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용기를 내도 오줌 쌀만큼 무섭다
#021 용기를 내도 오줌 쌀만큼 무섭다
모닥불은 짐을 중심으로 여러 방향에 있다.
모닥불끼리의 거리가 제법 되므로 아이들은 그 안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이 세상에서는 아이라고 해도 나이에 맞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낮에는 아이들도 바쁘다.
잠자기 전의 밤은 아이들에게 가장 활기차고 기쁜 놀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어른 눈을 피해 구석에 숨거나 짐 사이를 돌아다니며 저희끼리 놀고, 멀리 가는 것만 아니면 어른은 아이들 놀이에 관여하지 않았다.
뭐, 아이들도 저 어둠 밖이 무섭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상하네.'
오늘은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이라면 숨어 있어도 아이들의 모습은 어딘가에서 느껴지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팝콘을 따라 걷는 동안 작은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다.
팝콘의 목적지도 거기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은 외곽의 모닥불 근처로, 빠듯하게 아이들 노는 걸 허용하는 장소였다.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다.
지크가 우는 걸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가자 아이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지크도 얼굴을 숨기며 고개를 숙였다.
훌쩍 훌쩍 울음소리는 계속 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팝콘이 아이들 위로 날아가 두 팔을 허공에 올렸다.
마치, 큰일 났어 애가 울잖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팝콘은 지크가 우는 걸 보고 당황해서 나한테 날아온 모양이다.
정령이 아이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건지, 아니면 팝콘의 특성인지, 팝콘은 정말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보이거나 말이 통했다면 좋은 친구가 됐을 거다.
나는 아이들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슨 일이니?"
"그게....."
지크와 항상 싸웠던, 지금은 아이들 대장 격인 소년이 입을 열자, 지크가 파뜩 고개를 세웠다.
대장을 보고 고개를 젓는다.
소년 대장과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른 아이들은 입을 다물었지만, 소년 대장은 결심한 듯 지크에게 말했다.
"이건 우리끼리만 알고 있을 얘기가 아니야. 어른한테 말해야 해. 네가 겁보 아저씨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이건 문제가 다르다구."
아니, 이게 무슨 얘기야. 겁보가 뭔가 했나.
지크가 살짝 내 얼굴을 살피고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아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른다.
"그, 그치만, 그러면 다시는 겁보 아저씨랑 놀지 못하게 할 거야. 게다가 혼난다구.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는 형이니까 너희를 지켜야 할 이무가 있다구."
이무가 아니라 의무다.
요새 아이들한테 공부도 할 겸 이야기를 자주 해주는데 그때 단어를 익힌 모양이다.
조금 틀렸지만.
그건 그렇고 아이들 얘기가 점점 수상해진다.
급해지는 마음을 누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얘들아, 무슨 일인지 나한테 얘기해 주겠니?"
지크가 다시 고개 저었지만, 소년 대장이 냉큼 입을 열었다.
"겁보 아저씨가 지크 때리려고 했어요. 다시는 오지 말라고, 귀찮다고 했대요. 애놈이라고 욕도 했어요."
"그리고 밀어서 넘어졌대요."
아이들 말에 또 그 일이 생각났는지 지크 울음소리가 커졌다.
원래 그런 놈이니까, 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왠지 좀 이상하다.
겁보는 정말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게다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폭력적인 성향도 없다.
오히려 그는 맞는 게 일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자세히 말해줄래?"
지크에게 묻자, 아이가 더듬더듬 울면서 말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지크가 말한 대로라면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이 웃으며 얘기하다, 오후에 찾아가니까 갑자기 애놈이라고 욕하며 다신 오지 말라고 했다는 건데,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겁보 성격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제 겁보 아저씨랑 못 놀아요?"
지크가 울면서 물었다.
"글쎄다, 일단은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구나.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저씨가 조금 더 알아보마."
내가 지크 머리를 쓰다듬자, 아이는 훌쩍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 안쪽으로 가자. 이곳은 너무 외지구나. 중앙에서 멀어지면 안 돼."
"네."
"네, 아저씨."
"가자."
아이들은 종달새처럼 입을 모아 대답한 뒤 지크 손을 잡아끌고 달려갔다.
팝콘이 아이들 위를 날아가며 가끔 작은 팔을 위로 힘껏 올렸다.
응원하는 것 같다.
나도 안쪽으로 가면서 겁보와 깡패들의 모습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들은 종종 밤에 없어진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면 짐승이나 마수에 물려 죽을 뿐이므로, 그들도 멀리 가지는 않는다.
다만 마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어두운 곳에 있을 뿐이다.
물이나 음식 하나 없이 도망칠 리도 없으니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이 밤에 보이지 않아도 찾아다니지 않았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모닥불 근처에서 도끼와 칼을 갈거나 망가진 물건 등을 손질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갈대 같은 걸로 바구니를 만든다.
짚신 비슷한 걸 만드는 이도 있었다.
아이용, 남자용, 여자용, 얼마나 빨리 만드는지 밥 먹고 만들기 시작한 걸 텐데 벌써 수십 개가 쌓였다.
내가 가까이 가자 사람들이 엉덩이를 조금씩 밀어 자리를 만들었다.
"촌장님, 이쪽에 앉으세요."
조금 비좁지만 사람들 사이에 끼여 앉는다.
한 명이 솥에서 끓는 물을 한 잔 떠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들판에 핀 풀을 넣어 끓인 물이다.
목의 통증이나 손발의 저림 같은 걸 완화해 준다고 한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어릴 때 할머니에게 배운 약초라고 들었다.
그걸 받아 한 모금 마시자 진한 녹차 같은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쓰다.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마을 남자들이 큰 소리로 와하하 웃었다.
"촌장님은 정말로 쓴 걸 못 드시네요."
"벌써 여러 번 먹었는데도 여전히 쓰십니까?"
아니, 이건 너무 독하니까.
이 약차는 녹차와 맛이 비슷하고, 나도 녹차는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건 녹차를 수십 배 농축한 것처럼 쓰다.
내가 아니라 이걸 물처럼 마시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다.
한 명이 다른 모닥불에 걸린 솥에서 맹물을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너무 쓰면 이걸 타서 드세요."
그걸 약차와 섞자 겨우 먹을 만해졌다.
홀짝홀짝 차를 마시면서 낮에 겁보와 건달들 보았는지 묻자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들한테 이상한 점은 못 보셨습니까?"
내 말에 남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요, 뭐, 매일 똑같죠."
"겁보는 오늘도 맞더구만요. 밥도 빼앗기고."
"오늘은 좀 심했어요. 다른 때는 그렇게 심하게 때리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입에서 피를 한 움큼 뱉더라구요."
그 모습을 자세히 말해달라고 해서 듣는데, 한 명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그놈들이 뭔가 수군거리는 것 같더군요. 그놈들끼리 그러는 거야 항상 있는 일이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촌장님이 물어보시니까 문득 생각났어요."
지금 생각하니 다른 때보다 훨씬 조심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조금 수상하다고 했다.
평소보다 더 수군거리는 건달들, 갑자기 심하게 맞은 뒤 오지 말라고 지크를 윽박지르는 겁보.
머릿속에서 뭔가가 조금씩 선을 그으며 이어진다.
내가 가만히 생각하는 동안 마을 남자들은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입을 다물고, 주위는 모닥불 타는 소리만 가득했다.
여기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지크 아버지가 누군가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당번은 누굽니까?"
문득 생각나 묻자, 나에게 맹물을 가져다준 사람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제가 당번입니다."
"내일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내일은... 아, 지크 아버지네요."
거기에서 선이 이어졌다.
짐 지키는 사람은 원래 두 명씩이었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한 명으로 바뀌었다.
만일 건달들이 도망치려고 획책한다면 가장 먼저 음식을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들 스스로는 짐 근처에 접근할 수 없다.
놈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 아이를 빌미로 그 부모를 위협하는 걸 거다.
내가 추측한 걸 이야기하자 마을 남자들이 흥분해 벌떡 일어났다.
"그놈들, 언젠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이번엔 정말 가만두지 않는다."
"죽여버리든지 추방하든지."
모닥불이 닿는 범위 안을 찾아봤지만 겁보와 건달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와 십여 명의 마을 남자들은 횃불을 나눠 들고 놈들을 찾기 시작했다.
* * *
"꽉 잡아."
리더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어둠 속으로 퍼졌다.
겁보는 부들부들 떨며 머리를 저었다.
울음이 실실 새 나왔지만, 입은 천으로 막혀 있다.
소리는 전혀 새지 않았다.
리더와 동료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자기들 일에 몰두할 무렵 겁보를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끌고 왔다.
마을이 멀지는 않다.
비명이라도 크게 지르면 누군가 듣고 달려올지 모르지만, 입에 천이 너무 많이 물려 있어서 신음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잘못하면 꽉 막힌 천 때문에 목구멍도 막힐 것 같다.
"하아, 설마 네놈이 그런 수를 쓸 줄이야."
리더가 이를 바드득 물며 말했다.
그들은 지크가 애들한테 울면서 하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그래서 겁보가 일부러 지크를 오지 못하게 한 걸 알았던 것 같다.
"감히 내 말을 거역해? 정말 죽고 싶었던 거냐? 정 네놈 소원이 그렇다면 죽여주지 뭐."
어둠 속에서 리더의 주먹이 휙 날아왔다.
퍽, 소리와 함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별이 반짝반짝한다.
지금까지 많이 맞았지만, 진짜로 별이 반짝이는 건 처음이었다.
"어때, 애새끼 대신 맞는 게? 좀 덜 아프냐?"
"...."
그럴 리가 없잖아.
겁보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리더가 몇 번 더 주먹을 날렸다.
사방은 캄캄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지면 달과 별빛만으로도 형체는 보인다.
리더의 주먹이 날아오는 게 보일 때마다 두려움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지만 동료가 옆에서 꽉 잡고 있어 피할 수도 없다.
얼굴에 두 방, 배에 세 방.
속절없이 때리는 대로 맞았다.
그렇게 맞고 나니 이제 별은 보이지 않았다.
반짝이는 건 아무것도 뵈지 않는다.
이마가 찢어졌는지, 아니면 눈이 찢어졌는지, 하늘의 별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눈이 흐릿하다.
"자, 이제 내일은 그 애새끼를 데려올 수 있겠지? 응?"
리더 말에 겁보는 침묵했다.
이렇게 아픈 걸 지크가 겪는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자기 자신이 맞는 것도 당연히 무섭지만, 그 작은 아이가 저 큰 주먹에 맞는다고 생각하면 더 무서웠다.
리더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개를 끄덕여 이 자리만이라도 모면하고 싶지만, 지크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면 그럴 수도 없었다.
"대답 안 해? 몇 대 더 맞아야 대답할래?"
어둠 속에서도 리더가 주먹을 내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 진짜 무섭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맹렬한 아픔이 그를 쳤다.
바지가 축축해진 걸 안 건 그때였다.
소변이 나온 것 같다.
동료들이 킁킁 냄새를 맡더니 욕설을 뱉었다.
"이 새끼 오줌 싼 것 같은데?"
"진짜 가지가지 한다."
"오줌 쌀 만큼 무서운데도 고개 안 끄덕여?"
"이 새끼가 반항하나."
리더가 침을 탁 뱉었다.
"좋아, 죽고 싶다는데야 어쩔 도리가 없지. 한번 죽어보면 생각이 바뀔 거다."
그렇게 말하며 리더가 주먹을 쳐들었다.
읍, 읍, 읍, 겁보는 입이 막힌 채 몸부림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흔들리는 불이 가까이 오는 걸 보았다.
횃불이다.
이곳에서 횃불을 들고 다니는 건 마을 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리더는 등을 돌리고 있고, 동료들은 오줌 때문에 그를 욕하느라 아직 저 불빛을 깨닫지 못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진짜 죽는다.'
겁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 몸을 흔들었다.
엇, 하는 소리와 함께 동료가 그를 놓쳤다.
그 순간, 재빨리 입에 물린 천을 잡아 뺀다.
너무 많아서 한 번에 다 빼낼 수는 없었다.
입에 천이 남은 채로 겁보는 목청껏 외쳤다.
"그애으에여어어어어어."
구해주세요, 라고 외쳤는데 발음이 이상하다.
하지만 다시 잡히기 전에 어쨌든 몇 번이라도 더 외쳐야 한다.
"그애으에여 그애으에여 그애으에여어어어어어."
구해주세요, 구해주세요, 구해주세요오오오오.
겁보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