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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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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향馨香
작품등록일 :
2012.09.25 10:10
최근연재일 :
2014.12.21 16:37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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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82
추천수 :
3,888
글자수 :
539,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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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0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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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붉은 못 77화 - 이륜(二輪)

DUMMY

마차가 주택가를 가로질렀다. 따각따각거리는 말의 얌전한 발소리가 뛰면 따라잡을 수 있을 만치 느렸다.

그 안에는 이스터와 에스윈 그리고 비사가 타고 있었다.


수련생을 붙여 내보낼 수 없었고 시기가 시기라 마땅히 호위로 붙여 배웅을 보낼 기사가 없었다. 때마침 방으로 들어온 이시스가 말하였다.

"한가한 사람이면 되는 거 아니야? 아까 들어오는 거 봤어."

사실, 비사에게 무언가 부탁을 하는 것이 영 마뜩한 일은 아니었으나 성의 구경도 할 겸하여 함께 나가지 않겠느냐 정중히 물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묘한 구성원을 태운 마차였다.

에스윈이 비사에게 관심을 둔다 여겼으나 막상 한 공간에 들어앉으니 그녀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엇갈리는 길에서 이스터는 창 밖을 보더니 마부가 앉은 쪽의 벽을 몇 번 두드리자 달리는 것이 멈추었다.

작은 창 옆으로 하얀 천이 덮인 수레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그 곁을 걸었다. 마차는 느린 그 행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작은 배려였다.


"죽은 다음에는 어찌 될까요."

밖을 내다보기만 하던 에스윈이 드디어 마주한 얼굴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해도 산 사람들 모여 앉아 누가 답을 내줄 것인가.

"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모든 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였는데 죽고 나서도 계속 도망치고자 했던 것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거에요."

"슬픈 이야기로군요. 그 선택이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안식을 바란 것일 텐데..."

"무서운 이야기지요."

이스터의 조용한 말에 에스윈은 조금 굳은 얼굴로 다른 말을 이었다.


'지옥불의 허상'

가끔은 이 세계를 비사는 그리 정의하곤 하였다. 자신에게 깨달음과 벌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땅처럼 말이다. 허나 본인은 그 진실 여부를 알 수 없었다. 해도 가끔 모든 감각이 가짜처럼 느껴지곤 하였다.


"이스터님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좋은 일일까요. 아무도 모르는 낯선 땅이."

"그냥 가끔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는 곳이라면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한 세계에서 도망을 간 인간은 결국 같은 문제를 만나면 또 그것을 겪어야 할 것이에요. 그러니 아무도 모르는 땅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겠지요."

"...그렇지요. 도망쳐도 자신은 똑같겠지요."

깊다. 그녀의 한숨은 제법 깊이가 있었다. 묘한 위화감이 듦이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약혼이 많이 고민되시나요?"

이스터는 그녀가 결혼을 앞두고서 고민이 늘었는가 여긴 모양이었다. 상대는 제법 요란했던 연인이 있었으니 아니 그렇겠는가. 해도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네? 아... 아닙니다."

'다른 고민이라도 계신가.'

이스터로서는 캐묻는 것은 실례라 그저 거기서 더 묻지 않았다.



쾅쾅!

차분하기만 하던 그 안이 요동쳤다.

"아가씨! 아가씨!"

누군가 뛰어들어 마차의 문을 두드렸기에 급히 말들이 멈추었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고가 날 일이었다.

세워지자마자 급작스레 문이 열렸다. 마부가 급히 뛰어내려서는 떨어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도와주십쇼. 아가씨! 집에 아픈 아이가 있는데 의원을 부를 돈이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사내는 마부에게 몸을 밀리면서도 애원을 이어갔다.

"그만 괜찮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이스터의 말에 마부가 몸을 돌려세웠다.


"아이가 갑자기 새벽부터 열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의원을 부르려니 돈이 없어 이리 무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제발요. 제발."

"아이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의원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터의 말투는 정중하였으나 어딘가 딱딱하였다.

"네? 아니 그런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의원은 제가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차후의 비용 등 다른 문제도 고려해야지요. 한 번에 해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지 않습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야지요. 어찌 그런 실례까지 범할 수 있겠습니까."

목소리가 한없이 줄어들었다.


"여깄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에스윈이 어느새 품에서 꺼낸 것인지 반짝이는 두 개의 금화를 내밀었다. 그녀에게야 작은 것이나 적선치고는 제법 큰돈이었다.

두 손으로 받아든 것을 움켜쥔 사내는 빠르게 답례를 이었다.

"역시, 에스윈 아가씨는 너무도 착하고 아름다우십니다. 이리 저희를 챙겨주시는 분은 아가씨뿐이지요."

"그럼, 에스윈님처럼 착한 사람은 또 없지요."

"아가씨의 영혼도 분명 아름다우실 것입니다."

주변에 섰던 이들도 온갖 칭송을 시작하니 잠시 엄한 비난의 눈이 이스터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마차에 뛰어들었던 사내는 몇 번이고 굽실거리며 멀어졌다.


잠시 멈춰 세웠던 창 밖을 내다보던 에스윈이 타고 있는 마차라는 것을 분명 저 사내는 알고 있었다. 이스터는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에스윈을 타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짓말이라도 괜찮아요."

에스윈은 어디까지 착한 여자일까.

셰넌이 말하지 않았던가. 의미 없는 도움도 도움이라 말이다. 배부른 귀족의 취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사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이스터는 다른 모양이었다.

사람이 하나 줄고 되돌아가는 마차에서도 그녀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착한.'

이스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단어 자체에 문제를 둔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엔 지나치게 화려한 어미 밑에서 자람에도 핏줄을 닮지 않았기에 착하단 소리를 들었다.

'그런 어미를 두고도 어쩜 이리 착할까.'

어느샌가 그 이야기는 불쌍하다는 말로 바뀌어 들려왔다. 그리고 커서는 하는 말을 다 들어주는 부리기 쉬운 사람의 의미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착하다는 말은 참아야 하는 위치를 뜻함이었다.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무엇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보낼 의원이 너무 과하여 불편하다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거짓이라 여긴다. 함에도 거슬린다. 사람 사는 일에 티끌이 없을 수도 없으련만 그마저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확인하면 되지 않나."

"네? 하지만..."

고민하는 이스터에게 비사의 말은 너무나 쉽고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동행하겠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말을 세우고 두 사람은 길에 내려서서 로브를 깊게 눌러 썼다. 너무도 즉흥적인 행동이었으나 이스터는 왠지 모르게 들뜬 기분이 되었다. 확인한다니 생각이나 해본 일이던가.


남자가 사라진 방향은 알고 있고 스어가에 들려 바로 돌아온 길이니 일다경(一茶頃;약 15분) 정도가 지났을까 싶은 정도였다. 길에서 찾지 못한다면 이스터를 잠시 세워두고 비사가 둘러보고 오면 될 일이라 뒷일까지 생각하였으나 그럴 필요도 없이 멀지 않은 곳에서 그 사내를 발견하였다.

여전히 상가 거리에 선 그는 무언가 잔뜩 품에 안고 다른 이들과 어울려 걸어가고 있었다. 이스터는 왠지 모르게 긴장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얼마 남았나."

"알아 무엇하게."

"아, 젠장 내가 먼저 뛰어들 것을."

"에첼님에겐 택도 없지만 에스윈님은 정말 착하지. 아 못 보던 아가씨도 하나 있어서 말꼬리를 잡히는 바람에 실패할 뻔했는데 말이야."

"가끔 그리 까다로운 계집들이 있지. 달라면 그냥 좀 줄 것이지. 에스윈 아가씨처럼 그냥 착하게 탁탁 말이야. 안 그런가."

"그러게나 말일세."

"간만에 애들이랑 고기 냄새 좀 맡겠군. 한 덩이 줄 테니 그리 부러워 말게나."

"크, 역시 공으로 얻은 것은 나눠야 제맛이지. 아 우리 심성도 아름다운 에스윈 아가씨를 함께 찬양해야지."

멀어지는 인영을 더 쫓을 필요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도박이나 술을 사는 데 쓰지 않아서요. 저들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일 것이지요. 그러니 넘어가 주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는 일이로군요."

냉소가 어릴 것 같다 여겼던 이스터는 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흔한 일이라면 흔한 일일 것이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을 말하는 얼굴이었죠."

"속이려 하는 자에겐 속을 수밖에 없다."

"죽어 반복되는 것보다 전 이런 사람의 거짓이 더 무서워요."

모처럼 걷는 상가 거리였으나 지나는 사람을 피해 발길을 뻗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이스터는 지금 불쾌와 유쾌 사이에서 기분이 붕 떠버린 상태였다.


실지 아픈 이가 있었다면 그 후까지 봐주려 한 이스터가 더 도움이 될 말을 한 것이리라. 그러니 비난받는 것이 결국 적반하장이었음에도 제 행동과 그들의 행동까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 여자가 착한 여자라면 그대는 현명한 여자다."

비사의 말에 이스터의 눈이 또렷해졌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제가 감상에 젖어 중심을 잊었군요. 저들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어야 할 필욘 없는 거겠지요."


두 사람은 또 느긋하게 걸어 되돌아왔다. 얇은 구두 밑창 아래로 한기가 도는 바닥을 느끼면서도 이스터는 청하기를 잘하였노라 그리 생각했다.






그란성의 공무실에는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무덤숲의 습격에 대한 수습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 쪽에서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여기 보시오. 크윽."

휘장을 탁 손으로 쳐올리며 란돌이 들어섰다. 술에 취한 것인지 붉어진 얼굴과 풀린 눈이었다. 그에게 손목을 잡힌 채 끌려 나온 에스윈이 몸을 움츠리고 섰다.

"아. 이거, 회의는 끝이 났으니 방해는 아닐 테고 이 그란 백작의 장남인 란돌이 여기 이 에스윈 스어와 약혼을 합니다."

혀가 꼬인 듯 이상한 발음도 끼워져 있었지만 내용의 전달은 확실하였다.


자신의 뒤에서 작은 어깨를 모으고 서 있는 것을 란돌은 휙 끌어 사람들을 향해 내던지듯 당겼다. 에스윈의 잡힌 손목만큼 붉어진 얼굴로 그녀는 사람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여린 눈이 마치 눈물을 쏟을 것처럼 글썽거렸다.

"축하하네."

"축하하네! 란돌."

"축하합니다."

사람들이 축하를 건네자 란돌은 거창하게 팔을 뻗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씨익하고 웃고는 다시 휘장 밖으로 에스윈을 끌고 사라졌다. 잠시간의 침묵이 있었으나 이내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시작되었다.

"허허. 사내자식들 여럿 울겠군."

"란돌 같은 자가 데려갈 줄은 또 몰랐습니다."

"어찌 되었건 성주의 아드님 아시오."

젊은 기사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기저기서 란돌과 에스윈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간 소문이 무성했던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 란돌의 몹쓸 행동거지와 에스윈이 얼마나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여린 꽃 한 송이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옛날엔 그래도 살가운 구석이 있으셨건만 요새는 분란을 너무 만드시니 아가씨가 걱정입니다."

"지금도 저러한데 앞으로는 어떨지. 에스윈 아가씨라면 혼처가 널리고 널렸을 것인데."

"아 이 혼사만 잘 된다면 그란성의 상권은 전부 스어 남작이 가질 것이 아니겠소."

"남작으로서는 나쁠 것 없겠군요."



란돌이 어둡고 긴 복도에서 갑자기 멈추고는 에스윈을 향해 돌아섰다.

"왜 뒤로 숨었지."

그녀를 향한 눈은 사랑스러운 자신의 여인을 보는 눈빛이 아니라 냉기가 서린 칼이라도 뽑아낼 것 같았다. 에스윈은 겁에 질려 커다래진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란돌의 손이 그녀의 뒷목을 무지막지하게 잡아채어 그에게로 이끌었다. 독한 술내가 풍겨 나왔다.

"내가 부끄러운가. 우리 정숙하고 고고한 절벽 위의 꽃 같은 레이디께서는."

"아. 아닙니다."

"또 한 번, 숨었다가는 가만 안 둘 것이다."

갑자기 말짱해지기라도 한 듯이 란돌은 명확한 발음으로 그녀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고분고분한 대답이 따라붙었다.

"큭큭큭. 네가 그럴 때마다 난 이상하게 화가 나."

다시 움켜진 손목과 함께 이들은 긴 복도를 지났다.


타앙-

문이 거칠게 열리고 란돌은 그 문 만큼이나 거칠게 에스윈을 침대 위로 내동댕이쳤다. 에스윈은 붉게 부어오른 자신의 손목을 무심결에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란돌은 여전히 눈빛을 바꾸지 않고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가엾게도 작은 어깨가 떨며 숨을 죽였다. 란돌의 단정하게 빗어 넘긴 짧은 머리가 흩어져 내렸다.

손이 여인의 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눈 옆으로 턱선을 따라 내려온 손이 가냘픈 목을 훑고 움푹 팬 빗장을 지나 하얀 가슴께 위로 내려왔다. 에스윈의 거친 숨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그림자 때문인지 란돌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기에 에스윈은 더욱 겁이 났다.

"소리 지를 텐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겠지. 누가 뭐래도 곧 약혼식에, 뒤이어 결혼까지 이어질 것 아닌가. 소리를 지른다고 내게 흠이 될 것도 없으니 말이야."

툭. 툭.

그녀의 모아진 가슴 위로 그의 손이 스치더니 곧 자잘하게 매어진 단추를 하나씩 풀어냈다. 그의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이자 어깨를 감쌌던 천이 벌어져 내렸다. 얇은 천이 가슴을 감싸 안고 그 아래로 단단하게 동여매진 코르셋이 있었다. 부드러운 피부를 감싼 천을 당기자 그녀의 투명한 가슴이 잔약하게 떨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에스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 소리가 머리를 가득히 울렸다. 거친 손끝이 동그란 가슴선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삼키고 손톱을 세워 제 손을 내리눌렀다. 제 살을 찢더라도 비명은 아니 되었다.

란돌은 겁먹어 질끈 감긴 두 눈을 내려다보며 실긋한 눈 귀를 좁혔다. 보드라운 가슴도, 빛나는 듯한 투명한 어깨를 그는 감정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싫다면, 가서 거절을 하지 그래. 없던 일로 하자고. 약혼 따위 취소해 달라고 당신 아버지께 애원해.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정말 궁금한데 말이야. 난 사실 그대가 애당초 이 혼인을 수락한 이유조차 알지 못하겠거든. 왜 그렇게 긴장된 숨을 쉬고 있는 걸까.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흥분이라도 하신 걸까. 크크큭. 설마, 정말 내가 그대를 품기라도 할 줄 알았나. 청초한 그대가 설마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귓가에 닿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이내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와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에스윈이 살며시 눈을 떴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긴장 풀린 숨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부끄럽게 내어진 가슴의 단추를 떨리는 손으로 다시 동여매자, 처참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반듯하게 끼워져 있던 깔개를 당겨 잡고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마치 그녀의 인생이 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낮술 자신 도련님이 깨어날 즈음부터 외벽 창틀 위로 소리 없는 그림자가 하나 늘어 있었다. 몸만 잘못 비틀어도 떨어질 것 같은 자리였으나 그리 반듯하지도 않은 자세였다.

남과 공감대가 별로 없는 비사의 눈에도 에스윈은 매우 모호한 인물이었다. 선인(善人)이라는 칭한다 하여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려는가.

'지나치게 착한 것들은...'

문득 어느 건달 나리의 말이 떠오르고 말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9금 표시 이정도에선 안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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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붉은 못 78화 - 장례 연회, 외전 그들의 연담(緣談) +4 14.12.03 445 28 25쪽
» 붉은 못 77화 - 이륜(二輪) +6 14.12.01 631 36 16쪽
76 붉은 못 76화 - 이륜(二輪) +8 14.11.28 673 3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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