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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못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형향馨香
작품등록일 :
2012.09.25 10:10
최근연재일 :
2014.12.21 16:37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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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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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8
글자수 :
539,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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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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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붉은 못 76화 - 이륜(二輪)

DUMMY

"도련님. 또 어딜 다녀오십니까."

"알아서 뭐하게. 할아범."

성의 성으로 들어선 이는 매사 쾅쾅 질이었다. 발로 문을 차 열고 또 냅다 힘을 주어 닫으니 창이고 벽장이고 할 것 없이 달달 떨어 대었다. 할아범이라 불린 이는 눈앞에서 닫히는 문을 다시 열며 쫓아와 물었다.

"약혼 연회의 예복을 준비하셔야지요."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하신다니요. 직접 가시기라도 하시려고요."

"내가 맡기고 싶은 사람이 있어. 거기다 맡길 거야."

"네? 그란가의 전담을 두고 말씀이십니까. 무슨 그런... ...알겠습니다. 꼭 시일 맞추어 해 놓으라 하셔야 합니다."

유리병이 올려지는 소리가 났다.

"한낮이옵니다. 그런데 술을 드시려고요. 이제 곧 약혼식이 아니십니까. 곧 가정을 갖으실 텐데 줄이셔야지요. 도련님."

"큭큭 어차피 그리 좋은 의미도 없는 결혼이야."

"그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결혼하실 분께 마음을 주셔야지요."

"나가."

"도련님."

"나가!"

소리를 지르자 별수 없이 방을 나섰는가 사람 소리가 하나 줄었다. 안개로 어둑하여도 대낮이었건만 술이 물마냥 목 안으로 밀어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리도록 들이키고 있었다.

낮게 중얼거리는 이름이 들려왔다.

'케리.'

"스어가의 그 계집들을 평생 괴롭혀 주겠어."


얼마 가지도 않아 잠이 든 숨소리가 전해져 왔다.

케리와 란돌의 사이야 어떠하였건 비사에게 있어 그저 죄다 수상쩍은 인물이었다. 차라리 관련자들을 싹 다 데려다가 고신(拷訊)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지도 몰랐다.





마차에서 내린 두 여인이 기사단 내의 저택의 문을 지남에 뭇 사내들의 시선이 흘러들었다. 가느다란 목들과 옅은 분홍빛 금발이 살랑거렸다. 화려하고 커다란 문양의 자수가 놓인 복스러운 털 망토 아래로 살랑이는 치맛자락이 어여쁜 이들이었다.


"카일러스님을 직접 뵈어야지, 왜 사촌누이를 만나자는 게야."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이스터님이에요. 거기다 공작 저하는 쉽게 뵐 수 없다지 않습니까."

"쉽게 라니, 우리 정도의 가문이라면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닐뿐더러 용건이 확실하게 있질 않니."

계속해서 카일러스의 이름을 반복해서 말하는 사이에 문이 열렸다.


이스터가 낯익은 손님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성에서 뵌 이후로군요. 에스윈님."

"이리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심통 맞은 얼굴을 하고 선 에첼을 애써 다독이며 에스윈이 먼저 인사를 했다. 에첼 역시 마지못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에첼 스어입니다. 반갑습니다. 카일러스님은 계시지 않나요?"

이스터는 그녀가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꼈으나 모른척하였다. 꾸미지는 않았으나 흠이 될 것도 없이 반듯한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오라버님께서는 최근 용무가 많아 대체로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심드렁한 어투의 에첼이야 어찌 되었건 이스터는 에스윈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얼굴이 상하셨어요. 그간 시끄러웠다 들었는데 그 일 때문인가요?"

숀의 힘이 스쳤어도 아직 붉은 끼가 남은 이스터의 얼굴을 보며 말이 건네졌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가라앉아 접견이 가능한 것이니 아침의 그 난리가 제법 도움이 된 셈이었다.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치고 있었군요. 사람이 많으니 항상 다사다난하지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방안을 곁눈질하던 에첼이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어린 하녀에게 손짓했다.

"페르, 가져온 것을 꺼내도록 해."

손에 붕대를 감은 페르가 천에 곱게 쌓인 것을 내밀자 에첼은 그것을 탁자 위에 톡 하고 내려놓았다.


"무엇인가요?"

이스터가 묻자 에스윈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제 약혼식의 초대장입니다."

"축하합니다. 에스윈님."

그런데 봉투가 모두 다른 색을 하고 있었기에 손이 머뭇거리자 곧이어 설명이 이어졌다.

"그 금색 문양이 있는 것은 카일러스님 것이고, 녹색과 파란색은 기사분들의 것이고 그 하얀 것들은 여분이에요."

에첼이 우아한 손짓으로 봉투를 가리키며 답했다.

보통 한 가문 내로 오는 이런 초대장은 모두 같은 색이거나 대표로 한 장만 전달하기 마련인데 특별히 카일러스의 것에는 금테까지 두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사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금장을 두르든 보석 가루를 뿌렸든 아마 그저 그렇게 흘러갈 초대장이었다.

이스터가 봉투를 열어 안의 글을 보려 하자 에첼이 관두라는 듯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그러시나요."

"상대는 그란 가의 망나니 아들, 란돌이니까 딱히 보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언니, 그러지 마세요."

에첼의 삐딱한 말에 에스윈이 당황한 듯 속삭이며 말했다.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니? 난 이 약혼 처음부터 맘에 들지도 않는다고 했잖니. 평민 계집에게 빠져서 그 난리를 쳐놓고 감히 우리 가문과 약혼은 무슨, 너도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언니 그런 이야기라면 돌아가서 해주세요."


"란돌님이시라면 성주님의 아드님이신가요."

"알고 계신가 보내요. 네, 그 란돌입니다. 사라진 계집을 찾겠다고 여기저기 쑤시고 분란만 일으키더니 이젠 매일 술독에 빠져서 문제만 일으키고 있지요."

"언니..."

에스윈은 에첼을 말리다 포기한 것인지 그저 고개를 떨군 채였다. 이스터는 란돌을 대면한 적은 없지만,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보니 어느 정도 사실인 것처럼 들리게 했다.

"잘 해주시겠지요. 이리 고우신 분을 데려가시는데요."

달래듯 말을 건네었다.


"다른 기사분들도 바쁘신가요?"

에첼은 몇 사람의 이름을 읊었다. 이번에 직위 변동이 있었던 자들이었다.

"아마 지금 연락은 힘드실 것 같습니다."

"왜요?" 어디 가셨나요?"

"내부 사정이라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군요."

"흐음. 재미없어라."

그녀의 표정은 노골적이었다.

"그런데 그분들은 왜 찾으시는지요."

"매번 꽃과 음식을 준비해 주셨지요. 말도 태워주시고요. 이스터님은 기사단에 사시니 매일 즐거우시겠어요."

이야기를 듣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앞으로는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지요?"

"기사는 검을 드는 자이기 때문에 범주를 벗어난 일로 문제가 없도록 엄중히 관리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희희낙락 접대를 위한 자리는 더 없을 것이니 기대 말라, 하고 싶었으나 그저 짧은 말만을 던졌다.


"이젠 이스터님 독차지란 소리군요. 나도 상단 가문이 아니라 무가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많은 기사를 거느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지금도 절 찾아오는 기사는 많지만 말이에요."

에첼의 얼굴에 스친 것은 숨김없는 조소(嘲笑)였다.

"저는 그런 자리를 만든 적도,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감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떠받드는 것이 남자의 일이지요. 기사도 결국 사내. 꽃을 보고 흔들리는 그들을 억누르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 아닌가요?"

"개인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사심을 위하여 기사단의 금력(金力)과 매인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분명 처벌되어야 할 일이지요."

이스터는 이런 쓸데없는 신경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오해를 맘대로 하시라 내버려 두는 것도 영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기분 나빠라. 나 같은 손님을 위해 대부호의 금력을 쓰는 것이 아니 된단 말인가요? 기사단의 손님 대접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그녀는 감정을 거슬러 입으로 표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논점을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이스터는 말을 더 잇지 않기로 하였다. 어차피 대화는 그녀 중심으로만 해석될 것이고 그것에 맞추어 아부할 생각도 없었으니 말이다.


"할 얘기 더 있니?"

에스윈이 대답을 머뭇거렸다.

"나 먼저 간다. 내가 마차를 타고 갈 테니 이스터님. 그 잘난 기사단의 인력을 써서라도 데려다 주실 수 있지요?"

이스터가 고갯짓을 하니 에첼은 페르를 이끌고 방을 나섰다.


"폭풍 같으신 분이군요."

"죄송해요. 언니가 무례했다면 제가 대신 사죄를 드릴게요."

"아니에요."

사교계에서야 흔한 인물상이었다.


"여기 손님이 와 계시지요?"

"손님이라면, 비사님 말씀이신가요?"

에스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을 따라서 궁금증이라도 갖는 것일까. 왜인지 그녀가 에첼을 따라가지 않은 것은 이 물음 때문인듯하였다.

"어떤 분이세요?"

"좋은 분이시죠. 말투는 좀 무뚝뚝하지만 상냥하세요."

이스터는 비사의 좋은 점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늘어놓아도 좋을 것이나 그것을 나불거릴 정도로 격의 없는 사이가 아닌지라 말을 아꼈다.

"상냥...하시군요..."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던 것일까. 무언가 떠올리는 눈치였다.



비사는 느릿느릿 걸어 기사단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히 하는지 그냥 길을 따라서 걷고만 있었다.


"야!"

비사는 이제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안 봐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저리 부르는 것은 한 사람뿐이었다.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나온 테미는 기다란 빗자루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째지고 긁히고 부은 상처로 몰골이 아니었다. 거기다 마분(馬糞) 향내를 시각화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신발에도 덕지덕지 지푸라기와 뒤엉킨 갈색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쩝, ...그, 움. 그게."

얼굴이 오만상으로 일그러지면서도 말이 내뱉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말을 제대로 안 이어. 바보 같긴. 왜 자존심 세우고 그래. 넌 솔직한 것 빼면 써먹을 데가 없어."

웨이린이 팔짱을 끼고 뒤로 다가와 섰다.

"넌 왜 암말 안 해."

"내가 뭘."

"우리 디엣 때린 게 너지? 라고 말해 준다며."

테미가 콧소리를 섞어 흉내를 내었다.

"내가? 내가 언제? 숲에서 도와준 게 이분이라 들어서 나는 감사인사를 하려고 한걸?"

"계집애처럼 내숭 떨지 마. 짜증 나게."

퍽하고 웨이린이 테미의 등짝을 내리쳤다.

"야! 나 뼈 붙였거든!"

"호호, 다시 가서 머리나 좀 붙여 달라 그래라?"


빠르게 이어지는 대화 앞에 선 이는 사고가 정지되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요란한 사람은 많았다. 거기 끼느냐 안 끼느냐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을 떠보니 섞여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분명 비사도 수다의 일원일 것이었다.


웨이린이 비사의 어깨너머로 나타난 인물을 보더니 테미의 옆구리를 쳤다. 비사 역시 시선을 돌렸다.

"스어가 첫째 맞지?"

제법 관심이 있는 이름이 나왔다.

"아, 저 계집 또 왔네. 떠받들어 주던 사람들 모가지 날라난 거 아직 모르려나?"

"예쁜 여자 싫어하긴. 하긴, 나도 둘째 아가씨라면 모를까. 첫째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긴 해."


화려한 여인의 곁에 섰던 시종 아이가 이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세 사람은 그 동선을 따라 눈을 두었다. 곧이어 도착한 하녀는 쥬나 또래의 깡마른 볼을 가진 이였다. 주인네 체면을 위해 입혀진 반듯한 옷이었음에도 초라함이 묻어났다.

그 기죽은 모습은 꼭 쥬나를 처음 볼 때와 비슷하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서 아이는 땅을 보며 말을 꺼냈다.

"저희 아가씨께서 잠시 저쪽으로 오라 하십니다."

"누굴?"

웨이린이 물었다.

"여기 이 분이요."

아이가 움츠린 손으로 가리킨 것은 비사였다.


"아는 사람이야?"

테미가 비사에게 묻자 고개가 가로로 돌아갔다.

"갈 필요 없어. 보나 마나 아씨들 심심풀이일 테니까."

초조한지 페르는 손을 감싼 붕대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비사는 그 손에서 피 냄새를 맡았다. 헐거워진 붕대 사이로 보이는 것은 여려 겹 겹친 일직선의 상처였다.

저 모양의 자국은 이미 본 일이 있었다.

'흡혈목의 주인.'

"가서 안 간다 전해."

테미의 심드렁한 말에 페르의 고개가 들려졌다. 안절부절못하는 눈에 불안이 가득하였다.

"...네..."

페르가 다시 고개를 파묻은 채로 몸을 돌렸다.


"아냐. 아냐. 잠깐 서 봐."

웨이린이 조금 급한 말투로 막아섰다.

"가주시면 안 될까요?"

"잉? 너 왜 그래. 가면 지는 거야. 왜 오라 가라 해."

"너 종속이지?"

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어가 장녀가 얼마나 독종인지 내가 말했잖아. 쟤 저 손 봐."

시선이 몰리자 헐거워진 붕대를 당겨 고쳐 잡는 것을 본 테미가 인상을 썼다.

"쯧. 너도 참 운이 없다. 하필이면 저런 여자가 주인이냐."

비사가 먼저 걸음을 떼었다.

오라고 한 것은 한 사람이었으나 가라고 말들을 꺼내버렸으니 모두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사이 에첼 곁에는 소년 청년 중년 할 것 없이 남자들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아주 공손들 하게 손등에 입맞춤들이 올려졌다. 성격이야 어떻든 뭘 해도 화려하게 필 미녀였다. 비사가 다가감에 사람들이 물러섰다.


"에첼 아가씨. 안녕하세요. 그간 무고하셨는지요."

웨이린은 공손하게 인사를 전했다. 방금까지 이야기는 머나먼 별나라 사람들이 대신하였는가 그 눈에서 교양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에스윈과 닮은,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여자였다.

"흐음."

누군가 위아래로 훑어보는 일은 자주 겪는 일이었으나 에첼이라는 이름의 여인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도 분명 태생부터 윗동네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비사를 부른 것은 구경이 주된 이유로 보였다.

"왜 부른거야."

테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말이 짧구나."

아니꼬운 시선을 마주하자 에첼의 입에서 한소리가 들려 나왔다.

"같은 남작가 딸내미들이니 품계는 따지지 마시지."

"같은 남자가라. 글쎄. 그 급이 다름을 다들 알겠지. 집안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나 보지. 행실 머리하곤."

"글쎄. 그쪽도 소문이 원체 많은 급의 여자라 말이지. 사람들이 자기보고 뭐라고 하는지 좀 귀담아들어 보는 게 어때."

"추잡한 몰골로 말이 많구나."


에첼은 나름 그란성의 세력가의 딸이었다. 그 유명인을 끼고서 사내놈들 득실거리는 기사단 한복판에서 갑자기 여인네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더러운 냄새. 그래 봐야 청소나 하는 수련생이잖아? 여기 기사들도 날 떠받드니 너보단 내가 윗사람이지."

"하! 그쪽이랑 어울리던 그 사람들 지금 다 무급 신세일 걸? 다 모가지 짤렸다 이 말이야. 정리해서 말해주자면 부정행위 걸렸다 이 말씀이지. 어울리는 수준이 딱이네? 어린 하녀나 때리...!"

웨이린이 급히 테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에첼의 예쁘장한 눈초리가 순간 사납게 돌아 페르를 향하였다.


"다른 사람 소문인데 헷갈리나 봐요. 아가씨."

웨이린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됐어. 하녀 훈계하지 않는 귀족이 있겠어? 바닥 것들 다독이는 건 결국 질이 똑같은 것들이지. 귀족의 피가 아까운 계집 같으니."

그런 점을 개의치 않아 하였다. 말하자면 이쪽이 오히려 보통의 귀족이었다.


에첼은 휙 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꽃 중의 꽃 같은 자신이 저런 천해 보이는 계집과 말싸움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것이 자존심을 긁어놓았다. 제 눈에 먼지만 들어가도 남정네들은 벌벌 떨어야 했다.

"이제 이곳도 질이 떨어질 모양이지."

테미만이었더라면 예쁜 여인네 편을 들 남자가 수두룩했으나 문제는 비사가 있었다. 당사자도 문제거니와 케인레스 직통이 저기 서 있었으니 어수선한 지금 시기에 덮어놓고 편들어 흠을 만들 수 없었다.


"페르, 넌 걸어서 쫓아 와."

탕하고 마차 문이 닫히더니 바로 출발하였다. 페르가 열심히 그 뒤를 쫓았다. 누구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으나 처량한 모습이었다.

웨이린이 괜히 테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날 그렇게 봐."

"주인 앞에서 하인을 두둔하지 않는 거 몰라? 얼마나 화풀이 당하는지 몰라 물어?"

"뭐 난 장난은 쳐도 애들은 안 때렸어. 귀족도 나름이지. 근데 뭐 저 정도는 보통이잖아?"

"그래도 좀 안쓰럽잖아."



마차가 떠나가자 남자 수련생들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멀어졌다.

"아 어찌 사람이 저리 예쁜지."

돌아선 그들의 대화가 튀어 들려왔다.

"난 저렇게 연약하게 생긴 여자보단 차라리 이스터님이나 케리 같은 얼굴이 더 좋아 보이는데."

웨이린이 중얼거렸다.


"아 넌 모르겠구나. 유명해. 스어가의 꽃 두 송이라고 말이야."

테미가 비사를 보더니 말을 꺼냈다.

"얼굴이 아름다우면 성격이 나쁘다던데, 차녀인 에스윈님은 그런 것 하나도 적용이 안 되는 분이시고 에첼님이야, 보시다시피 가시 돋친 장미세요."

요컨대 닮은 건 얼굴뿐인 자매란 소리였다. 흡혈목의 주인은 아마 에첼이 아니라 에스윈일 것이다. 방금 그 여자가 나무 한 그루의 생사를 걱정할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스어가의 그 계집들.'

해도 그 란돌이란 사내는 하나만을 아닌 둘을 싸잡아 말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뒷부분 순서가 조금 바뀌면서 소제목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륜(二輪) 두 개의 바퀴, 두 송이의 꽃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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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붉은 못 50화 - 감시 +30 13.01.09 1,432 34 14쪽
49 붉은 못 49화 - 감시 +18 12.12.27 1,537 37 11쪽
48 붉은 못 48화 - 몽중몽(夢中夢) +22 12.12.21 1,606 44 22쪽
47 붉은 못 47화 - 몽중몽(夢中夢) +20 12.12.17 1,654 75 15쪽
46 붉은 못 46화 - 몽중몽(夢中夢) +20 12.12.15 1,637 41 12쪽
45 붉은 못 45화 - 몽중몽(夢中夢) +19 12.09.25 1,635 49 15쪽
44 붉은 못 44화 - 도과(倒戈), 들리지 않을 이야기. +11 12.09.22 1,657 40 25쪽
43 붉은 못 43화 - 도과(倒戈) +11 12.09.09 1,788 46 11쪽
42 붉은 못 42화 - 도과(倒戈) +9 12.09.07 1,519 34 9쪽
41 붉은 못 41화 - 도과(倒戈) +12 12.09.05 1,691 5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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