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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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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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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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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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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22화 병졸과 역관

DUMMY

522화 병졸과 역관


동서고금을 무론하고 사람이란 새로운 것 구경하길 좋아한다.


이는 관광으로 유명하거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대도시에 산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은 모든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니, 남들이 대단하고 좋게 여긴다고 하여도 익숙해지면 그저 일상이요 식상할 뿐이니 새로운 일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구경할 생각을 당연하게 품는다.


하물며 그 일이 평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싶은 타국 공주의 행렬이라고 하면 말해야 입만 아프니, 영변부로 들어오는 길은 청나라 공주 아이신기오로 비양고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서 끝났다면 그저 좋은 일이라 넘길 수 있겠지만 이렇게 사람이 몰리면 먼저 자리를 잡은 이들이 아닌 한 다른 사람 뒤통수만 보기 십상이니 그 신세를 면하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수를 궁리했다.


“공주라는 사람은 대체 언제 온다냐.”

“여종 하나 보이질 않네. 아니, 그 전에 이러다가는 남의 뒤통수만 보다가 가겠어. 어디 따로 볼 만한 자리는 없나?”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지!”


볏단을 가져와서 올라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수레를 이용하는 이도 있었고, 사람이 사람을 올려서 보게 하고 말하는 걸 듣는 걸로 만족하고자 하는 이도 있었다.


우습게도 맨 앞에 있는 이들도 이와 다르지 않았는데, 언제 오나 싶어서 슬쩍슬쩍 몸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제지하기 애매하여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동원된 훈련도감 병졸들은 처음에 이러한 일들에 눈살을 찌푸릴 뿐, 딱히 제지하진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제지하지를 않으니 조금 더, 조금 더 바라여 더욱 몸을 내미니 종국에는 크게 미리 말한 자리를 넘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이러한 일들을 막기 위해 훈련도감 초관 하나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니, 그는 나언상이었다.



***



“아오, 더 나오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잔뜩 성이 나서 외친 언상은 더는 못 참겠다는 얼굴로 주변에 있던 병졸들에게 명했다.


“야! 저놈들 힘으로라도 밀어내!”

“예? 초관 나으리, 정말 그래도 됩니까?”

“조금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남의 나라 사람을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을 위협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조선군이지 청나라군이 아닙니다.”‘


나언상이 내린 명령에 몇몇 병사들이 용기를 내어 항변하니 그 말이 옳기도 했다.


하지만 나언상이 보기에 이 일은 그렇게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 우리 조선군이다. 그럼 우리가 주인이고 쟤넨 객이야. 그치?”

“그······렇죠?”


한 병사가 눈을 껌벅이며 어색하게 대답하니 나언상은 마침 잘 대답하였다는 얼굴로 그 병사를 보았다.


“너는 집에 손이 들면 그 사람 구경하겠다고 온갖 뜨내기가 담 넘는 걸 두고 보냐? 아니면 니네 집 아이가 객에게 먹물을 뿌리면 잘한다고 해?”

“어······.”

“어? 너, 진짜로 그래?”


말끝을 흐리는 병졸의 반응에 나언상은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에 병졸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아, 아닙니다!”

“그래, 아니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물어본 나언상은 작게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흠흠. 아무튼 내가 보기에는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우리는 주인이고, 저쪽은 객이야. 그러니까 대접을 잘해야 맞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녀석 있냐? 있으면 손을 들던 입을 열건 해서 날 설득해 봐라.”


나언상이 말과 함께 시선을 병졸들 하나하나에게 주니 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그에 나언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에 표정을 엄하게 바꾸고 외쳤다.


“알았으면 당장 가서 저 무례한 놈들 밀어내!”

“예!”

“갑니다!”



***



“그 이상은 넘어오지 마시오!”

“대열을 넘어오는 것은 허락되지 않소이다!”

“물러나시오!”


병사들이 소극적이던 모습에서 일변하여 적극적으로 미리 준비한 대로에서 밀어내기 시작하니 모인 사람들은 대번 그들을 향해 성을 냈다.


“아니, 조선 사람이 청나라 사람 위해서 이렇게 하냐!”

“네놈들이 무슨 강도 유수냐!”

“아니면 그 정가 놈이더냐!”


사람들이 성을 내지 병사들은 순간 움찔하였으나 그뿐, 이내에 그들은 나언상이 한 말을 저마다 입에 담았다.


“어허, 나릿님이 손님을 대접하고자 하거늘 함부로 말하는가!”

“마을에 손님이 와도 마을 사람들이 흥미는 보일지언정 이리 다가와 함부로 말하진 않소이다!”

“아니면 그대들은 나그네가 신기하다고 하여 가는 길을 막고 둘러쌉니까!”


이들이 외치는 말에 사람들은 주춤하며 서로를 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런 사람들에게 쐐기를 박은 것은 나언상의 외침이었다.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신표를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여 아닌 자는 모두 오늘 하루 영변부 옥이 어찌 생겼는지 구경하게 해드리이다! 구경을 좋아하니 그걸로도 좋으리라 믿소! 가지고 있는 자 역시 과하다면 신표를 뺏을 것이고 말이오!”


나언상이 하는 말에 사람들은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는 듯이 물러나 자리를 지켰다.


“커험, 구경하고 쌀도 받는 일이라 너무 신났나.”

“난 점잖았어.”

“암암, 우리가 얼마나 점잖으면 외지인들은 우리 보고 양반이냐고 물을 정도라니까.”


그냥 청나라 공주가 온다고 하니까 구경 나온 사람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사실 맨 앞에 있는 이들 다수는 사전에 영변부에서 대가를 약속하고 모은 이들이었다.


대가로 받은 쌀은 많다고 하기 어렵지만 그저 환영하며 쌀도 받을 수 있으니 아주 수지가 맞는 일이라고 여럿이 달려들기도 했다.


그런데 자칫하면 쌀을 받지 못함은 물론이고 구경도 못 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질서를 지키기 시작하니, 마찬가지로 통제하는 일에 애를 먹던 다른 초관들이며 병졸들 역시 옳다구나 하고 같은 말을 외쳤다.


“예의를 지키시오!”

“대접하는 일에 언제부터 우리 조선 사람이 이리 박해졌단 말이오!”

“과한 행동을 보이는 이는 반드시 신표를 확인하고 있다면 처음은 경고, 두 번은 쫓아낼 것이고 없다면 바로 옥 구경을 하게 될 거요!”


앞을 다투어 입을 모으니 사람들도 슬슬 침착하게 물러나고 지시에 따르기 시작하니 그들에게는 실로 다행스럽게도 높은 분들이, 더 정확히는 영변부 다스리는 부사며 유지 대표라 할 이가 오기 전에는 자리가 정돈되게 되었다.



***



“사람들이 참 구경하기 좋아합니다.”

“우리라고 다를 건 없지요.”


영변부 대도호부사 임상백의 말에 이제는 영변부에서 제일가는 거부라 할 강무산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임상백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온 것은 자리에서 오는 책임이며 의무 때문이나 실상 속에서 기대하는 마음이 있으니 일보다는 개인적인 흥미가 앞서고 있기는 했다.


그러한 속내를 새삼 자각한 임상백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사람들의 관심이 청나라 공주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하는 일에 온통 쏠려 있음을 확인한 임상백은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강 진사께 여쭙겠습니다.”

“고작 진사에 장사치 나부랭이인 내가 무어라고 부사께서는 그렇게 정중하십니까?”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오로지 강 진사께서 저에게 도움을 주셨기 때문이니, 어찌 그걸 잊겠습니까. 소열제도 힘든 시기를 함께한 의형제들이며 고향 친구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웃으며 이리 이른 임상백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제 곧 저는 영변부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되는군요.”


강무산은 입에서 말을 내며에 아쉬움을 내비칠지언정 놀라움은 드러내지 않았으니 말을 꺼냈던 임상백이 도리어 놀란 얼굴로 묻게 되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대체 어떻게?”

“몰랐지만 알았다, 알고 있지만 몰랐다고 하면 얼추 맞을까요.”


강무산은 웃으며 멀리 시선을 둔 상태로 말을 이으니,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북방이 아니었다.


“부사께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며, 앞서 보는 사람이지요. 이곳이 번창하고 중요하여 질 것을 알았고, 앞으로 세상이 변할 것이며 그에 대응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이 사람은 그에 어울려 덕분에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부를 쥐었습니다.”


산성에서 버티고 쌀 얼마간 임금께서 내어주셨다는 걸로 기뻐하던 게 바로 어제 같은데 강무산은 이제 영변부 사람 모두에게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재력을 얻었다.


여유가 생기면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강무산은 근래 주변 사람들을 고찰할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결론 낸 것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니, 임상백은 평생 영변부에 묶이기에 아쉬운 자라는 거였다.


“제법 길게 계셨지요. 보통은 그렇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상께서 제게 특별히 신경 쓰셔서 아직은 영변부를 맡고 있습니다.”

“허면 이제 부르실 때가 되었겠습니다. 아무렴 제가 아는 걸 저 높으신 성상께서 모르실까요.”


강무산이 이렇게 말하니 오히려 임상백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이에 임상백이 얼굴을 붉히니 강무산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부사께서는 이 말을 기억하십니까? 기와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것이다, 그리고 양반은 몰라도 양반 아닌 이들은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

“물론이지요.”


사람은 제가 한 말을 쉬이 잊는다고 하나 임상백은 그의 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날을, 오늘이라는 순간에 이르기 위해 떼었던 첫걸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부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이제 기와집에 살고 남부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변부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나를 공경하여 줍니다.”

“그것은 제 덕이 아니라 강 진사께서 열심히 노력하신 덕입니다.”

“노력하여 얻을 수 있게 하여 준 것이 부사이심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성상께서 덕 있게 이 사람의 말을 들어주신 덕입니다.”


끝까지 겸양으로 일관하니 강무산은 임상백이 전에 역관 임가를 칭하며 찾아왔던 날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기꺼웠다.


자리가 나아지고 여유가 가득하여졌음에도 여전하다는 것은 실로 좋은 기분이 들게 하니, 강무산은 기꺼이 품었던 말을 건네고자 했다.


“그렇다고 한들 이미 약속은 이루어졌으니, 저는 이제 부사께서 다른 일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다른 일이라니, 어떤 일 말입니까?”

“글쎄요. 그것은 부사께서 정하실 일입니다. 다만 제게 부사께서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가 물으면 드릴 말씀이 없지는 않습니다.”


강무산이 하는 말에 임상백은 자못 궁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에 강무산은 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은 이가 조선 팔도에 아주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일이군요.”

“불가능하진 않겠지요?”


어렵다는 말에 강무산이 다시 물으니 임상백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웃었다.


“오늘 청나라 공주께서 오시면 저는 영변부를 떠나 한번 한양에 갈 것이며, 이후에 거취가 결정될 것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허어, 생각보다 빠르게 떠나십니다.”


떠날 것을 짐작하나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던 강무산은 섭섭함을 가득 담아서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마주한 임상백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생의 전환점이란 보통 그런 법이지요. 성상께서 이 부족한 자에게 무엇을 말씀하실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온다!”

“청나라 공주 일행이다!”

슬슬 대화를 마칠 때라고 하듯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임상백은 아쉬움을 느끼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할 것이니,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건 강 진사며 강 진사께서 하신 말씀과 소망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언제고 다시 뵙기를 내 하늘에 언제까지고 빌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사담을 삼가고 의무에 매진하였으니, 두 사람이 다시 사담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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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538화 감추는 재미 +2 24.03.30 161 16 12쪽
538 537화 모두가 아는 비밀 +2 24.03.29 151 14 13쪽
537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4 24.03.28 150 15 12쪽
536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2 24.03.27 153 14 12쪽
535 534화 미룸은 미정이 아니다 +3 24.03.26 163 14 12쪽
534 533화 허황된 이야기 +2 24.03.25 155 14 16쪽
533 532화 덕은 풍성함이 전부가 아니다 +2 24.03.24 165 12 12쪽
532 531화 소망은 성장한다 +4 24.03.23 167 15 15쪽
531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2 24.03.22 157 13 12쪽
530 529화 신부 교환 +2 24.03.21 178 14 13쪽
529 528화 어려운 관계 +3 24.03.20 180 13 11쪽
528 527화 친하면 조금이라도 돌아본다 +1 24.03.19 167 15 13쪽
527 526화 연약한 사람 +6 24.03.18 162 18 12쪽
526 525화 물려받은 천성 +1 24.03.17 164 13 12쪽
525 524화 인정받지 못한 아이 +1 24.03.16 188 15 12쪽
524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2 24.03.15 156 16 13쪽
» 522화 병졸과 역관 +4 24.03.14 165 19 12쪽
522 521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3 24.03.13 174 14 13쪽
521 520화 용기 있는 말 +4 24.03.12 175 16 17쪽
520 519화 정통성 +4 24.03.11 181 19 13쪽
519 518화 그대는 옳다 +3 24.03.10 174 14 11쪽
518 517화 거울 같은 사람 +3 24.03.09 175 14 12쪽
517 516화 우선하여 해결할 일 +2 24.03.08 188 17 13쪽
516 515화 맞수 +3 24.03.07 179 17 14쪽
515 514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7 24.03.06 184 16 13쪽
514 513화 소리는 사람을 모은다 +2 24.03.05 184 15 12쪽
513 512화 비상함은 필요하지 않다 +4 24.03.04 176 17 13쪽
512 511화 민감한 일 +2 24.03.03 191 14 12쪽
511 510화 노인의 일 +3 24.03.02 198 18 13쪽
510 509화 고귀한 이름 +4 24.03.01 175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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