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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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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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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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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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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529화 신부 교환

DUMMY

529화 신부 교환


“이렇게 만나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고륜영안공주 아이신기오로 비양고가 건네는 말에 도쿠가와 오키코는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녀가 어색하고 그런 것도 없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들었던 것에서 상상했던 것과 달리 비양고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리다고 하지만 만주족 특유의 강건함에 여성이라면 대체로 신장이 모두 성장했을 무렵인지라 그녀의 키는 오히려 오키코보다 컸다.


어린 새어머니에 키도 자신보다 크니 오키코는 이상하게도 위압 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여 비양고의 친근한 얼굴이며 말투 역시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오키코는 눈치를 살피다가 최대한 예의를 차리리고 하고 고개를 숙였다.


“새로이 부모로 모실 분을 이리 보니 놀라 대답이 늦었습니다. 부디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 부모라니. 아직 양쪽 모두 정식으로 식을 올린 것도 아닌데 너무 빠르지 않나요?”

“먹구름을 보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하면 비웃음을 사기 마련입니다.”


사근사근하게 말하여 가까워지려고 하는 비양고에게 거리감을 두고자 하는 대답이 오니 그녀는 영 마음에 차지 않는 얼굴이었다.


“재미없는 말이네요. 당신과 나의 관계는 더할 나위 가깝지만 더할 나위 없이 어색하고 이상하죠. 새어머니와 딸, 시누이이자 올케라는 구분은 재밌지만 나에게는 조금 멀고 어색하거든요.”


하는 말마다 묻어나오는 자신감에 오키코는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든 자유롭고 이룰 거라고 믿는 그 자신감은 그간 그녀로서는 꿈꾸기 어려웠던 것들이었다.


물론 정말로 이런 고민을 할 여유도 없는 부족한 것뿐인 사람들에 비하자면 사치스러운 고민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녀는 먹고 입고 자는 것에 곤란을 겪은 적은 기억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당신과 사적인 자리에서는 친구가 되고 싶어요.”

“친구?”


말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지도 못한 말에 오키코는 당황을 눈에 드러냈다.


이에 비양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친구.”

“가까운 사이는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가족이 되니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은 필연이다.


허나 그 관계를 친구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고 어려우니 오키코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움은 물론이고 대답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우리만한 사이가 없다고 생각하는걸요.”


비양고는 오히려 왜 이것을 모르냐는 투로 말하고는 잠시 오키코를 살폈다.


그 시선에 낯간지러움을 느꼈으나 바로 물리침도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서 참고 있자니 비양고가 다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례가 없다시피 한 일을 두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


같은 처지라는 말에 오키코는 순간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예의를 망각한 모습에 오키코는 급히 고개를 다시 숙였지만 비양고는 오히려 그러한 점이 마음에 든다고 하듯 말했다.


“이해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좋다고 말하는 비양고의 말에 오키코는 저도 모르게 반발심을 품으니,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를 그렇게 특별하게 여겨주신다는 감사함에 무어라 말하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쌀로 만들었다고 하여 떡과 밥은 같지 않습니다.”

“어느 쪽도 맛있겠네요.”


지지 않고 대꾸한 비양고는 은근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어느 쪽도 사람이 필요로 하는 양식이지요.”

“어느 쪽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죽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병자라면 응당 그래야죠. 하지만 일본이 그런 나라라고 들은 적은 없는데, 그런가요?”


죽을 필요로 할 정도로 힘드냐고 물은 비양고는 대답을 듣기 전에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대청은 양쪽 다, 아니 셋 모두 먹고 즐길 정도로 튼튼하답니다.”

“욕심은 몸을 망칩니다.”

“필요한 것을 챙길 뿐이에요. 나도 그렇고 말이죠.”


비양고는 그렇게 말한 후에 몸을 당겨서 살짝 다가가서 손을 뻗어 오키코의 손을 잡았다.


“이제 가족이니까 이래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뜻대로 하시지요.”


그래도 된다고 하긴 했으나 내키지 않는다고 하는 기색이 풀풀 풍기는 대답이기도 했다.


이는 오키코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부감이기도 했는데, 사방으로 퍼지며 일본에 가서 제 위치를 공고히 하고 싶어 하는 비양고와 그녀는 또 바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차이기도 했다.


그 차이를 비양고는 아직 몰랐지만 오키코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그 기색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전에 상황으로 물러난 아버지 고미즈노오를 보며 한번, 그리고 다음에는 에도에 불려 갔을 때 본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던 열기가 지금 비양고에게도 아직은 작지만 분명하게 머물러 있었다.


“조선에서 도와주기로 했어요.”

“돕다니, 이번 행렬을 말입니까?”


돌연 조선을 언급하는 말에 오키코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걸 입에 담았다.


이에 비양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죠. 나는 청나라를 떠나지만 내가 누구고 어디에서 살았는지 잊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도움을 청하였고, 조선은 돕기로 했죠.”


잊고 싶지 않다는 말과 조선이 돕는다는 말이 맞물리니 오키코는 그녀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도움 받기로 했는지 깨달았다.


“사람이 오가는군요.”

“사람은 그리 많이 오가지 않아요. 그렇지만 소식은 항상 오갈 거에요. 그래서 말인데······.”


말끝을 흐린 비양고는 오키코의 손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도 함께 하지 않겠어요? 나는 여러 소식을 듣고 싶고, 당신 역시 떠난 곳이라고 하여 아주 관심을 끊을 수는 없잖아요.”


관심을 끊을 수는 없다는 말에 오키코는 살짝 눈을 크게 뜨더니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니까 당연하죠. 그러니 나와 함께해요.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사이좋게 지내요. 그것뿐이면 충분해요.”


정말 충분한 일인가 하면 오키코는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인연이라는 건, 친분이라는 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에도에 군말 없이 따라가고 고민 끝에 청나라로 가기로 정한 것은 그저 자신의 안위만이 아니라 주변인들, 가족은 물론이고 그녀가 잠시나마 신세진 절 사람들을 포함한 사람들을 염려하여서 그렇게 한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처음과 달리 거절할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으니, 이렇게 손을 잡힌 상태에서 듣는 말은 기이하게도 따뜻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청나라에 가면 그녀는 아무런 기반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일본으로 간 비양고를 신경 써 준다면 적어도 청나라에 남아 있는 그녀의 가족들은 오키로를 나쁘게 여기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그 가족에 이제 결혼할 순치제 아이신기오로 푸린 역시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한 오키코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 여전하십니까?”


반쯤 승낙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는 말에 비양고는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공석에서는 그럴 수 없고, 편지 역시 대부분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나 역시 그럴게요.”



***



비양고와 오키코는 그로부터 사흘을 더 철원에 머물렀으니, 이는 두 여성의 뜻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보기 어려울 조카를 생각하여 조금 억지를 부린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의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던 작은 고집이니 그녀들은 철원에 도착하고 사흘이 되는 날에 때를 같이하여 떠나게 되었다.


“언젠가 꼭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진심이 담긴 말에 오키코는 비양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그러고 있던 오키코는 이내에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무사를 빌었다.


“여정과 미래가 모두 순탄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교토에 계시는 제 어머니께도 말을 전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토에 있는 어머니에게 말을 전해달라는 말에 비양고는 기쁘게 웃었다.


오키코가 그녀와 온전히 통하기로 하였음은 물론이고 새로운 연줄을 소개하였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꼭 기억하고 다녀올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저는 어른들의 합의하에 족보를 옮긴 사람입니다.”

“좋은 조언이네요. 고마워요.”


오키코가 이르는 말에 비양고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교환이라고 하듯 말을 건넸다.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한양에 가면 조선의 세자빈께서 이야기를 해주실 거에요. 당신을 먼저 생각한 건 그분이니까요.”


자신을 이 이야기에 끌어들은 장본인이 한양에 있다는 말에 오키코는 잠시 긴장하였으나 이내에 웃었다.


“후후, 기대되는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그분과도 지금처럼 될까요?”

“바라신다면요. 제 어머니께도 안부를 전해주세요. 어머니께 좋은 딸이 하나 생길 거 같다고요.”


좋은 딸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 황태후 보르지키트 저르저르와 관계를 맺을 것을 의미하니 비양고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던 오키코는 감사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말없이 마주 인사한 후에 서로 각각의 가마에 올랐다.


그리고 양쪽은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니, 오키코는 비양고가 온 길로 가고 비양고는 오키코가 온 길로 떠났다.



***



“한양에 도착하면 아마도 조선의 임금을 먼저 뵈어야 할 것입니다.”


철원을 떠나서 얼마간 행하니 교신사 야규 미츠요시가 다가와 넌지시 일러주는 말에 오키코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서 물었다.


“세자빈과도 인사를 하게 될까요?”

“그러실 것입니다. 제가 들은바 청나라 공주께서 이미 조선의 세자빈과 담화를 나누었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은 사방을 가능한 공정하게 대하려고 하니 오키코님도 그런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언질 받은 일이 생각보다 이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오키코는 멀리 시선을 주다가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교신사께서는 한양과 제물포라는 곳을 오가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한양보다는 제물포에 머누는 일이 더 잦습니다.”

“그곳이 더 좋습니까?”


제물포가 한양보다 좋냐고 묻는 말에 미츠요시는 애매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저 가는 길에 심심풀이로 물은 것에 생각지 못한 반응이 돌아오니 흥미를 느낀 그녀는 기대를 담아서 어떠한 대답이 돌아올지 기다렸다.


허나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좋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양은 일본으로 치면 에도나 쿄토와 같은 곳입니다. 근래에는 오가는 이인들이며 문물이 많아 번화함은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한양을 비유하여 이른 미츠요시는 살짝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게는 제물포가 더 편하고 재밌습니다.”

“편하고 재밌다?”


미츠요시가 하는 말에 식었던 호기심이며 흥미가 다시금 달아오르니 오키코는 그 감정들을 담아서 물었다.


“한양에서 먼가요?”

“멀지 않습니다. 대규모 행렬은 몰라도 인원수가 많지 않다면 하루로 오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경우는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빠듯한 일정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오키코의 감정을 느낀 미츠요시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 어려움을 에둘러 논했지만 그건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한양에서 며칠 여유를 청할 수 있다고 보는데, 아닌가요?”

“그것은······.”


미츠요시로서는 딱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키코는 활달하게 바람을 입에 담았다.


“시간을 조정해주세요. 철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흘 정도는 머물며 친목을 다진다고 하면 좋겠네요.”


오키코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에 활기를 보이니 그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비양고에게 닮아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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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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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 541화 원로 +1 24.04.02 161 15 12쪽
541 540화 세 경쟁자 +2 24.04.01 161 14 14쪽
540 539화 목패 협약 +4 24.03.31 155 15 16쪽
539 538화 감추는 재미 +2 24.03.30 162 16 12쪽
538 537화 모두가 아는 비밀 +2 24.03.29 151 14 13쪽
537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4 24.03.28 150 15 12쪽
536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2 24.03.27 153 14 12쪽
535 534화 미룸은 미정이 아니다 +3 24.03.26 163 14 12쪽
534 533화 허황된 이야기 +2 24.03.25 156 14 16쪽
533 532화 덕은 풍성함이 전부가 아니다 +2 24.03.24 166 12 12쪽
532 531화 소망은 성장한다 +4 24.03.23 168 15 15쪽
531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2 24.03.22 158 13 12쪽
» 529화 신부 교환 +2 24.03.21 179 14 13쪽
529 528화 어려운 관계 +3 24.03.20 180 13 11쪽
528 527화 친하면 조금이라도 돌아본다 +1 24.03.19 167 15 13쪽
527 526화 연약한 사람 +6 24.03.18 163 18 12쪽
526 525화 물려받은 천성 +1 24.03.17 164 13 12쪽
525 524화 인정받지 못한 아이 +1 24.03.16 189 15 12쪽
524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2 24.03.15 157 16 13쪽
523 522화 병졸과 역관 +4 24.03.14 166 19 12쪽
522 521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3 24.03.13 176 14 13쪽
521 520화 용기 있는 말 +4 24.03.12 175 16 17쪽
520 519화 정통성 +4 24.03.11 182 19 13쪽
519 518화 그대는 옳다 +3 24.03.10 176 14 11쪽
518 517화 거울 같은 사람 +3 24.03.09 175 14 12쪽
517 516화 우선하여 해결할 일 +2 24.03.08 189 17 13쪽
516 515화 맞수 +3 24.03.07 179 17 14쪽
515 514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7 24.03.06 184 16 13쪽
514 513화 소리는 사람을 모은다 +2 24.03.05 185 15 12쪽
513 512화 비상함은 필요하지 않다 +4 24.03.04 176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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