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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못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형향馨香
작품등록일 :
2012.09.25 10:10
최근연재일 :
2014.12.21 16:37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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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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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39,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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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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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붉은 못 66화 - 수라장

DUMMY

도적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굴 안쪽을 향했다.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인물이었기에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소년은 시선 같은 것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지 안을 휙휙 둘러보더니 손에 쥔 돌로 흙벽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어, 이제 이거 완전히 뼈만 남았네."

소년은 툭 하고 무언가 던져내었다. 그것은 구르고 굴러 아렌의 뒤에서 멈췄다. 허옇고 누런 머리뼈였다. 아렌은 그 크기가 자신이 쓰다듬는 레리의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군데군데 금이 가고 움푹 패서 조금만 힘을 가해도 부서질 것 같았다.

"아, 그거 완전 금 갔지? 용케도 안 부서졌네."

"이거 네가 그런 거냐?"

목소리에 언짢음이 실려 무게감이 더해졌다.

"그을쎄에?"

흙 묻은 손이 엉킨 나무뿌리를 좀 떼어내더니 팔을 길게 틈으로 쑤셔 넣었다.

"얏호, 역시 있군. 있어. 여기 맞구만."

노끈으로 된 손잡이가 주욱 올라왔고 뒤이어 제법 큼직한 나무 상자가 틈에서 빠져나왔다. 눅눅한 흙덩이가 쏟아졌다.

"왜 궁금해? 이거 내가 전쟁 때 숨겨 놓은 거거든. 니네들 말고 우리도 여기 예전엔 자주 숨느라 들락거렸어. 이거. 술도 있고 칼도 있고. 또 뭘 담아 놨었지."

누덕누덕 알 수 없는 천조각들과 빛을 잃은 여인네 머리 장식부터 녹슨 칼과 마른 술병까지 잡동사니만 벌려졌다. 그때는 뭔 생각으로다가 이것들을 담아 둔 것일까. 기억에는 좀 쓸만하다 싶었는데 막상 여니 그냥 고물 상자였다.

소년은 관심이 떨어진 듯 상자 덮개를 대충 다시 얹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불가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렌이 손에 든 해골을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 머리통은 말야. 잘 튀어. 통통. 상상 안 되지? 딱딱할 것 같잖아. 근데 잘 튀어. 뭣 하면 거기 다 죽어 가는 애 머리 한 번 잘라 보지그래. 발로 팍 차면! 슈웅!"

순식간에 굴 안을 일렁이는 빛보다 넘치도록 살기가 채워졌다. 도적 소년은 두 손을 들고 항복이라며 쌜쭉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얄궂게 흔들어댔다. 그의 장난스러운 공기는 이 안에 어울리지 않았다.


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로 지웨이를 향했다. 도적 소년 덕에 생각난 일을 할 참이었다. 누인 이 곁에 무릎을 굽히더니 명중의 혈을 한 번 튕기자 상처로 피가 왈칵 쏟아졌다.

테미가 놀라 숨을 삼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심감(心坎) 위로 대칭이 되도록 두 번 손을 대자 넘치던 피가 잠잠해졌다. 고인 피를 한 번 뱉어내도록 한 것이었다.

"못 보던 지혈방식이군요."

디피스였다. 그는 살짝이 힘을 주어 새어 올라오는 피를 천으로 닦았다.

"사제라면 고칠 수 있는가."

"치료 사제만이라면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료 사제가 의술을 배웠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이 정도의 내외상이면 보통은 치료 사제와 의술사가 함께 합니다. 신력으로 한 번에 다스릴 수 없으니 가장 급한 곳부터 신력을 불어넣지요. 그것을 의술사가 알려 주는 것입니다. 운이 좋구나. 지웨이. 지금 그란에는 숀님이 계시니까. 돌아가기만 하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 거다."

"의술사."

"아, 의원이라고 해도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숀님이 속한 그 당파에서는 의술사라 새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비사는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문제는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치료 신력이니 마법이니 그딴 것들이 생존율을 높여 준다 하여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것은 비사도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빗물을 털어내며 나간 이들이 돌아왔다. 표정이 밝지 않았다.

"후, 아니 되었네들. 빗속에서 탄을 터트리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군. 심만 멀쩡했으면 이리 눅눅해질 리도 없었겠거늘."

비사가 손을 내밀었다.

셰넌이 갸우뚱했으나 아무래도 탄을 달라 하는 모양이었다.

"어찌하려고."

"터트린다."

"방도라도 있는 것이냐."

비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탄을 손에 쥐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 제가 따라갈게요."

아렌이 급히 뒤를 쫓자, 아가스가 다시 그 뒤를 쫓았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사는 이 물로 가득한 공기가 자신의 기척이 감춰주리라 생각하니 운행이 조금은 편해지었다.

"저쪽으로 가자."

아렌이 소리쳤다. 딱히 바라지도 않았건만 줄줄이 사탕처럼 두 사람이 자신의 꼬리를 물었다.

"역시, 불을 피워봤자 얼마 가지 않아 꺼질 거에요. 이런 빗속이니."

"뭐, 그래도 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 비사 어떻게 할 거야. 잘 듣는 수석이라도 가지고 있어?"

답이 없었기에 세 사람은 한참을 더 걸어 숲 안쪽을 향했다. 비사가 멈추어 고개를 올려다보니 커다란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숨을 한 번 들이키고 작은 두드림과 함께 위로 솟구치자 금새 나무 꼭대기였다. 한 번 더 도약하여 올라 탄을 위로 던졌다.

던짐과 동시에 하행이 시작되었다. 재빨리 오른손의 검지에 중지와 약지를 모아 그 끝에 기운을 끌어 세웠다. 남은 두 손가락을 세워 인력을 끌자 그 사이에 어린아이 솜 주먹만 한 뇌구가 피어올랐다. 비사의 손끝이 빛을 뿜는 뇌구를 튕겨 올렸다.


터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빛나는 붉은 연기가 올랐다. 곧이어 나무 대를 긁는 소리와 함께 비사가 땅에 내려앉았다.

"우회한다."

세 사람은 재빨리 자리를 움직였다.

"비사님! 설마 마검사셨어요? 마법이죠? 방금?"

아가스가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을 던지고 있었다.

"마법이 아니다."

어린 날, 도혜 선사에게 장난삼아 배웠던 뇌전이었다. 비사가 할 줄 아는 법술은 이 하나뿐이었고 선사처럼 커다란 것은 지금도 만들지 못할 것이었다.

"아. 아아 네! 알겠습니다. 비밀로 할게요."

어찌나 저리 겸손한지 아가스는 비밀로 하는 그 기분 알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나중에 기회를 잡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사, 정말로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렌이 다시 물었다. 빗소리와 숨이 범벅된 목소리였다.

"그대가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였다."

"그것 때문에 이 숲까지 날 찾아 헤맸다는 거야? 어째서? 너 나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잖아. 기사단 꼬맹이들 때문이라면 차라리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만."

"그대와 제스미가 나를 배웅 했던 것과 비슷하다."

비사의 설명은 단출했다. 하지만 아렌은 한숨 쉬듯 웃어버렸다. 이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더 달리다 아렌이 다시 물었다.

“너도 누군가 잃어버렸니.”

“전부.”

"그래."

어려운 질문에 어려운 답이었다. 두 입이 이 말들을 뜸 없이 토해내게 될 만큼의 시간은 지나 있었다.

아렌은 이 비사의 묘한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놔 버리게 된다는 그 표현을 하게 되는 이들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었다.

비사의 입안에서 맴도는 말들이 더 소리가 되지는 않았다. 지면에 박히는 물화살이 부서지는 수만큼 너무 많은 이야기가 목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평소 활기 넘치게 소란스럽던 케인레스가의 담벼락 안이 가라앉아 있었다. 커다란 쇠창살 문 두 짝이 입구를 막아버렸다.

저택의 집무실 앞 복도, 이스터가 늘어선 사람들에게 또박또박 말을 잇고 이었다. 어인 일인지 평소보다 다소 언성이 빠르고 높았다.

"고숙께오선 이미 북동지부의 지부단장 자리를 내려놓지 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이리 억지를 부리시는지요."

"건방진 계집! 누가 네 고숙이냐. 남자 갈아치우는 여자의 딸 주제에 감히 케인레스의 이름을 얻으려 들어. 어디서 가인(家人) 행세냐."

촤악-

인정사정 보지 않고 후려치는 손에 이스터의 몸이 밀려나며 주춤거렸다. 손가락 마디를 채운 지륜(指輪)이 얼굴에 붉은 자욱을 깊게도 내었다. 이스터는 그래도 득달같이 자세를 곧추세웠다.


"본가의 사람들도 언니에게 예를 갖추는데 이 무슨 짓이에요!"

놀란 눈으로 이스터의 치마 깃을 잡았으나 어린 눈가가 매서웠다.

"그래 네가 이시스겠구나. 더 어린 날에만 봐서 못 알아보게 컸구나. 잘 들어라. 카일러스도 저 계집을 가적에 올려주진 않고 그깟 허명 하나 준 것을 보면 취급이 그렇고 그렇단 뜻이지. 어차피 가적에 올려주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는 짓. 밖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안에서는 외부인일 뿐이다."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언니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계세요! 가적에 안 올라도 언니는 내 언니에요! 함부로 하시면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네가 날 용서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데.”

이시스의 커다란 눈망울에도 힘이 들어갔으나 남자는 픽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시스. 그만하렴."

이스터는 낮게 속삭이며 괜찮다고 물러나 있으라 말하였다.

"오라버니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가주가 그리 정한 것을 어찌 헐뜯으시는지요."

차분히 가라앉히려 다분히 노력 중인 목소리였다.

"흥! 어차피 카일러스의 독자적인 행동. 맞추어줄 필요는 없는 것이지."

"제 문제는 뒤로하고서도 지부의 일에서 모두 손을 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오라버니께서 아니 계시니 돌아오셨을 때 다시 이야기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사람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양해도 없이 차지한 것 아니냐. 아무리 가주라도 내가 윗선이다. 어디서 감히 어린놈이! 나 역시 함부로 할 수 있음을 보여주리라."

"아니지요. 오라버니께서 가주이자 이 기사단의 단주이십니다. 그러니 고숙께오서 위가 아니십니다."


그는 뒤에 선 이들에게 이들을 어디다 좀 가두어 놓으라 명령을 내렸다. 이스터는 복도와 방 한편에 자리 잡고 선 이들이 퍼렐의 사병외에 북동 지부의 사람들이 있음을 보았다. 당연히 퍼렐이 여기서 자리를 들어찬 동안 그의 행동에 감화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었다.


이시스가 찰싹하고 자신에게 내밀어 진 손을 내리쳤다.

"나 이시스는 명실공히 현 가주의 친누이. 정실 부인인 레이디 케인레스의 딸.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에요!"

"이시스 어른들 문제에 끼지 말라고 어머님께 배우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어머니께 묵인하지 말아달라 청을 드릴 것이에요. 제가 어리다면 어린 만큼 떼를 쓰겠어요. 고숙께서, 그리고 당신들이 절 모욕하고 아프게 했다고 할 거에요. 전 언니에게도 함부로 하지 말라 말씀드리는 거에요. 언니에게는 제가 그리고 오라버니가 있으니까요."

이스터가 세력이 없다면 자신이 그 세력이 되어줄 요량이었던 이시스였다. 어린 치의 말은 이스터의 말투를 꼭 빼닮아 있었다.


"너, 어린 것을 잘도 꼬드겨 놓았구나."

"똑똑한 아이니 스스로 세상을 배워나가는 것이지요."

"해도, 네 어리광을 전부 다 받아 줄 생각은 없단다. 이시스. 물러서지 않으면 진짜로 다친다."

"잇..!"

이시스가 튀어 나갈 듯했으나 이스터나 가로막았다.

"나는 지부단장의 자리를 내려놓은 적이 없고, 카일러스는 그것을 공표한 적이 없어. 나는 공식적으로 아직도 지부단장이라는 말이다. 그래, 네 말대로 단주가 최고라고 쳐도 이 자리에 없는 이상. 이곳에서 현재 명령권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

무리가 있음이 분명해도 아주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랫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것은 자명했다.

'오라버니의 행선지도 알고 있을까. 반감이 있다 해도 연줄인 마님의 딸 이시스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못하겠지. 비속한 짓이기는 하나 공표되지 않은 것은 맞아. 단령이 있으니 기사단내의 사람이 함부로 그를 거스르지도 못할 상황인가.'

카일러스가 지부로 왔을 때 퍼렐은 자리에 없었고, 가주가 퍼렐 자신이 해온 것들을 전부 뒤집고 있다는 소식은 그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금전까지 얽힌 문제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처음에는 아니었어도 이후는 말 그대로 도피였다.

"가주는 말이야. 왜 어머님이신 레이디 케인레스의 말을 듣질 않는 거냐 말이다. 나를 인정하고 자리를 내어 주신 건데 가주면 모든 것을 함부로 해도 되느냐! 그래, 네가 말해 보거라 이 껍데기 케인레스야."

"고숙께오서도 원래라면 초서(招壻)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굳이 고숙님의 가문을 버리고 케인레스의 가적에 이름을 올리신 것이 아니십니까. 저를 그리 나무랄...!"

촤악!

이스터의 목이 거칠게 돌아갔다. 피 맛이 입안에 퍼졌다. 눈가의 여린 살이 부품이 느껴졌다. 하지만 버틸만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 ...나무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시지요."

"주둥아리 닥치거라. 나는 케인레스 가에 충성을 맹세하며 그것을 명예롭게 청하였느니라! 제까짓 게 감히 어디다 비하려 드느냐."

명예니 뭐니 운운하고 있었으나 분명 그것은 열등요인이었다.

"또 손찌검을!"

이시스가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이시스. 한 마디라도 더 지껄이면 네 언니의 입술이 전부 찢어질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너도 카일러스의 장난감인지는 모르나 내 기분을 더 상하게 하지 마라."

퍼렐은 결국 집무실 안으로 밀고 들어섰다. 두 소녀 역시 집무실 안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고 그 과정 동안 이스터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비 내리는 창을 보며 돌아올 이를 떠올리는 것이 다였다.

'레이에게도 이 상황은 어려울 것이지만 오늘도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고 비사님이 돌아오시면 어찌해야 될까.'

창 너머로 저 멀리 잠깐이지만 무언가 반짝였다. 곧이어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더니 이내 들어와 퍼렐에게 고하였다.

"아주 잠시지만 붉은 연기가 위로 올랐다 합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그의 표정이 묘하였다.

"훔. 잘 얘기해 두었겠지."

"네, 퍼렐님. 아무도 나가지 못하도록 잘 일러두었습니다."


그것이 교전신호의 색임을 깨닫자 이스터의 마음이 급하게 요동쳤다.

"이런 짓을 해 보았자 얻으실 수 있을 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카일러스가 돌아올 때까지 참고 참으려던 이스터의 입이 결국 다시 열리고 말았다. 하는 짓이 너무나 어리석다 여겨진 탓이었다.

"원래 큰 탑을 무너뜨리려면 작은 것부터지. 실책이 하나하나 쌓여서 불신을 얻는다. 그도 아니라면 화풀이는 되겠군. 이 내가 쫓겨난 듯이 물러서서 비웃음거리가 된 것처럼 말이지."

"부정을 저지르고 아래를 버려두신 것은 사실이지요."

"나는 이 자리에 어울리는 행동을 했다. 그리고 네깟 년이 주둥아리 놀려 보았자 나는 문을 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확립된 계급이라는 것은 참으로 좋아. 명령은 명령. 그러게 뭣 하러 자경단이니 병사 같은 천박한 것들과 함께 정찰 따위를 내보내. 사람은 위에 서야 한다. 바닥부터 가르쳐서는 값이 싸게 정해지는 것이야."

"기사단은 그런 겉치레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라버니는 제일선으로 나가려고 하시고 계시고 이 기사단의 존재 이유가 그것입니다."

"일부의 이상론이겠지. 허드렛일을 하는 기사단은 적어도 우리가 아니야."

"아니요. 제 이상론이 아닙니다. 고숙님도 악신전을 알고 계시지 않으신지요."

"악신전따위 그저 전설일 뿐이지."

"그것을 모르신다면 외부인은 바로 고숙님이십니다."

"큭큭 카일러스가 너를 왜 곁에 두는지 알겠구나."

"오라버니가 돌아오시면 어쩌실 요량이신지요."

"글쎄 웃으며 좀 약을 올릴까. 가문의 기사단도 제대로 아우르지 못하는 카일러스를 그란에서 나무란다면 다시 내게로 이 자리가 돌아올 수도 있지 않겠나."

퍼렐이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 이스터는 직감했다. 이 자는 레이디 케인레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케인레스가의 마님은 안으로야 썩어도 밖에서 그 이름을 너저분하게 만드는 행위에는 결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분명 그 등에 업었다고, 이 자는 이런 행동도 눈감아줄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일러스를 너무 무르게 보고 있음이었다.

"오라버니와 대면한 적이 없으시군요."

"대면이라, 곱상한 얼굴과 인사를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 그깟 것이 대수더냐."

이스터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빗속에서 연기탄을 터트리기는 어려웠을 것이었다. 비가 옴에 금방 꺼질 것을 앎에도 말이다. 이스터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기사단은 이런 식으로 생살 뜯겨 나가는 장난 거리가 돼서는 아니 되었다.

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보다 요란함이 울려 퍼졌다. 여러 명이 뒤엉킨 싸움이었다. 이스터는 창가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퍼렐이 웃으며 술잔을 흔들었다.

"이 세상에 파벌이 없는 곳은 없어. 이게 진짜 진흙탕 싸움이지. 참으로 재밌고 좋구나."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밤이 찾아올 것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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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붉은 못 44화 - 도과(倒戈), 들리지 않을 이야기. +11 12.09.22 1,657 40 25쪽
43 붉은 못 43화 - 도과(倒戈) +11 12.09.09 1,788 46 11쪽
42 붉은 못 42화 - 도과(倒戈) +9 12.09.07 1,519 34 9쪽
41 붉은 못 41화 - 도과(倒戈) +12 12.09.05 1,691 5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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