.
아기 고양이 하듯 크아아 입을 크게 벌린다.
허공을 향해 몇 번 입을 흔든 뒤, 기대하는 것처럼 팝콘이 나를 보았다.
"음... 동글동글 아기 고양이가 뭘 먹는 장면을 봤다고?"
"피피... 피피피?"
팝콘이 다시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아마 내 반응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크게 크게 동글동글!
그런 식으로 자꾸만 뭔가를 표현하는 팝콘을 앞두고, 나는 졸렸다.
하품이 저절로 나온다.
내가 크게 입을 벌리고 하품하자, 화가 났는지 아니면 동굴 같아 재미있어 보였는지, 팝콘이 입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 녀석."
퉤 뱉어내자, 팝콘이 데굴데굴 허공을 구르며 밖으로 나왔다.
"이제 진짜 자야 돼. 방해하지 마."
나는 팝콘이 보이지 않게 담요를 뒤집어썼다.
뭔가 재미있는 걸 보고 왔나 본데 녀석한테 어울려 줄 시간이 없다.
지금 자야 다시 새벽에 일어나 밭일을 할 수 있는 거다.
내일은 드디어 씨를 뿌리는 중요한 날이다.
며칠 동안 땅에 물도 갖다 퍼붓고, 갈고리로 땅도 부슬부슬하게 골랐다.
물론 내 땅의 작은 일부분만 겨우 그렇게 했을 뿐이지만 나한테는 기념할 만한 첫 씨앗 뿌리기.
일찍 일어나야 해.
가을의 수확은 씨앗 뿌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날이다.
내가 눈을 감는데, 팝콘이 담요 틈을 파고들어 왔다.
내 뺨에 앉아 길게 한숨 쉬는 것 같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벌렁 눕는다.
이 녀석은 오늘도 내 뺨을 침대 삼아 잘 모양이다.
"잘 자라."
내가 말하자, 팝콘이 피피피 작은 소리로 울고 뺨 위에서 뒹굴뒹굴 굴렀다.
팝콘이 정령이라서인지, 요새는 잠을 잘 잔다.
나는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잠에 떨어졌다.
* * *
이 세상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팝콘은 벌떡 일어나 담요를 비집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침 해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제 금방 희뿌연 빛이 나타날 겁니다.
팝콘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팝콘은 파닥파닥 열심히 날개를 휘저었습니다.
팝콘은 아직 너무 어려서 날개가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몽글몽글한 하얀 몸속에 숨듯이 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팝콘이 날 수 있는 건 그 날개 덕분입니다.
물론 정확하게는 팝콘 스스로도 잘 모르지만요.
아마 아빠는 알고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빠니까요.
팝콘은 아빠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처음 아빠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 기억납니다.
팝콘의 아빠는 정말 예쁘고 귀엽고 멋있고 반짝반짝합니다.
온몸이 햇빛처럼 반짝반짝, 머리카락과 눈에도, 입에도, 손가락 끝에도 반짝반짝한 것이 잔뜩 붙어 있습니다.
지금은 더 반짝거립니다.
언젠가는 팝콘도 아빠처럼 반짝거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열심히 반짝반짝이라고 소원을 빌고 있지만, 그게 이뤄질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아빠한테 물어보면 알 텐데, 불행하게도 아빠는 팝콘의 말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아마 팝콘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겠지요.
열심히 노력하면 팝콘도 언젠가는 아빠한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정말 많습니다.
햇빛이 얼마나 따뜻한지, 풀이 얼마나 푹신한지, 물방울 나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 그러고 보니 전에 아빠한테 좋을 것 같은 풀을 뜯어왔습니다.
그 풀은 굉장히 맛있어 보였어요.
하지만 팝콘은 아빠를 위해 꾹 참고 그 풀을 먼 곳에서 가져왔습니다.
굉장히 맛있어 보였기 때문에 다 먹고 싶은 마음이 정말 많이 생겼지만, 엄청나게 열심히 참았습니다.
아빠한테 그 풀을 먹으라고 입에 넣어주었더니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아주 맛있었겠죠?
친한 동료들에게도 먹였습니다.
아빠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작은 동료들은 아마 인간과 정령의 중간쯤 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날지도 못하고 가끔은 상처도 나기 때문에 소중한 풀을 먹여주었습니다.
그 풀을 먹으면 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동료들은 그 풀을 먹고도 날지 못했습니다.
팝콘은 조금만 먹어도 힘이 부쩍 나던데, 동료들은 몸이 너무 커서 더 많이 먹어야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동료들이 먹기에 풀은 너무 작습니다.
아빠한테도 또 먹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 풀은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팝콘도 또 먹고 싶습니다.
그건 정말 맛있으니까요.
그 풀은 언제 크게 자랄까요.
기왕이면 그 풀이 엄청 크게 자라서 푹신푹신한 아빠 침대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풀에서 자면 정말 끝내주거든요.
물론 아빠 뺨이나 몸이 더 좋기는 하지만, 아빠에게는 아빠가 없으니까 풀 침대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풀을 뜯어가라고 말한 목소리도 어쩌면 그걸 바라고 가져가라고 한 건지도 모릅니다.
그 목소리는 언제 그 풀이 다 클지 알까요?
물론 목소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오늘 팝콘은 할 일이 많습니다.
한밤의 숲에 인간이 뛰어가길래 따라갔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거든요.
오늘은 그걸 구경하러 갑니다.
자, 출발!
"피, 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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