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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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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최근연재일 :
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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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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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42,229

작성
24.03.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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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DUMMY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오늘도 날이 좋구나.”


운 없는 자라고 놀림받고 살았던 포르투갈 상인 바스쿠는 전에 보이던 곤궁함이나 조급함은 하나도 없이 배에 설치한 그물침대에 누워서 청명한 하늘을 보고 기분 좋게 웃었다.


이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조선에 드나든 지 꽤 되어서 이제는 그 덕을 크게 보아 사정이 폈기 때문이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하는 옛말처럼 바스쿠는 크게 인심이 늘었으니, 그 인심은 조선에서 그를 붙잡고 얼마고 허송세월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풍성했다.


“오늘도 농땡이 부리십니까?”

“어허, 농땡이라니! 엄연히 이 나라에서······뭐더라?”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로타의 말에 바스쿠는 짐짓 엄한 얼굴로 다그치나 이내에 그치니, 전에 들은 그럴듯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에서 다음은 뭡니까?”

“잠깐만. 조금만 기다려봐.”


잠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바스쿠는 한참을 끙끙거렸지만 시로타는 그에게 딱히 무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윽고 바스쿠는 잊었던 말을 떠올렸는지 그럴듯하게 자세를 잡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흠흠. 이 몸은 이 나라 조선에서 녹을 받는 몸으로, 3등급 귀족이다. 어디 그런 귀한 몸이 농땡이라니, 그저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바스쿠의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조선 사람 혹은 조선에 대해 좀 안다고 하는 사람이 듣기에는 영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시로타 역시 그러하니 그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고 이상한 부분을 정정해 주었다.


“그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나라 말로는 3등급 귀족이 아니라 삼품 양반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정이 붙을지 종이 붙을지에 따라서 고하가 또 갈리고요.”

“위라고 들은 거 같은데, 그럼 종이 맞냐?”

“정이 맞습니다.”

“크흠, 크흠.”


어설프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본인도 들었는지 바스쿠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몇 번이고 헛기침했다.


그러던 중에 바스쿠는 민망함을 달래기 위해 고개와 화제를 동시에 돌렸다.


“날씨가 좋네. 그분들은 건강하시냐?”

“예. 그러고 보니 이번에 받기만 하니 미안하다고 선물을 조금 받았습니다.”


시로타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작은 병을 하나 들어서 보여주었는데, 그걸 본 바스쿠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 집에서 빚은 술?”

“맞습니다. 참, 이러지 않아도 이미 제가 받은 은혜가 있으니 평생을 갚아도 모자란 데 말입니다.”


시로타가 받아온 것은 지금은 세자시강원으로 자리를 옮긴 전 검상 이만영의 집에서 빚은 술이었다.


일본에서 그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을 무사히 구할 수 있었던 시로타는 그날 이래 조선에 올 때면 반드시 그를 보러 가고 선물을 전했는데, 대부분은 항해 중에 구한 설탕이며 후추나 말린 과일 등으로 작금에는 나름대로 구하기 쉬워진 것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하기 쉬워졌다고 하여 값이 아주 헐한 것은 아니니 아직은 나름대로 귀한 것들이라 이만영의 집에서는 이런 식으로 종종 작게나마 답례를 건네고는 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서로 감사하고 친하게 지내면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냐.”

“그건 그렇죠.”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시로타는 애매한 얼굴이면서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바스쿠는 시로타가 가져온 술병을 살피다가 슬쩍 사방을 살펴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다들 잘 지내지?”

“덕분에 잘들 지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시로타는 아제는 아마카와, 조선에서는 막가외라 불리는 마카오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사실 시로타는 그곳에 가족들을 두고자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내심 걱정이 일어서 고향을 떠난 이래 바닷길에서 여러 차례 고민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불란국 사람들 속에 두는 것보다는 그래도 비슷한 조선인이나 중국인과 어울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시로타는 초안대로 움직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조선도 나쁘진 않았지만 일본 사람들이 드나드는 일이 잦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남경 역시 이와 비슷함은 물론이고 정세가 불안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마카오는 쇄국 정책으로 인해 일본인이 드나드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있어도 보통은 시로타와 비슷한 처지인 이들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곳은 사실상 전략적 가치, 그러니까 천하를 노리는 이들에게는 대단한 위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천하를 얻으면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땅에 가까웠기에 명과 청 그리고 이제는 새로이 생긴 번국들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전쟁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아예 질서가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니 새출발하기에 좋았다.


시로타 본인이 가진 인맥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 시로타는 그 결정이 옳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참 대단하다니까.”

“그렇지요? 은혜를 갚는데 고맙다고 이런 걸 매번 챙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바스쿠가 하는 맒에 시로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바스쿠의 말은 사실 한쪽만 두고 한 게 아니었다.


“그쪽도 그렇지만 너도 말이다.”

“저요?”

“나야 네가 계속 일해주니 고맙긴 한데, 사실 여기도 너한테는 좀 위험하잖아.”

“하하, 그거야 대수롭지 않지요.”


가벼이 웃은 시로타는 그 대수롭지 않은 이유를 입에 담았다.


“가족들이야 나중에 몰래 나온 거니 어떤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본래 나온 몸이고, 이미 추방되었음이 공인된 처지입니다. 굳이 데리고 가서 무언가 하기는, 아니 할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 바스쿠를 향해 시로타는 그를 가만히 보다가 볼멘소리를 꺼냈다.


“저기, 제가 말한 거긴 하지만 그렇게 바로 수긍하시면 조금 상처받는데요.”

“흐히히히, 그래도 나는 네가 좋고 중요하다는 걸 아니 걱정하지 마라. 야, 내가 귀족이 되고도 널 이렇게 친밀하게 대한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지 않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조선에서 직첩을 받아 양반이 되었음에도 어느 선원에게도 딱히 고압적으로 굴지 않는 바스쿠였기에 시로타는 이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문에 휩싸였다.


그러던 와중에 시로타는 멀리서 배로 다가오는 행렬을 목격하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것을 고민할 여유는 더는 허락되지 않았다.


“어?”

“왜 그래?”


놀람이 담긴 시로타의 음성에 바스쿠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는데 고개를 돌린 순간 제법 큰 행렬을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안내역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바스쿠도 이제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교신사 야규 미츠요시였다.


“가만, 저분이 저렇게 안내할 정도면 대체 누가 오는 거야? 이곳 왕이라도 오시나?”

“높은 분이긴 하지만 조선 사람은 아닐 겁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말에 시로타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니 바스쿠는 고개를 돌렸다가 안색을 굳혔다.


그보다 먼저 안색을 굳히며 긴장하는 시로타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이냐?”

“모릅니다.”


시로타가 무슨 공가나 무가 출신도 아니고 높은 분들을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 특유의 행차하는 분위기며 방식은 먼발치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것이니 그것들은 시로타가 다시는 떠올릴 일이 없다고 여겼던 기억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저게 우리 일본에서 높으신 분이 행차하시던 모습이라는 건 잘 압니다.”

“······제길, 이거 골치 아픈데. 너, 일단 어디든 숨는 게 낫지 않을까?”

“늦었습니다.”


늦었다는 말에 바스쿠는 당황하며 다시금 시선을 돌리니 과연 이미 저쪽에서도 이쪽을 보았는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끄응.”

“괜찮을 겁니다.”


불안함이 얼굴에 살짝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애써 그걸 다스리며 대답한 시로타는 믿을 구석이라고 하듯 이쪽으로 오는 미츠요시를 바라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시로타가 계속 바스쿠 밑에서 일할 생각은 품은 것이며 조선에 들어오는 걸 거리끼지 않게 된 것은 미츠요시의 덕이 컸다.


그는 시로타가 어떠한 처지인지는 대충 알았지만 굳이 쫓아내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깝게 여기고 종종 위하는 말을 해주니 적어도 미츠요시가 교신사로 조선에 머무는 동안은 괜찮겠다고 여겼던 것이다.


허나 지금과 같은 상황, 미츠요시가 조선에 남았으나 그보다 높은 이가 방문하는 건 미처 예상치 못했던 시로타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등으로 줄줄 흘렸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시로타가 안일하다고 하긴 어려웠다.


미츠요시는 직책만 그럴듯한 게 아니라 사실상 일본을 대표하여 조선에 온 사신이며, 그 자신도 당금 일본의 실세 중 실세라 할 막부 최고위 인사 가운데 하나인 야규 무네노리의 아들이다.


그런 이보다 높다고 하면 어딘가의 다이묘라도 되어야 저울이 흔들리며 재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한 이들 가운데 조선 땅을 밟을 이는 극히 적었다.


밟는다고 한들 그 발걸음은 사실상 동래에 한정되기 마련이니 이곳 제물포에서 볼 걱정은 사실상 없었다.


지금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생각은 오늘 제대로 깨어질 모양이었다.


미츠요시가 가마를 향해 대단히 공손하게 무어라고 말을 전하는 모습들을 보니 말이다.


‘대체 누가 온 거지? 저분이 이렇게나 공경하고 조선에 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


걱정과 의아함을 담아서 살피던 시로타는 문득 가마 곁에서 간간히 말을 보태는 사람을 보았다.


처음에는 미츠요시에게 주목하여 잘 몰랐지만 그 복색이며 인상을 살피니 그도 제법 고귀한 이로 보였는데, 조금 더 살핀 시로타는 조선과 일본 사이를 오가면 모를 수가 없는 문양을 보았다.


‘후추 번의 번주!?’


그자의 정체를 뒤늦게 아니 공포감이 한층 더 엄습하였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미츠요시에 더해 비록 그 석고는 풍족하다고 하기 어렵지만 엄연히 다이묘라 할 이가 함께 안내하고 있는 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막부에서 귀히 쓰는 미츠요시에 더해 후추 번 번주가 모시려면 대체 누가 찾아와야 하는지 시로타로서는 감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서, 설마, 설마······.’


그러던 와중에 말도 안 된다고 여기지만 떠오른 사람이 있으니 바로 시로타가 이렇게 고향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현 에도 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말이다.


식견이 있는 이라면 시로타에게 그것만은 없을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그에게 무언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스쿠가 전부였고, 그 바스쿠는 시로타 본인보다도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거기 바스쿠 공에 시로타가 아닌가! 마침 잘되었군!”


그들을 소리 높여 부른 미츠요시는 두 사람이 무어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소리 높여 다시 말했다.


“귀한 분께서 알고 싶은 게 있다고 하니 어서들 내려오게! 자네들이 내 보기에는 적임자일세!”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모른 척 도망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었으니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배에서 내려 미츠요시 앞에 섰다.


두 사람을 보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가가 각각의 어깨에 한 손씩 올린 미츠요시는 용건을 입에 담았다.


“내가 듣기로 바스쿠 자네는 이제 곧 있을 삼국 대항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지? 여기 귀한 분께 그 이야기 좀 해드리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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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8 ageha19
    작성일
    24.03.22 21:48
    No. 1

    그 '귀하신 분'이 심지어 한때 덴노도 해본 사람이란 걸 알면 바로 거품물고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겠군요. 일본은 지금도 '신분'을 은연중에 중시하는 나라인데 하물며 저 시절이면...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65 g9******..
    작성일
    24.03.22 22:53
    No. 2

    선장님..엌..본국가서 은퇴하고 자서전내면..구라라고 할지도..ㅋㅋㅋ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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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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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 541화 원로 +1 24.04.02 161 15 12쪽
541 540화 세 경쟁자 +2 24.04.01 161 14 14쪽
540 539화 목패 협약 +4 24.03.31 155 15 16쪽
539 538화 감추는 재미 +2 24.03.30 162 16 12쪽
538 537화 모두가 아는 비밀 +2 24.03.29 152 14 13쪽
537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4 24.03.28 151 15 12쪽
536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2 24.03.27 154 14 12쪽
535 534화 미룸은 미정이 아니다 +3 24.03.26 163 14 12쪽
534 533화 허황된 이야기 +2 24.03.25 156 14 16쪽
533 532화 덕은 풍성함이 전부가 아니다 +2 24.03.24 166 12 12쪽
532 531화 소망은 성장한다 +4 24.03.23 169 15 15쪽
»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2 24.03.22 159 13 12쪽
530 529화 신부 교환 +2 24.03.21 179 14 13쪽
529 528화 어려운 관계 +3 24.03.20 180 13 11쪽
528 527화 친하면 조금이라도 돌아본다 +1 24.03.19 167 15 13쪽
527 526화 연약한 사람 +6 24.03.18 164 18 12쪽
526 525화 물려받은 천성 +1 24.03.17 165 13 12쪽
525 524화 인정받지 못한 아이 +1 24.03.16 189 15 12쪽
524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2 24.03.15 157 16 13쪽
523 522화 병졸과 역관 +4 24.03.14 167 19 12쪽
522 521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3 24.03.13 176 14 13쪽
521 520화 용기 있는 말 +4 24.03.12 176 16 17쪽
520 519화 정통성 +4 24.03.11 183 19 13쪽
519 518화 그대는 옳다 +3 24.03.10 176 14 11쪽
518 517화 거울 같은 사람 +3 24.03.09 176 14 12쪽
517 516화 우선하여 해결할 일 +2 24.03.08 190 17 13쪽
516 515화 맞수 +3 24.03.07 180 17 14쪽
515 514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7 24.03.06 185 16 13쪽
514 513화 소리는 사람을 모은다 +2 24.03.05 186 15 12쪽
513 512화 비상함은 필요하지 않다 +4 24.03.04 178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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